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최근 프랑스에서의 위기와 투쟁

[프랑스에서 올랑드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맞서 몇 개월째 다면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저항운동이 많은 사람들을 고무하며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 왔다. 이에 대해 레옹 크레미유(Leon Crémieux)가 배경을 설명한다. 그는 프랑스 연대노총(Solidaires trade-union federation: Union syndicale Solidaires)과 반자본주의 신당(Nouveau Parti Anticapitaliste: NPA)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트로츠키주의 국제조직인 4인터내셔널의 집행국원이다. 까다롭게 쓰여진 글을 프랑스어 원문까지 대조하며 정성껏 번역하고 꼼꼼한 역주까지 달아주신 김민재 동지에게 크게 감사드린다.]

 

출처: https://rs21.org.uk/2016/06/02/10985/

 

광장에 모여 밤샘 시위와 토론을 하는 프랑스 청년들 


 

“[의회 표결없이 총리가 긴급명령권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게 한] 49조 제3항은 야만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프랑스 헌법의 이 조항에 대해 프랑수아 올랑드가 2006년에 냈던 이 의견에도 불구하고, 마뉘엘 발스(그도 2008년에는 그 법안에 반대했던 의원 중 하나였다) 총리 하의 올랑드 정부는 510일에 미리엄 엘 콤리(Myriam El Khomri) 장관이 제안한 노동개악 법안 통과를 강행하기 위해 그 조항을 이용했다.

 

이는 노동자들의 조정위원회와 학생회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512, 17, 19일에 수일 동안의 전국적 집결 및 파업을 선언했고 이는 526일과 614일까지 이어졌다. 원래 이 기사는 정부가 제49조 제3항의 사용을 결정하기 직전에 작성되었고 그때까지의 엘 콤리 법안 반대운동의 전개를 설명했는데 524일에 업데이트되었다.

 

프랑스는 3월 초부터 새로운 상황에 접어들었다. 이전까지는 국민전선(National Front)에 의해 조성된 정치적 대립과, 20151월과 11월에 발생한 테러 공격의 맥락 속에서 떠오른 국가 안보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요소들 중 사라진 것은 하나도 없고, 눈을 감아버리지 않는 한 지금의 운동이 이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최근 몇 주 간의 핵심적인 정치적 사건은,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두 가지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벌써 2003, 2006년 및 2010년과 같은 지난 15년간의 대규모 노동자 및 청년 투쟁과 비견할 만한 다면적인 투쟁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3월 이전 몇 달 동안 사회적 대결의 시작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지난 10월 셔츠 사건(에어프랑스 직원들이 정리해고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회사 경영자들의 셔츠가 찢어진 사건)과 함께, 에어프랑스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공감의 물결이 널리 드러났었다.

 

같은 기간 동안 산업 현장에서는 작업중단(walk-out)과 파업이, 특히 의무적 연례교섭기간 중 임금 문제에 대한 크고 작은 작업중단과 파업이 상당히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비록 11월의 테러 공격과 비상사태 선포로 인해 국가가 그 동력을 꺾어놓을 수 있기는 했지만, COP21(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기간 동안에도 강력한 시위가 있었다.

 

노트르담 데 랑드(Notre Dame des Landes) 공항 반대 대규모 시위와 이민자 지지 네트워크의 수립 역시 비영리 단체들과 소셜 네트워크에 의해 조직화된 수천수만 명의 청년들과 활동가들의 행동의 결과였다.

 

이런 반발 및 투쟁이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사회민주주의를 통한 자본가 이익 관리, 사회당 좌파의 허약함, 그리고 노조 지도부의 무기력 속에 긴축정책과 실업에 크게 타격을 받고 있는 노동자와 청년 들이 무기력과 표류를 겪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반대로 현 상황은 지난 20년간 번갈아 집권해 온 제도권 정당들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커다란 괴리를 보여 줬다. 최근 몇 년간 대중들 사이에서 투표 기권이나 국민전선에 대한 투표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것도 사회적 투쟁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러한 불신의 반영이었다.

 

올랑드 임기 초부터 사회적 지형을 보면 노동법과 관련하여 메데프(MEDEF: 사용자 단체)의 많은 요구들이 마크롱(Macron) 법안들과 렙사망(Rebsamen) 법안들을 통해 관철되었고, 특히 2008피용(Fillon) 법안에서 시작된 노동권 해체 작업이 계속됐다.

