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혁명이란 무엇인가?

닐 데이비슨(Neil Davidson)

번역: 전지윤

 


혁명의 정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사회주의 혁명의 특징과 미래는 무엇인지를 다루는 글이다. 지난 겨울에 우리가 경험한 촛불을 과연 혁명으로 볼 수 있을지,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의 필자인 닐 데이비슨은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서 영국의 ‘21세기 혁명적 사회주의’(revolutionary socialism in the 21st century: rs21) 단체의 회원이다.


출처: http://newsocialist.org/what-is-a-revolution/


 2011 이집트 혁명 당시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 



혁명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사회주의자들은 레온 트로츠키의 유명한 진술을 자주 인용하곤 한다.

 

혁명의 의심할 여지없는 특징은 역사적 사변에 대한 대중의 직접적인 개입이다.”

 

이것은 트로츠키가 논했던 러시아 혁명에서 명백한 진실이었고, 미래의 어떠한 사회주의 혁명에서도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 기술로서 이것은 너무 제한적이다. 이것은 예컨대 영국, 프랑스 등 한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주요한 부르주아 혁명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트로츠키와 동시대에 살았던 스코틀랜드 사회주의자인 존 맥클린은, 1916년에 폭동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그에게 혁명이 무엇을 의미하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그는 한 손을 다른 손의 위에 올려놓았다가 그것들을 뒤집으면서,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서로 위치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점에서 이것은 수단만큼이나 결과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트로츠키의 정의보다 더 완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슷하게도 사회주의 혁명에 제한된 정의다. 부르주아지는 그들이 권력을 위해 일어서서 분명히 혁명적이었을 동안에도, 우리가 봤듯이 결코 피착취 계급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사실상, 혁명에 대한 일반적 이론은 없다. 우리는 다른 종류의 혁명들 사이에서, 먼저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을, 나아가 여러 다른 다양한 혁명들을 구분해야만 한다. 이 모든 혁명이 서로 다른 방식 속에서도 공통적으로 가진 것은 목표로서의 국가권력이다.

 

정치혁명과 사회혁명

 

정치혁명은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기존 지배계급의 분파를 포함한, 자신들이 국가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것은 근본적 사회경제적 구조는 온전하게 남겨 둔다. 이런 혁명은 역사에서 비교적 자주 일어났는데 이런 것들이 있다:

 

기원전 27년에 원수(元首)정치를 위한 공화국의 규율을 포기하게 만든 로마 시민 전쟁


750년의 옴미아드 왕조에 대한 압바스 왕조의 승리. 이것은 모든 무슬림이, 이전에 아랍인들이 독점했던 칼리프 체제의 엘리트 위치에 올라갈 수 있게 길을 열었다.


1989~1991년의 동유럽 혁명, 이것은 스탈린주의 정권들을 무너뜨렸고 동구 국가자본주의가 서구의 다국적 모델과 비슷한 것으로 전환하기 시작하게 만들었다.

 

정치혁명은 많거나 적은 대중적 참가를 수반할 수 있고, 대중의 삶의 조건을 일부 또는 대폭 개선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없었던 곳에 그것을 소개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처음에 생산수단을 통제하던 지배계급이 마지막에도 남아있도록 할 것이다.(물론 개인이나 정치조직이 그 과정에서 교체될 수는 있지만)

 

그리고 생산과정에서 처음에 착취를 받던 계급이, 마찬가지로 그 끝에도 그렇게 남을 것이다.(물론, 승리한 분파로부터 그들의 묵인과 참가를 구하기 위한 양보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사회 변화가 없다는 점은, 정치혁명의 수단들과 가속화된 개혁의 과정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과 관련있다.

 

예를 들어서, 1832년 영국에서 대개혁 운동을 살펴보자. 영국에서 부르주아 혁명은 1688~89년 잉글랜드와 1745~46년 스코틀랜드에서 완성됐다. 대개혁 운동은 산업 부르주아지가 자기 자신을 위한 선거권을 쟁취하고, 그럼으로써 기존 영국 자본주의 국가에 더 직접 접근하기 위한 성공적인 시도였다.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톰슨이 18312월과 18325월 동안 가능했다고 생각하듯이, 만약 개혁을 넘어선 혁명이 벌어졌다면, 영국 사회는 아마도 실제보다 더 철저하게 민주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 이 이른 시기에 사회주의는 아직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 그 혁명은 여전히 정치적 영역 안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반면 사회혁명은 적어도, 단지 국가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그것을 변혁하기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 이미 생산의 측면에서 일어난 변화에 응답하거나(초기 부르주아 혁명), 또는 그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거나(후기 부르주아 혁명이나 사회주의 혁명):

