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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학교 폭력, 이 세계의 공통분모?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11. 27.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최근에 인천에서 일어난 끔찍한 학교폭력 및 추락사 사건을 보면서, “학교 폭력이라는 부분에 대해 요즘 계속 생각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학교 폭력이라는 광범위한 테마는 제 인생의 주기 거의 전체를 아우릅니다. 처음 학교 시절에 폭력을 당한 것은 약 9살 때인데, 그 뒤로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주먹을 쓸 줄 모르는 책벌레라는 이유로,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중학교 마칠 때까지 시달려왔습니다.

 

고등학교는 세계문학 특목고인지라 그나마 나았고, 대학에서는 예비역 출신 남학생들의 간헐적인 폭력 위협 등은 있었지만, 큰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11녀를 둔 학부모로서는 아이들이 혹시나 또 학폭 내지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매일매일 노심초사입니다. 인천 사건의 피해자처럼 제 아이도 노르웨이로 치면 다문화 가정 출신이기에 더더욱 더 마음이 쓰입니다.

 

물론 노르웨이 학교의 경우 상처 받기 쉬운, 즉 외모가 다른 아이일수록 보호막도 튼튼히 한다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제가 나중에 칠, 팔십까지 살게 되고 그때까지 지구 별이 미제와 러제 사이의 핵전쟁으로 망가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손자, 손녀에 대해서도 학폭을 당하지 않을까라고 걱정을 하면서 살겠죠?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학폭을 살아야 할 팔자인데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상당수 선남선녀들의 공통된 업입니다....

 

입시도 없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 노르웨이든 세계의 최장에 가까운 노동시간과 최악에 가까운 노동 환경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든 중학교 남학생의 왕따/학폭 피해율은 거의 동일합니다(9~10%인데, 해마다 왔다갔다하죠). 물론 한국에서와 같은 심한 폭행 등은 노르웨이에선 드물긴 하지만, 심적 고통을 참지 못해 자살을 택하는 피해자들은 노르웨이에도 종종 생기죠.

 

학교 시절의 왕따로 평생 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제가 노르웨이에서도 만났고요. 그러니까 한국식의 각종 사회악(군사화, 장시간 노동, 학교에서의 획일적 규율주의, 정신 나간 경쟁의 분위기 등등)만으로 학폭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회악들도 한 몫을 하겠지만, 이외에는 학폭 문제에는 세계 보편적인차원도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아이들은 엄청나게 예민합니다. 어른들의 을 보지 않고 그 실천”, 그 삶의 실질을 아주 잘 포착하는 겁니다. 제 큰 아이(16)만 해도, 아버지로부터 <자본론> 설교를 들을 때마다 석유기금을 통해 세계 각처에서 투자를 해서 돈을 버는 커다란 회사인 노르웨이 정부의 공무원으로서 호의호식하는 당신의 좌파적 이야기는 가식일 뿐, 사실 당신도 자본 질서의 일환에 불과하다고 아버지에게 촌철살인 격의 반박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죠. 노르웨이 정부의 돈이 삼성전자부터 뉴욕 5가의 부동산까지 세계 각국에 투자돼 있다는 점도, 제가 그 정부의 녹봉을 먹는 점도 엄연히 사실이고 좌파적 생각과는 상당한 괴리를 노출시키는데.... 말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어른들의 사회가 바로 계급사회이고 그 사회에서 위계질서가 엄연히 존재하다는 것을 아주 빨리 배웁니다. 노원구나 중랑구 출신이 강남구, 서초구에 가면 외국 구경처럼 느껴지는 대한민국이야 격차그 자체지만, “복지 국가 노르웨이만 해도 제가 사는 오슬로 서쪽 동네의 평균 기대 수명은 이민자 등 빈곤층이 많은 동쪽 동네보다 약 5세나 높다고 합디다.

 

덜 가시적이고, 신분 상승이 더 쉽긴 하지만, 엄연히 노르웨이에서도 계급질서가 존재하긴 하죠. 아이들이 그걸 파악하고 저들끼리도 바로 그런 위계질서를 만듭니다. 어른들의 위계는 학력, 재력, 연공 등에 따라 정해지지만, 남자 아이들끼리 통하는 위계의 기준 역시 주먹입니다. 위계가 정해지고 공고화되는 과정에서는 학폭이 자연히 발생됩니다....

 

어떻게 대책을 세울 것인가 라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물론 활용 가능한 대책들이 많습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경험을 살려서 매달 담임과의 상당을 해서 왕따, 학폭 문제를 집중 확인하는 방법도, 학교에 폭력방지 요원들을 도입하는 방법도, 아이들에게 역할극 같은 것을 하게 해서 폭력 내지 따돌림 피해자가 느끼는 정서들을 모두에게 실감케 하는 방법도 다 있습니다.

 

폭력 피해자가 학교 당국에 소송해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참 중요하죠. 학교가 학폭을 방치하면 결국 사법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학교 당국이 매순간 인식해야 합니다. 학폭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그 어떤 배상금으로도 제대로 치유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한 마디로 학폭, 왕따 피해 예방은 인제 학교 당국, 나아가서 사회 전체의 핵심적 과제가 돼야 하고, 그 과제 실천에 여러 가지 방식들을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한데 아무리 예방 대책에 온 사회가 온 정성을 다해도 학폭과 왕따 현상을 완전하게 근절시킬 수 없음을 우리가 동시에 자각해야 합니다. 사회 자체가 위계질서의 구조적 폭력에 의해 유지되는 만큼 아이들에게만 비폭력적으로, 평등하게 살라고 명령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어른들의 사회가 병든 만큼 아이들의 사회도 병들게 돼 있죠. 유감이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인 듯합니다.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래도 인천에서 일어난 일과 같은 비극들이 두 번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하도록 합시다!

 


(기사 등록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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