 

노동 비용절감에 대한 사용자들의 요구를 사회당 정부가 받아들였다는 신호탄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산업 협약[각주:1]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것은 사회권의 후퇴라는 점에서 프랑스를 다른 유럽 국가들과 같은 수준에 놓이게 한 그 많은 조치들을 대표했다.

 

엘 콤리 법: 사회적 기폭제

 

그래서 협약 기준 체계의 역전, 우대 원칙(기업별 단협은 산별협약이나 노동법보다 더 노동자에게 유리해야 한다는 원칙)의 폐기가 핵심에 있는 엘 콤리 법은 사회적 기폭제가 되었다. 그 내용도 그렇지만, 특히 현재의 맥락에서 다른 모든 요소들 때문에 엘 콤리 법은 진짜로 촉매가 되었다.

 

여기서 당면한 정세에 대한 전망을 풀어놓을 수는 없으며 이 운동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가늠해 보기에는 너무 이르다. 이 운동은 중대한 대결과 정치적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는 동시에, 많은 제동장치에 직면하여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요소들은 지금 단계에서도 조명될 수 있다.

 

* 무엇보다도 이 운동이 시작된 방식. 코페르니쿠스 재단(Copernicus Foundation), 노동총연맹(CGT)과 연대노총을 포함한 활동가 네트워크들에 의해 콩브렉셀 보고서(Combrexelle report) [각주:2]등 정부의 개악 논리에 대한 많은 반박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39일 시위를 촉발하고 모은 것은 명백히 그리고 직접적으로, 한 활동가가 온라인 청원을 제안하면서 시작된 캐롤린 드 아스(Caroline De Haas) 서명운동으로 알려진 사회적 네트워크였다.

 

* 서명운동의 어조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서명운동은 법안을 정면 공격으로 규정하고 법안의 철회를 분명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어조는 노조 지도부의 223일 선언과 비교된다. 그들은 몇 개의 조치들로 스스로의 요구를 제한하며 법안의 철회를 전혀 요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로 대화 부족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정부가 자신들을 만날 필요성으로 선언을 마무리했다. 투쟁에 대한 선동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 마찬가지로 수차례의 파업 선동의 기회가 되었던, 첫 집회에 대한 선동 역시 소셜네트워크에서의 호소에서 출발했으며 여기서 서명운동 조직자들의 신속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 우리는 이런 점들을 강력하게 주장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소해 보이는 이런 것이 사실 노조 연맹체 지도부(연대노총의 입장은 하나로 묶이지 않는다)들의 일반적인 수동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히 지난 2010년 대규모 투쟁의 패배(이 역시도 노조 지도부의 정책과 관련이 있었다) 이후 많은 노조 활동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비관주의적 정서로 뒷받침된다. 하지만 이는 2012년 이래로 좌파 정부를 너무 골치 아프게 하지는 않겠다는 태도와 혼합된, 긴축 정책과 관련된 일반적 방향성의 결과이다.

 

그래서 노조 지도자들은 이 법안의 발표 전에는 설명 캠페인을 진행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노동자들의 의식 수준을 높임으로써 투쟁에 대비하여 소속 조합원들을 준비시키는 일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2010년 투쟁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널리 단결된 운동, 정부가 물러서도록 강제할 수 있는 총파업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보다 정치적인 준비 작업도 하지 않았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준비 작업의 부족이 여전히 느껴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뒤이어 노동계급과 전 민중은 사회적 지형에서 수차례의 패배를 겪어왔기에, 준비작업은 더더욱 필수적인 것이었다.

 

투쟁의 원동력

 

하지만 프랑스에는 다른 상충하는 요소들이 존재하고 투쟁의 동역학은 바로 그것들로 뒷받침된다.

 

* 프랑스의 상황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우상이 훨씬 더 많은 해를 끼친 다른 유럽 국가들의 상황과 여전히 차이가 있다. 서비스, 사회보장, 고용 규제, 노동법의 영역에서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것, 잃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광범위한 의식이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당의 신자유주의적 문화혁명 앞에는, 심지어 아직 남은 선거에서의 지지 및 사회당 활동가 네트워크 안에서도,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견을 가진 사회당원들과 서명운동 조직자들의 반발은 사회당(PS)이나 좌파전선(Front de Gauche)과 정치적으로 가까운 이들이 보여주는 자신의 정체성 보존을 위한 반사적 반응이다.

