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수많은 사상자만이 아니라 난민들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주요 정부와 주류 언론들은 대중들의 이런 분노와 동정심을 ‘지하디스트’에 대한 공포와 강대국들의 시리아 폭격과 드론을 이용한 암살에 대한 지지로 바꾸려고 해 왔다. 이와 관련해 영국 ‘시리아 연대 운동’(Syria Solidarity Movement UK) 설립 멤버인 마크 부쓰로이드(Mark Boothroyd)는 주류 반전운동이 잔혹한 독재에 맞서 투쟁하는 시리아 혁명가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며 분석과 주장을 제시한다. 비록 영국 반전운동 내에서 논쟁과 비판의 맥락에서 쓰였지만, 이 글은 복잡하게 얽힌 시리아 상황을 이해하고 해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번역에 수고해 준 김민재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출처:
https://rs21.org.uk/2015/09/10/the-syrian-revolution-and-the-crisis-of-the-anti-war-movement/
시리아에서 학살의 대다수는 정권에 의해 저질러졌다
아랍의 봄이 시작된 2010~2011년은 21세기 초반부에서 결정적인 시기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 정의를 요구하는 동시다발적인 저항운동이 아랍 세계 전체를 휩쓸었고 튀니지와 리비아, 이집트 그리고 시리아의 경우, 그것이 혁명으로 만개했다. 수천만 명에 이르는 민중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대중운동을 통해 10년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독재를 자행해 온 정권들을 타도함으로써, 전 세계에 걸쳐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에 영감을 받아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아랍의 봄은 중동의 기존 질서 전체를 유동적으로 만들었다. 미국과 러시아, 이스라엘이 선호하던 독재자들이 타도되거나 대중 시위로 인해 엄청난 압력에 직면하면서 이들 세 국가들이 엄청나게 동요한 것이다. 아랍의 봄 덕분에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아랍 세계 전체를 통치하는 전제적 지배를 실제로 끝장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반전운동은 방향성을 상실하기도 했는데, 이 운동들은 대중 혁명이 아니라 미국/영국의 침공이 중동의 사태를 끌고 가는 주된 요소였던 더 앞선 시기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쟁에 반대하고 제국주의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는 중동 민중들과 연대하기 위해 수백만 명을 조직해야 할 주요 반전운동 조직들과 활동가들은 이처럼 중대한 사건들이 진행되는 내내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서구의 개입
영국 ‘전쟁저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 지도부는 애초 아랍 봉기들이 튀니지의 벤 알리나 이집트의 무바라크 같이 미국의 비호를 받는 독재자들을 타도했을 때는 지지를 보냈지만, 봉기가 카다피와 아사드의 정권들(이들은 냉전 시대에 서방의 반대편에 섰다)로 확산되자, 앞의 경우완 달리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기 시작했다.
반전운동 내 일단의 활동가들은 이 국가들이 제국주의에 맞서는 “저항의 축”의 일부이자, 이른바 “반제국주의” 정권이기 때문에, 이들이 자행한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지지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그 지역의 모든 독재정권들이 미국/EU 제국주의와 거래하고 있었는데도 그러했다. 예컨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부시 집권기에 CIA를 위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한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했는가 하면,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은 EU와의 협력 하에 이민자들을 구금하고 그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지 못하도록 수용소 캠프를 지었다.
아랍 봉기는 처음에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예컨대 수백만 명이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에서 행진하고 있을 때조차, 미국은 여전히 무바라크를 지지하고 있었고, 프랑스 정부는 벤 알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놓고 분열되었다. 다른 한편, 당시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바레인 정부가 대중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벌이던 악랄한 탄압을 승인해주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은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결집해서 혁명 물결에 올라타고는, 봉기로 인해 초래된 혼란을 이용하려 했다. 이들이 벌인 개입의 첫 번째 목표물은 리비아였다. 이에 전쟁저지연합은 어쩔 수 없이, 시위자들에 대한 탄압에 찬성하는 친카다피적 입장을 가진 인물들과 나란히 서구 개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호소했다.
