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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박노자] 중국, 그리고 당 독재와 재벌 독재의 차이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9. 10.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일단 몇 가지 단서부터 달겠습니다. 첫째, 저는 문화 내지 철학 취향 차원에서 친중파 중의 친중파입니다. 우울해지면 <장자>(莊子) 책 같은 것을 읽고 왕유(王維) 시를 탐독하고 그렇죠. 둘째, 저는 중국 공산당의 영웅적 역사에 대해서는 대단한 존경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중국에서의 공산혁명, 1949년의 신중국 건설 등이 20세기 후반과 그 후의 아세아 역사와 세계사를 바꾸었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그리고 셋째, 저는 서방의 자유주의적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비난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명확하게 하고자 합니다. 저는, 집권당인 공산당이 정말로 당내 민주주의와 당외의 민초 본위의 민주주의, 예컨대 무소속 후보 등이 출마할 수 있는, 복수 후보 중의 선택이 가능한 선거 등을 발전시키면, 굳이 정치적 서방화 없이도 현 체제의 테두리 안에서도 보다 민중참여적인 정치형태로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잘못하면 토지사유권 도입 등 반동적 조치까지 수반할 수 있는 전반적 서방화가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일언이폐지하자면, 저의 이 북경기행문이 절대 "반중국 세력의 비방"이 아님을 명확하게 하려고 합니다. 저는 사실 중국민중과의 접촉을 대단히 즐겼습니다. 영어 구사력이 있는 사람도 거의 없어, 옛날에 익혔던 약간의 백화문 지식과 회화집 등을 총동원하여 기초 보통화 연습을 열심히 했습니다. 저에게의 문제는, 정답고 친절한 중국 분들이 아니고 오로지 국가와 이 국가의 국내외 인민 관리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순서대로 하지요.

 

북경 입성의 첫날, 저는 호텔에서 짐을 풀자마자 "국가회의중심"이라는, 도시 한 동네 만큼 큰 회의장에서 개최될 세계철학대회의 등기처를 향했습니다. 일단 참가등록하고서 천안문과 모택동 주석의 묘로 순례(?)의 길을 떠날까 했습니다. 대둔로와 올림픽 공원 주변의, 서울 잠실동과 좀 같은 동네는, 저를 일단 완전하게 압도하고 말았습니다.

 

마천루 같은 아파트 신축건물들과 세계 최대에 가까운 운동장들 사이에서는 저는 개미 같은 존재라는 느낌만 자꾸 들었습니다. 이 동네에서 인간들이 수만년간 살았을 터인데, 2000년대 이전의 그 역사는 완벽하게 소거되고 말았습니다. 보이는 건 오로지 신축 아파트 건물과 공공건물들, 그리고 공원이었죠.

 

"국가회의중심"으로 다가오자마자 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건물 전체가 경찰차에 둘러쌓여 있었죠. 저 같은 가시적인 (?) 외국인들에게 문제는 없었지만, 자국민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웬일인가 싶었는데, 일단 시간도 없고 해서 등기처를 향해 갔죠. 등기처에 오니 맨 위에 벽에다가 붙어 있는 커다란 한자들은 "사회주의 가치관"을 설명했습니다. 사회주의 "가치" 1호는? "부강"이었습니다. "부국강병"(富国強兵)의 준말이죠. 그게 뭔 놈의 "사회주의"인지, 사회주의를 대단히 애호하는 저로서는 관리책임자에게 항의하고 싶은 마음부터 생겼습니다. 그러나 일단 주어진 시간도 이틀이고 도시 구경이 먼저라고 해서, 등록을 마치고 꿈에서도 그리던 천안문으로 바로 떠났습니다.

 

금속 탐지기가 설치된 지하철역은 참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경험은 인생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데 금속탐지기를 지키는 경찰 말고도 역내에서도 경찰이 꽤나 많았습니다. 열차 내에서도 경찰이 동승했고요. 위수령이 발동된 것도 아닌데 뭔 경찰 천하인가 궁금하기도 했는데, 천안문행은 먼저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안문동역에 도당한 뒤로는 제 놀라움은 거의 경악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광장도 자금성 입구도 완전하게 경찰과 무경(무장경찰)에 장악돼 있었습니다. 자유로운 왕래는 불허되고 오로지 한쪽으로만, 정해진 통로에 따라 갈 수만 있었죠. 물론 거기에서도 금속탐지기 통과부터 하고요...

