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자본주의의 변화와 계급투쟁

상승기/하강기 논쟁에 대한 소개

 

이언 앨린슨(Ian Allinson)

번역 시우

 

[RS21 주]이언 앨린슨(Ian Allinson)1968년 이래로 전개된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것이 노동계급과 그들의 투쟁에 미친 영향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이를 통해 혁명가들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밝혀보고자 한다.[각주:1]

http://rs21.org.uk/2014/03/27/the-upturndownturn-debate-an-introduction/ 


지금 시기를 적절하게 파악하려면 상승기("upturn") 나 하강기”("downturn") 라는 이분법적 범주를 잊어야 한다. 장군들이 늘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듯이 사회주의자는 최후의 상승기, 즉 혁명적 상황에 대비한다. 그런데 바로 그 최후의 상승기가 장기 호황 끝 무렵에 찾아왔는데, 이는 역사상 예외적인 시기이기 때문에 향후 이와 관련한 논의에서 평가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하나의 기준으로 삼을 일반적인” 자본주의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불안정하면서도 발전하는 체제인데다가, 지금의 자본주의는 분명 1950년대와 같이 일반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혁명가들의 과제를 해명하기 위해 우린 자본주의가 어떠한 국면들을 거치며 발전해 왔는지, 그 변화들로 인해 노동계급과 그들의 투쟁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추적해야 한다. 이 글은 이와 관련해서 페이스북 상에서 벌어진 논쟁들을 요약하고 있는데, 이 논쟁에는 RS21에 속하지 않거나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동지들도 참여했다.

 

1. 상승기 : 노동자 투쟁과 해방 운동의 부상


여기서 말하는 상승기란 계급투쟁과 다양한 사회적 투쟁이 부상하는 시기를 말하는데, 넓게 보면 19681월의 베트남 구정 공세[각주:2]에서 197511월의 포르투갈 혁명[각주:3]이 끝날 때까지를 포괄한다. 이 시기는 다음을 아우른다.

 

1. 이윤 감소에 직면한 자본가들이 처음에 노동자들을 공격하려하자 이에 대해 서방과 동구권에서 상대적으로 발전된 지역의 노동자들(:폴란드)이 전투적인 반격을 가했다.

2. 지중해(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그리스), 동부 유럽,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에서 비민주적인 국가에 맞서는 반란이 분출했다.

3. 스탈린주의 체제(특히, 중국) 엘리트들 사이에서 개발 정책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일어났다. 이러한 권력투쟁에 엘리트 외의 종속 계급들이 동원되기도 했으나, 이들이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까지 허용한 것은 아니었다.[각주:4]

4. 이 시기에 식민주의(아프리카의 포르투갈 식민지)와 반()식민주의(인도차이나), 그리고 잔존하는 구체제(에티오피아)에 대항해서 벌어진 민족해방 투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5. 서방에서 온갖 종류의 해방 투쟁들(젠더, 인종, 학생 부문을 둘러싼)이 등장했다.


덧붙이자면, 당시 노동자들의 투쟁은 장기 호황의 끝 무렵에야 나타났던데 비해, 그 무렵 벌어진 민족 해방 투쟁은 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진행된 탈식민지화 과정의 정점에 있었다.

영국의 전후 작업장 노동조합 운동은 완전고용이라는 조건을 십분 활용, IS가 명명했듯이 노동자 스스로의 개혁주의”("DIY reformism")란 것을 몸소 실행했다. , 이 당시의 파업은 종종 짧고, 비공식적인데다가 부문적이었으나, 성공적이었던 것이다. 고용주들은 파업을 유발한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다시 이윤을 계속 창출하고 싶어 했고, 또한 그럴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작업장 노동자들이 가진 힘을 명백히 인정했고, 많은 노동자들도 직접적으로 이런 자신들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호황이 끝나면서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려 했을 때 조직화되고 자신감 있는 노동자들은 강력하게 저항했고, 이런 저항들은 종종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2. 하강기의 시작 : 전위적 신자유주의(vanguard neoliberalism)


