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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는 #METOO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6. 26.

엘리자베스 위글리필드(Elizabeth Wrigley-Field)

번역: 두견

 

  

[엘리자베스 위글리필드(Elizabeth Wrigley-Field)가 쓴 이 글은 미국의 중요한 극좌파 조직인 국제사회주의조직(ISO: International Socialist Organization)에서 있었던 성폭력 은폐 사건을 다루고 있다. ISO 회원들은 이 사건에 대한 조직보존주의적 대응을 거부하고, 회원들의 총투표를 통해 조직 해산을 택한 바가 있다. 조직 해산 이전에 반성과 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 글은 이 쓰디쓴 사건을 돌아보면서 교훈과 과제를 도출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지난 2년간 전세계적으로 진행되어 온 #METOO 운동의 경험과 교훈을 통해서 이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 글이 한국 운동사회와 좌파,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활동가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출처: https://socialistworker.org/2019/03/20/what-socialists-can-learn-from-metoo

 

 



전국 조직자를 포함한, 우리의 전국 지도부의 구성원들이 성폭행에 대한 고발을 심각하게 잘못 다루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고 나면서부터 우리 조직은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는 분노스럽고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최근 우리의 협의회에서 새로 선출된 지도부는, 지난주에 운영위원회가 ISO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제명과 자격정지와 같은 많은 즉각적 조치를 취했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절차들이 어디에서부터 바뀌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회원들과 전회원들, 그리고 운동의 동맹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려고 (협의회에서 설립된) '전국 #MeToo 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 있다.(나는 이 위원회를 제안한 사람 중 한 명이고 지금 이 위원회를 만들고 있는 그룹의 일원이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 선출된 지도자들과 함께 이 위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이끌고 있는 회원과 전회원들의 생존자 협회를 구성했다.

 

이러한 즉각적인 대응은 우리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했는지를 이해하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것은 우리 조직 내부의 강간문화를 뿌리뽑기 위해 사회주의 조직이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생존자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운동을 만드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 준다. 이것들은 좌파 전체를 위한 질문이며 다른 조직이나 정치 전통들의 대화에서도 대답할 필요가 있는 물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대화를 적극적으로 시작하고 추진할 책임이 있다.

 

이 기사는 그 대화의 한 가닥을 시작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우리 조직이 2013년에 한 일 중 최악을 이해하고 2019년에 대응한 최선의 방법을 이해하며, 두 번 다시 전자를 반복하지 않고 후자를 건설하는 방법은 #MeToo 운동의 교훈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언어에 관한 메모: 나는 피해자의 고발을 믿고 나 자신의 관점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법률적 언어보다 직설적 언어를 사용할 것이다. 강간혐의보다는 강간, 원고보다는 생존자, 피고보다는 강간범.)

 

2013년에 대한 개인적 노트

 

2013년에 나는 강간범과 같은 도시인 위스콘신의 매디슨에 살았고, 우리는 우리의 ISO 지부가 강간 혐의를 알게 된 날까지 좋은 친구였다. 나는 즉시 그 고발을 믿었다. 나는 생존자에 대한 생각에, 내가 친구를 그렇게 잘못 판단한 것에 가슴이 아팠다. 나는 또한 그 강간범이 우리 집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고, 조직에서 그를 추방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러면 그 후에 그가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고 봤기에 개인적으로 두려웠다.

 

나는 (기밀이었던) 당의 어떤 진술서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 혐의를 믿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전에 우리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이 강간을 은폐했기 때문에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봤었다. 나의 동지들과 나는 경악 속에서 이 사건을 보고 우리 자신과 서로에게 다짐했다: 우리는 그것보다 더 잘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즉시 그 고발이 진실이라고 가정했지만, 몇 달이라는 기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우리의 과정을 통해서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불안하게 설득됐다.

 

우리 핵심적 지도자들은 그 생존자(이제는 지도부가 전혀 돌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진)에 대한 비밀 유지와 보호라는 가식을 사용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우리가 선출한 동지들이 만장일치로 강간범을 제명하기로 투표했다는 것을 포함한 핵심 정보들을 우리에게 숨겼다.