하지만 그런 시위들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는 리비아를 폭격해 카다피의 공군을 무력화했으며, 반란군에 무기를 제공했다. 그 결과, 리비아의 혁명가들은 미스라타(Misrata)와 벵가지(Benghazi)에서 카다피 군에 맞서며 버텼고, 수도인 트리폴리에서는 저항을 조직했으며, 마침내 2011년 8월 말에는 카다피 정권을 타도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카다피는 2011년 10월에 반란군에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와 이란 정부는 시리아 정권이 같은 운명을 겪지 않도록 시리아 정권에 대한 자금 지원과 무장 지원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아사드 정권에 맞선 시리아 봉기는 이제 5년 차에 이르렀고, 이 충돌로 인한 사망자 수는 33만 명을 넘어섰으며, 1백만 명이 넘는 이들이 부상당했다.
그리고 21만 5천 명이 여전히 아사드 정권의 감옥에 갇혀있고, 2십만 명이 실종되었으며, 봉기를 일으킨 마을과 도시에 살고 있는 1백만 명에 이르는 민중들이 아사드 정권의 포위작전으로 기아 상태에 놓여 있다. 민간인 지역을 겨냥한 아사드 정권의 폭격은 일상사이고, 4백 5십만 명에 이르는 시리아인들이 난민신세가 되어 국외로 떠돌고 있으며, 시리아 국내에 남아있는 인구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8백만 명이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 유랑민 신세로 전락했다.
이 기간 전체에 걸쳐 서구 국가들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에 맞서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다. 혁명이 일어난 지 4년째 되는 해인 2014년 중반까지도 서구 국가들은 시리아를 폭격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 가해진 폭격조차 아사드 정권이 아니라 ISIS를 겨냥한 것이었다. 서구 연합군의 공군은 아사드 정권의 군사시설에는 단 한 개의 폭탄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온갖 과장 보도와 경고와는 달리, 반란군에 대한 서구의 지원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2013년 중반에 ‘자유시리아군대’(Free Syrian Army)는 애초 미국이 약속한 6천만 달러의 지원금 가운데 고작해야 1천 2백만 달러밖에 받지 못했고, EU는 무기 공급을 거부했다. 그들이 받았던 지원도 식료품과 의약품, 그리고 운송수단으로 이루어진 비군사적 성격의 지원뿐이었다. 심지어 2012년 이후부터 CIA는 시리아로 향하는 무기들을 모니터링 해왔는데, 그들은 이를 통해 아사드 정권 측의 공군과 군용 차량을 무력화시켜 정권의 몰락을 재촉할 수도 있는 대공 방어 유도탄과 중무기를 반란군이 입수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마침내 2014년에 미국이 반란군들의 무장과 훈련을 시작했을 때는 터무니없는 수준으로까지 이를 철저하게 통제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사드 정권은 러시아로부터 35억 달러 어치의 무기 계약을 맺었고, 그 비용도 융자받았다. 장기화된 무력 충돌을 감당할만한 충분한 무기를 생산하기에는 시리아 국내 무기 산업의 규모가 너무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군사 충돌이 지금까지 지속되도록 유지되고 있는 것은 러시아 측의 제국주의적 개입 때문이다.
선택적인 반제국주의
이러한 혁명들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반전운동에 참가하는 많은 이들이 제국주의적 개입에 대한 반대를 영국과 미국, 그리고 EU와 그들의 동맹국들이 벌이는 제국주의적 개입에만 한정시켰다는 점이다. 반면, 러시아 정부가 벌이는 제국주의적 군사 행동이나 이란 정부가 아사드 정권에 제공하는 결정적인 지원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전쟁저지연합의 전국 지도자인 존 리즈(John Rees)는 “주적은 국내에 있”으며, 미국 제국주의가 지닌 힘은 중동 지역에서 여전히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근거를 들어 이러한 입장을 옹호했다. 영국에 기반을 둔 조직인 전쟁저지연합은 그저 영국 정부의 제국주의적 행동에만 반대하려던 것이다.
영국 반전운동에서 활동하는 주요 인물들 가운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혁명들을 미국/영국과의 관계 및 그들의 의도와 관련해서만 바라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을 택하게 되면, 아사드 정권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억압받는 시리아인들이라는 행위자는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아사드 독재를 지원하는 러시아 같은 제국주의 세력이 하는 짓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울 수 없게 된다. 이는 다극화된 세계체제라는 복잡한 현실을 가리는데 봉사할 뿐인데, 이는 사태 전개를 규정하는 단 하나의 압도적인 세력이 부재한 채, 서로 경쟁하는 제국주의 세력들로 분열된 세계다.
