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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대량 총기난사 경험 세대’의 “더이상은 안돼!”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6. 7.

남수경 

 

[<의료와사회> 2018년 봄호에 처음 실렸던 글이다. 이 글의 필자인 남수경은 미국 뉴욕에서 도시빈민,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등을 대변하는 공익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법률서비스노동조합(Legal Services Staff Association UAW/NOLSW)의 조합원이다. 처음에 실렸던 글(http://www.chsc.or.kr/?post_type=book&p=90134)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와 <의료와사회> 편집부에 감사드린다.]


 



지난 324일 미국 워싱턴 DC의 한복판,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백악관을 잇는 펜실베니아 애비뉴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더 이상은 안돼! (No More!)” “참을 만큼 참았다! (Enough is Enough)”. 총기 폭력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주도한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 (The March for Our Lives)’의 거대한 물결이었다.

 

워싱턴 뿐 아니라 플로리다의 파크랜드, 뉴욕, 필라델피아, 아틀란타,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도시들과 런던, 파리, 시드니 등 전세계 800여 곳에서 벌어진 이 날 시위와 행진에 120만 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각주:1] AP 통신이 베트남 반전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학생 시위라고 보도할 만큼 미국 저항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집회였다.

 

1960 ~ 1970년대 반전 운동이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벌어진 데 반해 지금 벌어지는 총기규제 운동은 고등학생을 비롯한 10대 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다. 214일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 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이하 더글라스 고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 저항 운동의 불을 당겼다.

 

더글라스 고교를 다니다 퇴학을 당한 19살의 니콜라스 크루즈가 총기를 난사해 학생과 교사 등 17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총상을 입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2012년 유치원생을 비롯 26명의 목숨을 앗아간 코네티컷 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격 사건 이후 학교 안에서 벌어진 최악의 총기 참사였다. 매번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추모의 분위기가 고조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더이상은 가만히 지켜보지 않겠다고, 총기로 인해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막겠다고 학생들이 나선 것이다.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의 가장 큰 주역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10대 청소년들 이었다. 이 날 연단에 오른 연사들도 단연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더글라스 고교 참사 생존 학생으로 총기규제 운동의 주도적인 활동가가 된 엠마 곤잘레스는 “620. 그 시간에 내 친구 17명이 죽었고, 15명이 부상을 입었고, 더글러스 공동체 안 모두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목숨을 잃은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620초 간의 악몽의 시간을 다시 되새겼다. 또다른 생존자인 데이비드 호그는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of America, 이하 NRA)의 정치자금을 받고 이들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면서 총기 폭력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통렬히 비판했다.

 

연사 중 특히 큰 박수를 받은 나오미 와들러라는 초등학교 5학년 소녀는 11살 밖에 안된 자신이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어른들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고 일부 사람들은 말하겠지만, 나이가 어려도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있고 또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NRA총을 혐오하는 억만장자들과 헐리우드 엘리트들이.... 아이들을 조종하고 이용해 수정헌법2조를 파괴하고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방어할 권리를 빼앗으려는 계획의 일부라며 이 행진의 의미를 깎아 내린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장면이었다.(https://slate.com/news-and-politics/2018/03/the-march-for-our-lives-could-not-possibly-have-been-scripted.html)

 

324일의 행진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았다. 214일 참사 이후 자생적으로 벌어진 학생들의 저항 움직임은 314일에 전국적인 학생들의 항의 행동인 워크아웃(walkout)으로 나타났다. 미 전역에서 2,500 개가 넘는 학교, 백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수업 중 교실 밖으로 나와 더글라스 고교 희생자 17명을 기리는 묵념을 17분 간 진행하고, 정치인들에게 총기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420일에 또다시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워크아웃이 벌어졌다. 앞의 두 시위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운동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날은 1999년 콜로라도 주의 컬럼바인 고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19주년에 맞추어 조직되었다. 지금 총기규제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 대부분은 컬럼바인 고교 총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직 채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컬럼바인 고교 총기사건 이후 지난 19년 간 193개 학교에서 187천명의 학생이 총기 사고를 경험 했고, 200여명이 총기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더글라스 고교의 한 생존자는 자신들을 반복되는 총기 난사 사건을 보며 자란 대량 총기난사 세대’(mass shooting generation)라고 불렀다. 지금 이 청소년들이 총기 규제 운동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은 미국 사회에 일상으로 자리 잡은 총기 폭력을 더이상 정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꾸겠다는 새로운 세대의 혁명적인 움직임이다. “혁명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연단에서 외쳤던 한 더글라스 고교 생존 학생의 말처럼 말이다.