 

우리의 과정이 끝날 때,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적 시책들에 대해 긴밀히 협력했던 여성동지들을 포함하여 약 15명의 동지들이, 서로 상의하지 않는 다섯 개의 별도 그룹으로 나뉘어, 양쪽의 진술서를 보고, 우리가 강간범을 추방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믿었다. 나는 이제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실제로, 우리 전국규율위원회는 절차상의 근거로 인해 우리가 전혀 통보받지 못한 투표 결과를 뒤집으라는 협박을 당했다. 우리 전국항소위원회는 증거 불충분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고안된 지시를 받았다. 생존자를 옹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포함해, 매디슨에 있는 우리 회원들은 실제 강간 이야기라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화를 믿게됐다. 그리고 우리 전국 조직자는 이것을 바로잡는 것보다 사라지게 만드는 데 더 신경을 썼다.

 

나는 6년 동안 동지를 잘못 본 것 같다는 죄책감을 느끼며 지냈고 - 그는 내 친구였고 나는 그의 편에서 아무것도 물어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가 유죄라고 가정했었다 - 동시에 내가 제대로 대응한 게 맞나라는 질문으로 계속 돌아갔다. 내가 다시 어떻게 대응하기를 원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그 두 가지 생각을 어떻게 하나로 정리해야할지 알 수 없었고 그 갈등은 6년 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가 바로 일주일 전에 내부고발자의 서류를 받아보면서, 내게서 숨겨져 있던 조각들을 보게 됐다. 그리고 그 고발이 줄곧 사실이었다는 것을 즉각적이고 돌이킬 수 없이 알았다. 그것은 이 이야기의 일부이다: 우리의 과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우리 자신의 판단과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을 의심하게 만들었는지.


생존자를 믿기

 

2013년에 강간 혐의를 파묻는 결과를 낳는 과정에서 여러 가닥의 나쁜 정치가 엮였다고 나는 본다. 그것을 느끼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강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첫 번째 가닥은 강간 문화다. 내가 강간범이라고 믿는 전 멤버는 지난 주에 이것이 불거졌을 때 몇몇 멤버들에게 놀라운 이메일을 보냈다


그 이메일은 내가 보기에 강간에 대해 널리 퍼진 통념을 이용해 신뢰를 얻기 위해 고안된 것 같았다.(생존자에게 어떤 추가적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 이메일을 ISO에서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게 하고 있다.): 강간은 항상 명백하게 물리적 폭력이 따른다, 여성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매력적인 사람들에 의해서는 결코 저질러지지 않는다, 취기를 이용하는 것은 동의를 위반하는 다른 방법들과는 다르다, 합의된 섹스에 뒤따른 분노에 반응하여 강간 주장을 만들어내는 여성들이 있다: 이 모든 생각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비극적이게도, 그리고 분개하게도, 나는 매디슨에 있는 ISO 지부의 일부 전회원들의 반응이 강간 신화를 재현했고, 이것은 그들이 강간범과 생존자의 진술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믿는다. 2013년 매디슨 ISO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마지막 주에 있었던 대화들 때문에 - 그 당시에는 우리가 가질 수 없던 대화들 - 나는 이제 당시 ISO의 사건 결정 과정에 중심이었던 일부 구성원들이 잘못된 추정에 의해 강하게 영향 받았음을 알고 있다.

 

강간 생존자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즉시 인식하고 시간이 지나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MeToo 운동은 생존자들의 경험을 공개 토론에 끌어들였고, 그러한 경험들은 그런 추정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생존자들은 때때로 강간범들과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해야하는 것을 포함해, 자신에게 행해진 일에 대한 완전한 설명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많은 이유가 있다.

 

때로는 그들이 강간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감정들(결국 많은 생존자들은 그들이 좋아하거나 사랑한 사람들에 의해 강간당했다), 때로는 미래의 해악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이 강간범들의 행동의 심각성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때때로 우리가 강간 생존자가 되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개념을 종합하는 것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연구는 우리가 수많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을 뒷받침한다.) 우리는 강간, 강간범, 강간 생존자들에 대해 우리가 배운 많은 것을 거부해야하고, 그보다는 생존자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통해 배워야 한다.

