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이 글의 필자인 남수경은 미국 뉴욕에서 도시빈민,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등을 대변하는 공익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법률서비스노동조합(Legal Services Staff Association UAW/NOLSW)의 조합원이다. 대구경북지역 독립 대안 언론인 <뉴스민>에 실렸던 글(http://www.newsmin.co.kr/news/18666/)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와<뉴스민>에 감사드린다.]
한국 대통령 파면 소식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비슷한 일이 자기 나라에서도 벌어지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것만큼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 영상이 화제다.(https://www.youtube.com/watch?v=Mh4f9AYRCZY)
영국 <BBC>는 생방송으로 한국을 잘 아는 교수와 한국 대통령 탄핵에 대한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런데 교수의 아이들이 느닷없이 방문을 열고 침입한다. 귀엽게 춤을 추며 들어오는 꼬마와 곧이어 보행기를 타고 따라 들어오는 아기. 아버지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듯 아이들은 거침없이 들어온다.
아이들의 천진함에 절로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곧 당황한 한 여성이 쏜살같이 몸을 날리며 들어와서 나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간신히 끌고 나간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화면에 비추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낮추어 문을 닫는다. 물론 모든 장면이 그대로 생중계됐다.
이 영상은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특히, 아이들을 키워 본 사람이라면 너무나 공감할 수 있는 난처하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단 며칠 만에 BBC 페이스북 영상 조회수가 8천만을 육박하고 있다. 곧바로 패러디도 나왔다.
그런데 유쾌한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는 이 비디오를 두고 예기치 않은 논쟁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화면에 나타난 아시안 여성을 보모로 단정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심지어 보모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그녀가 해고될 것 같다고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 사람들뿐 아니라 이 에피소드를 보도한 <TIME>을 비롯한 일부 언론도 그녀를 보모라고 단정지어 말했다. 나중에 정정했지만.
아시안 여성을 자동으로 보모라 생각하는 게 인종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과 그게 어떻게 인종주의냐고 변명하는 사람들 사이 논쟁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든다. BBC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송에 한반도 전문가로 나온 백인 남성, 그리고 그의 아이들을 돌보는 아시안 여성. 이 둘의 관계가 동등한 부부라기보다 위계적인 고용주-피고용주로 여겨지는 현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한 단면이다.
만약 그 여성이 백인이었다면 같은 반응이 나왔을까? 만약 인터뷰하던 사람이 여성이고, 아이들을 챙기러 들어온 사람이 남성이었다면 어땠을까? 분명히 아이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밀어내는 여성 ‘전문가’를 자신의 커리어만 생각하는, 모성이 부족한 냉정하고 이기적인 엄마라고 비난하는 내용이 더 많았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런 식의 인종과 성에 대한 고정관념(stereotype)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널리 퍼져 있다. 다른 인종과 결혼한 유색인종 여성은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나갔을 때 아이의 보모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특히, 부유한 동네인 경우에 이런 상황은 더 흔하다.
엄마와 아이의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산층 이상이 사는 동네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 유색인종 여성은 당연히 부유한 백인가정 아이를 돌봐주는 보모일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구조적인 인종주의와 성차별이 내면화되고 일상화된 탓이다.
미국에서 사는 아시안 여성인 나도 예외 없이 이런 편견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미국에 도착한 날부터 나는 아시안이면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여러 고정관념에 부딪혀 때론 상처받고 때론 부당한 대우를 받아 왔다.
단적인 예로, 법정에 출두하거나 상대방 변호사(주로 남성)와 처음 대면했을 때 나는 종종 “당신의 변호사는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아시안 여성인 내가 설마 변호사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어디 남부의 깡촌이 아니라 세계의 수도이자 인종 전시장이라는 뉴욕에서 일하고 있다.
인종이 다른 남성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 불편한 시선은 나뿐 아니라 나의 아이들에게도 향해졌다.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한 남편은 중국에서 아이들을 입양하는 좋은 일을 했다는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들이 아직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어린 시절 일어난 일이다.
인종이나 성 고정관념은 인종주의자나 남성우월주의자뿐 아니라 나쁜 의도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재화된 편견이다. 노골적인 모욕감이나 비하가 없는 듯한 고정관념도 내재화된 편견이고 차별이다. 예를 들면, 아시안을 모델 마이너리티(model minority: 미국내 아시안들은 사회적 성공으로 소수계의 모범이 됐다며 전형화하는 것)라고 하거나, 한국에서 흑인에 대한 친근감의 표현으로 쓰인다는 흑형이라는 표현 등이다.
물론 고정관념과 내재화된 편견을 노골적인 혐오, 차별과 구분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이런 고정관념과 내재화된 편견은 법적, 경제적, 사회적 차별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또한, 동시에 구조적 차별에 의해 고정관념과 내재화된 편견은 한층 더 강화된다.
호주대학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일한 자격을 가진 구직자들이 모하메드 알리 같은 중동계 이름이나 첸 같은 중국계 이름을 쓴 이력서를 보냈을 때 고용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을 기회가 영어권 이름을 썼을 때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의 한 연구 결과도 비슷한 결론에 다다랐다. 흑인들이 주로 쓰는 이름과 백인 이름의 구직자를 비교해 보았을 때 백인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고용주 연락을 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 미국에서 흑인들은 실업 상태에 놓일 확률이 백인들보다 2배 이상 높고, 백인들보다 임금이 평균 25% 정도 낮다.
인종적 편견과 고정관념이 권력을 가진 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부추겨질 때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백인우월주의는 흑인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노예를 소유 못한 가난한 백인들이 흑인노예의 저항에 동조하는 것을 막으려는 방편으로 사용됐다. 한번 뿌리 내린 인종주의는 노예제가 폐지되고 나서도 인종 간 분리 형태로 계속 이어지면서 흑인에 대한 불법적인 린치가 공공연하게 저질러졌다.
60년대 민권운동을 거치면서 오늘날 인종차별은 이전 같은 노골적인 방법보다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더 세련된 방식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게 인종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유색인종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더 빈번히 검문하는 관행)이나 마약과의 전쟁이다. 그 결과 수많은 흑인과 라티노 등 유색인종이 경찰의 타깃이 되고 대규모로 투옥되고 있다.
뉴욕 한 인권단체의 보고서에 의하면 뉴욕경찰의 검문을 받는 사람 6명 중 5명이 흑인이나 라티노이다. 개인의 성향이나 사회, 경제적 지위보다 피부색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검문, 체포당하는 사람 중 80% 이상이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 통계에 비춰볼 때 경찰이 인종주의적으로 공권력을 집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반면 백인이 검문을 당하는 흔치 않은 경우에 용의자에게서 불법 무기나 마약, 장물 등이 발견될 확률이 흑인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이렇듯 우리는 여전히 인종주의가 만연한 세상에 살고 있다. 최근 BBC 영상을 둘러싼 논란도 일정 정도 유색인종, 이주민 여성이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을 도맡아 하는 현실 반영이다.
한국도 이주민이 200만 명에 육박했다. 이주민이나 타 인종에 대한 내재화된 편견이나 노골적인 차별은 미국 같은 다인종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주민에 대한 인종적 편견과 차별뿐 아니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도 넘쳐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나중으로 미루자고 한다.
물론 법 하나 바꾼다고 세상이 바로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은 내재한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돌아보고 사회적 차원에서 실제적 해결을 위한 논의와 노력을 진행할 수 있다. 소외와 차별이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실마리 마련의 첫발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힘으로 대통령도 끌어내고 적폐를 청산하는 첫걸음을 뗀 지금, 차별금지법도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을까.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말이다.
(기사 등록 2017.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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