 

* 전체로서의 사회운동의 활동가들은 패배의 기억을 마음에 새기고 있지만,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강력한 투쟁의 경험 역시 새기고 있다. 2010년까지 프랑스에서는 전국적 규모의 대결이 정기적으로 있어 왔다. 1995, 2003, 2010년 연금 개혁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러했고, 2006년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의 힘으로 CPE(최초고용계약) 반대투쟁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강력한 투쟁이 그러했다. 특히 2006년 빌팽(Villepin) 정부에 맞선 승리는, 정부가 제49조 제3항을 이용하여 법안 통과를 강행한 이후에도 쟁취되었다는 사실 역시 강조되어야 한다. 지금 정부가, 적어도 6월 말까지는 시간이 걸릴(상원을 통과한 후 하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같은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에 이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각주:3]

 

* 다른 맥락에서, 빈민가에 있는 젊은이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은 2005년 클리시 수 부아(Clichy-sous-Bois)에서 지에드(Zyed)와 바누(Bouna)의 죽음 이후 10~11월에 4주 동안 분출했던 도시 봉기[각주:4]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 봉기는 극좌파 일부(LCR: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 등)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정당 및 운동들과 청년들 사이의 완전한 단절을 초래했다. 당시에 사르코지에 의해 낙인찍힌 그런 지역, 특히 모든 법과 질서캠페인의 표적이지만 실업과 고용 불안정의 첫 번째 희생자이기도 했던 젊은 아랍인·흑인들과의 단절은 최근 몇 년간 계속되어 왔다. 나아가 20151월 이래로 프랑스 전체를 휩쓸었던 이슬람혐오 물결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다. 2005년에도 역설적으로 몇 개월 후인 2006CPE 반대 투쟁에서 이 젊은이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현재의 운동에서도 이런 단절이 드러난다.

 

* 사회적, 정치적 구조와 노동조합 구조의 해체가 존재한다. 1990년대 말까지는(그러니까 20세기 말까지는) 노동운동은, 그 정치적 분파까지 포함하여, 마치 여러 개의 실로 교직된 하나의 옷감과도 같았다. 찢어진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역사와 위대한전투들의 기억에서 오는 공통의 준거들이 여전히 존재했던 하나의 옷감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사회민주주의의 재집권은 그 옷감에 있었던 찢어진 부분들을 완전히 절단된 부분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특히, 많은 경우 급진적이며 이민자 운동, 반파시즘 운동, 혹은 기후변화 투쟁에 참여하고 노조 분회와 불안정노동 부문에서 적극 활동하는 새로운 세대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죽어 버린 노동운동의 일부로 느끼지 않음을 의미한다.

 

모순적인 것은, 제도정치에 흡수된 예전 세대의 활동가들은 혁명의 희망을 폐기해 버린 반면에 그러한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대는 많은 경우 자본주의적 야만의 해악에 대해 강력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언제나 혁명적 변혁의 필요성에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많은 경우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아주 강력한 요구와 의사결정을 대표자들에게 위임하는 것(스탈린주의의 대실패와 사회민주주의 정부의 유산)에 대한 거부를 수반한다.

 

이 젊은 세대 내부에는 심대한 이질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단일한 청년 대오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여러 명의 청년들이 있을 뿐이다.) 사회적 분열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사회적 분열은 빈민 주거지로부터 온, 인종주의 사회로 인해 스스로를 흑인, 아랍인 혹은 무슬림으로 규정하도록 강요당하는 젊은이들의 분열로 인해 강화되고 있다. 현재의 운동은 이런 분열들 중 많은 것들을 극복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 산업과 서비스 부문에서의 경제구조의 재구조화는 분명히 조직화의 어려움과 의식의 원자화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운동의 정치적 붕괴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구조 파괴(하청화, 일자리의 기반이 침식되는 것)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 파괴력에 대해서 노조 운동은 제대로 반대를 표시한 바가 없다. 많은 부문에서의 동원과 확장의 어려움은 이런 현실과도 확실히 관련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다시, 같은 계급에 속한다는 의식을 한층 더 약화시킨다.