 

점점 커지는 총기 규제 요구

 

더글라스 고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총기 규제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a98f8b1e4b089ec3538d961)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총기 판매를 더 엄격히 규제하자는 입장을 지지하는 비율이 69%로 나타났는데, 이는 1993년 이후 최고 수치이다.(https://www.politico.com/story/2018/02/28/gun-control-polling-parkland-430099) 총기 규제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요구들은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 강화, AR-15 자동소총 같은 공격용 무기의 판매 금지, 대용량 탄창과 범프스탁 판매 금지 등을 포함한다.[각주:2]

 

총기 규제 지지 여론을 반영하듯 최근 플로리다 주에서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요한 총기규제법이 통과되었다. 총기 구매자의 연령을 18세에서 21세로 높이고, 총기 구입시 3일 간의 대기 기간을 두도록 했다. 또한 대량살상을 가능하게 하는 개조부품인 범프 스탁의 판매와 소지도 금지했다. 더불어 일부 교사의 교내 총기 소지를 허용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전통적으로 총기소유권을 옹호하는 여론이 강한 버몬트 주에서도 최근 이와 비슷한 총기규제안이 통과되었다.

 

이런 움직임은 그동안 수많은 총기 난사 사건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정치인들이 아래로 부터의 저항과 변화 요구에 압력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다시 한번 대중 운동이 사회 변화의 진정한 동력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하지만 과연 이런 종류의 총기규제안이 미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총기 사건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특히 NRA와 총기 관련 산업 같이 총기 판매로 이익을 보는 세력들에게 사회적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될 지 아니면 기존의 쉽게 희생양이 된 소수자와 소외 집단에 대한 더 큰 억압으로 작용할 것인지 살펴 봐야 한다.[각주:3]

 

더 많은 경찰이 총기 폭력을 막을 수 있을까?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나흘 뒤인 328, 더글라스 고교에 재학 중인 흑인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언론 보도와 총기 사건 이후 강화되고 있는 학내 보안 조치의 우려스러운 방향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더글라스 고교 전체 재학생 3,000 여 명 중 흑인은 약 11%를 차지하고 있다. 백인이 다수인 학교에서 소수인 흑인 학생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총기 규제 논의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총기 난사 사건 후 보안 강화책으로 교내에 더 많은 무장 경찰이 배치 되는 것에 대해 백인 학생들과 달리 자신들은 더 큰 위협을 느낀다고 했다. 흑인은 잠재적 범죄자취급을 당하면서 경찰의 감시와 타깃이 되고, 경찰 손에 더 많이 사살되는 현실을 상기 시키면서 총기 규제 운동에 경찰 폭력에 대한 논의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https://www.theroot.com/black-students-at-stoneman-douglas-want-gun-violence-so-1824188315)

 

한 학생은 “[총기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투명 백팩을 메고 등교해야 하는 것도 기가 막힌데, 우리들은 또한 [경찰에게 우리를 쏘지 말라고] 손을 들고 등교해야 하느냐?”며 학내에 무장 경찰이 증가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각주:4] 또 다른 학생은 201210대 흑인 트레이본 마틴 살해 이후 시작된 블랙 라이브즈 매터 (Black Lives Matter -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계속해서 총기 폭력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백인 학생들이 희생된 이번 사건과 같은 정도의 주목과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흑인과 백인의 생명이 같은 것으로 취급 된다고 느낄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학생들이 지적한 것처럼 더 많은 경찰과 공권력 강화가 실제 총기 폭력을 줄이는 데 거의 도움이 안될 뿐 아니라 억압 받는 소수자들을 희생양으로 만들 뿐이라는 것은 뉴욕시의 경험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2002년부터 12년 동안 뉴욕시장으로 재직한 전 뉴욕시장 블룸버그는 NRA에 맞서 총기 규제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재임 중 총기규제의 주요한 방안으로 불심검문인 스탑 앤 프리스크’(stop-and-frisk)를 도입했다. 소위 우범지역 (주로 소수인종 거주 지역)에 더 많은 경찰을 투입해 거동이 수상한 자들에 대한 불심검문을 강화해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그 원인을 제거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흑인과 유색 인종 (특히 젊은 남성)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규정해 타깃으로 하는 인종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일 뿐 총기 폭력를 뿌리 뽑는데 큰 효과가 없었다. 단적으로 스탑 앤 프리스크로 체포된 사람들 중 약 84%는 흑인과 라티노이고 백인은 단지 9%에 불과하다. 불심 검문에 걸린 대다수 사람들은 실제 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불법 총기 소유 검거율도 고작 0.2% 미만으로 알려진다.[각주:5]

