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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성소수자의 권리/ 육군 게이 마녀사냥/ 프랑스 대선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5. 2.

전지윤




성소수자 권리 방어가 촛불 승리를 지키는 길이다

 

문재인의 동성애 반대발언을 들었을 때, 나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 동지의 고마운 배려로 시사회에서 영화 프라이드’(한국 개봉명 런던 프라이드’)를 보고 뒤풀이하고 있었다.

 

84년 영국 광부 파업에서 LGSM(광부를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85MSLG(레즈비언과 게이를 지지하는 광부)로 돌아오는 감동적 마무리를 보고 기분좋게 떠들고 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여기는 아직 역사가 거꾸로 간 2017년 한국이지...

 

문재인은 지난번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며 내 어머니와 아내가 여성으로서 힘들었던 걸 깨닫지 못했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고 했다. 아무리 그를 지지하지 않아도 그 말은 가슴에 와닿았는데, 이제보니 그는 여전히 한남 아재의 눈에 머물고 있었다.

 

프라이드에서 광산 마을회관에 처음 가서 동성애자가 발언하며 이 속에도 게이가 있다고 하자 광부들이 야유하며 일어서 나간다. 영화 뒷부분에 가면 그건 사실이었다. 그 늙은 광부는 왜 오래동안 숨겨왔을까. 바로 옆의 가족까지 호모포비아였기 때문이다. 홍준표의 빻은 소리에 답하며 문재인은 곳곳에서 숨어 있을 사람들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이다.

 

당장 홍준표같은 적폐를 몰아내 촛불 승리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영화 속에선 거꾸로 어떤 게이가 LGSM 활동가를 향해 말한다. ‘게이가 죽어 가는데 광부 지지가 중요하냐?’ 하지만 활동가들은 게이바 근처의 경찰이 사라진 건, 광부들을 때려잡으러 갔기 때문이라고, ‘게이의 권리가 중요하면 노동자의 권리도 중요하다고 본다.

 

그들을 보면서 이곳의 씩씩한 성소수자 활동가, 행성인 동지들이 생각났다. 곳곳에서 불의에 맞서며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위해 싸웠고, 이번 촛불의 승리를 위해서도 앞장서 온 동지들이다. 우리 모두가 이들에게 큰 힘을 얻어 왔다.

 

프라이드에서 파업 지지금을 얻은 노조활동가는 성소수자들의 클럽에 가서 감사 인사를 한다. ‘크고 강한 상대와 싸우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친구를 만나면 세상에 그보다 행복한 것은 없다.’ 성소수자를 혐오했던 광부들이 파업 이후, 가장 앞장서 지지하며 85년에 노동당 강령이 바뀌었고, 성소수자 권리 보장이 포함됐다는 게 영화가 끝나고 올라온 자막이었다.

 

문재인 지지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촛불에 함께 했고, 지금도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문재인이 성소수자 권리 보장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분명히 약속하도록 제일 앞에서 압박해야 한다. 그것이 정말로 촛불의 승리를 지키는 길이다.

 

 

육군 게이 색출마녀사냥과 영화 문 라이트

 

육군 게이 색출마녀사냥을 접하면서 가장 충격적이고 끔찍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녹취록에서 헌병대 수사관이 한 병사에게 다른 병사를 고발하도록 회유하는 부분이었다.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다라며 말이다.

 

흑인 동성애자의 삶을 그린 영화 문 라이트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도 비슷했다. ‘너무 울어서 내 자신이 눈물로 변할 거 같다, 그토록 많은 고통을 이겨내던 샤이론이 무너지는 것도 그 장면이었다. 거기서 샤이론이 참을 수 없었던 건, 주먹질과 발길질 자체가 아니었다.

 

같이 해변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며 사랑과 행복을 나눴던, ‘날 만진 유일한 사람인 캐빈이 자신을 때렸단 사실이었다. 헌병대는 캐빈을 협박해 샤이론을 때리게 만든 영화 속 패거리들처럼 용서받기 힘든 죄악을 저지른 것이다.(이 장면에서 내가 몇년전에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고, 이석기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도록 몰렸던 정의당도 떠올랐다. 캐빈이 나중에 세프의 스페셜을 대접하며 샤이론과 화해하는 일이 여기서도 벌어졌으면...)

 

이제 샤이론은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사랑을 잊어버린다. 황금틀니를 하고, 뒷주머니에 총을 숨긴 근육질의 마약상 블랙이 된다. 후안이 어린 샤이론에게 했던 충고도 비슷했다.