 

이런 혁명들은 하나의 사회경제 구조에서 다른 것으로의 변화를 수반한다. 오로지 세 가지 획기적 과정들이 사회혁명의 범주로 나눠진다. 하나의 극단에는 노예제에서 봉건제로의 전환이 있다. 또 하나의 극단에는 사회주의 혁명이 있다. 현재까지는 현실성보다는 가능성이지만, 만약 이뤄진다면 이것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시작하게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극단 사이에 부르주아 혁명이 놓여있다. 정치혁명과 사회혁명 사이의 관계는 복합적이다. 정치혁명은 때때로 사회적 결과를 가져오고, 사회혁명은 항상 정치적 결과를 가져 온다. 대중 자신이 일으킨 혁명의 일부는, 한낱 정치혁명으로 시작돼서 실제로 더 확장된 사회혁명의 시작이 되거나 마지막 에피소드가 된다


부르주아 혁명에 대해 보자면, 1688의 영국 혁명은 1640년 혁명에 대해 이런 관련성을 가졌다. 연대기적 순서의 중요성을 역전시키면, 1776년 미국 혁명은 1861~65년의 내전과 이와 같은 관계이다.

 

지금의 토론 맥락에서 더 중요하게는, 일부 혁명은 사회혁명으로서 실패하면서 정치혁명으로 끝난다. 사회주의 혁명과 관련해서, 이것은 1918년 독일 혁명의 사례에서 분명하다. 또한 1952년 볼리바리안 혁명에서도, 1974~75년 포르투갈 혁명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인도네시아(1998), 세르비아(2000), 튀니지(2011~2012), 우크라이나(2013~14) 등 대부분 최근에 벌어졌고, 소위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불린 대부분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오로지 혁명적 과정이 끝나고 난 이후에야 이것이 정치혁명 또는 사회혁명을 수반했는지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시점까지 가능성은 열려있다.

 

사회주의 혁명의 특별함

 

확실히 우리는 사회주의로 이행의 세부사항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에 있어서 난점에 처해 있다. 봉건제나 자본주의로의 이행과는 달리 그것이 여전히 벌어지는 중에 토론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비록 진정한 사회주의 경제에 수반돼야 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흥미있는 작업은 지금 진행중이지만 사회주의 사회의 정확한 특징은 아직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추측에 근거한 성격일 수 밖에 없다.

 

몇 달이 아닌 몇 년 동안 지속된 유일한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 191710월 혁명은 1928년 스탈린주의 반혁명의 승리로 인해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었고,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이 착수했던 전환은 여전히 성공적으로 재개되어야 할 것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과 이전(파리 꼬뮌)과 이후(독일 1918~23, 스페인 1936~37, 헝가리 1956, 포르투갈 1974~75, 이란 1978~79, 폴란드 1980~81, 이집트 2011~2012)의 실패한 사회주의 혁명들의 짧지만 빛나는 순간들에서, 노동계급은 어떻게 경제, 사회, 그리고 국가의 운영을 인수하며 새로운 민주적 제도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 줬다.

 

이 경험들에서 추론해 볼 때, 사회주의 혁명의 네가지 특징을 규정해 볼 수 있다.

 

(i) 아마도 사회주의 혁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것의 성취에 필요로 하는 행위자의 성격이다. 자본주의에서 착취당하는 계급, 노동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전혀 성취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예전에 관측했듯이, 노동계급은 역사에서 스스로를 대표해 혁명을 만들 수 있고 억압에도 반대하는 첫번째 피착취 계급이다. 노동계급은 농민과 다르게 집단적으로 구조화돼 있기 때문에, 농민이 결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회적 조직의 새로운 형태의 기반이 된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와 달리, 다른 계급을 도구로 이용해서 기존 체제를 파괴하지 않고도 그 스스로 사회를 재건할 수적 규모와 구조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를 대체하는 착취계급이 아니며, 이것은 승리한다고 해서 변화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나날의 계급투쟁과 사회 혁명을 위한 변혁적 투쟁은, 같은 계급들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과 연결돼 있다: 전자는 항상 후자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이 같은 노동계급의 주체로서 개념에 우리는 두 가지 자격 요건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모든 노동계급이 혁명의 편에 참가하지는 않는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대부분의 종속 계급 구성원들이 매우 모순적 형태의 의식을 가진다고 정확하게 주장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체제의 구체적 효과에 반대하는 동안에도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는 개혁주의적 무기력이다. 어떤 것이라도 대안은, 극단적인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거부하면서 다른 극단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가치의 내면화가 그들이 체제에 맞서서 행동하는 어느 시점까지도 그것을 능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둘째, 노동계급의 중심적 구실은 그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유일한 힘일 것이라는 점을 뜻하지는 않는다. 지난 100년 동안 노동계급의 잠재적 동맹세력은 바뀌어 왔다. 1917년 이후 러시아 혁명이 성공적으로 확산됐다면, 농민들은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오늘날 개발도상국의 비공식 노동력 부문들은 그들이 1917년에 할 수 있었을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위치가 억압의 근본적 뿌리가 무엇인지 논의하게 만드는 피억압 집단들이 있다(오늘날 서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슬림 공동체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는 레닌의 생각은 어떤 점으로 보더라도 더욱 타당하다. 사회주의라 이름 불릴 수 있는 어떤 것도 그 정신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ii) 권력을 위한 노동계급의 투쟁은 계급의식을 각성시키고, 통합하고, 유지할 수 있는 조직을 필요로 하지만, 또한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 고도로 민주적인 공적 권위를 위한 대안적 형태의 기초로서도 조직이 요구된다.

