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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

예측이 어긋나면 스스로의 분석부터 돌아봐야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3. 9.

전지윤





정치적 고민의 발전은 자유로운 쌍방향 토론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내가 한때 회원이었던 노동자연대의 최일붕 동지가 민중주의란 무엇인가?’(<노동자연대>168)라는 글에서 내 주장을 직접 인용하며 비판한 것이 반가운 이유다.


최일붕 동지는 이 글에서 공무원연금 개악을 수용하고, 민주노총 총파업에 사실상 반대하며, 민주당과 전략적 야권연대를 지지하며 계급협력을 추진하는 민중주의가 왜 문제인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이들의 생각을 잘 대변한 한 민중주의적 논평이라며 내 글(http://rreload.tistory.com/236)의 일부를 인용한다. 이 기사는 “<노동자 연대> 신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인용한 논평가처럼 기회주의적이 되진 말아야 한다며 끝난다.


글을 인용하면서 내 이름과 출처도 밝히지 않은 것은 좀 이해가 안 가는데, 아무튼 나에게 기회주의적 민중주의 논평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2014년 초에 노동자연대 일부 동지들이 나에게 붙여줬던 경기동부연합의 파르티잔”, “진보당 변호인”, “아나키스트등의 이름보다 더 나을 건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http://rreload.tistory.com/28) 따라서 이런 토론 제기에 응답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자 동지적 예의일 거라고 생각한다


논쟁적 반박을 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두고 싶은 것은 내가 노동자연대 동지들의 주장에서 여전히 많은 부분을 공감·지지하며, 언제든 협력할 생각이 있으며, 무엇보다 그 동지들의 투쟁과 연대에 대한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나는 결코 공무원연금 개악을 수용하고, 민주노총 총파업에 사실상 반대하며, 민주당과 전략적 야권연대 등 계급협력을 추진하자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일붕 동지가 인용한 내 글을 봐서도 전혀 그런 내용을 찾을 수 없다. 최일붕 동지는 혹시 노동자연대 회원들이 어차피 내 글은 읽지도 않고 확인도 안 해 볼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이런 식으로 구체적 근거와 인용 제시도 없이 자의적으로 상대의 입장을 왜곡해선 안 된다. 이런 노동자연대 동지들의 논쟁 방식이 왜 문제인지를 나는 노동자연대 내에서 논쟁을 벌였던 2014년 초에도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따라서 나는 아래에서 가능한 구체적 근거와 인용, 출처를 밝히며 노동자연대 동지들의 주장을 논박하고자 한다.

 


기회주의적 민중주의 논평가?

 

먼저 최일붕 동지가 이상하게 뒤틀어버린 내 주장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단 나는 공무원연금 개악을 강력 반대했다.

 

이미 기초연금을 깍은 정부가 이제 공무원연금을 깍은 후, 국민연금도 깎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경제 위기 고통전가의 디딤돌이 될 공무원연금 개악을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막을 이유는 분명하다.” http://rreload.tistory.com/101

 

민주노총 파업도 적극 지지했고 성공을 응원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옳게도 재벌에게 책임을! 노동자에게 권리를! 청년에게 일자리를!’ 외치며 재벌 배불리기에 맞선 노동자 서민 살리기 총파업을 호소하고 있다.”

http://rreload.tistory.com/212

 

우리의 과제도 명백하다. 한상균 위원장을 엄호하고, 민주노총 파업의 불씨를 살려서 큰 불길로 만들며 노동개악을 반드시 막아내는 것이다.” http://rreload.tistory.com/231

 

민주당을 항상 불신했고, 민주당과의 계급협력이나 야권연대를 명백히 반대해 왔다.