 

생존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완전한 존중, 그러나 비밀주의에 대한 양보 없음

 

나의 가장 깊은 믿음 중 하나는 우리 모두 나름대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투는 기관들이 성폭력에 반응하는 특정한 방법들이 우리에게 그런 기본원칙을 위반하도록 어떻게 강요하지는 분명하게 드러냈다.

 

나는 이것에 대해 개인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내가 느낀 것 중 가장 더러운 것은, 교수 자격으로서, 최근에 대학 행정실에 타이틀 IX(미국 교육계에서 반성차별 조항) 위반을 처리하는 보고서 양식을 작성했을 때이다. 나에게는 공개됐지만 더 공개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던 우리 반 학생의 성폭행 피해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 대학의 입장은 학생의 폭행 사실을 신고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시민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그래서 우리가 이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대학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가 그들의 몸과 삶을 통제할 수 있으려면, 그들이 그들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2013년 매디슨에서 사건에 대한 조사 때 이런 사생활 존중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이용됐다. 물론 생존자의 비밀을 존중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그 권리에 대한 우리의 존중은 우리의 핵심 지도부에 의해 왜곡되어 생존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우리가 서로 가해자의 혐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방해했다.

 

지난 주에 있었던 대화에서, 그것은 나에게 명백해졌다. 강간범의 도시에 있던 우리 중에서 그 혐의를 본능적으로 믿었던 사람들이 서로를, 또는 그것을 조사한 징계위원회 및 항소위원회 위원들을 찾아서 대화할 수 있었다면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보호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많은 의문점을 안고 있다.

 

생존자가 원하더라도 가능한 한 적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리고, 소수가 그들의 행동에 대한 실질적 확인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그리고 이견을 보이는 사람들은 서로 연결될 때만 의미를 만들 수 있는 파편화된 정보의 일부만을 가지고 어둠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MeToo 운동의 많은 부분은 이전에 오직 속삭일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에 있었고, 마침내 이야기가 빛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영감을 받아 서로 연대하며 함께 행동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특히 이미 같은 범죄자를 고발한 다른 생존자들과의 연대감을 가지고 전진하는 많은 생존자들을 생각하고 있다. 대개 낯선 사람들 사이의, 그러한 연대의식은 나에게 있어 #MeToo의 가장 고무적인 측면들 중 하나이다.


우리가 설립하고 있는 #MeToo 위원회에서 우리가 탐구하고 있는 한 가지는, 생존자들과 성차별적 행동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더 잘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ISO에 속한 우리들 중 다수는 성폭행에 맞서는 캠퍼스 내 캠페인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통해 배운다.) 우리들 중 다수는 선의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의해 그것이 사소한 잘못인 것처럼 치부돼 온 경험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것이 넓은 행동 패턴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면 다르게 느낄 것이다.

 

#MeToo 위원회는 그들에게 보고하면서도 특별한 보상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그 경험을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등록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많은 경험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만약, 동지들이 이런 경험을 보고할 때, 다른 사람이 같은 범인에 대한 관련 경험을 보고할 경우에 연락을 받고 싶은지를 나타낼 수 있고, 연락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져 있는가? 만약 그 모든 동지들이 그 잘못이 여전히 작아 보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함께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규칙과 절차가 아니라, 진실과 상처에서 출발하라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 할 한 가지는 우리의 과정이 진실과 상처의 치유보다는 절차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규칙은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최악의 충동을 억제할 수 있다. 규칙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의 특징들이 관련있는지 그것이 어떤 반응을 촉발할 것인지 말해준다. ‘생존자들을 믿기는 개인의 상황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강간 신화와 개인적 친분에 의해 왜곡되기 쉽지만, 우리가 바라는 게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충동을 무시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규칙이다.