 

후안은 집에 찾아와 식탁에 앉은 샤이론에게 제일 먼저, 문을 등지고 앉지 말라고 한다. 언제 누가 등 뒤로 와서 총을 겨눌지 알 수 없는 슬럼가 삶에서 나온 지혜였을 것이다. 물론 후안과 그의 파트너인 테레사는 그런 냉혹한 교훈만 물려준 게 아니다.

 

샤이론은 그들에게 위로, 사랑, 자부심을 배웠다. 고개 숙이지 말라고, ‘호모란 말에 절대 참지 말라고 했다. 무엇보다 후안은 언젠가 스스로 무엇이 될지 정해야 할 순간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순 없다고 했다.

 

맞다. 내가 누군인지는 육군 헌병대가 정할 수도 물을 수도 없는 일이다. 쏟아지는 주먹과 발 앞에서도, 그냥 쓰러지라는 캐빈의 눈빛에도, 샤이론이 쓰러지지 않고 계속 다시 일어선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후안이 가장 빛나던 순간은 마약을 팔아요? 우리 엄마에게도 팔았어요?’라는 어린 샤이론의 물음에 정직하게 답한 후 고개를 묻고 괴로워하던 장면이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가장 인간다운 것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육참총장 장준규와 헌병대가 용서받기 어려운 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에 있다. ‘문라이트가 말하듯이 달빛 아래와 파도 속에서 모든 흑인들은 푸르고, 그가 동성애자이든 아니든 모든 인간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대선에서 멜랑숑에게 배울 점은 무엇인가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가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론 나치 르펜이 결선에 올랐지만, 멜랑숑이 좌파적 대안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반년전만해도 영국 브렉시트, 미국 트럼프 당선에 이어서 르펜 집권이라는 악몽이 큰 걱정거리였다.

 

르펜은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신자유주의에 충실한 기성양당(공화당, 사회당) 체제의 몰락을 이용하며, 쇠락한 공업지역과 실업청년층 속에서 무섭게 지지율을 올려 왔다. 르펜의 무기는 반이민, 반무슬림 인종주의 선동이었고, 이번 대선에서도 이것을 핵심쟁점으로 만들며 주도권을 쥐려 했다.

 

하지만 급부상한 멜랑숑이 제기한 부자 증세, 임금 인상, 공공일자리 등이 그것을 어느 정도 막아섰다. 멜랑숑 성공의 바탕에는 지난해 뜨거웠던 노동법 개악 반대 밤샘시위와 파업, 올해초 경찰의 흑인 청년 성폭행 규탄 투쟁 등이 있었다. 더불어 그가 추진한 3가지 방향이 유효했다고 본다.

 

첫째, 그는 사회당을 (비판적) 지지하거나 동맹하자는 논리와 단절했다. 사회당 왼쪽의 독립적 대안 건설을 비타협적으로 추진했다. 사회당 좌파인 아몽이 막판에 후보단일화를 제안한 것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둘째, 오랫동안 사회당과 야권연대, 연립정부에 매달리던 공산당 지지자들을 자기 쪽으로 견인해냈다. 공산당 지도부는 이번에도 사회당과 손잡으려 동요했지만, 멜랑숑이 그것을 잘 막아낸 것으로 보인다.

 

셋째, 그는 사회당 왼쪽 좌파의 폭넓은 통합을 이뤄냈다. ‘프랑스 불복종6개의 좌파조직과 사회운동단체들이 뭉쳤다는 데, '반자본주의신당'이 여기에 개입하지 않은 것은 실수로 보인다. 물론 폭이 넓어지면 깊이는 얕아지기 쉽다.

 

붉은기를 휘날리던 5년전의 좌파전선때와 달리 삼색기와 애국주의를 내세운 멜랑숑의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르펜의 핵심무기인 이슬람포비아에 충분히 정면대결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종북몰이에 비껴가는 이 나라의 진보정당처럼. 르펜의 결선 승리 가능성은 낮지만, 마크롱의 실패를 기다리며 5년후를 노릴 르펜에 맞서기 위해서도 이건 중요하다.

 

이 나라 진보진영도 멜랑숑에게 배울 점이 있다. 사회당의 배신, 실패가 르펜의 부상을 낳은 프랑스는 이 나라의 5년 후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강간미수공범이 종북몰이를 하며 설칠지 모른다. 안철수가 마크롱처럼 좌도 우도 아닌 중도라며 기회를 잡을지 모른다. 이재명이 아몽처럼 민주당 좌파가 대안이라고 나설지 모른다. 누가 과연 민주당의 왼쪽에서 진보의 분열을 해결하며, 비판적 지지를 넘어선 독립적 대안을 만들 수 있을까.


(기사 등록 20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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