 

“‘새민련의 노동개악 저지 약속을 믿고 자진출두하자는 주장은 조금도 설득력이 없다. 이미 노동5법중 3법만 우선 처리로 말을 바꾼 이 뒤통수 전문당을 어찌 믿겠는가. 사실 1·2차 총궐기가 만들어 낸 압력이 아니었다면 새민련은 임시국회로 미루지 않고 정기국회에서 진작에 노동개악에 야합했을지 모른다.” http://rreload.tistory.com/231

 

“‘통합정의당에서 연립정부를 향한 야권연대주장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불길하다. 이런 목소리를 견제하겠다며 정의당으로 들어갔던 좌파들의 침묵은 더욱 안타깝다.”

http://rreload.tistory.com/241

 

이토록 사실이 분명한데, 왜 최일붕 동지는 나를 공무원연금 개악을 수용하고, 민주노총 총파업에 사실상 반대하며, 민주당과 전략적 야권연대를 지지하는 민중주의 논평가라고 부르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가 노동자연대 자신의 분석과 예측, 주장이 현실과 어긋나자 핑계거리와 희생양을 찾는 것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먼저 노동자연대 동지들이 어떤 분석과 예측, 주장을 내놓고 있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연대 동지들은 벌써 10년 가까이 노동계급의 귀환이라며 조직노동자 투쟁의 커다란 분출 가능성을 주장해 왔다. 안타깝게도 기대는 거듭 좌절돼 왔지만 말이다.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회복되면서 투쟁에 나서게 될 것이다라는 이런 기대는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한상균 지도부의 등장이 이 기대를 더욱 높였다. ‘좌파 지도부가 호소하면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논리였다.

 

현장 조합원들은 지도부가 투쟁을 호소하면 응할 태세가 돼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노동자연대> 156, 아래부터는 신문 호수만 표시하겠다.)

 

현장 조합원들은 노조 지도부가 단호하게 파업을 호소하면 이에 응할 의사가 있다. 현장 조합원들이 상층 지도자들보다 왼쪽에 있다.”(158


이에 따라 지난해에도 노동자연대의 주된 강조점은 조직 노동자 운동에 대한 개입에 있었다. “‘노동자연대는 현 시기 우선순위를 계급투쟁에 맞추고 있다.”(150) ‘조직 노동자 투쟁이 곧 계급투쟁이라는 도식도 느껴지지만, 이에 따라 지난해 노동자연대는 거의 항상 총파업 호소와 건설을 결론적 과제로 제시했다.


파업 지침을 내린다면, 주요 부문이 파업에 돌입하고 투쟁을 확대해 나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165)는 낙관 속에서 말이다. 주요 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을 결의하자 낙관과 기대는 더욱 높아졌고 약간의 자아도취로도 발전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의 좌파적 입장 덕분에 전교조와 건설노조, 심지어 금속노조의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에 의해 4.24 총파업 계획이 승인됐다. 물론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즉 노동자연대 자신]의 설득력있는 주장과 효과적인 조직 덕분이기도 했다.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핵심적 노동조합 전술이 구체적으로, 또 비교적 성공적으로 현실화된 양상이다.” (소책자 <2015년 정세와 좌파, 마르크스주의자의 과제> 106)

 

반면 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나도 좌파적인 한상균 지도부의 등장을 환영했고, 그 지도부가 건설하려는 파업을 적극 지지했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직시하려 했다.

 

지금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호소하면 바로 응할 준비와 태세가 돼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단지 우파적 지도부와 관료들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는 것도 너무 단순한 얘기다.” http://rreload.tistory.com/212

 

그리고 지난해를 정직하게 돌아본다면, 노동자연대 동지들의 기대와 낙관대로 상황이 풀렸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세 차례가 넘게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실질적인 파업은 잘 실행되지도 확대되지도 않았다


 

핑계거리와 희생양 찾기

 

그렇다면 노동자연대 동지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분석과 예측에서 어느 부분이 문제였는지 돌아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동자연대 동지들은 핑계거리와 희생양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자신들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들을 문제삼았다. 처음에는 다양한 딱지를 붙였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의 중요성을 무시하며 열악한 비정규직 투쟁이어야만 더 급진적이라는 식[의 주장은] 도덕주의 공상적 사회주의 자율주의 정치의 유산”(152)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주장을 모두 민중주의라고 딱지 붙여서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번 최일붕 동지의 민중주의란 무엇인가글과 밀접한 관련기사인 김하영 동지의 ‘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민중주의 vs 계급정치를 보면 그것이 분명해진다.