 

간단히 말해, 노동계급이 필요로 하는 조직적 구조는 (그들이 실제로 그것을 행했던 소수의 사례에서)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세해지고 나서 만들어낸 국가의 중앙집중적 구실과 이데올로기적 형태이다.

 

여기에서 계급의식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조직의 역할은,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노동조합에서부터 혁명적인 조직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바람직한 특별부록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필수 요소이다.

 

실제로, 현재 시장뿐 아니라 관료적 국가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인간 존재라는 측면들에 어떻게 기반하느냐에 의해 민주주의는 정의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심어주는 오랜 강압적인 노예상태나 삐뚤어진 분노의 잔재들을 노동자들이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은 힘을 얻기 위한 변혁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iii) 사회주의 혁명은 새로운 경제적 질서를 완성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투쟁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의 전제 조건은 자본주의에 의한 생산력의 발전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착취자일 수 없기 때문에 대안적인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적 생산 방식을 혁명 이전에 발전시켜 나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변혁의 과정은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와 과도기적 형태로서 그것을 고도로 민주적인 공권력("국가가 아닌 국가")으로 대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적(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전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가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대체되는 것에 따른 궁극적 자기 소멸의 전주곡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시장과 국가 모두가 사멸해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iv) 러시아 혁명의 경험은 사회주의 혁명의 가장 마지막으로 구분되는 특징을 보여 줬다. 그것은 반드시 국제적 사건이어야 한다. 개개의 돌파구가 더 오래 고립되면 될수록 파리 코뮌 이후의 대부분의 경우처럼 밖으로부터 침탈이나, 러시아에서의 경우와 같이 내부에서의 반혁명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후자는 더 정교한 설명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혁명에 대한 위협은 단순히 경제의 후진성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 체제 속에서 궁극적으로는 경쟁적 축적의 압력이 러시아라는 공장 안에서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 결정한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더 높은 수준의 경제 발전이 있었다면 러시아 국가는, 실제 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오래 내부적 퇴보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궁극적으로 이 과정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의 국제적 성격은 단순히 그러면 좋은 것이나 선택할 수 있는 부록이 아니라 필수적 요소이다. 공간은 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주의 혁명의 영토적 범위가 제한되면 그것의 시간적 범위도 일시적이게 된다.

 

사회주의 혁명의 미래

 

21 세기에 사회주의 혁명의 전망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회주의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질 시간과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 체제가 되기 위해 필요했던 기간을 유용하게 비교할 수 있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도착한 것에서부터 7년 전쟁을 통해 프랑스에 대한 영국의 패권이 확립될 때까지 거의 400년 동안 자본주의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안착했다.

 

봉건적 생산 방식의 수혜자가,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를 마법처럼 깨닫게 된다면, 1660년부터 일련의 무산된 이행들, 실패한 혁명들 그리고 자본주의가 존재했었던 이탈리아 도시 공화국들, 보헤미아, 카탈로니아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저지한 대외 정복들을 만족스럽게 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 방식으로 남아있는 국가들에서조차도, 네덜란드처럼 쇠퇴하거나 영국과 같이 절대주의 군주국으로 복구한 것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들은 존립 가능한 대안적 체계로서 자본주의에 작별을 고하며 만족스러운 결론을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100 년이 채 안 돼서, 이제는 자본주의가 과연 생존할 것인가가 아니라 봉건 사회가 지금 자본주의로의 불가피한 이행을 어떻게 만들어내는 가가 문제가 됐다. 물론 이런 유비는 정확하지 않다.