하강기가 시작되면서 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 사장들이 앞서 언급한 조건들을 더는 감수할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이에 대한 반응은 국가별로 불균등하게 나타났지만 말이다. 물론, 하강기라는 상황을 최초로 감지한 것은 IS/SWP만은 아니었다.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스튜어트 홀(Stuart Hall)도 그랬듯이, 노동자들은 결정적으로 패배해왔다고 봤고, 이에 따라 우익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반면에 토니 클리프(Tony Cliff)는 당이 하강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스티브 제프리 같은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펼쳤지만, 특히 산업현장의 활동가들을 겨냥해서)에 도전하는데 주력했고, 이를 위해 영국적 요소들을 강조했다. 우리 SWP는 하강기를 일시적이라고 규정하면서, 하강기가 발생한 원인들을 다음과 같이 마치 쇼핑 리스트처럼 나열했다.

영국의 계급 세력 관계 변화는 다양하게 상호 연관된 요인들에 의해 발생했다. 그 요인들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득 정책.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진 생산성 협약에 따른 노조 위원장과 직장위원들의 독립성 약화. 광범위하게 확산된 노동자의 경영 참여. 존스나 스캔런 같은 좌파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우경화. 노조 위원장들의 노동조합 관료 체계 편입. 경영참여와 좌파 노동조합 관료들을 지지하기 위해 평조합원들 사이에서 주되게 활동한 공산당의 역할.“수익성이나 경영지속성”(“viability")[각주:5] 따위의 개념이 내포한 이데올로기적 함정. 이것과 결합된 것으로서, 노동당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공격하고 있을 때조차 노동자들이 여전히 노동당에 충성을 다하는 것. 경제위기가 가져다준 충격들-임금 삭감, 해고 등등. 위의 모든 요소 들이 세력관계에 영향을 미친다.[토니 클리프, 1979]

 

크리스 하먼(Chris Harman)은 이보다는 더 넓고 국제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영구군비경제는 이미 활력을 다했고 장기 호황도 끝났기 때문에 자본주의 위기는 1930년대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하강기가 일시적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닐 데이비슨(Neil Davison)은 노동자들이 중대한 패배를 겪은 바로 이 하강기”(특히 대처 치하의 영국)라는 시기를 전위적 신자유주의”("vanguard neoliberalism")라고 명명했다. 당시에 토니 클리프는 공산당이 노동당의 사회협약을 홍보하는 구실을 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작업장 수준에서 노동조합운동이 노조관료 체계로 편입되고 노조 전임자 활동 시간 보장, 노동조합 대표의 전임화를 통해 이들이 점차 관료화한데서도 기인했다고 한다.

클리프와 하먼 모두가 하강기가 사회 협약에 선행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때문에 국제적으로 봤을 때 사회협약으로 인해 하강기가 도래했다고 설명할 수는 없게 된다. 이밖에 스탈린주의와 개혁주의가 국제 노동운동 정치를 지배한 점과 이에 따라 이들이 투쟁을 올바른 궤도에서 이탈시키는 데 있어 수행한 핵심적인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 클리프는 고용주들이 점차 공격적인 성향을 띄게 된 점도 지적했는데, 이것은 단지 우리 편에서만 변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조너선 닐(Jonathan Neale)은 그의 저서 “What's Wrong With America"를 통해 하강기는 세계적 신자유주의 공세와 관련이 있으며, 이에 따라 세계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패배의 경험 네 가지를 강조한다. , 영국의 광부 파업(1984)과 미국의 항공 관제사 파업(1981), 그리고 인도 뭄바이에서 벌어진 직공 파업(1980),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발생한 도시 반란(1989)이 그것이다. 물론 파업 투쟁의 퇴조라는 일반적 추세에는 예외들도 있었다. 남아프리카, 터키, 그리스, 핀란드, 캐나다, 남한 등이 그렇다.