물론 최일붕 동지는 이미 예전에도 그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최저임금을 가장 중요한 요구로서 제기하는 것은 포퓰리즘적이란 논리였는데 자기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생활조건보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등을 중시하는 것은 계급을 초월해 국민적(민중적 또는 대중적popular’) 지지를 받겠다는 것이란 비판이었다.(150)


결국 이번 최일붕, 김하영 동지의 글을 통해서 나타난 주장을 요약 정리하면서 인용하자면 이렇다. 민중주의자들이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공적연금 강화로 대체하거나, ‘최저임금 1만 원같은 요구를 제기하는 데 강조점을 두고 비정규직 관련 쟁점만 부각하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노동개악 반대가 가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민중주의자들이 총파업을 민중총궐기로 대체해 버렸다고 했다. “조직 노동자들의 동원을 회피하고 총파업 성사에 큰 열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중주의자들과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파업이 아니라 가두 시위에만 힘을 실은 결과 노동자 투쟁은 더 이룰 수도 있었던 전진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민중주의자들은 “‘노동개혁반대를 부각시키면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의 참가가 어렵다노동개악 반대라는 기조를 흐리려 했다. 이것은 계급을 초월하여 단결하려는 민중주의자들과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총선을 의식해 새정치연합-더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공조하는 것을 우선시한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168)

 

과연 지난해에 조직 노동자들은 파업 호소만 하면 싸울 자신감과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인가? 계급 협력을 우선시한 민중주의자들과 민주당과의 공조에 매달린 민주노총 지도부가 그 투지를 억누르며 성사 직전이던 총파업을 망쳤나? 총궐기는 총파업을 피하려고 고안된 것이었나?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적어도 세 가지 문제가 해명돼야 한다.

 

첫째, 최저임금 1만 원, 공적연금 강화, 비정규직 관련 요구가 왜 전국민의 지지를 받겠다는 뭔가 덜 중요한 민중주의적 요구인지가 설명돼야 한다. 먼저 비정규직 관련 요구와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는 노동계급의 가장 열악한 부문을 위한 명백한 노동계급의 요구이지 중간계급이나 전국민적 요구가 아니다.


이게 계급을 초월한 전국민적요구라면 왜 주류정당들이 이 요구를 한사코 반대하거나 대변하지 않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게다가 비정규직 문제는 이번 박근혜 노동개악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것을 노동개악 반대와 분리된 무엇으로 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공적연금 강화는 논란이 될 수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공적연금 강화를 위해 공무원연금 삭감도 수용해야 한다는 잘못된 논리를 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 요구가 노동계급의 요구가 아니라거나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는 없다.


우파가 비정규직 조건 개선을 위해 정규직이 양보하자는 논리를 편다고 해서, ‘따라서 비정규직 조건 개선을 지지할 수 없다는 답이 나오진 않듯이 말이다. 여기서 답은 단결 투쟁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의 조건을 개선하자가 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단결 투쟁을 통해 공무원연금 개악을 막고 공적연금 강화도 이루자가 옳은 방향이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공적연금의 강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며, 무엇보다 공무원연금 자체가 공적연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둘째, 한상균 지도부가 지난해 몇 차례나 총파업 지침을 내린 것이 과연 총파업을 억누른 것인지, 그런 파업 호소에도 왜 실질적인 파업이 벌어지지 않은 것인지가 설명돼야 한다. 김하영 동지는 거듭해서 기층 노동자들은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왔다. “올해 기층 분위기는 근래 어느 때보다 괜찮았다”(157), “노동자들은 지도부의 투쟁 호소에 부응할 태세를 보여 줬다.”(167).


그런데 왜 몇 차례나 불을 붙여도 불이 타오르지 않은 것인가? 이에 대해 김하영 동지는 산하 연맹과 주요 노조의 지도자들 상당수가 파업 지침을 내리지 않았거나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159)이라는 답을 내놓고 있다.


즉 총연맹 지도부가 파업 지침을 내려도 산별, 연맹, 지부 지도부 등에서 그것을 가로막았다는 설명이다. 이것은 일부 사실이다. 그런데, 그러면 논리적으로 총연맹만이 아니라 산별, 연맹, 지부까지도 모두 진정한 좌파 지도부로 교체되고, 그래서 파업 지침이 어디서도 막히지 않고 내려갈 때만 총파업이 가능해진다는 말이 된다.


