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안희정 전 도지사의 유죄 인정, 그리고 구속을 보면서 역사의 흐름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본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일은 안희정과 김지은, 두 사람 사이의 문제를 넘어서 한 나라의 인권 감수성 발달사 혹은 일상 변천사에서는 한 획을 그은 것이었습니다. 인제 드디어 직접적인 물리적 강제가 아닌 사회적 위력에 의한 강간이 강간으로, 즉 흉악범죄로 인정된 것입니다.
여태까지의 #미투 운동이 가능하게 만든 이 판례는, 앞으로는 한국의 일상 문화를 아주 크게 바꿀 것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 전례는 우 조교의 선구적인 성희롱 소송 (1993~1999), 아니면 2010년의 학생인권조례에서의 체벌 금지와 같은 정도로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 봅니다. 역사의 진보라는 게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승리들의 연쇄야말로 바로 역사의 진보죠.
위력 강간은 여태까지는 세계 곳곳에서는 그냥 '일상'의 당연한 일부로 간주돼왔습니다. 러시아에서 푸쉬킨과 톨스토이처럼 '문호'로 받들어지는 농장주 귀족들이 농노 여성들을 "상전"으로서의 위력을 이용하여 성적으로 착취한 것이 알려져도 "그 시대로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그들의 명예에 그다지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 때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그런 종류의 일은 하도 흔한 일이었으니까요. 아서 쾻슬러 (1905~1983)는 위력과 폭력을 이용해서 수 명의 여성을 강간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도 그는 여전히 구미권 지성인 사회에서 "비판적 지성"의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런 차원에서 다른 사회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고, 한국 진보계는 아주 오랫동안 이 문제에 무관심해왔습니다. 안희정이 정치인으로서 초기 사회화 과정을 밟은 건 고려대의 1980년대의 "애국학생회"이었을 것인데, 만약 그 때 운동권의 분위기가 성평등적이었다면 과연 그는 오늘날 와서 이와 같은 범죄를 이토록 쉽게 저질렀을까요? 운동권의 상당부분은 정치의 민주화를 지향하면서도 젠더 관계를 비롯한 사회 민주화에 다소 둔감했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는 사회 민주화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불평등한 젠더 관계를 겨냥하는 #미투 운동은 그야말로 혁명적입니다. "애국학생회" 멤버들이 참여했던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처럼 내지 어쩌면 그 이상으로 혁명적입니다. #미투 운동에 문제점이 있다면 그런 문제점들을 바로 이와 같은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들은 예컨대 절차성의 문제죠. 원칙상 유죄판결이 나와야 "피의자"가 "범인"이 되는 것이지만, #미투 운동의 과정에서는 이미 고발, 폭로가 발표되는 날에 고발자가 지목하는 대상 인물은 거의 "범인"처럼 취급되는데, 이를 문제라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럴 확률이 실제 높지 않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러다가 과장된 진술 내지 허위진술로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미투 운동 회의론자들의 논리입니다.
물론 일리가 있는 걱정이긴 하죠. 한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투를 열성적으로 지지하고 앞으로도 지지할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혁명은 본래 다소 "비절차적"이기 때문입니다. 혁명의 과정에서 새로운 법과 절차들이 만들어지니까요. 혁명이 상당한 파괴력을 지니는 것도 사실이고, 그 파괴력이 잘못하면 무고한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죠. 프랑스나 러시아 혁명의 역사를 읽은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쉽게 알 것입니다. 파리의 단두대가 진짜 "반동"들만을 희생시킨 것도 아니고 앙드레 세니예 (1762~1794)와 같은 천재적인 시인의 머리도 잘랐다는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일이죠.
특히 사후적으로 본다면 혁명의 이와 같은 단처들은 대단히 가시적입니다. 그래도 만약 프랑스 혁명이 없었다면 과연 "인권"이나 "공화정"은 오늘날처럼 세계 사회의 당연지사가 됐을까요? 만약 1917년의 10월 혁명이 없었다면 복지국가의 건설이나 피억압 민족들의 해방 등은 20세기를 장식할 수 있었을까요? 1950년 신중국의 토지혁명, 즉 토지개혁의 과정에서 약 80만 명의 지주들이 인민재판 등으로 희생됐지만, 만약 그 토지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중국의 근대적 발전은 가능했을까요? 당연히 무고하고 불필요한 희생들을 최대한 줄여야 하고 이상적으로 희생 없는 혁명은 가장 좋지만, 일단 단점들이 있어도 혁명은 혁명입니다. 역사의 진보를 가능케 하는 아주 귀중한 과정이죠. #미투도 혁명인 만큼 그 단점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사 등록 201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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