아랍의 봄으로 인해 유동적인 상황에 빠진 지역과 세계적 차원의 세력들 사이에 존재하는 실제 관계를 분석하는 대신, 영국의 반전운동은 냉전 시대 권력 관계의 틀에 따라 기존의 좌파적 선입견과 과거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시기에 발전된 국내 동맹세력들의 필요에 맞게 자신의 입장을 정립했다.
시리아 민중들의 혁명에 찬성하는 아랍인들의 목소리는 주변화 되는 한편, 조지 갤러웨이와 같은 노골적인 아사드 정권 옹호자들은 전쟁저지연합의 그러한 입장을 발전시키고 선전하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해왔다. 반면, 시리아 맑스주의자인 야신 알-하즈 살레(Yassin Al-Haj Saleh)와 시리아 인권활동가인 라잔 자이투네(Razan Zaitouneh),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식인이자 이전에 크네세트(역자: 이스라엘의 단원제 의회로서 최고 권력기관) 의원이었던 아즈미 비샤라(Azmi Bishara) 박사와 같이 시리아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기여는 무시되었다.
한편, 시리아에서는 전국적으로 매주 금요일에 집회가 열려서 자신들이 벌이는 투쟁에 대한 국제적인 연대와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수십만 명에 이르는 이들의 목소리는 무시되었다. 매주 수만 명에 이르는 시리아 활동가들이 금요 집회에 내걸 주요 슬로건을 선정하기 위해 온라인상의 투표에 참여해왔다. 여기서 일부 사람들은 서방의 개입을, 다른 일부는 무기를 요구했지만, 그보다 많은 이들은 단순히 도움을 요청했으며, 자신들이 벌이는 투쟁을 널리 알리려 했다. 슬로건들을 읽다보면, 자신들이 요청한 연대에 관해 아무런 호응도 얻지 못한 시리아 시위자들이 느끼고 있는 환멸을 알 수 있다.
2011.7.29. - “당신들의 침묵이 우리를 죽인다.”
2011.9.9. - “국제적 보호”
2011.12.12. - “우리의 요구는 완충지대이다.”
2012.3.2. - “자유시리아군에 무기를 달라”
2012.3.16. - “즉각적인 군사 개입”
2012.6.22. - “각국 정부들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우리를 지지하는 전 세계 민중은 어디에 있는가?”
2012.8.10. - “우리에게 대공 무기를 달라”
2012.10.5. - “우리는 성명서가 아니라 무기를 원한다.”
2012.12.7. - “시리아 평화유지군은 필요 없다.”
2013.2.1. - “국제 사회는 아사드가 저지르는 학살의 공범들이다.”
2013.8.23. - “전 세계가 수수방관하는 동안 테러리스트 아사드는 화학무기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
2013.9.13. - “학살자를 국제사회가 보호해주고 있다.”
2013.12.27. - “국제사회가 준 허가증을 갖고 죽음이 질주하고 있다.”
2015.2.20. - “세계는 우리를 저버렸다. 신이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리라.”
시리아 혁명의 현실이 영국 반전운동에서 지배적이었던 프레임과 자신들이 국내에 구축한 동맹의 필요에 맞지 않자, 그들의 요구들은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이를 위해 미국과 영국 정부가 아사드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시리아에서의 주된 위협이라고 제시하는 내러티브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시리아 혁명가들은 서방 제국주의를 돕는 정치적 범죄와 관련을 맺어 죄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
2013년의 투표: 오바마의 물타기(red herring)
시리아 투쟁에서의 결정적 전환점은 2013년 8월과 9월에 영국 의회와 미국 의회에서 군사적 개입에 반대하는 투표가 이루어졌을 때였다. 이 투표는 8월 21일 밤에 아사드 정권이 다마스쿠스(Damascus) 근교와 동부 구타(Ghouta)에서 사린가스로 1400명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자 이를 응징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개입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바마에게는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이 아마도 군사적 개입을 가늠케 하는 “레드 라인(red line-양보할 수 없는 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 영국 총리인 캐머론은 이 문제를 의회로 들고 가 투표에 부쳤고, 그 결과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오바마 행정부도 즉각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그 결정을 의회에서 투표에 부쳤다. 이 역시 패배했고, 그 결과 아무런 군사적 개입도 이루어지지지 않았다.