 

멤버에 대해 심각한 비난이 제기될 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때까지 일단 중단하라는 것이 우리의 ISO의 규칙이고, 이것은 좋은 규칙이다.(우리가 항상 지켜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건 다 바꾸더라도 그것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충실함은 규칙에 있지 않다: 진실에 있다. 우리의 최고 원칙은 우리의 원칙과 일치하는 어떤 방식으로든 진실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MeToo 위원회는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건들거나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 그것은 생존자들에게 더 큰 해를 끼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는 것을 존중한다는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듣기 힘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모든 길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솔직하게 우리의 규칙이 진실을 발견하는 데 장애물이라고 믿을 때, 규칙들을 던져버려야 한다. 그러나 2013년에 우리 전국조직자가 취한 접근 방식은, 그녀를 통해 운영위원회 대표가 규율위원회와 항소위원회에 취한 접근방식은, 정확히 말하면 진실을 넘어서 규칙을 특권화하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그 조직자는 단체가 잘못한 것으로 보이는 것의 개요를 담은 편지를 규율위원회에 보냈다. 지금은 우리가 알게 된, 이미 강간범을 추방하기로 표결한 동지들에게서, 무엇을 없애야 할지에 대한 결정권을 빼앗는 것을 정당화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급격히 좁혀진 권한으로 운영하게 될 새로운 기관(항소위원회)에 결정권을 대신 부여했다.

 

이 편지는 한편의 코미디처럼 읽힌다. 특히 징계위원회가 매디슨에 있는 동료들로부터 배우려고 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빌 클린턴 식으로 과거와 미래의 의미를 분석하는 부분이 그렇다. 징계위원회는 강간으로 기소된 사람이 ISO에서 섹스 파트너를 찾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야비하게 사용한 전력이 있는지를 알아봤던 것이다.

 

그 조직자가 항소위원회에 보낸 지침은 생존자가 우리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넘어서 ISO의 조사과정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마치, 강간범의 그녀에 대한 거짓 진술에 대해서 "아니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서는 그녀의 주장의 명백한 타당성을 평가할 수 없다는 듯이 보였다. (물론 그녀에게 이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 과정의 이 측면을 잘 보면, 아주 유별나게 합법적 과정을 따르는 것에 극도로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실제 법률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선발돼서 이 과정을 실행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앞에 놓인 임무를 망치고 말았다. 그것은 우리가 이 사람이 더 이상 우리 그룹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이 검토는 무언가 옳은 것을 얻지만, 그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규칙에 집착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이 사건에서 징계위원회의 판단을 뒤집기 위해 개입했던 그 전국조직자 역시 절차도 책임도 전혀 없이, 우리 전국사무국의 문제제기를 받게 된 어떤 혐의를 판정하기 위해 그녀 자신의 개인적 판단을 이용했다. 사실, 2013년 사건에서 그녀의 개입은 그 자체가 우리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전국적 징계 기구의 모든 요점은 우리의 운영 위원회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역설에 대한 최근의 대화에서 나의 동지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합리적이거나 옳은 것을 희생하면서 절차에 집착하는 것을 관료주의라고 정의해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하지만 관료체제는 실제로 종종 규칙의 선택적 집행에 의해 정확하게 정의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권위에 봉사할 때는 융통성이 없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권위에 적합할 때는 훨씬 더 융통성이 있지 않은가?

 

나는 실제로 그 규칙들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 우리 조직자의 이익과 조직의 입을 손실을 지키면서 겉치레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믿는다. 그 손실은 열성적인 회원, 그리고 아마도 그를 소리 높여 지지했던 우리 지도층의 다른 사람들의 정당성의 상실이었다.

 

그 규칙들은, 그들이 자주 하던 것처럼 대화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주었다. 우리가 사건 진행 상황에 대해 들은 모든 것은 징계위원회가 자체 절차를 따랐느냐는 문제를 중심으로 짜여졌다. 그러면서 사라진 것은 우리 멤버가 누군가를 강간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또한 더 넓은 #MeToo의 순간과 비슷하다. 생존자가 계속 새로 나서면서 우리는 대화가 절차적인 질문으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다. 왜 진작 고발하지 않았지? 만약 우리가 법적 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신을 믿을 수 있지? 그리고 우리는 또한 이런 빠져나가기에 저항하는 법을 배웠다.

