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애당초에는 ‘직장’이라는 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장기 내지 무기 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안정적 ‘직장’은, 반숙련 내지 미숙련 노동자들에게 해당되기 시작한 것은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경우에는 19세기말 내지 20세기초죠. 그 전 같은 경우에는 고숙련 기술자야 ‘직장’은 있었지만, 반/미숙련 노동자는 짧게는 그날 그날, 길게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 보수를 받았습니다. 해고 따위도 필요 없었죠. 다음주부터 오지 말라 하면 그게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당 내지 주당으로 받는 돈으로 음식과 약간의 담배와 술, 그리고 허름한 셋방 정도는 해결이 가능했다면 이건 벌써 운이 좋고 잘사는 ‘성공한 노동자’인 셈이었죠.
물론 그래봐야 쥐꼬리 이상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1860년대 산업 세계의 수도인 런던에서는 하인은 일년간 도합 약 15~20파운드 정도 벌고 육체 노동자는 – 주당 6일 10시간씩 일하고서 – 많아야 30~40파운드이었습니다. 반대로는 – 당연히 정식 계약까지 다 돼 있는 – 기술자는 약 70~80파운드 받고, 대위급 군 장교 연봉은 300파운드 정도이었습니다. 노동자가 보기에는 이건 호화판 삶이었지만, 기업 투자까지 하는 귀족이 받을 수 있는 소득 (10~15만 파운드 내지 그 이상)에 비해 새발의 피이었죠.
«격차 문제»?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냥 초기 자본주의의 일상이었습니다. 유럽뿐만도 아니고 예컨대 일제시대의 조선도 마찬가지이었죠. 1931년에는 경성의 방직공장 여공은 1년에는 많아야 약 200원 정도 받고 일이 줄면 쫓겨나고 그랬지만, 총독부 체신국의 1급 주임관은 4050원이나 받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공과 고급관료는 피차간에 다른 세계를 살았던 거죠.
그리고 나서는 수정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됐습니다. 노동계급 스스로의 투쟁과 소련을 본딴 혁명의 «위협»도 있고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제품을 팔아야 하는 자본가들에게 필요하기도 하고 해서 점차 노동자들의 ‘중산계급화’가 진행됐습니다. 임금도 오르고 구두계약도 정식 채용으로 변하고 일제시대 같았으면 총독부 칙,주,판임관 아니면 꿈꾸기 어려웠던 연례휴가나 연금제도도 노동자들에게도 해당이 되고 … 그렇게 해서 계급모순이 아주 사라지고 하나의 커다란 «대중적 소비 사회», «풍족 사회»가 생길 거라고 1950~60년대의 많은 학자들이 내다보고 있었고, 1968년의 반란자들은 바로 이 영혼이 없는 «소비사회»를 상대로 해서 투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는 …
신자유주의화 당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최근 약 10년동안 여태까지 듣지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노동자들의 계층이 생긴 겁니다. «긱» (gig) 노동자, 즉 형식상으로 노동자도 아닌 자영업자로의 변신 강요 당하고 노동자성 그 자체가 부정되고 인제 매일 갈 «직장»이 없어진 노동자 말이죠. 구미권의 «긱 노동자»에 해당되는 한국적 용어는 «일당 잡부»나 «프리랜서» 내지 그 두 개념 «사이»일 터인데, 한국의 경우에는 육체 노동을 담당하는 «일당 노동자»와 고숙련 «프리랜서»는 보통 직업의 서열에서는 서로 상당히 다른 입장에 처합니다.
구미권의 «긱 노동자»는 그 사이 안에 있습니다. 우버의 택시운전사, 딜리버루 (Deliveroo)의 배달부, 태스크래빗 (Taskrabbit)의 각종 도움이 … 공사장 일당 노동자나 예컨대 프리랜서 동시 통역사와 달리 이 «긱 노동자»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뚜렷한 «사용자» 자체가 없습니다. 넷 플래트폼이 운전사나 배달부, 쇼핑 도움이, 목수 등을 고객과 «맞추어주기»만 하고 그 벌이의 2~3할을 가져가기만 할 뿐 그외의 책임을 아예 안 지려고 합니다. «긱 노동자»애게는 직장이 없기에 휴가도 연금을 위한 저축도 병가도 물론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19세기 중반의 런던의 일당 노동자는 그나마 하루 단위의 벌이이었지만, ‘긱 노동자’의 벌이는 어떨때 건당 어떨때 한 시간, 두시간당 정도입니다. 인생, 일년, 한달은 그렇다 치고 하루라도 내다볼 수 없고 계획할 수 없는, 그런 노동과 삶의 형태죠.
지금 영국만 해도 ‘긱 노동자’들의 수는 1백만 명 넘었습니다. 노동자지만, 노동자로 불리지도 못하는 그들은 미국이나 영국, 호주 경제에서는 지금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노동계급의 계층입니다. 보수 경제학자들이 «4차산업혁명»과 그 «혁명»이 가져왔다는 «긱 에코노미»를 극찬하지만, 사실 이 잘난 «긱 에코노미»는 크게 봐서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그냥 19세기 중반으로의 «커다란 퇴보»에 불과합니다. 노동자는 «긱 에코노미» 속에서 또 다시 중산계층들과 그 벌이가 7~10배 이상 차이 나는, 안정성도 시민사회에의 근본적 소속도 불가능한 완전한 타자가 되는 겁니다. 말그대로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는 ‘부품’이 되는 거죠.
보수적 경제 평론가들이 ‘긱 에코노미’와 ‘플레트폼 자본주의’, ‘제4차산업혁명’을 찬양하지만, 제가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웰컴 투 헬!»입니다. 저들이 친양하는 역사적 퇴보는 노동자들에게 지옥을 가져다주지만, 현재도 미래도 다 박탈 당하고 가정 하나 꾸릴 여유도 없는 노동자들이 장기적으로는 가만히 있을 리도 없는 겁니다. 맑스와 앵겔스가 170년 전에 이야기했던 그 «유령»은, 인제 머지 않아 불타는 자동차와 호화상점, 그리고 공격 당하는 각종의 개선문들 사이에서 다시 유럽의 도회지들을 배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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