 

정치적 위기

 

최근 몇 주간에는 정치적 위기의 수준 또한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제도권 정당들의 위기가 있다. 정부와 사회당에 대한 계속되는 거부는 정부가 처해 있는 교착상황, 즉 소속 의원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책을 지지하도록 만들 수조차 없는 상황(엘 콤리 법에 대한 국회 논의의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에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불신은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올랑드(대통령)-발스(총리)는 아마도 제5공화국 시작 이래로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가장 많이 나온 정부일 것이다. 이 위기는 좌파 진영에서의 예비선거를 둘러싼 논쟁(프랑스 공산당의 위기를 악화시키는)과 엠마누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의 이탈[각주:5]과 사회당의 위기를 통해 분명해지고 있다.

심지어 사회당을 빨리 이탈리아의 마테오 린치(Matteo Renzi)의 당의 프랑스 버전처럼 만들려는 발스의 프로젝트조차도 우파에게 선점당한 나머지 실체를 잃고 있다. 이 위기는 공화당에서도[각주:6]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엔 똑같은 이유이다.

 

오늘날 유럽의 모든 주류 정당들은 2008년 이후 가혹하게 강요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개혁에 의한 변화로부터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그리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이어서 프랑스에서도 기성정당에 대한 불신이 나름의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경보를 울리고 있다. 이는 분명 부르주아지에게,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전선들을 무너뜨리며 정치적 장치들을 재구조화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프랑스에서 이 위기는 곧 제도와 정치 시스템 그 자체의 더 심화된 위기와 맞물릴지도 모른다. 5공화국 제도는 강력한 정권과 대통령을 중심으로 상원과 하원, 엘리제 궁을 모두 하나의 정당이 지배하는 시스템을 위해 고안되었다. 드골주의와 지배적 양당 체제의 위기와 함께, 2001년에 의회 다수당을 대통령과 결합시키는 대통령제를 확립한 정치개혁의 도입은 필수적이었다. 이는 동거정부[각주:7]의 불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한 위기 타개책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지배적인 정당들의 우세는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했다.

 

오늘날 선거 기권이 늘어나고 국민전선의 지지가 증가함에 따라, 사회당과 공화당(이전의 UMP)에 대한 불신은 이같은 체제를 허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또한 공화국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영국과 함께) 단일선거구에서 선거를 하고 비례대표제도 없는, 가장 낡은 선거 제도를 지닌 국가임을 보여준다. 심지어 영국보다도 더 나쁜데, 강력한 정치권력을 갖게 되는 대통령의 직접선거는 프랑스를 유럽연합의 주요 국가들 중 유일하게 군주가 실제로 다스리는 국가처럼 만들기 때문이다.

 

발스와 올랑드는 최근 몇 주 동안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정치적 위기를 억제하려고 하고 있다. 먼저, 사회당 내부 반대파의 입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 엘 콤리 법의 처리 과정에서 제49조 제3항을 사용한 것은 정부의 입지를 더 위태롭게 할, 공공정책에 대한 논쟁을 가로막으려는 데 분명히 그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또한 이견이 있는사회당 소수파 국회의원들의 고삐를 죄려고 한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복종하든지 아니면 불신임 안을 내고 찬성함으로써 공공연하게 당과 단절하든지 선택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사실 사회당 내부 반대파는 얼마 동안 이 이슈를 피해갔다. (40명 이상 되는 반대자들 중) 28명의 사회당원들만이 불신임 안건 상정을 지지했다. 불신임 안건이 표결에 부쳐지기 위해서는 의원 10% 이상(58)의 지지를 얻어야 했는 데 좌파의 안은 56명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아무튼 사회당은 더 깊은 위기에 빠졌다.

 

게다가, 정부는 정치적으로는 허약해지면서 그만큼 더 탄압을 통해 권위를 다시 세우고자 한다. 최근 몇 주 동안 경찰폭력의 수위가 점점 더 올라갔고, 파업과 시위 등 운동을 직접 억누르는 국가비상사태 연장으로 인해 경찰국가의 권력 강화가 확인됐다. 정부와 대기업의 손에 있는 언론은 운동을 범죄화하는 한편 폭도들에 맞서자는 캠페인을 조직함으로써 경찰폭력을 은폐하는 악선동을 직통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권위주의는 이 정부와 사회당의 허약함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평당원들 사이에서의 허약함, 의회에서의 허약함, 그리고 그 사회적 기반에서의 허약함을.