 

이것은 우리가 ISO에서 겪었던 문제의 핵심에 대한 한 가지 형태의 이중 사고이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그렇지 않을 때를 빼고, 우리의 과정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MeToo 운동이 멋지게 드러냈던 것은 두 번째 이중 사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양가 있는 사람들을 잃을 여유가 없다. 하지만 그들 때문에 우리가 잃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중단한다면 말이다.

 

모든 사람이 중요하고 아무도 필수불가결하지 않다

 

ISO에서 이 강간 및 기타 학대를 조장하는 데 가장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지속 적으로 지도부의 핵심을 형성해 온 사람들이다.(다른 사람들이 여러 가지 지도적 역할을 드나들면서할 때도 수십 년 동안 우리 조직을 운영했던 소수 집단을 구별하기 위해 내가 사용하는 문구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이 숨겨져 있는 동안, 우리 모두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그들의 지도력에 대해 우리가 심각하게 불신하지 않을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 말한다면, 난 그들을 정말 믿었다. ?

 

이 실패의 한 가지 강력한 교훈은 우리가 어떻게 소수의 사람들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취급했는지를 분명히 직시하는 것이다. 나는 조직이 자신들 안에서 힘있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우하는 일반적인 경향이 있다고 본다. 나는 또한 우리 조직에 특정한 문제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더 넓은 좌파와 노동계급 운동에 기여할 구체적 방법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이 일반적인 경향을 심각하게 악화시켰다.

 

나는 무엇이 우리 조직 특유의 정치적 특징인지를 구분하는 것(그리고 더는 좌익 전체에 대한 우리의 기여를 이해하는 방법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은 우리의 전통과는 거리가 먼 다른 정치적 전통과 함께 생각하고, 읽고, 관여하는 긴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전통의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 주위에서 모양을 갖추는 새로운 운동 속에서 함께하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적어도 이 두 번째 역설은 재고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지도자들 중 일부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취급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오랜 멤버들이 우리 곁에 남아있지 않은지에 대해 너무 많은 질문을 막아왔다. 우리는 인간적인 면에서는 물론 우리 자신의 프로젝트라는 면에서도 '필수불가결한 동지들'의 진정한 비용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혀 왔다.

 

이것 역시 #미투 운동의 교훈이다. 학대를 용인하는 조직이 된다는 것은 학대를 당하는 사람들의 기여를 잃는 것을 의미한다. 각광받는 결과물을 만든 힘 있고 성공한 사람이 폭력이나 학대로 인해 그 자신의 지위가 어느 정도 상실될 때마다, 우리 문화는 너무나 격렬하게 그의 작업이 사라지는 것을 아파한다. 우리는 정치(사회주의 운동이나 의회에서)나 예술(영화, 코미디, )에 대한 손실을 애도하고 그 손실이 너무 커서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하기 위해 초대된다.

 

그러나 #MeToo는 우리의 진정한 손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생존자들이 무엇을 만들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역설은 반대로 흘러야 한다. 모든 동지는 우리의 투쟁에 헌신하는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는 의미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인 것이다.

 

투쟁하고 있는 우리의 구성원들은 우리의 정치적 비전과 원칙과 함께 우리의 두 가지 필수적 자원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가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그들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서는 안 될 만큼 불가결한 사람은 없다. 그것이 그들이 더 이상 우리의 투쟁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때에도 말이다.

 

이것은 개인에서 조직으로 확장된다. 우리 운동의 이익보다는 스스로를 보존하는 조직은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 또한 결점들을 숨김으로써, 보존되어야 할 조직이란 없다. 지난 끔찍한 한 주 동안 나에게 희망을 준 것은 우리 조직을 보존하는 것을 중단하고 그 실패에 빛에 비추고자 하는 동지들의 의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을 바꿀 수 있었다. 나의 동지이며, 생존자 모임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니키 윌리엄스는 시작하기에 완벽한 공간을 나누었다. 이것은 제임스 볼드윈이 쓴 글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가 직시한 모든 것을 바뀔 수는 없지만, 직시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가해자들이 아니라 생존자들에 있다

 

생존자들의 모임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 논평은, 우리의 현존하는 징계 절차들은 가해자나 가해자일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련의 질문들을 다루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유죄인가? 그들이 처벌받아 마땅하다는 게 무슨 뜻인가?

