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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보편적” 접근법이 오히려 투쟁을 좁힐 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12. 11.

데이비드 캠필드(DAVID CAMFIELD)

 번역: 전진한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면서 보편적인 계급정치와 단결을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연대를 어렵게 하는 측면에 대해 비판하며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이다. 이 글의 필자인 데이비드 캠필드는 캐나다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우리는 더 잘 해낼 수 있다: 사회변혁을 위한 사상’(We Can Do Better: Ideas for Changing Society)의 저자다.

 

출처: http://newsocialist.org/when-a-universal-approach-narrows-the-fight/

 



 

미국의 많은 좌파들이 사회 계급의 정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계급 정치 지지자들이 마치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여러 형태의 억압에 맞선 투쟁 때문에 노동계급 투쟁이 분열되는 것처럼 주장하거나, 억압에 맞선 투쟁 자체를 크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좌파 일부가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는 것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계기로 정체성 정치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버니 샌더스의 주장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로저 랭커스터는 <자코뱅>정체성 정치는 우리를 한계에 가둔다라는 글을 써서 소외된 사람들의 요구는 자율성, 권리, 인정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주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https://jacobinmag.com/2017/08/identity-politics-gay-rights-neoliberalism-stonewall-feminism-race)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들에서 비슷한 주장이 나타난다. 하지만 좌파들이 정체성 정치에 대해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첫째 문제는 정체성 정치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리처드 시모어의 유용한 언급에 따르면, 우파들은 이 용어를 백인 부르주아 남성만 제외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역차별적] 생각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린다 번햄에 따르면 우파들은 그러면서 “‘사상경찰’, ‘정치적 올바름’, ‘자유주의 엘리트와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는 데, 그 주된 목적은 자유주의와 좌파 정치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시모어는 자유주의적 중도파그들이 보기에는 너무 시끄럽고 성급한 요구를 하는 여성, 게이, 흑인, 이주민들을 비판하는데 정체성 정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대중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게 퍼져 있는 것은, 주류 언론을 통해 전파된 이러한 의미이다. 따라서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이성애주의, 그리고 다른 여러 억압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구체적 현실에 맞서 투쟁하면서 정체성 정치를 찾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이런 [우파적] 이해와는 뭔가 다른 걸 꾀하는 사람들이 "정체성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노동계급"이나 "사회주의" 같은 단어는 매우 논쟁적인 개념이면서도 이런 생각들을 교류할 더 나은 단어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고수해야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정체성 정치"는 다르다.

 

더구나 용어법 자체보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샌더스는 민주당 후보들이 "흑인과 백인, 라틴계, 게이, 남성"이기만 해서는 충분치 않고 "과두정치에 맞서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노동자들의 편에 서야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소득과 기대수명이 줄어들고 있는지, 그리고 의료비와 대학등록금에 허덕이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랭커스터는 더 강경하게 주장한다. 그는 1960년대와 1970년대 흑인, 여성, 게이와 레즈비언 운동이 가졌던 "본래의 급진적 전망"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그가 "정체성 정치"와 대비시키는 "포괄적이고 보편주의적인 사회주의 프로그램"의 내용은 명쾌하지 않다. 그는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계급 운동이 요구해온 것보편적 의료보장, 무상교육, 공공주택, 생산수단의 민주적 통제와 같은 것들이라고 본다.

 

이런 주장들 모두의 공통점은 좌파가 "정체성 정치" 대신 보편주의 정치를 옹호하며 싸워야 한다는 것이고, 보편주의 정치에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이성애주의, 정착형 식민주의, 그리고 다른 종류의 억압들에 맞서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요구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젠더폭력, 무상피임, 무상낙태, 무상 공공육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흑인을 위한 연방정부나 주정부 차원의 일자리 프로그램, 모든 이민자를 위한 영구 거주 자격, 퀴어와 트랜스젠더를 위한 완전한 법적 평등, 토착민의 민족자결권 등 억압을 줄이기 위한 개혁 요구들은 "특정""정체성"에 따른 요구라면서 경시되거나 심지어 배제된다.

