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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차별

버닝썬 게이트? - 우리 시대 남성성의 범죄적 측면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3. 18.

전지윤

 





승리와 정준영의 성범죄? 버닝썬 게이트? 이런 용어만으로는 요즘 터져 나오는 사건의 의미와 배경을 담기에 부족해 보인다. 지금 상황은 가부장제와 남성성 자체가 범죄와 게이트의 요소를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최근까지도, ‘성차별은 주로 기성세대의 문제이고 요즘 젊은 남성들은 오히려 역차별을 느끼고 있다, 이제는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고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는 차별을 별로 느끼기 어렵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만능키로 모든 남성을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면 안 된다’... 이런 말들을 하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마땅하다.

 

소수의 남성들만이 성폭력을 저지르고, 성차별로 보통 남성들이 얻는 이득은 없으며, 평범한 여성과 남성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던 일부 좌파들도 이 참담한 현상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면 우리 모두는, 특히 남성들은 수많은 또다른 정준영들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정준영들의 옆에는 같이 키득거리고 묵인 방조한 수많은 용준형들이 있다는 것도 말이다. 정준영이 들어가 있었다는 그 많은 단톡방에서 그를 말리거나 진실을 고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쯤되면 모든 남성 연예인들의 휴대폰을 압수수색하고 전수조사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남성 연예인들이 은퇴를 선언해야 할까? K팝 산업 종사자들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제기도 나온다. 당연이 연예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제도 집에 오다가 동네 상가 옆에서 아가씨 상시 대기풍선간판을 무심코 지나쳤다. 오늘도 페이스북 친구 신청 형태로 들어온 성매매 광고를 반복적으로 삭제해야 했다. 방금 전에도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다가 옆에 바로 뜨는 주인집 딸내미라는 웹툰 광고를 안보이게 내려야 했다.(이 시리즈는 형수, 처제, 이모, 장모, 새엄마로 이어져 온 것 같다.)

 

이게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생산, 소비, 유통, 축적 과정 모두에서 여성의 노동, 몸과 성을 착취해서 굴러가는 가부장적 자본주의다. 이 체제는 웹하드 카르텔, 성산업 카르텔, 성접대와 성상납, 강간약물 산업 등을 보조축으로 삼으며, 그 카르텔 속에서 연예인, 사업가, 외국인 투자자, 경찰총장등이 서로 끈끈하게 국경을 넘어서 얽혀 있다.

 

독점 자본주의가 최상층 1%만이 아니라 위계적 피라미드 속에 수많은 협력자와 방조자들에 의해 유지되듯이, 가부장적 자본주의도 위계적 구조의 남성연대 속에 수많은 협력자와 방조자들에 의해 유지돼 왔다.

 

남성성이 지배적인 이 체제에서 남성적 시선의 언론들은 피해여성이 누구인지를 계속 캐묻고, 남성화된 국가권력은 지금까지 단 1명도 긴급체포하거나 구속하지 않고 있고, 남성연대의 무기처럼 보이는 경찰은 제보자가 누구인지 색출하고, 그 입을 막는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김어준 씨는 김학의가 훨씬 중요한 사건인데 버닝썬에만 달려간다며 또다시 고통의 경중과 서열을 매기고 있다.

 

승리의 범죄가 번창할 판을 깔아주고, 정준영의 범죄를 장난으로 퉁쳐서 다시 카메라 앞에 세운 방송도 남성연대의 공범이었다. 3년 동안, 방송을 틀면 나와서 웃고 떠드는 정준영을 보면서 피해자들이 느꼈을 고통은 가늠하기 어렵다. 미투에 나선 피해자에게 사과는커녕 되려 사과하라는 단체(노동자연대)에게 툭하면 집행위원장, 운영위원장 자리를 맡기는 진보진영도 과연 크게 자유로운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묻고 넘어가면 되는 문제인가?

 

가장 기막히고 열불이 터지는 것은 이 상황에서도 역차별받는 남성들을 대변한다며 반페미니즘 선동에 열심인 하태경같은 자들이다. 최근 여성가족부는 전교조 여성위원회와 협조해 성평등 학습 지도안을 발표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 중에 여성이 4%밖에 안 되는 것은 문제이고,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란 없으며, 코르셋을 벗으려는 여성을 지지해야 한다...’

 

남성성을 해독하기 딱 좋은 이 교안에서 아쉬운 점은 왜 이제서야 나왔냐는 점밖에 없다. 그런데 엊그제부터 하태경은 이것을 문제 삼아 교안을 삭제하게 만들고, 여가부 장관 사퇴까지 요구하고 있다. 또 다른 승리와 정준영들을 계속 키워내자는 바로 이런 세력이 가해자적 남성성의 수호자들이다.

 

영화 <캡틴마블>에서도 여성 히어로의 잠재력을 계속 억누르고 통제하려는 남성들이 나온다. 캡틴마블은 마지막에 놀라운 힘으로 이 모든 걸림돌들을 속시원하게 싹 쓸어버리고, 우주군함전단도 똥줄 타게 도망가도록 만들어버리는데... 그 과정에서 큰 힘이 된 것은 흑인여성과 고양이(구스)였지, 지구 남성들은 아니었다. 닉 퓨리의 눈은 싸우다 다친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이번에 방정현 변호사 등의 존재는 우리가 남성성에서 벗어나 변화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남겼다. 하지만 진짜 캡틴마블은 바로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사회의 성착취적 남성성, 가부장적 체제와 권력에 도전해 역사적 변화를 만들어 온 여성들이다. 이들의 용기와 투쟁이 없었다면 이 사건의 진실이 이 만큼이라도 드러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0년 전이었다면 O양 사건, B양 사건으로 불렸을 이런 사건에서 승리와 정준영이라는 가해자의 이름과 얼굴이 맨 앞으로 나오게 만든 것도 이들이다. 아직도 멀었지만 그나마 이만큼은 왔고, 이들은 계속 더 앞으로 나갈 것이다. 나중에 개봉할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도 인류를 구할 주역은 아마도 캡틴마블이 아닐까 싶다.  



(기사 등록 201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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