그 대신, 러시아(그리고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스라엘 역시도)의 제안에 따라, 아사드 정권과 거래가 이루어졌는데, 그 내용은 서방은 아사드 정권을 대상으로 한 군사 공격을 가하지 않는 대신, 그 대가로 아사드 정권은 화학무기를 넘겨주는 내용이었다.
반전운동은 이 것을 거대한 승리라며 환영했다. 전쟁저지연합은 시리아에 대한 폭격을 멈추는데 있어 자신이 기여한 부분을 내세우면서, 국회의원들이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도록 설득하는 데 강력한 반전 정서가 주효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진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불과 2년 전에 똑같은 국회의원들이 강력한 반전 정서에도 불구하고 리비아에서의 군사 공격을 승인하는 표결을 했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군사 개입과 같은 중요한 지정학적 결정을 그저 대중적 여론을 의식해 중지하거나 바꿀 것이라는 생각은 설득력이 없다.
구타(Ghouta)에서 자행된 사린가스 공격에 대해 프랑스 정부가 취한 대응은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이와 관련해서 가르쳐주는 바가 있다. 구타(Ghouta)에서 학살이 벌어진 후, 프랑스와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은 힘을 합쳐 아사드 정권의 군사적 목표물들을 겨냥한 공격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영국 의회가 투표에서 군사적 개입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8월 30일 프랑스 정부는 전폭기들에게 명령을 내려 시리아 정권의 군사적 목표물들에 대한 군사 공격에 대비토록 했다. 프랑스 전폭기들이 미국의 공격을 예상하면서 대기하고 있었을 때, 오바마는 개인적으로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에게 연락을 취해서 자신은 미국 의회의 승인 없이는 시리아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렸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미국의 지지 없이는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 정부를 타도할지 여부를 표결에 부치는 것은, 전쟁광 제국주의 세력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학살 현장에 있던 시리아 활동가들은 이 결정이 어떤 의미인지 예리하게 깨닫고 있었다. 사린가스 공격으로 타격을 입은 다마스쿠스(Damascuc)의 마을들 가운데 하나인 모아다미야(Moadamiyah)의 대변인인 쿠사이 자캬랴(Qusai Zakarya)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저는 정말 실망했습니다. … 미국 대통령이 군사 공격을 하고 싶을 때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그냥 한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거든요. 이라크에서도 그랬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랬고, 소말리아에서도 그랬고, 전 세계에 걸쳐 그랬잖습니까.”
2년 전, 20명의 영국 비행사들이 미 공군과 함께 시리아 상공으로 출격을 하고 있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영국 정부가 전폭기로 비밀리에 시리아를 폭격하려 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적절하다고 판단할 경우에 영국 정부는 능히 국회 결정을 무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해당 지역에 대한 군사 개입 여부를 결정지은 것은, 단순히 여론이 아니라 이 지역에 깊이 뿌리박힌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인 것이다.
미국과 영국 지배계급의 일부 분파들로서는 시리아에서 그들의 이익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아사드 정권이 아니라, 그에 반대하는 민중혁명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따라서 영국과 미국 의회에서 벌어진 표결 이후, 양국은 아사드 정권의 종말을 재촉하고 민중운동이 권력을 잡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체계적으로 회피해왔다. 시리아 민중이 막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면서까지 말이다.
우리는 시리아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군사적 개입을 지지해서는 안 되지만, 반전운동의 승리라고 공언한 위와 같은 거래가 그저 아사드 정권 측의 승리였을 뿐이라는 비극적인 아이러니도 깨달아야만 한다. 아사드는 1400명을 죽여가면서 오바마가 제시한 “레드 라인”을 시험했고, 이후엔 재래식 무기로 살육을 계속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아사드 정권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알레포(Aleppo)에서는 매일 통폭탄(barrel bomb)을 퍼부어 2500명을 살해했고, 수백 수천 명을 살던 곳으로부터 쫓아냈으며, 반란군이 장악한 그 도시의 절반가량을 유령 도시로 바꾸어 버렸다.
