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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누구도 견딜 수 없게 아프고 괴롭고 망가지지 않을 수 있다면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10. 21.

윤미래





아파서 더 타인을 해하는 사람이 있고 아파서 더 타인을 위하는 사람이 있다. 아프다는 건 변명이 안 된다. 병은 당신의 모든 선택을 조건짓지만 당신의 선택은 똑같이 병적이면서도 여전히 하늘과 땅만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을 칼로 수십 차례 찌르고 싶은 충동에 가득찬 정신질환자가 그것도 여차하면 공범이 될 준비 만만한 사람과 같이 아무 감독·관리 없이 돌아다니게 만든 사회 시스템의 무능이 개인의 자유선택과 책임성 논쟁으로 가려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강제 입원을 시켰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가령 이런 것이다. 신체·정신을 막론하고 모든 중증 장애인에게 전담 사회복지사가 붙어서 상태를 계속 주시하면서 위험해 보이면 입원치료를 설득하고, 지역공동체와 협력해서 스트레스 요인들을 케어하고, 휴양을 주선하고, 기타 제도적·공동체적으로 다각도로 지원하고 돌보았어도 그 사람은 자신과 타인의 인생을 동시에 파멸시키는 길을 선택했을까.

 

대학진학률은 80%인데 청년실업자는 44만 명인 시대에 그럴 인력과 역량이 어디 있느냐는 말은 하지 말자. 곡식창고에 밀과 쌀이 썩어가서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는데, 가구당 한 칸씩 집을 주고도 남을 만큼 공실이 넘쳐나는데, 1세계가 쓰고 버린 옷들만으로도 지구 반대편에서 지역 의류 산업이 말라죽는데 자원이 어디 있냐는 말도 하지 말자. 우리에게 결여된 것은 능력이 아니라 합목적적 시스템이다.

 

우울증은 당신에게 청년 아르바이트생을 타깃 삼은 무차별 살인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병은, 아니 모든 고통은 정도가 심해지면 사람의 손에 칼을 쥐어준다. 생면부지의 PC방 직원을 칼로 쑤시는 것은 참혹하고 끔찍한 악행이고, 그 짓을 저지른 새끼는 스스로 사람 되기를 포기한 비열하고 파렴치한 괴물이다. 하지만 나는 나 또한 언제든 냉담한 얼굴로 주저없이 같은 일을 할 수 있음을, 며칠에 한 번씩은 어떤 경로로든 상기하고 만다.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그럴 것이다.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절대 다수의 정신질환자들은 그 작자보다 나은 사람이라서 날뛰는 분노와 폭력적 충동을 어떻게든 다스리고 억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평생을 고통 속에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는 결국 그걸 더 이상 할 수 없는 순간을 맞고 만다.

 

나는 그 분노로 싸움을 하고... 그것으로 대체로 어떻게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지금 당장에 무언가 부수지 않으면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런 때는 스스로를 해한다. 타인을 해하는 것에 비하면 분명히 차악이니까. 그렇지만 그게 답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가해에 내성이 생기는 건 대상이 스스로라도 마찬가지여서, 그렇게 하다가는 점점 거리낌이 없어져 언젠가 정말 스스로를 죽여버리고 마니까.

 

애초에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분노에 절여지지 말아야 한다. 그 외의 무엇도 답일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인류의 힘과 지혜가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수준에 와 있다고 믿는다. 악과 고통은 선과 기쁨이 있는 한, 있는 만큼, 언제나 인류와 함께하겠지만, 우리는 최소한 갈 곳 잃은 분노에 휩싸여 더 약한 아무나 잡고 목숨을 빼앗지 않고, 이해할 수도 손댈 수도 없는 악의에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프고 괴롭지는 않게, 망가지지 않은 마음으로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기사 등록 201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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