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세월호 인양 - 이제 진실이 올라올 때이다
3월 10일에 탄핵 발표가 나던 날 헌법재판소 앞에 있었다. 그날 인용 발표를 듣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활짝 웃지 못했던 이유, 뭔가 납덩이처럼 가슴 한켠이 무거웠던 이유를 우리는 모두 안다.
헌재 판결 내용에서 세월호 문제가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도 정말 어처구니없고 말도 안됐다. 도대체 누가 박근혜가 ‘직접 구조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는 것인가? ‘대응조치가 미흡하고 부적절했다’면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은 아니다’는 말은 또 뭔가?
세월호 가족들이야말로 우리가 박근혜 체제를 벗어나는 데 가장 큰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더 가슴이 아팠다. ‘촛불혁명’을 평가하면서 어떤 집단, 어떤 투쟁이 가장 중요했는지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누구는 조직노동자가 중요했다고, 누구는 공공파업이나 민중총궐기가 도화선이 됐다고, 누구는 총선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 내내 가장 끈질기게, 가장 비타협적으로,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가장 박근혜를 쩔쩔매게 하면서 싸운 건 바로 세월호 가족들이다. 정말이지 세월호 가족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촛불혁명도 없었다.
지금 세월호의 진실은 거짓과 어둠에 기반한 이 나라의 기성질서를 뒤집을 수 있다. 박근혜가 그토록 세월호 문제를 덮으려 했던 것도, 국회가 탄핵발의안에서 한사코 세월호를 빼려 한 것도, 헌재가 결국 세월호를 빼놓고 탄핵을 인용한 것도, 검찰이 세월호 조사에 필수적인 청와대 압수수색을 포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별이 된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사랑이 진실을 더 높이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3년이나 걸린 것이지만, 동시에 그 엄청난 방해와 압력을 뒤집고 저 분들이 3년만에 해낸 것을 알기에 이토록 먹먹한 것이다.
지금 세월호 가족들은 요구하고 있다. 미수습자들을 반드시 찾아내라, 이제부터 모든 과정에 가족들을 참여시켜라, 더 이상 세월호와 진실을 훼손하지 마라, 이것은 촛불을 들었던 1700만 명 모두의 요구다.
● 미국은 이라크 모술에 대한 폭격을 중단하라
미국 주도 국제연합군의 이라크 모술 포위와 폭격으로 최근 1000여 명의 민간인이 사상당하고 있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오폭’ 사망자만 500명이 넘는다. 그중 어린이가 200명에 달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27/0200000000AKR20170327005800111.HTML?input=1195m) 이것은 지난해 러시아군의 시리아 알레포에 대한 포위, 폭격 때와 거의 판박이 같이 보인다.
그때도 수많은 죄 없는 아랍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고향을 파괴당했고 난민이 됐다. 그때도 러시아군은 이 모든 게 이슬람국가(ISIS)의 테러에 맞서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했다. 그때도 본질은 중동에서 제국주의 패권을 위한 전쟁범죄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 러시아를 비난했던 서방 강대국들이 지금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지금 이걸 주도하는 건 트럼프라는 점이다. 트럼프의 광기는 오바마보다 더 잔혹하게 중동을 짓밟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오바마가 설정했던 교전수칙이나 무기사용 제한 등을 풀어버렸다는 것이다.
2011년 ‘아랍의 봄’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보복과 반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왜 아랍인들이 아침에는 러시아의 폭격, 점심에는 이슬람국가의 학살, 저녁에는 미국의 폭격에 시달려야 하는가. 아랍 민중은 평화를 누리고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자격이 있다.
● 사드 배치 강행과 민주당의 ‘전략적 모호성’
얼마 전 미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왔다가면서 불길한 검은 그림자를 남겼다. 그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며 군사적 옵션의 가능성을 언급했고, “일본이 제일 중요”하다며 한반도는 언제든 버리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암시도 했다.
한국에 망명와 있는 전북한대사 태영호는, 비슷한 시점에 “남한에서 선제공격을 포함한 모든 옵션에 대한 의지를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당장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날 정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등장 이후 미중간 긴장은 계속 높아져 왔고,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 지난해부터 북한 선제타격을 담은 ‘작전계획 5015’에 기초한 전쟁연습을 해온 미국은 최근 B-1B 편대를 동원한 핵폭탄 투하 연습을 거듭 해서 북한의 강력 반발을 낳았다.