이것이 시리아에 대해 미국과 영국이 실제로 견지하고 있는 제국주의 전략이었다. 즉, 그들은 시리아 민중봉기의 승리에 필요한 무기와 지원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시리아 민중이 피를 흘리게 하고, 악랄한 탄압으로 초래된 피폐와 파괴 탓에 아사드 정권에 항거하는 시리아 민중들이 어쩔 수 없이 아사드 정권의 국가기구를 유지하는 쪽으로 정치적 합의를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비일관성
심지어 영국의 반전 운동은 제국주의 개입을 반대하는데 있어서도 일관되질 않았다. 전쟁저지연합이 시리아와 관련해서 조직한 유일한 대규모 항의행동은 2013년 8월에 열린 “시리아에서 손을 떼라(Hands off Syria)” 집회였는데, 이에 대해 영국계 시리아인 저널리스트 살와 아모르(Salwa Amor)는 “‘시리아에서 손을 떼라’라고 말하는 플래카드를 들게 될 경우, 시리아인들의 눈에 당신들은 러시아 편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라고 썼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침 시리아인들은 러시아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독재정권과 싸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한편, 반전운동은 ISIS를 겨냥해 미국 주도 연합군이 가하고 있는 시리아 폭격에 대해서도 대개 침묵했으며, 이에 반대하는 대중 시위도 거의 조직하지 않았다. 이러한 폭격들은 표면상 ISIS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쿠르드인민수비대(Kurdish People’s Protection Units, YPG)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되었지만, 아사드 정권에도 도움이 되었다.
연합군이 폭격을 가하고 있는 곳은 데이르 에주르(Deir Ezzour)시 내부와 그 주변이었는데, 이곳은 최전선에 아사드 정권의 군과 ISIS 세력들만 대치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연합군과 아사드 정권 사이에 존재하는 공공연한 협력에 비추어 볼 때, 전쟁저지연합이 말하는 주장들은 그 어떤 것도 타당하다고 볼 수가 없다.
연합군이 폭격으로 민간인들을 살상하고, 시리아 국내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을 수용한 수용소를 폭격 목표물로 삼았을 때조차, 영국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지 않았다. 예컨대, 8월 11일, 미국 주도의 연합군은 이들립(Idlib) 지역에 소재한 아트메(Atmeh) 난민 수용소를 폭격한 바 있는데, 당시 이들이 목표물로 삼은 것은 자유시리아군과 연계되어 활동하던 자이쉬 알-순나(Jaysh Al-Sunna)라는 무장 분파가 운영하는 무기 공장이었다.
이 폭격으로 한 가정에서만 다섯 명의 소녀들을 포함하여 총 25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지난해 내내 연합군이 시리아 반란군을 목표로 삼아 가한 수십 번의 공습들 가운데 한 사례일 뿐이다. 반면, 작년 일 년 동안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벌인 공격에서 아사드 정권의 군사 시설은 단 한 번도 목표물이 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영국의 반전운동은 이런 폭격들 가운데 어떤 것도 항의시위를 열 정도는 아니라고 여겼다.
또 다른 비일관성은 주류 반전운동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 대해 각기 다르게 접근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전쟁저지연합이 사우디 공군의 예멘 폭격을 비판한 것은 올바른 것이엇다. 하지만 이는 전쟁저지연합 지도부가 무엇 때문에 시리아에 대한 이란의 개입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란 정부의 시리아 개입은 문서에 의해서도 충분히 입증되는 사실이다. 즉, 이란 정부는 아사드 정권에게 융자와 석유 및 자산 거래를 통한 막대한 재정 지원은 물론, 6천 명에 이르는 이란혁명수비대(Iranian Revolution Guard Corp) 부대 지원과 시리아 주둔 군사 고문이라는 형태로 군사 지원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이란 정부는 아사드 정권에 자금과 훈련을 제공하여 15만 명에 이르는 친정부 군사조직인 국가방위군(National Defence Force) 구성을 도왔다. 또 이란 정부는 시리아 친정부 병력을 늘리기 위해 수천 명의 아프간 용병들을 고용하는데 돈을 지불하기도 했다. 이들 중 많은 아프간 사람들이 이란에 살고 있는 가난한 난민들과 이민자 출신들로서, 이들은 이란 시민권과 정기적인 봉급을 약속받고 모병에 응했고, 모집되고 나서는 곧장 최전선으로 보내졌다.