 

그래서 밤샘 시위’(Nuit Debout: 노동개악에 맞서는 청년들이 광장에 모여 밤샘 토론·시위를 벌인 행동으로 이 투쟁의 초기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에서의 논쟁에서 특히 드러나는, 이 운동을 특징짓는 마지막 요소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통제받지 않는 관료들이 아니라 당사자들에 의한 의사결정의 선택과 비민주적인 현실 체제 및 제도 사이의 깊은 괴리이다. 정치 체제는 심각하게 비민주적이며 진짜 권력은 누가 봐도 선출된 의회 외부에 존재한다. 은행과 다국적 기업이라는, 자본주의 권력(capitalist power)의 중심부는 법을 만들 뿐만 아니라 법을 지키는 것조차 하지 않아도 된다.

 

금융 시스템, 에너지 선택, 국경 폐쇄, 실업과 불안정 노동에 관한 정책에 대한 거부는 정치체제에 대한 거부를 만들어내고 있는 재료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거부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이는 사회에 잠재되어 있고, 밤샘 시위에서처럼 사람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그런 곳에서는 확실히 명백하다.

 

그래서 이 운동은 많은 강점들과 약점들을 갖고 있다. 다가오는 시기에 어느 쪽이 우세해질지 결판이 날 것이다.

 

착취·억압받는 이들에 대한 정치적 대표의 필요성과 결여

 

이는 공통된 힘을 만들어내는 것에 일관되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 모든 이질적 요소들을 한데 모으고 단결시킬 수 있는 담론과 실천을 가진 정당, 공통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정당의 필요성과 그 부재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 공통의 목표란 파나마페이퍼(조세도피 스캔들), 칼레와 에게해에서 죽임을 당한 수천 명의 이민자들, 기후 재앙, 사회적 불안정성과 궁핍 등을 만들어 내는 정치체제에 맞선 전면적 투쟁이다.

 

지금 발전하고 있는 이 운동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사회 체제의 목적과 구조 모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권력의 현주소와 정치과정과 의사결정에서의 비민주적 규칙들이라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이 운동은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이들에 대한 정치적 대표의 문제, 그리고 지금 떠오르고 있는 요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를 향한 투쟁의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 몇 달 간의 사회적 투쟁(기후, 이민자, 노트르담 데 랑드 공항, 엘 콤리 법에 대한 투쟁 그리고 아주 많았던 파업들)은 저항의 모든 요소들, 즉각적인 요구들과 근본적인 요구 모두를 체제로 향하게 한다.

 

그리고 사회적 필요 충족을 위해 조직되는 사회, 그런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치적 도구, 선택, 토론과 결정이라는 진짜 민주주의 사회를 향한 길을 보여준다. 사회적 투쟁과 정치적 전망(선거 정치가 아닌)은 이 길의 지속적 일부가 될 것이다.

 

투쟁과 저항의 이 모든 요소들은 잔인한 착취를 유지하고 더 늘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일국 및 유럽 차원의 제도들을 무제한적 권력의 장으로 구축 및 재구축하고, 그 어떤 종류의 민주주의나 인민의 통제로부터도 벗어나서 100% 체제 유지에만 급급하는 이 계급사회에 맞설 것이다.

 

그리스의 경험, 이민자들에 대한 거부, 파나마페이퍼와 TAFTA(범대서양자유무역지대)는 이 사회가 실제로 기능하는 방식의 많은 요소들을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보여주었다. 이런 쟁점들에 대한 논쟁은 수년간 사회운동 활동가였던 사람들 사이에서 꼭 필요하다. 또한 각기 다른 경로로 전략에 대한 같은 질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꼭 필요하다.

 

자주 없는 일이지만, 제도에 대한 질문들이 거리에서 그리고 활동가들 사이에서 논의된다. 프랑스의 실제 제도들은 대놓고 인민의 의지에 대한 장애물로 우뚝 서 있다. 결정할 권리에 대한 요구는 진정한 민중의 선택을 가능케 하는 민주적 결정의 도구를 갖겠다는 요구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의 경험은 유럽 차원에서 자본주의적 제도들이 인민 전체의 의지에 반해서 그들의 결정을 강요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좋은 계획을 위한 좋은 후보자라는 생각은 그 자체가 모두 현실의 논쟁과는 대척점에 있다. 제도를 존중하면서 자본가들에 반대하는 정치를 실행하는 것이, 선거에서의 승리 위에 세워진 제도적인 전략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에 맞서는 힘은 유일하게 실제로 체제와 대적할 수 있는 사회적 운동, 그 정치적 실천과 투쟁에서밖에 나올 수 없다.