 

사실 미국에서 총기 폭력을 가장 많이 휘두르는 집단은 다름아닌 바로 경찰이다. 해마다 경찰의 총에 사망하는 사람 수가 지난 50년 동안 있었던 모든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 수 보다 많다. 단적으로 2017 년 한 해 동안 총기 난사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428명인데, 같은 기간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1,129명이 경찰 손에 사살 당했다.(https://www.theroot.com/heres-how-many-people-police-killed-in-2017-1821706614) 게다가 경찰이 자행하는 총기 폭력은 공권력이라는 미명 하에 법적 책임도 묻지 않는다. 천 명이 넘는 소중한 목숨이 경찰 폭력으로 사라졌지만, 기소된 경찰관은 고작 12명에 불과하다이런 인종차별적인 법 적용 과 경찰 공권력 남용이 블랙 라이브즈 매터운동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경찰 폭력에 대해 문제제기가 없는 총기 규제안은 총기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을 없애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각주:6]

 

총기 규제 운동의 급진화 가능성

 

더글라스 고교 흑인 학생들의 입장은 보안을 위해 교내에 더 많은 경찰을 배치할 것을 요구하는 백인 학생들의 요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것은 총기 규제 운동 내에 다양하고 심지어 서로 모순되는 입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뿐 아니라, 이후 운동이 발전하면서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급진적인 운동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각주:7]

 

324일의 워싱턴 행진에서도 이런 운동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는 잘 드러났다. 조지 클루니, 오프라 윈프리,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유명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폭 후원을 하기도 한 이 행진에서 강력한 총기규제법에 대한 요구뿐 아니라, 올 가을 중간선거에 대비해 유권자 등록과 선거 참여를 독려하고 총기 규제에 찬성하는 정치인들을 지지하자는 구호와 주장이 많이 나왔다. 주류 언론의 보도도 이런 내용에 초점을 맞추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총기규제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많이 당선시켜 더 엄격한 총기규제법이 마련하자는 주장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여겨지고, 선거가 다가올수록 이런 분위기는 가속될 것이다. 하지만 총기 폭력의 문제를 단순히 총기만의 문제로 협소하게 보지 않고 인종주의, 경찰 폭력 등 더 큰 사회 문제와 연결하려는 시도도 두드러졌다.

 

앞에서 언급한 초등학생 흑인 소녀 나오미 와들러는 총기에 의해 희생되는 흑인여성과 소녀의 목숨은 그저 통계 수치로만 처리될 뿐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자신과 친구들이 학교에서 조직한 314일 워크아웃에서 더글라스 고교의 희생자 17명 뿐 아니라 학교에서 총을 맞고 숨진 앨라배마의 커틀린 애링턴이라는 흑인 소녀를 기리기 위한 1분을 더해 18분 동안 묵념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커틀린 애링턴과 마찬가지로 총기 폭력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더글라스 고교 희생자들과는 달리 주류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한 다른 10대 흑인 소녀들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주요 신문의 1면에 실리지 않는 흑인 소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나왔다고 말했다.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 뿐 아니라 타인종 여성에 비해 총기로 살해될 가능성이 월등히 높은데도 사회적으로 전혀 주목 받지 않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https://www.vox.com/identities/2018/3/26/17164780/black-girls-youth-gun-control-movement-march-for-our-lives)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애드나 차베즈라는 17세의 히스패닉 소녀는 경찰력 증강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색 인종 청소년들이 총에 목숨을 잃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경찰은 유색인종 학생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감옥에 가두고 있다고 비판 했다.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사에게 총을 지급하고 더 많은 경찰을 학교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대한 더 많은 기회와 지원을 주는 것이라고 말해 청중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런 급진적인 목소리는 총기 규제 운동이 단순히 총기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뛰어넘어 인종주의, 경찰 폭력, 여성 차별 등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한 더 커다란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국에서 벌어진 총기 규제 시위와 행진에 블랙 라이브스 매터운동 지지자들이 대거 참여해 인종주의와 경찰의 총기 폭력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크다.