하강기 분석은 SWP를 지켜내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그런 하강기를 일으킨 원인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 하강기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고 있다는 생각도 진지하게 검토한 바가 없다. 우린 변화하는 노동계급에 대해 토론했지만, 그 변화로 인해 향후의 투쟁이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까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하강기가 시작된 이유와 그것이 어떻게 끝나게 될 지에 대해서 우리가 침묵했던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가 발전시킨 국가 자본주의론과 영구 군비 경제 이론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모두가 자체의 수명을 제한하는 내부적 모순이 있음을 규명한 바 있다. SWP1979년부터 1983년까지의 정치적 상승기산업 하강기와 동행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은 매우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인 평가를 내렸는데, 급진 정치학은 연이은 산업 투쟁의 패배 속에서는 승리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자본주의는 특정한 시기엔 자유시장 자본주의보다 더 역동적일 수 있다. 구 스탈린주의 동구권 블록이 한때 자유시장 자본주의보다 더 높은 성장을 기록했던 것이 그 예이다. 이는 이들 국가들이 특정한 시장을 겨냥해서 사기업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자본을 집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장도 더 넓은 규모로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 경제를 지배하면서 끝나버렸다.

사유화는 국가와 자본 사이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국가의 역할은 생산에서 구매, 감독, 규제, 그리고 산업체 등의 규칙 준수를 위한 감시 활동으로 이동했다. 이는 자본주의 그 자체 내에서 발생한 중대한 발전이었다.

 

3. 호황이 끝난 후: 경영지속성(Viability)


하먼은 클리프도 언급한 바 있는 경영지속성과 관련한 주장에 담긴 이데올로기적 함정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각각의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자신이 속해있는 특정 부분의 시스템의 존속가능성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삶의 질과 노동 조건을 지키려 싸우게 되면, 공장, 회사, 혹은 국가를 겪고 있는 위기만 심화될 것이며, 이로 인해 이들이 직장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도 덩달아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언론은 이 같은 주장을 더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적 주장으로 제시한다. , 사회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임금, 노동 조건/시간을 둘러싸고 노동자들이 투쟁을 지속하게 되면, 사회를 심연의 끝자락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은 이런 경영지속성 담론에 저항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동자들이 상황을 정치적으로 일반화해서 이해하고 있고, 이에 따라 위기로 빠지는 경향이 있는 체제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이 존재할 때의 얘기다. 그도 아니면 노동자들이 너무나 고통을 받아온 나머지, 성공의 전망이 조금이라도 있다 치면 어떤 역경속에서도 싸울 태세가 되어 있을 경우에나 가능한 것이다.

경영지속성 담론은 전후 완전 고용 시기에는 전혀 설득력이 없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180도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늘날엔 그 누구도 클리프가 1966-67년에 로버츠 아룬델에서 성공적으로 벌어진 파업을 두고 그랬던 것처럼 쓰지 않는다. 그는 당시에 이렇게 쓴 바 있다.

경영자가 파산하고 공장은 폐쇄됐다. [하지만] 최소한 스톡포트엔 노동조합이 없는 공장은 없었고 노동조합주의의 원칙이 승리를 거듭해오고 있었다.”

이것을 2013년 그레인지머스에서 유나이트 노동조합(UNITE the UNION)[각주:6]이 공장 폐쇄 위협에 직면해서 내놓은 양보안이나 자동차 산업에서 일상적으로 고용주들이 더 좋은 조건의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겠다고 위협하는 상황과 대조해 보라.

노동자들은 그들 스스로의 관점 보다는 사장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도록 부추겨진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보다 고용주의 수익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사장의 지불 능력보다 자신들이 더 많이 따낼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또한 경영지속성 이데올로기로 인해 노동자들은 경영 참여나 노사 파트너십, 양보 교섭 등을 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노동자들 사이에 무기력을 조장하게 된다.

사이먼 조이스(Simon Joyce)ISJ에 수록될 글에서 경영지속성 담론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브리티시 레이랜드에서의 경영지속성 담론과 노동자 참여를 연구한 데이브 린든(Dave Lyndon)의 연구를 추천한다. 1970년대 중반 크라이슬러 린우드 파업 당시 직장위원회(IS 멤버들도 포함)가 직장 폐쇄를 피하기 위해 양보안에 표를 던졌을 때 IS 내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가 불거졌었다. 초기 내부회보(IB)들엔 경영지속성과 관련한 글들이 더 많이 실려 있다. 데이브 R은 나이젤 해리스(Nigel Harris)가 이와 관련해서 1980년에 쓴 글을 추천하고 있다.