전쟁저지연합이 이 같은 비일관성을 보인 데는 지정학적인 이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영국의 동맹국으로 간주되는데 반해, 이란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아에서 이란의 개입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게다가 제국주의 세력들과 그들의 졸개인 독재정권들 사이에 맺어진 동맹은 변화한다(그리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영국의 주류 반전운동은 이처럼 위선적인 접근법을 취하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는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이 응당 지지해야 마땅한 것들인데도 말이다.
이슬람 혐오
이보다 더 비극적인 것이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반대하는 동안 반전운동이 주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무슬림 공동체의 내외부에서 함께 건설되었고, 그들을 인종주의로부터 보호했으며, 분노하고 소외되어 있는 영국 무슬림 출신 청년들을 위한 조직적인 분출구를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침 자신들이 해외에서 목격하거나 영국 내에서 직면했던 거대한 불의에 맞서 싸우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직적인 분출구는 시리아 혁명이 발생했을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 주류 반전운동이 취한 이러한 입장 탓에 무슬림 공동체 내의 많은 이들이 소외감을 느꼈는데, 이들은 시리아 혁명을 지지하고 전쟁으로 피해를 입는 시리아 민간인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영국 사람들은 아사드 정권이 저지르는 잔학 행위들에 대해 가끔 접하기만 했을 뿐이지만, 아사드 정권이 벌이는 살육과 이를 지켜보는 무슬림 공동체 사이에는 아무런 여과장치가 없었다. 그 결과, 매일 밤 알 자지라(Al-Jazeera) 방송과 유튜브(Youtube), 그리고 모스크에서 이루어지는 설교를 통해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참상이 고스란히 폭로되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행동에 나서게 되었다.
영국의 많은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와 모스크가 주도하는 인도주의적 구호 작업과 원조 모금, 그리고 원조 수송대에 힘을 보탰다. 이런 노력들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이로 인해 매년 수백만 파운드가 모금되었고, 앰뷸런스와 식료품, 그리고 의약품과 의복 등을 실은 원조 수송대가 일 년에 무려 12차례나 영국에서 시리아까지 향할 정도였다.
시리아의 상황이 점점 더 참혹하고 유혈낭자해지고, 자신들의 에너지를 쏟을 정치적 대중운동이 부재하자, 다른 영국인 무슬림들은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무장 투쟁에 참여했다. 많은 이들이 직접적으로 시리아인들에 대해 이슬람적인 연대를 보여야 할 의무감을 느꼈는데,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매일 목격하는 시리아에서의 종파주의적 잔학 행위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자유 시리아 군대나 이슬람 여단(Islamic brigades)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슬람국가(Islamic State)가 부상하고, 이들이 서구의 무슬림들을 겨냥해 프로파간다와 국제 지하드주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치면서 참전의 정당성을 제공하자, 많은 소외된 무슬림 젊은이들이 이 방향으로 모여들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전에 나타났던 현상인 “외국인 지하드주의자들”이 시리아에서는 국제적 이슈가 되었다.
시리아 혁명과의 연대 캠페인에 대부분의 반전 활동가들이 나서지 않았던 데는, 그들이 ISIS에 관한 가장 명백한 논점 한 가지를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ISIS의 부상은 시리아 정부가 민중혁명을 상대로 벌인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탄압과 함께 세계 각국 정부들이 시리아 인민들을 고립시키고 내팽개쳤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 말이다.
ISIS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시리아와 이라크를 폭격하는 것에 반대하는 전쟁저지연합의 기사를 보면, 아사드 정권의 폭력과 그들이 마을과 도시를 상대로 퍼붓는 무자비한 폭격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이 죽고, 수백만 명의 시리아인들이 집을 떠나 난민이 되었으며, 반대파의 통치능력은 무력화되었고, 절망적일 정도의 빈곤과 무법상태, 그리고 억압적인 조건들이 만들어졌는데, 바로 이런 조건에서 ISIS가 자라나게 된 것이다.