 

또 다른 대중적인 총기 규제안의 하나인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 강화도 얼핏 보면 당연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적용에서 신원조회는 주로 유색인종과 소수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각주:8] 하지만 대다수의 총기난사범이 백인 남성이었고 그들 대부분이 총기 구매를 위한 신원조회를 통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을 보면 인종주의적인 신원조회가 과연 총기 폭력을 막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 지 의문이다. 또한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총기 구매를 금지 하는 것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더 부추길 뿐 아니라 보편적 권리를 특정 집단에게만 일관적으로 배제하는 명백한 차별이다.

 

현재 공화 민주 양당 정치인들이 지지하는 총기규제안 논의에 일괄적으로 빠져 있는 것은 경찰이나 군비 예산을 줄이고 대신 교육, 의료 등 기본적으로 필요한 사회 서비스에 더 많은 비용을 충당하는 내용이다. 학내에 더 많은 무장 경찰이 아니라 더 많은 상담교사를 충원하고 누구나 부담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질좋은 공공의료 서비스와 보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외와 폭력을 양산하는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길이다.

 

총기 판매로 이익을 보고 있는 총기 산업과 그 대변인 NRA 그리고 폭력적인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경찰 등 공권력에게 책임을 더 많이 지우는 방향이 아니라, 소수 인종과 정신질환자 등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총기규제는 결코 폭력의 사이클을 막지 못할 것이다. 총기 폭력에 반대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는 이미 인종주의와 경찰 폭력 문제를 문제의 핵심으로 들고 나온 학생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급진적인 요구에 지지를 보내고 힘을 보태는 것이 모든 폭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기사 등록 20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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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워싱턴 DC 에 모인 인파는 최소 20만에서 최대 80만 명 (주체 측 집계)으로 추산된다. [본문으로]
  2. 작년 10월 1일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사상 최대의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범프 스탁을 이용해 반자동소총을 자동소총으로 개조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범프스탁의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져 왔다. 이런 분위기에 밀려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인 공화당 하원의장 폴 라이언은 범프 스탁 규제를 고려하겠다고 했고, 심지어 NRA 조차 범프 스탁 규제에 동의한다고 밝힌바 있다. [본문으로]
  3. 예를 들면 ‘무기 합법거래 보호법’ 하에서 총기 제조사나 판매업자는 총기로 인한 사고나 범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담배나 자동차 등 다른 상품의 경우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소비자가 입은 피해에 대해 제조업자가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과는 대비된다. NRA의 로비와 정치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본문으로]
  4. 더글라스 고교는 사건 후 안전 강화 방침의 하나로 학생들에게 투명 백팩을 메고 등교할 것과 금속탐지기 설치, 몸수색 실시 등을 발표해서 학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본문으로]
  5. 인권법률단체인 Center for Constitutional Rights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뉴욕시에서 약 70만 건의 불심검문이 있었는데, 그 중 84%는 아무런 범죄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단지 6% 만이 정식 체포와 기소로 이어졌다. [본문으로]
  6. 인종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총기 규제의 이중 잣대는 총기소유권에도 적용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총기소유의 법적 근간이 되는 수정헌법2조는 애초부터 백인만을 위한 권리였다. 미국 초기 정착 과정에서 원주민의 땅과 자원을 약탈하고 노예제를 유지하는데 ‘자유로운 시민’의 무장할 권리는 유용하게 쓰였다. 반면 소수 인종의 총기소유권은 철저히 탄압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예는, 1960년 대 급진적 흑인민권운동 단체 흑표범당(Black Panther Party)을 들 수 있다. 흑표범당은 경찰 폭력과 극우 백색테러에 맞서 흑인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총기로 무장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총기 소유권은 수정헌법2조의 보호는커녕 도리어 탄압의 빌미가 되었다. http://www.newsmin.co.kr/news/23974/ [본문으로]
  7. 경찰 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는 흑인 학생들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총기규제 운동의 주역으로 떠오른 더글라스 고교 생존자인 데이비드 호그는 백인 학생인데, 그 또한 언론이 흑인 학생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교내에 더 많은 경찰이 배치되면 더 많은 유색인종 학생들이 감옥으로 가게 되는 소위 ‘학교-감옥 직행 라인’ (school-to-prison pipeline)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본문으로]
  8. 예를 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신원조회 강화 방안 중에는 ‘테러리스트 감시 명단’이나 ‘비행금지 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들은 총기를 구입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명단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핑계로 기준도 모호한 채 무차별적으로 무슬림을 겨냥해 만들어진 것으로 반인권적 차별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