북한이 근래 신형 로켓엔진 시험을 공개하며 곧 ICBM을 쏘겠다는 경고에 나선 것은 그 반작용일 것이다. 사드 배치가 이런 긴장 고조의 핵심 고리인 건 명백하다. 그런데 유력한 ‘미래 권력’인 문재인은 사드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만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과 ‘현재 권력’에게 ‘내가 정권을 잡기 전에 골치아픈 일들은 빨리 처리해달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서, 사드 조기 배치는 일사천리로 추진중이다. 사드만 문제가 아니다. 전검찰총장 채동욱은 특검 연장이 안되면 사실상 “우병우가 수사지휘”하는 상황이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검찰은 박근혜 뇌물죄와 세월호 7시간 등을 밝힐 핵심 증거들이 있는 청와대 압수수색을 신속하게 포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근혜 정권의 주역들까지 가리지 않고 ‘대연정 캠프’를 꾸리고 있는 문재인은, 촛불이 타오르던 지난 겨울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2008년 촛불항쟁의 한복판에서 나온, 이제 고인이 된 사람이 노사모 총회에서 한 이 연설을 다시 되새기고 있었던 것 아닐까.
“청와대로 행진하는 그거요. 저도 청와대에 살아봤는데, 그거요 겁은 안 나고 기분은 되게 나쁘고 그리고 별 소득이 없어요. 저는 청와대로 행진하는 그건 안했으면 좋겠어요... 정권퇴진을... 밀어붙이는 것은 우리의 헌정질서의 원칙에서 맞지 않습니다.”(노무현)
● 비판받을 일은 ‘서해 수호의 날’에 참석한 것이다
우파언론들은 3월 24일 ‘제2회 서해 수호의 날’에 민주당, 국민당 지도부와 대선 후보들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욕했다. ‘서해 수호의 날’은 박근혜 정부가 서해교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을 ‘북한의 3대 서해 도발’이라고 묶어서 ‘국민적 안보 결의’를 다지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했다.
분명히 이 비극들 속에 희생된 사람들은 기억, 추모돼야 한다. 더 이상 이런 비극과 희생이 없도록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나갈지 더많이 얘기돼야 한다. 특히 46명이 사망한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서해 수호의 날’은 그런 취지가 전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희생자를 이용해 적대적 대결, 복수심, 군비증강을 고취하고 종북몰이에 이용키 위해 이걸 만들었다. 이는 더 큰 비극과 희생을 예고할뿐이다. 이런 자리에 참가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을 일일 수 없다.
하지만 민주당 등은 ‘일정 때문에 불가피했고 지난해 1회 대회 때는 오히려 새누리당이 안 왔다’며 변명하기 바쁘다. 특전사 군복 사진을 앞세워 ‘튼튼한 안보, 강력한 국방’을 말하고 있으니 어련하랴 싶다. 이런 태도가 전두환 표창 논란과 오해도 자초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행사에 자유당, 바른당과 함께 정의당 후보, 지도부가 참석한 것은 참 안타깝다. 이런 식으로 ‘종북’ 딱지와 안보 불안감을 떨치고 싶다면, 너무 짧은 생각이다. 중요한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에 관심이 있기에 더욱 더 쓰디쓴 조언을 삼가기 어렵다.
● 성폭력과 ‘피해자 관점’ - 고통에 공감하면서 과도한 적용을 걱정해야
최근 권김현영 씨가 쓴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http://www.huffingtonpost.kr/hyunyoung-kwonkim/story_b_15352452.html)에 대한 글을 반갑게 읽었다.
비슷한 고민을 앞서서 제기한 고마운 동지 덕분에 여러 사람들과 관련된 토론회를 하고 글을 쓰고 발제도 했던 적이 있어서 더 그랬다. 그때 나는 이 가해자 중심적 세상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사람으로서, 피해자 중심주의의 폐기보다는 합리적 핵심의 비판적, 발전적 계승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이글의 앞에 필자가 달아둔 당부에 공감이 갔다.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들은 여전히 피해자의 말을 무시하고, 사건을 은폐하며, 가해자는 어떤 타격도 받지 않고 끝난다.” “[이 글을] 2차 피해 문제의 심각성을 흐릿하게 만들거나 가해 중심 관점을 옹호하는 목적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실제로 이 글은 ‘피해자 관점’과 ‘2차 피해’를 부정하기 보다는, 그것의 “오용”과 “맥락” 일탈을 지적하는 글로 읽힌다. 그런데 필자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이 글 자체를 맥락에서 벗어나 오용하는 서글픈 시도들이 보인다.