클리프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전개되는 투쟁에서 정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본주의가 확장하면서 대체로 번영하는 한, 산업 투쟁은 자체의 힘만으로도 매우 괄목할만한 성과들을 따낼 수 있다. 하지만, 국제 자본주의가 깊은 위기 속에 빠져 있는 오늘날, 산업 투쟁만으로는 효과적이지 않다. 일반적인 사회적/정치적 문제제기들과도 씨름해야 하는데, 이로써 사상 투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산업 투쟁과 평조합원, 그리고 이것들과 사회주의 사이에 가교를 놓기 위해선, 우린 당면 투쟁들을 궁극적인 투쟁과 연결시켜야 한다. , 자본주의의 한계 내에서 벌어지는 투쟁들을 자본주의 철폐를 향한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이 증가하고 자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거나 폐업이 쉽지 않은 산업 부문들에서는 경영지속성 담론이 잘 먹히지 않는다.(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전략적인 작업장이나 필수 서비스, 대중교통처럼 지리적으로 고정된 서비스들.)

경영지속성 이데올로기가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파업 패턴과 이미 자리를 잡고 확립된 산업들에서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나타나는 파업 패턴 사이를 비교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왜 사기업 부문 조직이 공공부문 조직보다 더 심한 타격을 받았던 것일까? 왜 사유화/시장화가 바로 그 산업 투쟁의 취약성을 공공 부문으로 확산시키는 데 핵심일까?

조너선 닐이 수병 반란에 대해 썼던 책 들 가운데 하나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전투성은 각 시기에 한 경제의 핵심 부문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처음엔 해양 무역이었다가 이후엔 자동차 산업으로 이동하는 식으로 말이다.

일부 사람은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의 국제적인 노동 분쟁을 추적한 비벌리 J 실버(Beverly J Silver)2003년에 낸 책을 추천했다. 책에 따르면 노동 분쟁은 세계적 투자 흐름을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전투성은 자동차 산업을 따라 개발도상국으로도 따라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닛산과 도요타가 영국에서 생산 공장을 열었을 때, 이와 똑같은 효과가 나타나진 않았다. 왜냐면, 영국의 노동운동은 최근에 패배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건 불균등 결합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실버는 에릭 라이트의 개념을 빌려, 노동자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서로 다른 원천들을 구별하고 있다.

닐은 질적인 수준에서 똑같지는 않지만 쓸 만한책 두 권을 추천했다. Gary Daniels and John McIlroy (eds), Trade Unions in a Neoliberal World (Abingdon: Routledge, 2009); Gregor Gall, Adrian Wilkinson and Richard Hurd (eds) The International Handbook of Labour Unions: Responses to Neoliberalism (Cheltenham: Edward Elgar, 2011). 북반구에서 탈산업화가 촉발된 데에는 생산 기지가 해외로 이전한 것 못지않게 적어도 생산성이 증가한 것에서도 기인했는데, 남반구의 산업화는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4. 하강기 이후 : 신자유주의의 공고화(neoliberal consolidation)


데이비슨에 따르면, “전위적 신자유주의”(vanguard neoliberalism) 시기 이후에는 신자유주의가 공고화되는 단계로 이행했다고 한다. 영국에서 마침 이 현상은 SWP1980년대 후기 혹은 1990년대 전기를 하강기가 종결된 시기라고 명명한 것과 맞아 떨어진다. 하먼은 2004년에 파업 수준이 어떻게 회복될 것인지 예측하는 설명을 내놓은 적도 있다.

일부 동지들은 노동자들이 하강기에서 회복하는데 실패한 이유를 두고 많은 설명을 내놓았다.

 

1. 1970년대와 1980년대 전위적 신자유주의가 노동자들에게 가한 패배.

