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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성추행을 방지하는 방법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8. 26.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말이 안되는 안희정 무죄 판결을 보고 제 머리에 든 생각을 일단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성추행'이라는, 이 사회의 "비정상적 일상"의 일부분은 오랫동안 사회적 토론의 중심에 위치해 있을 것이고, 이 부분에 대한 생각과 입장을 한 번 총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1. "자유 의사"라는 것은 하나의 이상 내지 이상적 모델이지 현실은 아닙니다. 우리가 식욕, 성욕, 수욕으로부터 신체 차원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 이상 '자유'는 신화일 뿐이죠. 현실적으로 우리가 내던져진 세계는 역학관계의 세계이며, 이 세계에서는 "자유로운 주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대적 강자들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 약자들이 있을 뿐이죠.

 

2. "평등"이라는 것은 하나의 이상 내지 이상적 모델이지 현실은 아닙니다. 법적으로야 내지 형이상학적으로야 어떻든간에, 현실적으로는 강자와 약자는 전혀 평등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현실세계의 거의 대부분의 "관계"들은 그 본질상 불평등하고 위계적입니다.

 

평등을 엄청나게 이념화하여 지향한다 하는 노르웨이에서도 예컨대 저 같은 백인 중산층 대학 교원과 같은 대학의 비서구 이민자 출신의 청소 노동자는 현실적으로 평등하지 않죠. 제가 수업 없는 날에는 학교에 안가도 그만이지만, 청소 노동자는 근로시간 체크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청소 노동자들 중에서는 백인도 중산층 출신도 없습니다. 좌우간 "복지국가"라 해도 평등은 이념 내지 지향점이지 현실은 아닙니다.

 

3. 이 부자유하고 불평등한, 위계적 세계에서는 성관계야말로 바로 이 모든 위계성과 불평등 등을 가장 집약적으로 대변하고 나타냅니다. "자유연애"? 이미 1920년대 한국의 맑스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이 지적했듯이, "자유연애"를 소리 높여 외쳤던 유산층 모던보이, 모던걸들부터 실제 연애했을 때에 대개 재력 아니면 학력 아니면 문화 "정도"가 얼핏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연애했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자유, "자유"라 하지만 연애의 주체들이 주관적으로야 자신들의 행위를 "자유"라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알게 모르게 유유상종하게끔 돼 있었습니다. 예컨대 나중에 스님이 된 김일엽 (1896~1971)과 같은 가장 대표적인 신여성의 애인들 - 오오타 세이죠 (太田淸藏), 임장화, 방인근, 국기열, 그리고 백성욱 등 - 을 보면 딱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다 그 당시로서 아주 드문 고등교육을 받았고 대부분은 일본/서구에서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어디까지 자각하는지 별도의 문제지만, 사실 이성과의 관계 이상으로는 사회경제 내지 문화적 자본이 중요하게 작동되는 관계도 없죠.

 

4. 이성 관계에 있어서는 그 부자유는 두 사람 사이의 사회, 경제, 문화자본 차원의 거리에 정비례해서 심해집니다. 그런데 직접적 예속 관계, 즉 직계상사와 부하, 지도교수와 제자 등과 같은 관계만큼 엄청나게 요원한 '거리'도 없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최종적인 인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정도의 관계라면 일단 "자유"""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 "자유의사"를 거론할 수 없는 관계죠.

 

5. 물론 이와 같은, 본질상 '위력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어쩌면 어떤 경우에는 양쪽에서 자발적인 연애행위도 상상이 가능합니다. 연애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회경제, 문화자본 차원 등의 요인들이 심하게 개입하지만, 상호간의 성적 매력에 대한 체질적 "끌림" 등 생체적인 부분들도 존재해서 사회적으로는 어떤 관계든간에 "남자와 여자로서의 만남"이란 언제나 배제할 수야 없죠.

 

한데 이와 같은 본질상 위력적인 관계에 있어서의 성적 결합의 약한 쪽, 즉 여자/하위자가 "성폭력"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할 경우에 일단 거의 100%"위력에 의한 강제"를 유죄추정해도 됩니다. 이와 같은 성폭력 고발이 불러일으킬 엄청난 심적 상처와 각종의 현실적 불이익 등을 불사하여 고발했을 정도라면, 이런 관계 속의 부득이, 불가피한 그 "부자유성"이 분명히 개입했다고 봐야 합니다. 물리적 폭력일 필요도 없죠. "내 눈 벗어나면 니가 어떻게 될는지 너도 알지?"와 같은 묵시적인, 무언의 협박은 이미 그 어떤 물리적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6. 죄송한 말씀이지만, 위력적인 관계 속의 성폭력을 좀 방지하자면 다음과 같은 부분은 한 사회에서 통념이 돼야 합니다. , '권력남''부하녀'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는 후자가 "폭력"을 고발, 주장했을 때에는 후자가 폭력이라는 사실을 물증으로 입증한다기보다는 전자가 폭력이 아니었다는 직간접적 증거를 대야 한다는 것은 통념화돼야 합니다.

 

유죄 추정이 부당하다고요? 남녀 사이의 현실적 불평등, 그리고 '권력남''부하녀' 관계 속에 내재돼 있는 잠재적인 강제성과 폭력성 이상으로 부당하지 않습니다. 역차별이라면 역차별인데, 오늘날과 같은 엄청난 명시, 묵시적 차별을 바로잡기 위해 역차별이라도 동원돼야 합니다.

 

7. 어디에서나 본질적으로 그렇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권력남'들은 대개 버릇들이 아주 나쁩니다.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다는 것이죠. 정말로 급진적인 접근이 아니면 이 상황을 개혁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강간의 정의가 바뀌어야 하고, 통념상 '권력남'의 그 영향권 내에서의 성적 행동에 대한 일종의 유죄추정이 보편화돼야 합니다. 급진적 접근이 아니면, 고통 받는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너무나 많이 나올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18.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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