일단 그런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쉽지 않아 보인다. 나아가 이런 설명 자체가 기층은 충분히 파업할 태세가 돼 있다는 주장과 모순된다. 총연맹, 산별, 연맹, 지부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파업이 이뤄질 수 없다면, ‘아직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파업 태세가 충분치 않다는 게 현실에 대한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셋째, 총궐기가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을 피하기 위해고안된 것이라면 왜 그토록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고, 노동개악법의 국회 통과를 늦추는 효과를 낸 것인지 설명돼야 한다. 정말로 이것이 총파업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그런 후퇴를 반겼어야 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 정부는 총궐기에 대해 히스테리를 일으켰고, 민주노총 1,2차 총파업 때를 넘어선 지난 3년간 어느 때보다 압도적 탄압으로 막으려 했다.


또 이것이 그토록 국민적 인기를 얻을 만한 운동이었다면 정의당 지도부같은 개혁주의자들이 총궐기와 거리를 둔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정의당 지도부는 총궐기 투쟁 본부에 참가하지 않았고, 심상정 대표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으로 힘을 발휘하길 바라는 시민의 마음을 말하며 총궐기와 선을 그었다.(물론 기층 조직과 당원들은 총궐기에 참가했다.)


총궐기 11대 요구에는 노동개악 저지가 중심에 있었고 매번 총궐기마다 주요하게 배치됐다. 나머지 세월호 진실, 국정화 반대, 보안법 폐지, 민영화 반대 등의 요구 중에서도 뭔가 계급을 초월한 민중주의적 요구는 찾기 힘들다. 만약 이런 요구들이 노동개악 저지보다 덜 중요한 요구라는 게 노동자연대의 생각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관점의 반영일 것이다.


게다가 이 정권이 그토록 매달린 노동개악법 통과가 아직까지 안 된 것은 4차까지 이어진 총궐기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총궐기 건설에 협력한 모든 단체와 아직도 누워계신 백남기 님 등 수많은 평범한 참가자들이 여기에 기여한 것이다.



한상균 지도부, 자주파, 정의당

 

물론, 지난해 총파업 등의 투쟁 건설 과정에서 미온적이거나 걸림돌이 된 정치적 입장과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은 필요한 일이다. 예컨대 현대차 이경훈 지부장은 명백히 총파업에 찬물을 끼얹고 훼방꾼 노릇을 했다. 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은 연금 개악 반대 투쟁 막바지에 배신적 합의를 했다. 정의당 지도부는 연금 개악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거나, 민주당과의 공조를 강조하면서 정치적 악영향을 끼쳤다. 이것은 안 그래도 충분히 높지 않았던 운동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더 줄어들게 만드는 효과를 냈다.


따라서 노동자연대 동지들이 지난해 투쟁을 돌아보면서 이에 대한 비판을 강조했다면 이해할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아스럽게도 비판의 화살은 주로 민주노총 지도부와 자주파를 향해서 날아가고 있다. 물론 누구든 약점이 있고 잘한 일만이 아니라 잘못한 일도 있으니 비판은 가능하고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한상균 지도부가 새정치민주연합이 정기국회 내 처리를 막아 줄 것을 확신하며 의탁”(162)했다거나 새정치연합을 믿고 12월초 노동개혁저지 총파업 투쟁을 철회”(163)했다는 비판은 번지수가 좀 안 맞는 것 같다. 급진좌파를 기반으로 한 한상균 지도부의 주된 약점은 민주당에 대한 환상과 의탁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주파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인데, 종북몰이와 탄압의 표적이 된 자주파는 현재 민주당과의 동맹 등 계급 연합 정치를 기본적 지향대로 온전히 추구할 조건에 처해있지 못하다. ‘종북불똥이 튈까봐 겁먹은 민주당과 심지어 정의당까지도 자주파를 왕따시키는 판이니 말이다.


이처럼 제도정치에서 강제추방당하고 야권연대에서도 배제된 자주파가 지난해의 구체적 상황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주력한 것은 오히려 기층에서 총궐기 등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총궐기 건설에 가장 열심히 앞장선 것은 바로 자주파였다. 한상균 지도부의 총파업 호소에도 자주파 성향 노조들이 상대적으로 더 호응했다.


