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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난민/ 문정부 후퇴/ 미스 함무라비/ 노동자연대와 나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7. 20.

전지윤

 


동화주의의 실패와 난민에 대한 갑질

 

낯선 섬에 도착했는데, 오도가도 못한 채, 사람들과 말은 안통하고, 이 상황이 기약도 없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냐는 한 난민 지원 활동가의 물음을 읽고 그 막막함을 상상해 봤다. ‘사람들이 당신들이 성폭력이나 테러를 할 거라고 본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말없이 눈물 흘리는 난민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 억울한 심정을 생각해 봤다. ‘가짜 성폭력 피해자란 말처럼 가짜 난민이란 말은 또 얼마나 잔인한가.

 

정우성씨의 사려 깊은 지적처럼 불평등하고 불안하고 살기 힘든 한국사회의 탓이지 사람들만의 탓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막상 직접 만나고 대화하면 바뀔지도 모른다. 카메룬에서 온 난민 복서 이흑산을 만난 좌판 할머니의 반응을 유트브에서 봤다. 카메룬이 어디인지, 난민이 뭔지도 모른다는 할머니는 이흑산의 이야기를 듣다가, 조용히 구겨진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이흑산의 손에 쥐어줬다. ‘6.25때 피난 가던 생각이 나서라며. 너무 자연스러운 인간적 반응이다.

 

하지만 인간성을 디가우징 한 것 같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무슬림을 살인강간폭력의 극악집단처럼 묘사한 이슬람의 13교리같은 가짜뉴스를 만들고 퍼트리는 사람들이 그렇다. 세력약화 방지책으로 이슬람포비아를 꾸준히 축적해 온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이 그렇다. 위기를 돌파하려 난민혐오 선동에 올라타는 자한당 위원들이 그렇다.

 

또 상대방의 약한 처지를 이용해 배를 채우려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양식장에서 장갑도 없이 피부가 벗겨지며 열흘 넘게 일하다 돈 한푼 못 받고 짤린 난민들의 소식이 들린다. 말도 안되는 임금을 주고 부려먹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당하고도 찍소리도 못한 난민은 우리는 난민이지 노예가 아니다고 했다.

 

아무 권리도 안주고, 제주도에서만 지내고 3개 업종에서만 일하라는 제약만준 정부의 책임이다. 그러면서 난민신청의 남용과 난민제도의 악용을 막겠다고? 우리의 가치와 문화를 교육한다고? ‘지나친 온정주의는 피하라?

 

훈장은 김종필이 아니라, 난민에게 집과 음식을 제공한 사람들에게 줘야 하는거 아닌가? 이 시점에 경찰이 테러방지법으로 IS추종 난민신청 시리아인을 검거한 것도 찜찜하다. 남북관계가 험악해지면 보안법 조직 사건이 터지던 게 떠오른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일부에서는 다문화주의의 실패로 지금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나,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주로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해 왔다. 그들을 저출산 해결의 도구로 보고, 한복입고 김장 담그기, 시부모 모시기, 남편 아침상 차리기 등을 한국문화라 가르쳤다.

 

이런 가부장 문화교육을 받은 결혼이주여성이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김장을 더 잘할 정도라고 한다. 말만 다문화였지,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받아들이려하진 않았다. 그것이 지금의 배타적 분위기를 키웠을 것이다. 결국 진실은 동화주의의 실패인 것이다.

 

난민들 앞에 더 높은 벽을 쌓으려고 하는 세력과 눈치 보는 정부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럴거면 이제 더 이상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다, 경제가 발전해 있고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다,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도 만들었다이런 광고나 자랑 좀 그만해라.

 

그런 선전을 듣고서 환상을 품은 채 한국에 왔다가 온갖 혐오, 차별, 배제, 무시를 겪게 된 이주민과 난민들의 배신감과 좌절감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가끔 언론 인터뷰에서 난민분들이 한국인들은 정말 친절하다, 한국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걸 보게 된다. 그 분들의 표정에서 목줄을 쥐고서 흠을 찾으려 눈에 불을 켠 앞에서 밉보이지 않으려는 힘없는 의 안간힘이 느껴지는 게 이상한 걸까.

 

후퇴와 타협으로 가는 문재인 정부

 

촛불을 거쳐 문정부 탄생 이후, 재벌들의 전략은 뻔한 게 아닐까 싶다. 일단 납작 업드린 척하며 투자 회피와 자본 파업으로 경기침체를 부추기면서, 결국 경제지표와 실적 악화 속에 민심도 나빠지는 걸 견디지 못한 정부가 고개 숙이기 기다리는 것이다. 최근의 경제 상황 등을 보면 이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재벌들과 손잡고 규제를 완화하는 시장주의 방식을 통해서만 성장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진 관료, 언론, 지식인들이 이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문정부 내부에도 트로이의 목마는 있다. 대표적으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있는데, 최근에는 여기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힘보태기 시작했다.