사상자 수의 비율
이러한 실패는 전쟁저지연합이 시리아 난민 위기에 대해서 쓴 것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이들은 시리아 난민들이 내전 때문에 피난민이 됐다고만 말할 뿐, 지난 5년 동안 학살을 지속적으로 자행한 아사드와 그 정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레토릭이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인종주의적 담론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즉, 시리아 시민들이 벌이는 투쟁에 대해 침묵하고, 아사드를 비난하지 않으며, 반란군을 서구의 지원을 받는 지하드주의자들로 비방하면서, 지배적인 주류 내러티브는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즉, 시리아 혁명이 정권의 야만적인 억압이 자행되는 와중에 군사화 되었으며, 이 혁명을 파괴하기 위해 결집된 모든 세력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는 혁명적 투쟁이 아니라, “세속” 정부와 “서구의 지원을 받는” 극단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종파 전쟁으로 변질되었다는 내러티브 말이다.
예를 들어, 2014년 4월 전쟁저지연합 웹 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의 한 문단은 다음과 같다.
“시리아 역시 다소 당황스럽다. 우리는 과거에 급진적 이슬람 테러 집단이 우리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서구에서 누리는 우리의 ‘삶의 양식’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고 들었고, 지금도 그런 말을 듣고 있다. 그리고 알 카에다나 그와 같은 다른 집단들은 파괴되어야 하며, 그들에 대항해 가차 없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도 말이다. 그런데 시리아에서 우리 정부 지도자들은 기독교도들을 비롯한 종교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세속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그런 급진적인 집단들의 편을 들고 있다.
알 카에다와 그 계열 단체들이 던진 폭탄이 시리아에서 터져서 죄 없는 사람들이 죽을 때, 우리 지도자들은 그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유일하게 비난한 대상은 세속적인 시리아 정부였는데, 이들은 급진 이슬람 지도자들과 싸우고 있으며, 우리 정부 지도자들과 엘리트 언론 평론가들이 필사적으로 전복하고자하는 대상이다.”
반전운동 캠페인 조직자들이 이슬람 혐오에 맞선 회합을 조직함과 동시에 그들의 웹사이트에는 위와 같은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면서도 이 둘 사이에 놓인 모순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하지만 정권에 대항해 싸우는 모든 시리아인들을 “알 카에다”와 “그 계열 단체들” 혹은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로 싸잡아 묶는 것은, “테러와의 전쟁”을 옹호하는 자들이 과거 그토록 떠들어댄 반이슬람 인종주의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억압이나 독재에 맞서 무기를 드는 어떤 무슬림 또는 이슬람 조직도 “알 카에다”이고 테러리스트라는 주장 말이다.
전쟁저지연합은 전쟁과 반제국주의 문제에서 선도적인 목소리를 냄으로써, 수만 명의 영국 활동가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들 활동가들이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는데 전쟁저지연합이 제기한 이런 주장들은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영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반전운동 단체조차 시리아인들에 대한 연대 활동을 펼치지 않은 채, 그들의 혁명에 대해 위와 같은 인종주의적 설명을 선전해 온 것이다.
이 상황에서, 이것이 최근의 여론이 시리아 난민들과 시리아 혁명에 대해 지독히도 매정하게 돌아선 것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올해 초에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48%가 난민들을 돌려보내야 한다고 답했다. 최근에 계획된 시위들에서는 이런 추세를 거스르는 희망적인 흐름도 엿볼 수 있지만, 정부가 현재를 분위기를 이용해 “지하드주의자들”을 격퇴하는 군사 행동에 대한 지지로 전환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국제 연대와 반제국주의
물론,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즉, 반전운동은 협소한 초점을 가진 선택적인 반(反)군사개입 캠페인을 넘어서서, 중동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혁명적 운동과의 국제 연대를 건설함으로써 2011년의 봉기에 화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쟁저지연합과 같은 조직들은 영국 전체에 걸쳐 조직되어 있는 수많은 산하 그룹들을 통해 아랍의 봄에 연대하는 집회를 조직하고, 튀니지와 이집트, 그리고 시리아 혁명가들을 대동하고 대학과 지역 사회를 순회할 수도 있었다.
혁명을 지지하는 시리아인들로 이루어진 지역사회들은 후일 피로감과 환멸에 젖기 전까지만 해도 봉기의 첫 3년 동안, 런던에서 매주 빼놓지 않고 열린 항의 집회에 참여했다. 반전운동은 자신들이 지닌 활동가들과 네트워크들을 이용해 이들의 이러한 노력들을 보다 폭넓게 도울 수도 있었고, 시리아를 위한 기금 모금과 원조 모금에 힘을 보탤 수도 있었다.