피해 호소 자체를 가로막고 조사와 논의를 불가능하게 했던 쪽이, 피해자를 조리돌림하고 입막음했던 쪽이, 피해 호소 자체가 어렵도록 공포와 혐오를 일으켰던 쪽이, 피해자의 주관적 느낌을 ‘중요한 참조나 증거’가 아니라 거짓말로 몰았던 쪽이 이 글을 끌어다 그것을 변호한다면 필자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필자가 우려한 게 바로 그것일텐데 말이다.
이 글에서 ‘고통 그 자체에는 연대할 수 없다’는 부분도 이해는 간다. 실제 고통의 많은 부분은 개인이 짊어지곤 한다. 이어진 다른 글에서 필자가 말한 ‘피해자화’의 문제점과 ‘성폭력의 사회적 성격’도 중요한 지적이다.
(http://m.womennews.co.kr/news_detail.asp?num=112713#.WNzKS2_yiHu)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현실에서 수행하는 건 특정 주체들이다. 또 ‘피해자화’를 낳는 것은 무엇보다 끝없이 피해자를 의심하며 고통의 증명을 강요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피해자를 고통에 가둬두려는 사회와 가해자들에게 있다.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상처를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것은, 같이 아파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서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누군가를 나몰라라하는 사람들이 ‘고통 그 자체에는 연대할 수 없다’는 말을 또 오독, 오용할까 두렵다. 나무가 같이 아파하는 것은 같은 땅에 박혀 그 뿌리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 내란선동죄를 통한 극우익 막말 처벌 요구가 적절할까
“화염병을 준비해서 경찰을 향해 던져서 화재가 나고 경찰 다치고 사망자가 속출하고 상황이 발생 되었을 때는 국가의 위기에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게 하는 명분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미 시기를 놓쳐 버렸어요”
자유한국당 서울시당 부대변인이 카톡방에 올린 이 막말은 정말 충격이고 섬뜩하다. 이런 생각과 말을 한 사람의 구의원직 사퇴 박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강력한 규탄과 비판이 필요하며, 폭력을 부추기는 잔인하고 살벌한 말은 꼭 사라져야한다.
그러나 이 사람을 ‘내란선동죄’로 구속처벌하자거나, 친박단체들의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금지하자거나, 자유한국당을 강제해산시켜야 한다는 주장 등에는 갸우뚱하게 된다.
밧줄, 마스크, 차벽 밀기 등이 등장한 친박 단체들의 집회를 보면서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받는 게 사실이다. 전경버스와 차벽으로 집회와 행진을 막아선 것이 어느 정도 반작용을 낳았다는 짐작도 할 수 있다.
친박집회도 집회와 표현의 자유며 정당하다는 건 아니다. 형식적 유사성 뒤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 억압받는 다수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세력과 소수특권층의 부패와 반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세력을 저울에 올려놓고 균형을 잡을 순 없다. 국가폭력에 맞선 방어적 물리력을 쓰는 쪽과 폭력을 부추기고 희생자도 나몰라라하는 쪽도 같지가 않다.
따라서 정당한 요구와 집회에 폭력진압을 일삼던 경찰이, 친박세력의 선을 넘는 행동에 ‘전략적 인내’를 한 모순을 폭로, 비판할 수밖에 없다. 분명 촛불 시민과 기자를 폭행한 친박 시위대나, 그것을 사주한 시위 지도부는 처벌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계엄령 촉구든 화염병 방화든 구체적 실행과 추진, 능력이 따라붙지 않은 막말 자체를 협박죄도 아니라 ‘내란선동죄’로 구속처벌하자거나, 집회 자체를 불허하자는 게 맞을까? 그것은 내란선동죄 자체가 악법이고 폐지돼야 한다는, 집회는 허가제가 아니어야하고 차벽은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과 모순되지 않을까? 집회에서 사망자가 나온 것에 경찰의 관리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국가와 경찰은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가장 크고 잘 무장, 훈련된 집단이다. 그 국가와 경찰에 표현과 집회의 권리를 억누를 권한을 주는 것은 부메랑으로 돌아 올 위험이 있다.
2013년에 한반도 전쟁 위험을 경고하고 대응을 고민했던 진보당 이석기 위원의 발언은 저런 막말과 비교할 수도 없게 정당화될 수 있다. 더구나 그 발언마저 왜곡, 조작돼서 내란음모, 나중엔 내란선동죄가 적용됐다.
지금 더 필요한 것은, 저런 막말까지 하고 그걸 봐주는 자들이 이석기 의원을 내란선동죄로 9년이나 가둬둔다는 이 기가막힌 이중잣대와 위선을 폭로하고, 당장 이석기 위원과 동지들이 석방돼야 한다고 다같이 요구하는 것 아닐까?
(기사 등록 2017.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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