 

최근 언론인터뷰 등을 통해 김위원장이 내놓는 주장들은 문제투성이다. 정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가 없다? 한 발자국도 후퇴하지 않는 시민단체가 문제다? 개혁 후퇴라고 비판 좀 말아라?

 

아주 상식적인 최소한의 개혁 요구들을 하는 시민단체들을 무슨 비현실적 기적을 요구하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집단처럼 몰면서, 비판의 입도 막으려 한다. 이미 문정부의 경제정책 후퇴는 곳곳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은 후퇴중이고, 부자증세는 사라지고, 재정 확대보다 긴축으로 가면서, 정통관료와 시장주의자로 인사정책도 뒷걸음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과 금융 과세 방안이 기재부 관료들의 벽에 부딪혀 누더기가 되는 과정은 노골적이었다.

 

문재인이 인도에서 무노조 비정규직 착취공장을 만들고 있는 국정농단과 산재살인범 이재용을 만나 손잡은 것은 후퇴의 상징이었다. 김위원장이 문정부 내의 개혁파라면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오히려 한술 더 뜨고 있다.

 

그러면서 문통이 지금 지지자들의 비판을 각오하고 결단을 고민중이라고 한 것도 심상치 않다. 이라크 파병, 평택미군기지, 한미FTA 등 참여정부가 지지자 비판을 각오하고 했던 결단들이 떠오른다. 그건 실패와 몰락으로 가는 핵심 조치들이었다.

 

문정부가 얼마나 재벌, 언론, 관료들의 방해와 협공 속에 있는지 잘 알기에 하는 말이다. 그럴수록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은 더욱 소리높여 개혁을 요구하고, 후퇴를 비판하고, 재벌과 관료를 대변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의 해임을 주장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후퇴를 요구하는 세력을 주춤거리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목소리를 막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김상조는 홍영표와 함께 2명의 X이라는 소리가 왜 나오는지 알 수 있다.

 

문정부는 물러설수록 수렁에 빠질 것이다. 재벌과 시장주의자들에게 목덜미가 잡힌 채 계속 끌려가며 혁신이 불가능한 불공정경제에 머물 것인가, 소수가 독점한 이윤과 통제력을 가져와 대다수의 고용과 소득을 보장하는 길로 나갈 것인가. 갈지자 걸음은 계속되기 어렵다.

 

 

<미스함무라비>가 보여 준 성폭력 사건의 재해석

 

<미스함무라비>는 솔직히 갈수록 너무 교훈적, 비현실적 같아 찾아보진 않았다. ‘현직 판사가 썼는데 왜하면서. 하지만 얼마전 14회는 아주 좋았다. 성폭력에서 흔히 받아들여지는 접근과 논리의 종합판이 뭔지 보여줬다. 술먹고 여관가서 동의없는 성관계를 가진 사건에서 가해자 변호사의 입을 통해.

 

변호사의 논리는 이랬다. ‘술은 피해자 스스로 먹은 것이고 여관도 같이 들어갔다. 평소에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호감을 가져 왔다. 거절하지도 않았고 사건 이후에도 우호적 메시지를 보냈다. 직후엔 가만있다가 한참 후에 문제를 제기했다. 피해자측 증인은 평소 가해자에게 반감을 보여 온 사람이다.’ 게다가 꼭 말로 해야 동의인가라고 되묻는 가해자는, 단지 변명이 아니라 피해자도 원했다는 확신을 보이고 있었다.

 

이 모든 걸 바탕으로 변호사는 사회통념상, 상식적으로 피해호소의 신빙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제기했다. 주인공 박판사는 이번에도 빡쳐오른다. 하지만 판사는 치우치면 안 되고, 분명한 증거가 없는데 강자라고 유죄추정하거나 약자가 무조건 옳다는 예단은 안된다는 조언들에 고민한다.

