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3월 15일 마지막 한판이 남았지만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승부는 이미 수많은 관심과 논란을 일으켰다. 수천대의 컴퓨터 CPU를 연결해 수십만 번의 대국을 통한 ‘지도학습’과 ‘강화학습’을 한다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완전히 이기는 것은 처음부터 어려웠던 것 같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해가며, 온라인 연결망을 통한 협업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시킨다면 앞으로의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두뇌 신경망을 모델로 삼아 정교하게 설계된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 과정을 따라잡고, 부분적으로 능가하게 된 상황은 유물론적 세계관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기계적이지 않은] 유물론은 의식과 정신을 고도로 조직된 물질에 기반해 인간와 사회의 유기적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제 고도로 집적된 인공신경망은 계산, 응용을 넘어서 인간의 직관까지 흉내내기 시작했다. 이게 체스나 바둑만이 아니라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고 그것이 결합되면서 범용화되고 로봇기술과 결합될 수 있다. 그러면 단순반복 작업과 노동만이 아니라 숙련노동, 지식노동, 서비스노동에서까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예측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내가 이마트에 가서 매장을 몇 번 돌면서 시식을 할 때 ‘저 사람 또 먹네’하며 나를 흘겨보며 쓴웃음을 짓던 여성노동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인공지능 로봇이 서서 ‘손님은 좀 전에 이미 여기서 한 번 시식을 했습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가 다양한 음식을 시식하면서 느끼던 만족감과 묘한 스릴, 재미도 사라질 것 같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 인터넷이 추동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예측들에도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의사 알파고, 기자 알파고, 회계사 알파고, 변호사 알파고와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친기업 기구와 언론들은 ‘이제 더 많은 노동유연성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특히 ‘군사분야와 전쟁무기에서 핵무기 이상의 혁명적 발전을 이룰 것’이란 전망은 소름끼치게 한다. 이미 중동에서 드론을 통한 폭격과 학살은 재앙을 만들고 있는 데 말이다. 의사 알파고가 내린 진료와 처방은 과연 ‘돈보다 생명’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자율주행차는 교통사고에 직면해 보험금과 수익성을 우선해 판단하지 않을까? 인공지능 무기는 누구를 죽여야 할 적군이나 테러리스트라고 인식할 것인가?
앞으로 이런 판단과 결정은 바둑돌 한번 놓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해질 텐데 말이다. 또 그런 판단과 결정이 낳은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물론 핵심은 인공지능 자체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알고리즘을 짜느냐에 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도 ‘인류의 위협은 로봇이 아니라, 로봇이 생산해낸 재화를 잘못 분배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이런 논의가 나올 때마다 자주 인용되는 마르크스의 말과도 비슷하다.
“기계 그 자체는 노동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시간을 연장시키며, 기계 그 자체는 노동을 경감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 강도를 높이며, 기계 그 자체는 자연력에 대한 인간의 승리이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인간을 자연의 노예로 만들며, 기계 그 자체는 생산자의 부를 증대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생산자를 가난하게 만든다.”
구글은 ‘감정적 동요, 두려움도 없고 포기하지 않는’ 게 알파고의 장점이라고 했다. 여기에다가 엄청난 빅데이터에 입각한 확률·통계적 판단의 속도와 정확성은 갈수록 누구도 알파고를 이기기 어렵게 될 것이다. 1초에 수십만 개나 찾아내는 온갖 경우의 수에 대한 평가에 기반한 것일테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마치 알파고처럼 감정적 동요가 없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노동자들이 추운 겨울을 넘어 1년 가까이 철탑과 전광판 위에서 농성하고 죽어가도 꿈쩍도 않는 기업들이 있었다. 차가운 물 속에서 죽어간 아이들을 기억해달라고 울부짖는 부모를 못 본 척하는 대통령도 있었다. 성노예 피해자들이 사과를 요구하다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도 눈 하나 깜박 않고 등에 칼을 꽂는 정부도 있었다.
이 사람들이 알파고의 기술과 능력을 독점하고 더욱 발전시키게 된다면 많은 문제들이 제대로 풀리기 보다는 더욱 악화되고 심각해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그들의 지식과 지능은 더욱 확대·발전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지혜와 지성은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알파고와 달리 감정적 동요와 두려움을 느낄 줄 아는 것은 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흔들리고 두려워하고 슬퍼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것이다. 또 따듯한 감정이 살아있는 인간은 다른 인간의 두려움과 고통, 슬픔에 자기 일처럼 아파하고 공감할 수도 있다. 그런 고통과 슬픔이 사라지는 더 인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 손을 잡고 함께 투쟁할 수 있다. 내가 지난주 토요일에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총회에 가서 본 사람들이 바로 그랬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그 차가운 바다 속에서 느꼈을 아이들의 고통과 공포를 다시 떠올렸다. 지난 2년간 가족들이 겪은 고통에 공감했다. 같이 눈물 흘렸고 손을 잡았고 노래를 불렀고 새로운 다짐을 했다. 그 사람들 속에 함께 하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던 뜨거운 감정은 무슨 ‘가차없는 무자비한 훈련’을 하고 어마어마한 ‘강화학습’을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닐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다가오는 진정한 대결은 알파고와 인간의 대결이 아니다. 인간적 가치와 감정을 우선하는 다수의 인간들과 그것을 외면하고 짓밟는 소수의 인간들의 대결이다. 그들은 소수지만 부와 권력을 쥐고 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조진웅의 명대사가 말해주듯이 우리가 포기하면 20년, 아니 100년이 지나도 더러운 세상은 그대로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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