그러다보니 자주파의 계급연합 추구가 투쟁을 망쳤다는 노동자연대의 비판은 구체적 상황의 맥락 속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설마 총궐기에서 나타난 노동자·농민·빈민의 단결을 계급연합이라고 보는 것일까? 실제로 노동자연대는 자주파가 주축이 된 민중연합당노동자와 농민의 대등한 동맹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168)고 말하고 있는 데, 이런 비판은 너무 억지스럽다. 총궐기에서든, 민중연합당에서든 민주노총과 전농의 협력과 연대가 노동계급의 요구를 축소시키고 투쟁을 가로막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민주노총 지도부와 자주파에 대해서는 이토록 지나친 잣대를 들이대는 노동자연대가 정의당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우호적 태도를 보인다는 데 있다. 먼저 정의당의 성장을 높이 평가하며 이것이 대중 의식이 좌경화하는 상황을 반영한다. 따라서 급진 좌파는 개혁주의의 성장을 환영해야 한다”(167)고 주장한다.


정의당은 진보 염원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총선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168)고도 한다. 따라서 좌파는 정의당에 투표하라고 대중에”(166)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정의당 내 좌파와 공동전선을 구축할 줄도 알아야 한다”(161)는 것이다.


사실, 정의당은 참여당계가 중요한 일부로 남아 계급연합적성격이 짙어진 진보정당이다. 종북몰이에 굴복했을 뿐 아니라, 그에 따른 자주파 배제의 논리로 진보의 단결에도 어깃장을 놓아 왔다. 아래로부터 투쟁보다 위로부터 제도적 해결을 강조할 뿐 아니라 민주당과 전략적 연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반제국주의 문제에서도 거듭된 후퇴를 보여 왔다.


즉 여러 진보정당들 중에서도 특히 더, 조직 노동의 일부가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반영하며 그것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좌파는 여러 진보정당들과 마찬가지로 비판적 지지의 태도로 정의당을 대하면서도, 비판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연대의 태도는 그 반대다. 왜 그럴까? 정의당이 총궐기 등 투쟁에 적극적이어서? 앞서 봤듯이 총궐기에 더 적극적인 것은 오히려 민중연합당이었다. 정의당의 당원수가 가장 많아서? 당원수로 따지면 민중연합당은 한 달만에 2만을 넘었다. 조직 노동자의 비중이 높아서? 민중연합당이 오히려 더 높다. 총선에서 원내 진출 가능성이 가장 높아서? 그것은 좌파가 태도를 취하는 근거로는 영 이상하다.


과연 최소 3석이라도 당선 가능한 비례후보를 공천할 수 있는 것은 현재로서는 정의당”(167)이라는 점 때문에 노동자연대 동지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내가 추정하는 것은 이것이 2012진보당 경선부정과 관련있다는 것이다. 당시 노동자연대는 정의당 세력과 비슷한 논리로 진보당 세력을 공격하다가 탈당했다.


나중에야 경선부정은 진보당 세력에게 씌어진 누명이란 게 밝혀졌지만, 노동자연대는 그것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정치·연대에 들어가서 진보당을 배제한 정의당과의 통합 움직임을 따라가 왔다.(http://rreload.tistory.com/108)


진보 통합을 하자면서 특정 세력을 왕따시키는 것은 명분없는 일이었지만 노동자연대는 그것을 지지했다.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하기보다 입장의 일관성을 택했다.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사태 당시 NL계는 선거 부정을 하지 않았다며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반성적 성찰 없이 과연 진보대통합이 될 수 있을까.”(157)


최종적으로 정의당과의 통합까지 따라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정의당 안의 노동·정치·연대와는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게 노동자연대의 입장인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최일붕 동지가 강조하는 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전망”(168)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결론적으로 나는 노동자연대 동지들의 지난해 투쟁에 대한 평가와 제시하는 방향에 부적절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첫째, 현재 운동의 상태를 냉정하고 구체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게 한다. 기층 노동자들은 자신감이 높고 싸울 태세가 돼 있었는데 지도부의 비효과적 지도와 투쟁 회피, 심지어 배신이 문제였다”(167)며 너무 단순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노동운동의 약점을 포착하고 극복하는데 부족한 것 같다. “자기 조합원들의 조건경제적 요구”(168)를 너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조합원들의 조건과 경제적 요구에 따라서 칸막이화되고 각개 약진·격파 당하는 게 현재의 문제인데 말이다.