2. 그러한 패배의 결과로 제정된 반()노동조합적이고 억압적인 법령과 이로 인해 노동조합 관료와 노동자들 사이에 스며든 두려움과 자신감 저하.

3. 경제구조상의 중요한 변화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부문들은 효과적인 노동자 조직이 없는 가운데 형성되었거나, 고용주로부터의 보호받거나 비공식적이나마 이에 대해 통제를 가할 수도 없었던 점.

4. 자유 시장에 대한 전통적 대안(예컨대, 스탈린주의와 케인즈주의 등)이 신뢰를 상실하자, 정치적으로 취약한 노동자들은 좌파 선거 정당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좌파 선거 정당들은 대안은 없다는 신자유주의 컨센서스에 포섭이 되었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자신감은 더욱 악화되었다.

5. 높은 실업률의 지속과 복지 삭감 그리고 시장경제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대안의 몰락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경영지속성 담론에 한층 더 취약해지게 되었다.

6. 스탈린주의의 몰락은 노동자 운동의 패배라는 맥락 속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이로 인한 주요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수혜자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우익이었다.

 

이에 대해 SWP는 주되게 노동조합 관료의 구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는 노동조합 관료들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균등하지 않다. 예컨대, 소규모 사기업 부문의 조직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원할 때면 언제든 파업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러한 파업은 노동조합 관료나 노동당 지도부를 위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고통이 혹심해짐에도 불구하고 파업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따라서 이토록 낮은 파업 수준을 설명하려면 의미 있는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요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헬 드레이퍼(Hal Draper)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회주의 운동을 건설하는 기본적인 전략은 두 가지 운동을 결합시키는데 있다. 하나는 결정적인 노동계급의 부문이 국가와 부르주아의 제도화된 권력과 규모 여하를 불문하고 충돌케 하는 이러저러한 단계의 노동 계급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노동 계급 운동이 사회 혁명을 지향하도록 교육적 선전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두 가지가 하나로 통합된다.”

 

또한 레이(Ray)는 우리가 계급의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IB3 November 2013, p110) 이 문제에 관해선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gh)의 연구를 추천한다.

K(Paul K)는 발전한 서구와 그 외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양상이 대비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가 강조한 것은 다음과 같다. 남한에서 등장한 신생 노동조합운동. 남아공 광부 투쟁과 아파르트헤이트의 몰락. 광부 투쟁과 스탈린주의 체제의 붕괴. 인도네시아에서 수하르토 정권이 전복되고 탄생한 신생 노동조합 운동. 베네수엘라에서 우익들의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해 전개된 대중 투쟁. 볼리비아에서 코카 잎 경작을 둘러싸고 분출한 투쟁. 북반구 기득권층의 이윤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 물/가스 분쟁. 아랍 혁명 등등.

일부 좌파는 노동귀족론으로 서구의 낮은 파업 수준을 설명하려 한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어서 투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귀족론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영국에서 총고용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고용이 증가하는 경제부문에선 경영지속성 담론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문들은 대체로 지난번 마지막 상승기를 거치며 잘 조직됐던 부문들과 겹치지 않는다.(공공부문과 대중교통 부문은 예외이다.) 1970년대 제조업은 영국 사기업 부문 노동조합 운동의 핵심이었지만, 그 이래로 이 부문은 경영지속성 담론으로부터 위협받아왔다. 경영지속성 담론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취약한 위치에 있다고 여기게 해 그들의 투쟁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상대적 특권에서 기인한 수동성이라는 주장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발전된 국가들에서 노동자들이 받는 높은 임금은 높은 수준의 투자와 높은 생산성, 그리고 종종 높은 착취율 덕분에 이루어진다.