 

강간범들을 쫓아내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서로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방법이고,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기보다는 뭔가 멋진 것을 주기 위해서 우리의 조직과 운동으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생존자들이 중요하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한 가지 방향이다. 그럼에도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생존자 모임의 많은 동지들이 지난 주에 지적했듯이, 왜 우리의 과정은 가해자들이 받아야 처분 대신에 생존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가?

 

이것은 사실 우리가 전문학교나 대학에서 성폭력과 성희롱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배운 교훈이다. 우리는 강간범이 낳은 결과에 맞서 싸워 왔을뿐 아니라, 또한 진정한 보상을 위해 싸워왔다. 어쩌면 생존자에게는 새 기숙사 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을 괴롭힌 조언자와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면 유료 연구 시간과 집중적인 조언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녀에게 물어볼 때까지 우리가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전에 우리는 진실을 찾는 것에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나의 동지인 메리암 아비디의 말을 인용하자면

 

“‘정당한 법 절차'는 흔히 '진실 찾기'라는 겉치레 아래 힘 있는 사람들이 고안한 일련의 관료적 규칙에 따라서 모든 혐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또는 더 정확하게 어떤 규칙이 깨졌는지를 정확하게 알아내거나 규칙을 어긴 정확한 행위자를 알아내는 과정,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반면에 사회주의적 대응은 진실과 치유를 중심에 놓게 할 것이다.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가해가 발생했는지, 어떤 필요, 책임, 의무가 각각의 관련 당사자들에게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요구를 집합적으로 충족시킬 것인지, 우리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그러한 책임을 이행할 것인지를 중심에 놓을 것이다.”

 

형사사법제도나 작업장, 캠퍼스, 정치조직에서 뭔가 다른 의미를 가져야 할 정당한 절차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대화는 많다. 비록 그 권리가 취하는 형식이 맥락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한 고발에 대응할 권리가 있다. 국가가 형사사법절차에 부과할 수 있는 해악, 그리고 국가가 가지고 있는 이익은 그 구성원이 누구여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자발적 조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진실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실이 무엇이냐라는 메리암의 지적은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합당한 절차를 밟을 것이다. 그러나 #MeToo의 주요 메시지 중 하나는, 예를 들어 괴롭힘에 저항하다가 직장을 잃은 여성들에게 정당한 절차가 집단적으로 거부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확실히 매디슨에 있는 생존자에게 공정한 절차를 제시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정당한 절차를 원하고 추구한다면,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는 확장적인 정당한 절차가 필요하다. 그리고 최고의 서류상 절차조차도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강간에 대한 신화와 거짓말을 믿고 있다면 결코 공평하지 않을 것이다. 문화적 개혁과 동시에 같이 가지 않는 절차적 개혁은 없다. 이것은 실패한 구성원들에 대한 책임감이 어떤 것인지를 다루면서 앞으로 우리가 수행해야 할 교훈이다. 우리는 가치관의 실패와 판단의 실패를 구별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문제이고 해롭지만 그들은 신뢰를 다시 쌓는데 필요한 것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그때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지금 뭐라고 말하는지를 고려할 수 있다. 두 번 다시 믿지 못할, 내가 깊이 믿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크거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니다. 그 중심적 생존자들을 위해 우리가 창조를 시도하고 있는 정치적 과정은 무엇인가? 생존자들의 모임이 이 위기를 헤쳐 나가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그것을 찾아가기 위한 가장 이른 출발점에 불과하다. 그것이 아마도 가장 큰 질문일 것이다.

 

#MeToo에서 배우기

 

이 돌아보기 노트를 통해 우리가 2013년에 위반했고 2019년에 다시 살려내려고 노력한 원칙들이 모아졌다: 생존자들을 믿어라,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야 하지만 비밀주의는 아니다, 우리는 진실에 충성해야 한다, 특정한 소수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소중하다, 결점을 감춰서 보존돼야 할 조직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누가 상처를 받았는지에서부터 시작하라.

