윤미래
[앞으로 한 달이나 두 달에 한번씩 크든 작든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기획과 청탁에 응해서 좋은 글을 보내주신 필자들에게 감사드린다.]
“페미니스트라면 여성 의제가 최우선이어야 하는데, 선생님은 그렇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페미니즘과 나의 첫만남은 대학에 갓 들어와서 맞닥뜨린 대자보로, 육하원칙으로 상황을 서술하고 입장과 실천 방안을 이어 쓴 통상적인 자보와 달리 칼럼의 한 부분을 크게 인쇄해서 붙여 놓은 것이었다. 여성 차별과 억압의 존재를 몰랐던 것도 아니고, 나 자신 그에 발목 잡혀 분통을 터뜨린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페미니즘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친구들과 딴에는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어화되지 못한 막연한 불만이나 페미니즘에 대해 떠도는 풍문이 아니라 페미니스트의 육성과 직접 마주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의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필자가 한 젊은이로부터 이 질문을 받고 스스로를 크게 반성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저 혼란스러워졌고, ‘나는 아마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되지도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내 마음과 일상을 짓누르는 것들은 그 밖에도 너무 많았고, 내가 당했거나 당할지도 모르는 성폭력, 성차별로 인한 괴로움은 내게 있어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몇 년이 흐르고, ‘페미니스트 언니’들이 만들었던 총여학생회나 여성주의 소모임들이 침몰해가던 중에 이번에는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내 또래의 ‘일반 여성들’이 세상을 거꾸로 세워보기 시작했을 때도 내 심경은 어쩐지 크게 다르지가 않았다. 여성들이 끊임없이 수행하는 복잡한 전략과 정교한 그림자 노동에 나는 언제나 실패했고 언제나 미달했다. 남성들의 틈바구니에 끼어들어가 내 자리를 드잡이질해 얻는 것이 내게는 늘 더 자연스럽고 쉬웠다. 여성들이 결집하여 남성들에게 속아 왔던 분노를 소리내 외치는 광경은 후련하고 감격적이었지만 거기에 내가 들어갈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손해 보는 입장, 피해를 입은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당사자로서 나서고 발언할 때는 종종 있었지만, 괴로움을 호소하며 동정을 청하거나 배제되는 소수자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어떤 경험을 하는지 상대적으로 잘 안다고 자임할지언정 내가 응당 누렸어야 할 권리를 돌려받겠다고 주장할 마음은 잘 들지가 않았다. 말하기 복잡하고 구질구질한 개인사적인 이유에서 내 자의식을 지배했던 것은 압도적인 가해 의식이었던 탓이다.
교차성이라는 관점을 알고 열성적으로 지지하게 되고서도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여전히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다.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프리즘’이라는 제목을 달고 글을 쓴다는 이율배반을 마음먹은 이유는 ‘주변에서 중심으로’ 향하는 운동에는 이런 나도, 이런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나의 말들이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조금은 덜 낯설게 느껴지게끔 하는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기사 등록 20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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