 

이는 자본주의적 착취 체제의 심장부와 사회적 억압과 정치체제의 제도 및 비민주적인 규칙들을 타격하는 이행기요구들을 내세우는 것을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적 착취가 없고 모든 형태의 억압을 제거할 수 있는 그런 사회로 가는 길을 놓는 이행기 요구들을.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anotherworld.kr/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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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자 - 정식 명칭은 ‘기업경쟁력과 근로자의 직업경로·고용안정화를 제공하는 새로운 사회경제모델을 위한 전(全)산업 협약’으로 2013년 1월에 체결되었다. 손영우의 <프랑스 사회적 대화 구조의 변화: 노조대표성 개혁과 사회 대토론회>(한국정치학회보 49집 1호 2015 봄)에 따르면 “이 합의는 고용유연화의 대가로 사회보장의 대상과 기간을 증대한 일종의 교환 협약이다. 고용유연화의 내용은 과거 기업이 구조조정 실행을 위해선 고용유지계획(PSE)을 제출하고 노사 간의 합의나 행정기관의 심의와 더불어 법원의 허가를 필요로 하던 것을, 노사 간의 합의나 행정기관의 허가만으로도 가능하도록 유연화한 것이다. 이는 법원 판결이 시일을 요하기 때문에 경기변동에 조응하는 신속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데 애로가 있다는 사용자 측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2. 역자 - 슬로우뉴스 기사(위민복, <"노동법, 사양합니다" – 프랑스 노동법 개정안 파동>, 2016.3.25. http://slownews.kr/52696)에 따르면 “2015년 4월, 발스 총리는 콩브렉셀(Jean-Denis Combrexelle) 국무원(정부입법에 자문 역할) 사회분과위원장에게 노동법 개혁에 대한 보고서를 의뢰”했고 이 보고서 내용을 기초로 현재 문제가 되는 노동개악안을 만들었다. [본문으로]
  3. 집권 사회당 내의 이탈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엘 콤리 법은 지금 의회 표결없이 총리의 긴급명령권 발동으로 통과된 상황인데, 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의회가 내각에 대한 불신임 발의를 채택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원내에서 좌파인 좌파전선 등은 노동개악에 반대해서, 우파인 국민전선 등은 더 강력한 개악이 필요하다며 각각 내각 불신임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사회당 이탈표가 예상보다 크지 않으면서 좌파적 불신임안과 우파적 불신임안 모두 과반을 넘지 못하면서 부결됐다. [본문으로]
  4. 역자 - 이른바 ‘방리유 소요 사태’로 알려진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의 기사가 잘 요약하고 있다. 2005년 10월 27일 파리 외곽도시 클리시 수 부아에서, 아프리카 이민자 2세였던 17세 지에드와 15세 부나가 경찰의 검문을 피해 도망치는 과정에서 송전소 2.5미터 높이의 담을 넘다가 변압기에 떨어져 감전사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사고가 발생하자 경찰은 "주변에 일어난 절도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이들 소년을 용의자로 보고 검문을 하려 했을 뿐 추격전은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사건 당일 주변 지역에서 절도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많은 방리유(파리 외곽에 있는 빈민 주거지)의 이민자 젊은이들의 분노를 촉발했으며, 당시 내무장관인 사르코지가 방리유 거주자들을 쓰레기에 비유하는 발언을 하고 ‘톨레랑스 제로’를 선언하는 등의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도 방화 등의 사태가 확산되는 데 일조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91331 [본문으로]
  5. 프랑스 원문 각주 - 올랑드 정부의 경제부 장관인 엠마누엘 마크롱은 더 이상 사회당 당원이 아니며 친기업적(pro-business) 태도를 과시하고 있다. 그는 “En Marche”라는 정치운동을 설립했으며 2017년 대선후보로 참여할 의사를 곧 발표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돌고 있다. [본문으로]
  6. 프랑스 원문 각주 - 공화당은 주류 우익 정당이다. UMP(대중운동연합)가 2015년 5월에 명칭을 바꾼 것이고 사르코지가 다시 당의 지도부를 맡았다. [본문으로]
  7. 역자 - 이른바 이원집정부제 하에서 대통령과 총리의 정당이 달라지는 상황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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