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미국에서 2019년 1월 새롭게 공개된 질레트 광고가 크게 논란이 되었다. 기존의 해로운 남성성을 버리고 온갖 폭력을 저지하고 막는데 함께 하자는 내용이 담긴 이 광고는 남성 전체를 싸잡아 비난했다는 비난 속에 해당 광고 유튜브 동영상엔 싫어요가 120만개가 달렸고, 질레트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방송인 피어스 모건은 “여성에게 그랬으면 페미니스트가 난리쳤을 거다”고 원색적으로 조롱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이 소동을 통해 나는 다시금 세상을 돌아 보게 된다. 남성다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폭력이란 무엇인지...
30여년을 살아오면서 남자다움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언제나 최고인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보았던 남자다운 사람으로 표준형화된 사람들은 결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정의로운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맞짱을 뜨고 싸워야 남자다운 건가? 항상 로봇 만화나 변신물을 보고 남자 어린이와 관련된 장난감을 사서 놀아야 하고 순정 만화나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지 않는 것이 남자다운 건가?
거기서 나아가서 누군가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혀야 남자다운 건가?
이성을 희롱하거나 마치 바구니에 수북한 과일처럼 얘기해야 남자다운 건가?
눈물을 흘리거나 삐지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남자다운 건가?
30여년 동안 나는 이것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여자같다며 놀림을 받고 괴롭힘을 당했고, 바로 그 여성스러움 때문에 중3부터 고2까지 왕따 괴롭힘을 한 아해의 정당화가 되었고, 102보충대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성이랑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고 멸시를 받았다. 이것이 30여년 동안 남자답다는 또래나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대접이었다.
지금도 활보강의를 하다 보면 여성 수강생 분들 중 몇 분이 "참 여자같네요" 라고 얘기할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그렇게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얘기하면서 알게 모르게 남자는 지배에 긍정의 느낌이고, 여자는 순종에 부정의 느낌을 몸과 마음에 넣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내가 문제라서 그런 것처럼 치부했다. 그런 다수의 남자들이 정상이고 나는 비정상이고...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남성다움을 강요당했다. 그리고 거기에 억지로 맞춰 살아야 했고, 누군가에겐 그것 때문에 피해를 봤을지도 모른다. 그 남자다움 때문에 나 역시 누군가에겐 한남이었을 거라 생각하면 슬프고 끔찍하다.
이런 남자다움 이데올로기는 남성을 강약약강의 못된 사람으로 만들고도 오히려 상대방이 문제라 하며 가해를 정당화하고, 피해받는 사람을 더 괴롭히는 최악의 형태로 발전해 나가기도 한다. 항상 남에게 하는 못된 짓에 남자다움이란 날개를 달아 준 덕택에 그 남성보다 약한 사람들, 특히 여성은 직접가해 간접가해 2차가해 등 갖가지 가해를 체험하며 고통받아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30년 만에 슬로건을 바꾸고 논란의 광고를 만들어 낸 질레트에 찬사를 보낸다. 이런 광고가 내가 어렸을 때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광고를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분의 댓글처럼 그건 화를 내는 그대 역시 그 문제의 일부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거라 생각한다.
나의 남자다움이 누군가에겐 오래도록 상처가 되고, 트라우마가 된다. 광고 하나에 부글거리는 남성분들이 기억하지 못할 어린 시절에 아직도 그 시절 그 남성분에 의해 상처 받은 사람들은 그 때를 기억하고 슬퍼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최고의 남자가 되세요. 하지만, 지금의 방식은 아니에요.
(기사 등록 201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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