 

그 경찰이 제게 여권 제시까지 요구했는데 저는 간단한 협상끝에 신용카도 제시로 타협을 보고 자금성을 향해 나갔습니다. 모 주석의 묘까지 갈 힘은 이미 없고 그래도 자금성 구경이라도 해보자 싶었습니다. 한데 자금성은 그날 휴관이었죠. 그걸 알고 걸음을 돌릴까 싶었는데, 불허됐습니다. 오로지 일방통행만 허용된 겁니다. 자금성 앞에서는 거의 100여명의 경찰들이 격투연습을 했습니다. 서로 치고 무술로 제압하고 땅으로 거꾸러뜨리곤 했는데, 그 광경을 위요한 중국 관광객들은 환하게 웃고 사진 찍었습니다. 무술 연습이 끝나자 무장 경찰들이 대오를 정비하여 구호를 외치면서 행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게 고궁 박물관인지 병영인지 정말 헷갈리기 시작했죠.

 

둘째 날은 저의 발표 날이기에 아쉽게도 옛날부터 보고픈 유리장(琉璃厂)도 못가고 "국가회의중심"으로 향했습니다. 거기에서 저를 기다렸던 것은 아예 상상 이상의 "경찰 천하"이었습니다. 출입구 뒤에서의 금속탐지기와 발표장 입구를 지키는 경찰은 물론이거니와, 그 뒤에도 정말이지 가끔가다가 참석자들보다 경찰이 더 많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이었습니다. 각층 에스컬레이터를 지키는 경찰, 화장실 입구를 지키는 경찰, 모든(!) 회의실 입구를 지키는 몇명의 경찰...

 

그리고 회의실 내에서도 꼭 발표들을 체크하고 뭔가를 녹음하고 확인하는, 명함을 제시할 수 없는, 그 정체가 이상한 사람들이 꼭 있었습니다. 참석자가 아닌 외부자들의 출입은 철저히 차단돼 있었으며 참석자들도 계속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해야 됐던 셈입니다. 도대체 철학대회까지 이렇게 감시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는데, 일단 이 '국가회의중심'을 운영하는 중국의 국가 권력자들이 엄청나게 겁을 먹고 있는 상태에 있다는 걸 제가 깨달았습니다. 얼마든지 과잉통제로 이어질 수 있는, 그런 겁을 먹은 상태란 말이죠.

 

'국가회의중심'을 장식하는 "사회주의 가치관" 설명은 '부강'과 함께 '정의'도 포함했습니다. 한데 자본주의적 개발로 인해 생기는 '부강''정의'의 공존은 어디까지 가능한가라는 것은 늘 제기되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중국은 '부강'을 달성한 거지만, 1%의 최상위 가구들이 3분의 1의 부를 독점하는 절대적 쏠림 사회를 이룬 것입니다. 중국의 지니계수는 0.474인데 이게 아르헨티나나 나이지리아보다 더하는 수준입니다. 참고로 노르웨이의 지니계수는 0,260 정도입니다.

 

노르웨이로 유학 오는 중국학생들이 "여기가 사회주의"라고 혀를 차는 걸 보면, 그들의 고국이 어느 정도로 불평등한 사회가 돼버렸는지 가히 알 수 있죠. 그런데 이렇게 된 판에 인제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 여러가지 변수들이 중첩돼 성장률이 6% 이하 떨어지기 시작하니 당이 정말 겁을 먹기 시작한 셈입니다. 정의가 부재한 데다 부강마저도 신기루로 보이기 시작하면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저들이 너무나 잘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북경이 "경찰 천하"로 화한 것입니다.

 

여태까지 중국의 당 통치는, 한국의 유사 민주주의적 재벌 독재보다 자본주의적 개발정책을 훨씬 더 수완좋게 집행해왔습니다. 내수확충책도 내실 있었으며, 복지확충책도 상당히 주효했습니다. 노동자 실질임금인상률도 한국보다 높았고요. 많은 면에서 대중독재라고 할 수 있죠. 한데 아무리 지능적이며 대중친화적 독재라 해도,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는 당근이 아닌 채찍도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제가 북경에서 본 것은, 당이 은근슬쩍 인민들에게 과시해보는 채찍인 셈이죠. 그런데 아무리 협박하고 아무리 공안주의, 경찰주의 분위기를 잡아도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개발의 위기는 대중적인 전투성의 제고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난 40년간 전세계적 개발주의 중심이었던 이 나라로부터 머지 않아 좀 색이 다른 소식들이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사 등록 2018.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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