셋째, 사분오열을 넘어선 노동운동의 단결 추구에도 적절치가 않다. 특정 세력을 배제한 진보 통합을 추수하고, 모처럼 정파를 넘어선 공동 투쟁과 단결의 가능성을 보여 준 총궐기는 깎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 생산적 토론을 위해

 

반면 나는 관련 기사들에서 거듭 주장해 왔듯이 파업 선언이나 노조 지도부에 대한 압박만으로는 파업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http://rreload.tistory.com/249)고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 한상균 지도부가 탄압을 무릅쓰며 파업을 호소하고 건설하려고 노력한 것은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모처럼 분열을 넘어서, 오랜 시간에 걸쳐, 공동의 요구를 중심으로 건설한 총궐기도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앞으로도 이런 단결과 공동 투쟁의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 노동개악만이 아니라 세월호 진실, 국정화 반대, 위안부 합의 폐기, 테러방지법 폐지 등의 요구와 투쟁을 결합하려는 시도도 계속돼야 한다. 이 모두가 전체 노동계급의 삶과 권리를 위한 핵심 요구들이며, 저들이 이 모든 것을 연결해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운동의 다양한 정파와 지도자들이 보이는 부족함과 여러 문제들은 비판·극복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투쟁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더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핵심은 아무리 좌파적·전투적인 지도부라도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줄어든 투쟁의 동력을 지도부의 소명만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좌파적·전투적 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 힘이 뒷받침돼지 않는 이상, 좌파적·전투적 지도부는 허수아비일 수 있으며 투쟁 회피적 노조 지도자들의 목소리도 제어될 수 없다는 데 있다.” http://rreload.tistory.com/236


이와 관련해서 나는 노동자연대 등의 분석과 주장에 대해 더 자세하고 폭넓게 다루며 비판과 대안을 제시한 논문을 쓴 바 있다.(<신자유주의와 노동운동 - 새로운 투쟁의 도약을 위해> http://rreload.tistory.com/219)


이 외에도 나는 노동자연대의 분석과 주장에 대해 몇 가지 글들을 써낸 바 있다. 이것은 무슨 악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노동자연대에서 내가 배운 것들이 소중했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동자연대 동지들로부터 반응이나 답변은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번처럼 자신들의 신문에서, 그것도 가장 주도적 동지가 내 주장을 직접 인용하면서 비판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이것이 과연 뭔가 제대로 된 토론으로 발전할 것인가? 사실, 2014년에 내가 노동자연대에서 이탈하기 직전에 있었던 것은 토론으로 보기 힘들었다. 일방적으로 징계를 당한 상황에서, 예컨대 한 토론회에서 나를 비판하는 29명의 발언 속에 지지 발언 1명이 허용되는 식이었으니 말이다.


생산적 토론을 위해 최일붕 동지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 구체적 논거와 인용은 부족한 반면, 자신의 박학다식과 역사적 사례들을 과시적으로 나열하며 어려운 용어와 온갖 ‘~주의를 남발하는 것이 읽기는 힘들면서 알찬 토론에는 별 도움 안 되는 것 같다. 모쪼록 내실있고 동지적인 토론을 통해서 이 나라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이 나라 노동운동의 한 절정이었던 97년 노동법 개악 반대 파업은 사실 안기부법 개악 반대 파업이기도 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를 통해서 노동계급의 눈귀를 막고 손발을 묶어서 밥그릇을 빼앗으려 했다. 당시 조직 노동운동은 전체 노동계급을 위해 이런 공격에 맞설 자신감과 투쟁력을 어느 정도 보여 줬다.


하지만 지금 조직 노동운동은 노동개악 법안을 가까스로 막고 있는 처지이며, 테러방지법 통과는 막지 못한 상황이다. 굴복으로 마무리될 게 뻔한 민주당의 무제한 토론을 쳐다보는 우리의 가슴은 갑갑하기만 했다.


조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조건과 요구가 중요하고 우선이라는 협소한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 이 체제가 만들어내는 모든 모순과 부조리, 불의에 맞서서 부문을 넘어선 전체 노동계급이 무제한 투쟁을 벌이는 미래를 향한 우리의 꿈은 꺾일 수 없을 것이다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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