또, 반전운동이 시리아 혁명에 대한 연대 집회와 시리아 혁명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면, 이 혁명에 대해 떠들어대는 주류의 내러티브에 도전을 제기하고, 아사드 정권에 대항해 비폭력적 저항으로 싸우고 있는 민주적인 시리아 시민들의 투쟁에 무척 긴요했던 지지 여론도 조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모범이 될 만한 연대 활동을 조직했다. 의사인 데이빗 넛(David Nutt)은 부상자들을 응급수술하기 위해 시리아의 알레포(Aleppo)를 여러 번 다녀왔다. 그리고 샐포드(Salford)의 택시기사인 앨런 헤닝(Alan Henning)은 자신의 무슬림 동료들과 함께 시리아로 향하는 원조 수송대를 운전하는 데 참여했다가, ISIS에 의해 살해당하는 참극을 당하기도 했다.
무슬림과 비무슬림을 가리지 않고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구호 활동과 앰뷸런스 차량 운전, 구호품 배분, 난민 캠프 교육, 그리고 부상자를 치료할 병원 운영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시리아로 떠났다. 이 모든 활동들은 반전운동의 틀 바깥에서, 그 조직들의 지원 없이 이루어졌다.
만약 반전운동이 이런 노력들에 힘을 보탰다면, 완전히 새로운 세대의 활동가들이 반전운동에 유입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랍의 봄에 의해 고무된 청년들, 특히 이제는 허무주의적인 테러리즘과 이슬람의 무장 저항운동과는 다른 명확한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혁명과 대중운동에 의해 급진화된 젊은 무슬림들 말이다.
그리고 반전운동이 원칙적이고 일관된 반제국주의 정치와 국제 연대를 결합했다면 새로운 형태의 반전운동을 재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유를 지지하며 전쟁과 모든 형태의 억압에 반대하는 국제적 투쟁을 진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활동가들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반전운동은 그러기는커녕 옆에 비켜 서 있었다. 이들이 이러한 입장을 취한 결과로 나타날 사태는 향후 몇 년 사이에 영국과 중동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시리아인들을 저버린 결과로 ISIS가 부상하면서, 영국 정부는 국내의 시민적 자유를 겨냥해 추가적인 억압을 가할 수 있는 완벽한 핑계거리를 얻어냈고, 반무슬림 인종주의는 다시 득세하게 되었다. 또, 일반 대중 사이에서 군사 개입에 대한 정치적 반대 여론도 약화시켰다. 그 결과 응답자의 60%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ISIS에 대한 공습을 지지하고 있다.
전쟁이 남겨놓은 여파는 아마 몇 십 년간 지속될 것이다. 수백만 명의 시리아 아동들이 난민 캠프에서 살고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몇 년 간을 놓쳤으며, 끔찍한 빈곤과 참혹한 종파간 폭력도 견뎌야 했다. 그들은 세계가 침묵하는 가운데 조국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랐다. 이 때문에 누적된 비통함이 너무나 깊은 나머지, 이것이 해결되려면 족히 수십 년은 걸릴 것이며, 그러는 동안 이들이 폭력적 성격을 띤 반동적인 운동에 가담하게 될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시리아에서 4년이 넘도록 잔인한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전쟁저지연합이 이에 관해 말하고 실천한 것 때문에 이런 비극이 초래되었다. 시리아인들로 이루어진 지역 사회는 2013년에 전쟁저지연합의 연례행사에 참여해 전쟁저지연합이 아사드 정권이 행사하는 폭력에 항의하고 혁명을 지지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지만, 그 자리에 참석한 그 누구도 이들의 이러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전쟁저지연합이 시리아 문제에 대해 취한 정책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들은 정작 연단에 시리아인들은 없고, 아사드 정권이 저지르는 폭력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여전히 시리아에 대한 폭격에 반대하는 회의를 열고 있다.
반전운동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 혹은 스스로를 운동의 지지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실천을 바꾸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전쟁저지연합을 바꿀 수 없다면, 스스로의 실천을 바꿔야 하며, 국제 연대 운동을 새롭게 건설해서 그 누구도 다시는 버림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난 4년 반 동안 시리아인들이 버려졌던 것처럼 말이다.
(기사 등록 2016.9.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 http://anotherworld.kr/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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