 

그러나 가해자 변호사가 내세운 사회통념과 상식은 사실 중립적인 게 아니었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가해자의 시선에 치우친 것이었다. 정말 공정하려면 오히려 사회적 약자와 여성의 눈에 치우쳐그것을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직업병 판정에서도 분명한 물증과 인과관계가 부족하더라도 정황과 간접증거들을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하듯이. 드라마 결론은 그런 재해석으로 마무리 돼지만, 물론 이게 현실은 아닐 것이다. 문유석 판사는 이 드라마의 시나리오집을 펴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현실에서 보아 온 것은 내부고발자가 왕따 당하고, 피해자는 집단적 2차 가해를 당하고, 타인의 고통에는 짜증 내며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회였다. 사람들은 늘 사회에 대해 불평하지만 정작 자기 곁의 누군가가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면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짜증을 낸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눈치 없고 혼자 예민 떨고 대책 없는 갑분싸또는 프로 불편러가 된다... 문제제기를 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시대와 불화하고, 세상과 불화하고, 유감스럽게도 바로 자기 곁의 사람들과도 불화한다... 그들이 더 분노할수록 사람들은 더 그들에게 등을 돌린다.”

 

이것이 냉정한 현실이고 그 소수의 사람들은 오늘도, 믿었던 가까운 사람들마저 등 돌리고 거리두고 나 몰라라 하는 속에서 혼자 눈물 흘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고 믿는다.

 

박노자 선생님의 한국 공산주의 문화사를 듣고

 

최근에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있었던 박노자(Vladimir Tikhonov) 선생님의 한국 공산주의 문화사는 매우 흥미롭고 유익했다. 일제시대를 거쳐 북한에서 활동하다 결국 숙청당한 사상가 신남철의 사적유물론이 주제였다.

 

일제시대에 모스크바, 도쿄, 연해주 등을 통해서 마르크스주의가 유입되고 급진화가 이뤄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흥미진진했고, 특히 일본의 사상가이자 경성대 교수였던 미야케 시카노스케 밑에서 이재유, 신남철, 박종홍이 모두 선후배로 지냈다는 것도 재밌었다. 나중에 박정희의 지배체제 구축에 봉사한 한국철학계의 거물이라던 그 박종홍이다.

 

특히 신남철이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을 비판한 내용을 박노자 선생님은 잘 정리해서 설명해주셨다. 원자화된 개인의 허무감과 공포감을 바탕으로 한 철학으로서 오성과 이성을 거부하고, 가족이나 국가같은 유기적 공동체에 의존하는 논리가 결국 파시즘에 복무할 여지를 줬다는 것이다. 난민을 비국민으로 배척하는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지적같다.

 

신남철이 조선 역사 발전의 보편성을 보이기 위해 아시아적 생산양식 개념을 사용했다는 지적도 새로웠다. 아시아적 특수성에 대한 시각들과는 다른 접근이었다. 다만 유럽봉건제와는 구분되는 중앙집중적 관료제라는 상부구조가 오히려 족쇄로 작용했다는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은 남았다.

 

박노자 선생님은 일제가 조선에서 공업을 발전시킨 것도 일부 인정하면서, 병참기지화의 필요로 설명했다. 스탈린이 김일성을 선호한 것은 박헌영이 부하린이 운영하던 레닌대학 출신이란 점도 작용했을 거라고 하셨다. 뒤풀이에서는 (소설 세여자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인) 주세죽의 비극에서 박헌영의 비겁함과 책임도 언급했다.

 

신남철은 결국 568월 종파사건 이후 북한에서 밀려나고 쓸쓸히 죽는데, 그에게 붙은 딱지는 자유주의였다. 북한에서 그 딱지의 쓰임새는 그 시절 남한에서 용공과 비슷했다고 하셨다. 오늘날에도 이런 딱지붙이기는 얼마나 많은가. 일정 때문에 다음날 박치우에 대한 강연을 못들은 게 참 아쉽다. 박노자 선생같은 분이 한국에서 더 많은 강연과 토론 기회를 만들어주시면 참 좋을 거 같다



 

노동자연대와 나의 이야기

 

노동자연대 분들이 전지윤이 성폭력 피해자를 배후조종하면서 노연 비방에 이용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여기저기서 배포, 발송하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2014년에 내가 노동자연대 안에서 정치적 이견을 제시했다가 징계당할 때도 괴로웠다. 그해 노동자연대의 협의회 자료집 5권은 거의 전부 나에 대한 읽기 괴로운 비난들로 꽉 차 있었다.

 

결국 나는 탈퇴를 택했고, 조직 밖에서 이제는 회원도 아닌 사람을 같은 방식으로 비난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처음에는 내가 민주노총 파업과 비정규직 투쟁을 반대했다고 곡해하며 기회주의자”, “민중주의자등의 딱지를 붙이더니, 부정직”, “얄팍한 수작”, “위선”, “교활함”, “벽창호등으로 나아갔다. 그런 내용을 담은 소책자도 2권이나 냈다.