영국의 신자유주의 시기에는 고용의 증가와 동시에 높은 수준의 영구적인 실업이 나란히 존재했는데, 이는 1941년과 1970년 사이 누릴 수 있었던 완전 고용과 그 이전 시기에 나타난 경기순환적인 실업 패턴과도 대비되는 것이다. 1919년에서 1940년 시기에 더 악화된 실업 수준은 다음의 그래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영구적 대중 실업은 복지 국가에 대한 공격과 나란히 존재했고, 이로 인해 실업에 대한 공포가 증가되었다. 지배자들은 이러한 공포를 부추기고 경영지속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흔히 직업의 불안정성을 과장하고는 한다. 더구나 주류 정치에선 그 누구도 더는 국유화(직장 폐쇄 위협에 대한 고전적인 대안)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

 

5. 정치의 중심성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고, 운신의 폭의 줄어드는 세계 경제 속에서, 영국의 노동자들은 이판사판의 처지이거나 시장에 대한 정치적 대안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 이에 대해 진지한 저항을 전개할 때에야 비로소 경영지속성” 담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 스탈린주의가 붕괴하면서 공식 공산당 뿐 만 아니라, 상당수 좌파들조차 이데올로기적으로 무기력해졌다. 물론, SWP는 스탈린주의 구 동구권(eastern bloc)국가들을 사회주의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과는 다르게 사태에 대응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펼친 주장들이 정당성을 입증 받았다고 생각했으며, 사태가 전개되면서 노동당 왼쪽의 주요한 좌파 정치세력으로서 스탈린주의자들을 대체하고자 했던 우리의 시도가 한층 더 효과를 발휘하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맥락은 노동계급의 패배 속에 놓여있었다. 동구권의 노동자들은 혁명적 사회주의가 아닌 대처를 대안으로 보았다. 스탈린과 케인즈가 신뢰를 잃어감에 따라대안은 없어라고 생각할 만한 나름의 합리성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스탈린주의 독재를 제거하는 것이 건강한 좌파를 재활성화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이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노동계급의 활동가들에게 미친 당장의 부정적인 영향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이로 인해 개혁주의 정당들도 신자유주의 포용을 가속화했다.

개혁주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하고 시행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체제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는 못하면서 자기들 고유의 기반만 약화시켰다. 신자유주의 아젠다를 지지하는 노동계급은 극히 드물었지만, 제도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사회적 저항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반()정치가 나타났는데, 이러한 주류 정치에 대한 배격은 얼마든지 급진화나 수동화, 혹은 좌파와 우파의 양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케인즈는 개혁주의에 두 번째로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인데, 이조차 1970년에 이르러서는 광범한 불신을 받았다. 렌 맥클러스키(Len McCluskey)는 자신이 CLASS[각주:7]를 설립하도록 발의한 목적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케인즈주의 담론을 결합시키고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어설픈 개혁주의나 스탈린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대안이 노동자들에게 저항의 자신감을 줄 수 있을까?(훗날 개혁주의나 스탈린주의가 노동자들을 실망시킨다 해도)

나머지 유럽에서 좌파 개혁주의가 상당한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국가들은 대개 높은 수준의 투쟁을 보여 준 곳들이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위기는 극심한 편이고, 이에 따라 투쟁도 격렬하다. , 여기서는 대중적인 참여 속에 거대한 규모의 방어적 투쟁이 다양한 투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투쟁 대부분은 패배했지만, 급진화가 실재로 벌어졌고 지속성도 있었다. 자본주의 위기시기에 개별 작업장에서의 파업은 많은 것을 따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총파업, 정치 운동, 점거 등이 노동자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것이다.

계급투쟁은 개인과 집단행동을 포괄하고 결합하는데, 이는 산업, 정치,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이러한 결합의 형태로 작업장 투쟁이 늘 주요한 형식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지역 차원의 이슈 파이팅, 시위, 집회, 정치 캠페인, 집세 지불 거부 운동 등등도 무대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때가 있다.

1990년대 초 이래로 대부분의 중요한 투쟁들은 성공적이었던 인두세 반대 운동[각주:8]을 포함해서 주되게 작업장이나 산업 투쟁에 기반을 둔 것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영구적인 변화를 의미할까? 이런 물음은 작업장을 넘어선 투쟁을 지향하는 것이 전략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작업장 투쟁의 부활을 재촉하기 위한 것인지를 둘러싼 사회주의자들의 논쟁 근저에 깔린 것이다. 물론, 구급차 노동자들의 파업과 같은 중대한 산업 투쟁이 인두세 투쟁이 불거지던 같은 시기에도 벌어졌다. 그 파업도 광부 파업 때처럼 지역 차원의 조직화를 동반했다.