 

로빈 D.G. 켈리는 이미 20년 전에 이런 접근법에 대해서 비판했다. "계급투쟁이 인종과 젠더에 관해 중립적인 영역인 것처럼 가정할 것일 뿐 아니라 인종과 젠더, 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춘 운동은 불가피하게 계급의 단결을 약화시키고 전체 민중을 해방시키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억압에 맞선 투쟁의 역사는 그러한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한다. 미국에서 노예제 폐지는 임금 노동자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활동가들을 고무시켰다. “노예들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활동을 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의 권리 지평이 넓어졌다고 데이비드 로디거는 말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해방 운동은 미국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약화시켰고, 노동자와 학생들의 투쟁과 같은 더 광범한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200651이민자 없는 날시위에서 라틴계 사람들은 미국에서 정치적 파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인종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변화를 위해 조직하고 싸우도록 용기를 준다. 스탠딩 락(Standing Rock)에서 보듯이 토착민들은 기후변화를 더 심화시키고 수자원을 오염시키는 자본주의 에너지 산업 프로젝트에 맞선 가장 효과적인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는 억압받는 사람들이 벌이는 자유를 향한 투쟁이, 계급을 분열시키는 물질적 불평등과 반동적 사상들에 균열을 내면서 노동자들 사이의 단결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것은 또한 억압받는 사람들의 존재로 인해 상대적 유리함을 얻어 온 사람들(남성, 백인, 이성애자 등)이 사회적 역할 구분에 의문을 던지게 하고, 투쟁에 참여하게 만든다. 또한 지속되는 억압이 적들을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억압에 맞선 운동이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의 자유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이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 등장한 많은 요구들이 분명하게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사회주의자들은 무상교육, 온실가스 배출을 극적으로 줄이면서 노동자들의 직업 전환을 보장하기, 그리고 미국에서 단일 의료보험 체계를 만들기 위해 싸울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치가 진정으로 보편화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요구를 발전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를 사회변화를 위한 비전과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서로 다른 형태의 억압을 구체적으로 겨냥해 싸우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상처는 모든 사람의 상처라는 오랜 노동운동의 슬로건을 오늘날 실천에 옮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가 조직하려는 사람들에게 인기 없는 일이란 이유로 이러한 실천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이는 법적 권리와 문화적 규범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이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고 억압은 여전히 매우 현실적인 사회에서 단결을 구축하는 어렵고 중요한 과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목수 노동조합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이민관세청에 신고하고, 스탠딩 락 투쟁에서 많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잘못된 방향에 서있고, 많은 백인들이 마치 유색인종이 위협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고, 시스젠더 여성과 트랜스젠더들이 일상적으로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부정당하는 상황에서 인종에 둔감한”, “성에 둔감한정치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찾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정치의 토대 위에 구축된 단결은 취약하고 피상적일 것이고, 고용주들과 정치인들의 분열 지배 전략에 늘 취약한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다며 단지 신자유주의 권력구조에서 문화적으로 인정받고 정치적 대표자를 공평하게 내세우려는 것에만 머물려는 정치가 별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러한 정치의 문제는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보여준 바와 같이 매우 분명하다.

 

이런 정치의 지지자들 일부는 기회주의적으로, 샌더스와 버니의 형제들”(샌더스 지지자들)이 여성과 흑인에게 마치 적대적인 것처럼 넌지시 암시하면서 민주당 기득권층을 왼쪽에서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방하곤 한다.

 

하지만 보편주의라는 이름으로 억압 문제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거나, 모든 형태의 억압을 명쾌하게 다루지 않으면서 정체성 정치를 공격하는 것은, 위와 같은 종류의 자유주의 정치에 흔들리는 사람들을 사회주의 정치로 이끌도록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일 수 없다.



(기사 등록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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