 

사회주의는 봉건제 안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봉건제 안에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며,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후 변화가 환경 재앙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무한한 시간이 있지도 않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착취를 끝낼 수 있다면 누구든지 1분이라도 계속 고통 받고 싶어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장기적인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사회주의 패배가 필연적으로 영구적일 것이라거나, 자본주의가 더 긴 기간 동안 지속될 체제라고 생각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패배는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더구나 새로운 노동계급 기관들의 출현이 중단된 것도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최근의 발전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생했다. 우고 차베스, 에보 모랄레스, 라파엘 코레아 등 선출된 지도자들의 활동만이 아니라 2000~2001년에 아르헨티나에서는 피케테로스와 민중의회라는 형태로 집단적 조직화의 새로운 형태도 등장했다.

 

볼리비아에서는 2003~5년 사이에 거대한 빈민가인 엘 알토에서 봉쇄된 라파즈까지 노동자 지역위원회와 주민의회라는 형태로 이것이 조직되었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에서 아래에서부터새로운 조직 형태의 출현은 혁명가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의 존재는 맹아적인 차원이나마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대안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구가 국가를 대체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사회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굴러갈지에 대한 앞선 징후를 볼 수 있다.

 

이집트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잠재력과 그 길에서 부닥칠 실제 장애물을 모두 보여준 최근의 사례 중 가장 극적이었다. 그 포부에서, 그것은 혁명에 대한 이전의 시도들과 두드러지게 비슷했다.

 

그러나 혁명의 자기 제한적성격이라 부를 수 있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군사독재 아래(지금도 다시 그런 상태로 돌아갔지만)에서는, 혁명의 열망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것을 민주주의의 부르주아적 형태, 다른 말로 정치혁명을 넘어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갈 수 있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그 자체로 혁명적인 요구라고 보았다.

 

특히 대의제적 민주주의가 지금 후퇴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더 분명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남반구 세계의 주요 특징은 상대적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절대적인 빈곤이며, 이것이 민주주의의 부재 또는 불안정을 초래한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것은 아마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경제 위기는 유럽의 취약한 지역, 특히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기술적 제약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평가이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시작돼서 혁명이 시도되고 성공적으로 진행된 모든 경우에(1974년 포르투갈과 그리스에서부터 2011년 튀니지까지), 그 혁명은 거기에서 그치고 말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무시하려는 대중적 압력이 있었던 2012년 이집트와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그 후에 달성하고자하는 신뢰할만한 비전이 없다면, 우리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달성 자체가 혁명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21 세기에 사회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사람들 대다수가 현재 자본주의에 대한 체계적 대안의 타당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제 이것이 사실이 아닌 경우가 있겠는가? 실제로 혁명을 시작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혁명을 불가능하게 보기 마련이다.

 

혁명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보여주려면, 자본주의가 집단적 대중 행동이 더는 불가능할 수준으로 노동계급을 원자화시키며 구조적으로 변화했다거나, 집단적 대중 행동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번영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들 중 어느 것도 그럴듯하지 않다. 만약 우리가 영국이나 미국의 현재 상황만을 유일한 분석의 기반으로 전제한다면 첫 번째 주장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를 들어 1억 명이 넘는 노동자가 생활임금과 보편적 식량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한 인도의 20132 월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주장의 설득력이 거의 없다.

 

민주주의가 혁명을 억제 할 수 있는 능력에 가장 큰 의문을 던지게 되는 것은 두 번째 명제의 불가능성에 있다. 불평등이 심해지고 노동계급의 소득이 가장 먼저 감소하는 시대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아무도, 특히 근래에 정치혁명을 경험한 남반구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호황이라는 황금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기성정치를 가장 오른쪽으로 이동시켰기 때문에, 전후 장기호황 시대에 개혁의 요구나 인간 존엄을 위한 기본적 문제로 간주되었던 많은 쟁점들이 현재 자본주의 사회 지배적 기관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컨대 긴축을 끝내라는 그리스의 요구에 대한 트로이카의 태도는 대표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수익성 회복을 중단시킬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체제가 그것을 허용할 수 없는 맥락 속에서는, 단순히 개혁을 위해서도 혁명적인 방식으로 싸워야할 필요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개혁에 대한 요구 그 자체가 혁명적 요구를 구성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0 세기의 경험은 분명히 사회주의의 불가피성에 대한 어떤 개념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게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노동계급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도 가지고 있다



(기사 등록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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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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