전후 대호황 시기 이후에 벌어진 파업 패턴은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것이었다. 파업은 늘 우리가 가진 무기이긴 했지만, 유일한 무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전후 시기 벌어진 파업이 가진 이 같은 중요성 때문에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이 발전하는데 있어 다른 형태의 투쟁 형식들도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혹은 우리가 전후 호황기 이전에 마르크스와 여러 사회주의자들이 견지한 계급투쟁의 폭넓은 개념을 잊어버렸을 수 있다. 정치적 내용에 앞서 특정 형태의 투쟁을 더욱 중요하게 취급한다보면 경제주의로 빠져들 수 있다. 작업장은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집단적으로 만들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이 특별한 힘을 가진다는 점에서 여전히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노동계급 지향성(작업장을 포함하긴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운동에 선사한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바로 계급 정치 말이다.

하지만 계급의식은 작업장에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 주택의 감소와 주택 사유화 현상, 일반적인 생활 영역의 상품화 등과 같은, 더 넓은 시야에서의 사회 변화 또한 계급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 조직들이 어떤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을 구체화하면서 경쟁적인 활동을 벌이는 것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진다. 유나이트 노동조합에서 추진중인 지역사회 노동조합주의와 그리스의 시리자가 Solidarity4All을 통해 푸드 뱅크와 공동으로 작업했던 것도 이런 것과 연계를 맺으려는 시도이다.

동지들이 추천한 다른 읽을거리들에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Kim Moody“Workers in a Lean World: Unions in the International Economy”, “From Welfare State to Real Estate: Regime Change in New York City, 1974 to the Present”. 그리고 Stathis Kouvelakis가 쓴 France’s turning point in 1977, 곧 나올 Neil Davidson의 책, What Was Neoliberalism?, Chris HarmanThe Fire Las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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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하 각주는 모두 역자의 것이다. (원문 http://rs21.org.uk/2014/03/27/the-upturndownturn-debate-an-introduction/) [본문으로]
  2. 구정공세란 베트남 인민군(NVA)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구정을 틈타 미군과 남베트남에 대대적인 공세를 펼친 전투를 말한다. 그들은 기습을 통해 미군과 남베트남의 주요 시설을 신속하게 장악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군과 남베트남 군대에 의해 진압당한다. 하지만 이 전투를 계기로 국제적 반전운동이 부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베트남 민중이 미군에 대해 “군사적 패배, 정치적 승리”를 이루었다고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
  3. 1974년 살라자르 독재 정권을 좌파 청년 장교들이 주도한 쿠데타로 끌어내린 사건. 이후 혁명은 포르투갈 민중들과 결합되면서 발전했다. 카네이션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본문으로]
  4. 여기서 말하는 상황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말한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50년대 중후반의 대약진 운동과 반우파 투쟁까지를 포함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5. viability는 특정 사물의 생존 능력 등을 일컫는다. 이 글의 맥락으로는 좀 더 많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경쟁력'으로 대체해서 읽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본문으로]
  6. 2007년에 설립된 영국과 아일랜드의 노동조합으로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최대 산별을 거느린 노동조합이다. 현재 렌 맥클러스키가 서기장으로 있다. [본문으로]
  7. “CLASS”는 가디언 칼럼리스트 오웬 존스(Owen Jones)가 이끄는 노동운동 싱크탱크이다. [본문으로]
  8. 일종의 한국의 주민세 개념인 인두세 도입에 저항한 대중 운동. 당시 대처 정부는 경기 침체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도 동반 몰락하자, 이전에 부동산 소유분에 따라 부과하던 세금을 개개인에 일률적으로 부과하려고 시도했다. 이는 사회적 저항을 낳았고, 결국 인두세는 93년 폐지되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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