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에서 이어진 수많은 죽음과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반올림의 삼성 본관 앞 노숙 농성이 해를 넘겨서 세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 11일에 변혁재장전 이상수 동지가 농성장에서 진행된 ‘이어말하기’에 참가해서 삼성을 폭로하고 비판했다. 그 발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사회자 : 오늘은 연합뉴스 오보 특집 이어말하기이다. 삼성전기에서 엔지니어로 일하셨던 이상수님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겠다.
이상수 : 오늘 무슨 말을 할까 고민을 하면서 오는 중에 반올림과 삼성의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언론보도를 보게 되었다. 오보인 것은 알겠는데 다들 언론 대응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시길래 자세한 내용을 묻지 못했다. 이야기 시작 전에, 어떤 상황인지 질문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다.
사회자 : 13일(목) 오전 관련 내용이 발표될 예정이다. 재발방지대책에서 삼성과 합의가 되었다. 사과/보상/재발방지 세 개 의제 중 사과와 보상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마치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오보들이 쏟아졌다.
사회자 :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이상수 : 삼성전기에 99년 말 입사해서 11년 조금 넘게 일을 했다. 주로 PCB(인쇄회로기판)를 연구/개발하는 엔지니어였다.
사회자 : 삼성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는데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안전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가?
이상수 : 당시에는 거의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가 반올림의 활동을 보면서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 PCB 분야는 반도체에 비해 덜 위험한 물질을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반올림에 제보된 사건들을 보며 PCB 산업에서도 백혈병 같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기 때문에 업무 이외의 안전 문제까지 신경쓸 여력이 별로 없다. 엔지니어의 일을 간단히 요약하면 요구받는 특성을 가장 값싸게 구현하는 것이다. 재료 하나를 선택해도 온갖 특성과 가격 등을 비교해서 선택하지만, 안전 문제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나처럼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이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심각한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삼성같은 거대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는데 방기하고 있다. 반올림의 활동이 중요한 이유다.
사회자 : 반올림이 알렸다기 보다는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으로 알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삼성이 미리 예방을 했으면 문제가 이렇게 크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다. 실제 삼성이 그리 위험한가?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이상수 : 충격적인 사건이 한 번 있었다. 제품의 정합을 맞추기 위해 홀을 가공하고 X-ray로 검사하는 장비가 있었다. 어느 날 보니 검사하는 제품을 X-ray가 통과하는 부분이 전혀 차폐되지 않고 있더라. 빛이 수정(크리스털)을 통과할 때 온갖 방향으로 굴절되듯이 X-ray가 금속을 통과하면 온갖 방향으로 굴절된다. 당연히 X-ray가 사람에게 노출되는 것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원래 차폐막이 있었는데 오래 사용하던 중에 떨어져나간 것이었다.
오퍼레이터만이 아니라 엔지니어들도 자주 왕래하는 곳인데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에 그곳에서 안전에 대한 인식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안전 부서에 메일을 보내고 수정을 요청했지만 잘 반영되지 않았다. 바로잡는 일도 노동자들이 하는 일인데 다들 바쁘다보니 고쳐지지 않은 것 같다. 이게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니 삼성에서 안전이 철저히 지켜지기는커녕 스스로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킬 능력이 부족해보인다.
한 번은 동료의 부탁으로 오븐에서 건조된 제품을 꺼낸 적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고 기침이 나서 깜짝 놀랐다. 당시에는 별다른 상식이 없다보니 얼마나 유해한지는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반올림을 통해 고온에서 유기물질이 반응을 하면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같은 발암물질을 포함해서 여러 해로운 물질들이 나오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자산업에서는 이런 종류의 공정이 매우 많고, 특히 개발 과정에서는 안전문제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사회자 : X-ray를 사용하는데,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사용하고, 얼마만큼의 사람이 오가는지도 모르고. 안전하지 않음을 알려주지 않으면 누가 알겠느냐.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고, 위험에 대해 대응하도록 해야 하는데, 삼성은 초일류 기업에 걸맞게 대책을 세워야 했던 것이다. 내일 재발방지대책에 대해 합의를 이루더라도 삼성의 위험이 제대로 관리 되고 감시되도록 함께 관심가져 주셨으면 좋겠다. 삼성에서 안전 문제가 잘 지켜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이상수 :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해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실효성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간 삼성이 그 노력을 충분히 해왔다고 할 수 없다. 또 사회적으로 규제와 감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삼성 내부에 있는 노동자들의 힘도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의 노동자가 정규직이었는데 10년도 안 돼서 조반장과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생산직 노동자가 사내하청 형태의 비정규직이 되었다. 현대차의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도 얻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만들어냈는데,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한 삼성의 사내하청 노동 문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없어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게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규제가 실제 현장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이 중요하다.
사회자 :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는 안전 문제에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안전장치가 없는 것에 노동자가 문제 제기했는데, 아무런 개선이 없었다는 것을 보면, 삼성은 노동자들의 이런 문제제기, 아래로부터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본다. 며칠 전 농성장에서 장마를 준비해야 한다고 얘기했었는데 다음 겨울까지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삼성이 이렇게 오랫동안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상수 : 그동안의 과정이 삼성 스스로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정부가 일본의 아베 정부와 위안부 합의를 했다고 자화자찬 하는데, 삼성이 아베 정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베 정부는 일본 제국주의가 어린 소녀들을 성노예로 삼은 것에 책임을 다하지 않고, 몇 푼의 돈으로 불가역적인 보상이라 말하면서 자신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입막음하기 위한 거짓사과를 하고 있다. 단지 과거의 잘못을 덮고 현재 시끄러운 비판을 잠재우는 게 아니다.
지금 일본은 미국/한국과 함께 중국과의 군사경쟁에 뛰어들며 동북아를 위험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과거 일본제국주의가 했던 그 범죄행위를 다시 할 수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 평화헌법도 고치려한다. 일본이 다시 하려는 범죄행위에 ‘소녀상’이 걸림돌이 되고 있고 그래서 치우려 하는 것이다. 소녀상이 단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평화를 지키고 있다.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단지 과거의 잘못에 대해 그런 게 아니라 지금도 과거의 잘못을 계속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반올림의 농성이 소녀상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좀 더 나은 기업이 되도록 우리가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사회자 : 아베같은 삼성이라는 말에 공감된다. 아베같은 삼성.
이상수 : 최근 SK-하이닉스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자세하게 조사한 보고서를 봤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백혈병, 암을 포함한 여러 질병의 발병율이 일반 시민들에 비해 높은데, 관련된 유해물질의 검출량은 모두 안전기준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안전기준을 지켜도 노동자들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병들고 죽으며 위험하다고 말하는데, 저들은 안전기준을 지키고 있어 안전하다고 하는 것. 방사능, 식품안전, 산업재해 등의 문제에서 많이 보아온 그림이다. 안전하지 않은 안전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사회자 :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상수 : 돈 많고 권력있는 이들도 거대 권력인 삼성과 싸우는 것을 피하는데, 반올림이 그런 삼성에 맞서서 용기있게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감동받았다.
황유미씨 사건을 보면 당시 황유미 씨가 일하던 현장은 정말 끔찍한 수준이었다. 이제 그 현장은 사라졌다. 증거인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남아있었으면 계속해서 더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을 텐데 그런 위험이 사라졌다는 측면도 있다. 우리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끔찍한 현장은 더 많이 사라질 것이고, 다른 기업들로도 더 확산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반올림의 활동이 많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고 많은 목숨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힘들겠지만, 계속해서 힘 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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