 

우리는 그 원칙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 대체적으로 그 원칙들에 적대적이고 우리 모두가 중요하다고 보는 바로 그 생각에 체계적으로 적대적인 기관들에 의해 운영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것들을 위해 싸우는가? 우리는 어떻게 동시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 자신의 조직 안에서 그것들을 위해 싸우고, 그것들을 우리 스스로 구현하기 위해 싸우는가? 그것에 대한 답은 어떤 단일 그룹이나 어떤 전통에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공간에서 투쟁하면서 서로 대화 협력하는 데서 비롯돼야 한다.

 

우리는 이 문제를 아주 지독하게 잘못 처리한 조직에 있었기에, 대화를 추구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워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 모든 사회주의 운동은 주위의 투쟁으로부터 배웠거나, 그렇지 못하면서 운명을 다했다. 마르크스는 유럽에서 노동자들의 봉기 못지않게 식민주의에 맞선 인도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배웠다.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흑인의 투쟁과 흑인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개입을 통해서, 식민주의에 맞선 전세계적 저항과 그들과 연합한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비전을 배웠다.

 

사회주의 조직들은 여성과 다른 억압된 성정체성을 위한 평등,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사실 등에서 정치적 비전을 살려내지 못했고 잇따라 실패해 왔다. 2013년에 한 멤버가 강간범으로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ISO의 핵심 지도부가 우리의 과정을 조작한 것은, 우리가 싸우고 있다고 믿었던 조직을 만들면서 그토록 많은 것을 바친 것에 대한 완전한 배신이었다


이 위기가 나타나기 3주 전에 ISO는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했다. 왜냐하면 우리 회원들은 압도적으로 우리 조직을 민주화하고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투쟁과 우리의 사회주의 정치를 더 완전하게 통합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그러한 과제들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전을 만들려는 투쟁에 가장 깊이 빠져 있는 것은 우리의 수많은 회원들이지, 비판으로부터 스스로를 면제시키려 했던 경직된 지도부가 아니라는 것을 봤다. 그 후 몇 주 동안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진실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낡은 지도부와 그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지탱해 주었던 조직 모델은 깊이 썩어 있었고,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장기적 과제다. 우리 중 몇몇은 단체에서 함께 이 과제를 수행할 것이고 몇몇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그것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새로운 지도부는 우리의 실패를 정직하게 직시하기 위해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행동했다. 공식적으로 선출된 지도부 기구들과 이 위기에서 우리를 이끌기 위해 생존자들의 모임이나 다른 기구들에서 나선 많은 동지들 모두가 말이다. 나는 이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대응이라는 것을 우리가 즉시 이해한 것은 #MeToo 운동과 다른 투쟁의 효과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우리의 새로운 지도부, 특히 #MeToo 위원회의 등장이 내부고발자가 마침내 지금 우리 앞에 나서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낀 이유라는 것을 안다.(왜냐하면 그것은 그녀가 우리에게 보낸 편지의 첫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원칙들이 살아 움직이도록 만들어 줄 질감과 세부사항을 제공할 이야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오늘날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MeToo뿐만 아니라 #Blacklivesmatter와 지난 7년간의 여타 반인종주의 투쟁의 교훈을 따라잡는 데 있어서 특별히 뒤쳐진 느낌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투쟁들이 사람들, 우리의 열망, 그리고 우리의 운동과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의 기대만큼이나 우리를 심오하게 형성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 위기와 만연한 불평등만큼이나 우리를 망치고 있다는 널리 퍼진 이해의 일부라는 것은 명백하다.

 

ISO 출신인 우리들에게는, 우리가 회원으로 남아 있든 아니든, 여기서 앞으로 나아가는 어떤 길도 #MeToo와 우리 주변의 다른 운동들로부터 배운 가능한 모든 것을 사회주의 운동으로 끌어들이는 쪽으로 향해야 한다. 우리는 매우 겸손하게, 우리 조직이 어떻게 우리를 실패하게 하고 우리를 신뢰했던 생존자를 실패하게 했는지 이해하는 것을 통해 뭔가 제공할 것이 있고, 전체 좌파는 여기서 배울 필요가 있다.  



(기사 등록 2019.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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