 

절정은 지난해였다. 내가 복수심에 가득차온갖 야비하고 부정직한 언행비윤리적인 일도 서슴지 않으면서 중상모략을 일삼아 온 각별히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전지윤의 실체는 전무후무한 기회주의이며 영화 <미저리>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이게 무슨 정치적 비판인가?

 

최근에 다시 시작됐다. 내가 추악한 전력파렴치한 기회주의이며 나락으로까지 간 그의 타락이란다. ‘노동자연대 비방평생의 과업으로 여기며 사명처럼 집착하는사람이란다. 칼처럼 내 가슴에 박힐 표현만 고른 거 같다. 법적 지식이 있는 분들은 이 정도면 명예훼손이 분명하다고 조언할 정도다.

 

이 정도면 저 분들이 모여서 나를 뭐라고 비난하고 있을지 상상이 간다. 가끔 저 분들이 친구 공개글과 댓글을 통해 나를 비난한 장면들을 전해받기도 했다. 전달해주는 분도 알고계셔얄 것 같아서하며 미안해했다.

 

누구는 그냥 못보고, 못들은 셈치라지만 20년 가까이 같이 활동했던 동지들에게 그런 공격을 당하는 것이 맘 편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런 낙인은 무시할 수가 없다. ‘저럴 정도면 저 사람도 뭔가 문제는 있겠지하는 시선들. 인사를 나누거나 SNS 등에서 교류하던 사람들이 싸늘해지고 거리를 두는 걸 자주 느낀다. 다가가고 싶어도 선을 긋는다.

 

가까운 사람들마저 간혹 의심하는게 느껴진다. 가장 아득할 때는 한 번도 대화해 본 적도 없는 활동가들, 노동자연대 신입회원들이 나를 벌레처럼 쳐다보며 피해갈 때다. 나를 조직에서 쫓겨난 후 복수심에 불타 비방에 매달리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질 때다.

 

나는 노동자연대 동지들을 비판할 때 언제나 거친 표현과 딱지붙이기를 피했고, 가급적 그분들의 장점과 공로를 함께 지적했고, 내가 그분들에게 많을 걸 배웠다고 말해왔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나의 존재와 주장 자체가 저 분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 같다. 2014년 연말부터 내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자고 제안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 상황에서 침묵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회피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에 노동자연대 운영위원회가 성폭력 피해자를 불신하고 비난하며 소송으로 갈 때 나는 운영위원중 하나였다. 그 과정과 사실이 뻔히 존재하는데 어찌 침묵하는가. 당시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이었던 분들도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스스로를 속이면서 맘 편하게 살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에 공동의 책임이 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비판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했다. “정말 간절하게 함께 반성하고 사과하자고 호소하며 고개숙여 반성과 사과의 뜻을 전했다. 노동자연대에게만 가해의 책임을 떠넘긴 적이 없다. 나 스스로가 그 일부였다고 인정했다.(http://www.anotherworld.kr/117)

 

더구나 이제 나는 더더욱 침묵하기 어렵다. 지금 공격받고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나와 가까운 또 소중한 분들이다. 그 분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뻔히 알고 있는 내가, 그걸 외면하고 침묵하면서 맘이 편해질 방법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피해자들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내가 노동자연대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분들은 노동자연대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과 대응으로 큰 상처를 받았고 자연스럽게 불신을 키워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노동자연대를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오로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길 기대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노동자연대 지도부였던 사람으로서 내가 스스로 사과를 통해 용서받았던 경험을 통해 확신한다. 더 늦기 전에 제발 이 진정한 해결책을 선택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나를 인신공격하고 모독하는 글들을 아무렇게나 써서 올리고 뒤에서 퍼뜨리는 분들에게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 존중을 바탕으로 동지적 예의를 지키며 정치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럴수록 상대방을 더욱 더 만만하게 보고 무시할 뿐아니라 거기에 새로 동참하는 분들까지 생기고 있다. 거칠고 독하게 반격하며 두려움을 주는 사람만 존중하겠다는 이 분들의 태도가 나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지만, 동지적 예의와 인간적 존중을 거부하는 분들에게 내가 그것을 지켜야 할 이유는 사라지고 있다.

 

#노동자연대는사과하라 #Metoo #Withyou

 

* 서명에 동참해주세요 https://goo.gl/BEapde

 

* 피해자 지지모임의 페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jmetoowithyou

 


(기사 등록 2018.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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