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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아래서 끓고 있는 한반도 긴장은 언제든 또 넘칠 수 있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9. 4.

전지윤

 

이번에 한반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다가 가까스로 봉합된 것은 무조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지역의 긴장이 아직 당장의 확전이나 전면전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았다는 게 다시 드러났다. 하지만 이 과정은 여러모로 다시 되짚어볼 점이 많다.

 

먼저 이 사건의 불씨가 된 지뢰 사건과 포격 사건의 진실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란 점이다. 정말 북한이 지뢰를 설치한 게 맞는지, 나아가 군사분계선에서 포격을 가한 것이 맞는지도 명백한 증거로 입증되지 않고 있다. 지뢰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문들이 끊이지 않고 있고, 포격에 대해서는 군당국이 궤적과 탄피 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 정부와 군의 대응은 모순에 부딪힌다. 좀 전에 나에게 날아온 돌이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심지어 날아온 게 맞는지도 입증하지 못하면서 일단 저 놈에게 돌무더기를 던져놓고 보자는 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도발을 기정사실화하는 것도, 누가 했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회피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번 국면에서 우파는 광기를 드러내며 온갖 호전적 선동을 쏟아냈다. ‘확전을 두려워말자, 전면전을 불사하자, 심지어 무력통일의 기회로 삼자까지. 이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일단 한국군은 이번에 확성기라는 놀라운 신무기(?)를 발견했다. ‘소녀시대, 빅뱅의 노래 등을 방송하며 북한 병사, 주민의 동요와 이탈을 낳을 수 있다니, 그럼 아예 소녀시대와 빅뱅이 직접 가서 공연하면 되지 않나는 의구심마저 든다. 아무튼 이제 한국군은 확성기, 전광판, 삐라라는 천하무적의 3대 병기를 보유하게 됐다.

 

물론 공동보도문이 나오긴 했다. 공동합의문이 아니었다. 더구나 양쪽의 보도내용은 약간 달랐고 해석은 더욱 크게 달랐다. 특히 한국 정부는 저 짧고 모호한 문장에 북한이 지뢰 도발한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포탄 도발 인정과 사과까지 모두 들어있다창조해석능력을 보여 줬다.

 

이어서 박근혜는 10%가 넘는 지지율 상승을 이루었다. 군사적 충돌보다는 대화로 해결된 것을 반기는 여론이니 개탄할 일만은 아니다. 우파를 결집시켰을뿐 아니라 일부 야당, 햇볕정책 지지자들의 칭찬까지 들었으니 지지율 반등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면 이번에 일어난 일은 남북한 지배자들이 서로의 치부를 가리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짜고치는 고스톱이었을까? 이것은 각국 지배자들이 기층 민중을 억누르고 기만하려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형제라는 점만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주도권과 이해타산을 놓고 싸우는형제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이 '형제'들간에는 위계서열이 존재한다.  

 

이번 위기는 단지 우발적인 게 아니라, 물이 끓으면 넘치듯이 오랫동안 축적된 긴장의 산물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긴장은 단지 남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이 지역에서 중국을 봉쇄하려하면서 축적된 것이다.

 

이번에 북한측은 배후에 진하게 비껴있는 미국의 그림자를 거론하며 반발했다. 중국측도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키는 외부세력을 비판했는 데, 이것이 남한이나 북한을 지칭한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실제로 이번에 미국은 예전처럼 남북한간의 문제로 보고 비켜서있지 않고 사태를 주도하려 했다. 822일 실무장한 한미전투기 8대가 북폭 연습하며 무력시위에 나섰던 것, 주한미군과 주일미군뿐 아니라 미태평양사령부까지 자동개입하게 되는 한미공동국지도발대응계획을 사상최초로 작동하려한 것 등이 그것이다.

 

2013년에 한미 합참의장이 서명한 이 대응계획은 남북간의 국지적 충돌 시에 미군이 자동개입해 북한의 지휘세력(김정은 지도부)까지 응징한다는 군사작전계획이고, 북한은 이에 대해 매우 위험천만한 북침 전쟁문서라며 강력 반발해 왔다. 이 계획이 작동되면 작전통제권은 자동적으로 한미연합사령부로 넘어간다.

 

관련해서, 한미 군당국이 지난 6월에 새로운 작전계획 5015’에 서명했다는 것도 이번에 드러났다. 이 계획은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30분 안에 북한을 선제공격한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국방부의 한 관료는 이것을 참수작전이라고 표현했다.

 

극적 봉합이 이뤄진 직후인 828일에도 한미 양국군은 각종 최신 무기를 동원해서 사상 최대 규모의 통합화력 격멸훈련을 실시했다. 미국방장관 애슈턴 카터는 오늘 밤 당장 전투가 벌어져도 승리할 수 있다는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첫째 덕목이라며 살기등등한 말을 뱉어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것인지는 관점을 바꿔서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즉 북한, 중국의 핵무장 가능한 전투기가 남한 폭격 연습을 하고, 북한과 중국이 남한을 선제공격하겠다는 작전계획에 합의서명하면 우리가 얼마나 불안할지 말이다.

 

게다가 이번에 이런 일들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시점에 벌어졌다.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를 앞두고 한중이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미국이 견제할 필요가 있는 시점, 일본에서 안보법제 통과를 눈앞에 두고 아베에게 강력한 명분이 필요한 시점에 말이다.

 

대차대조표를 그려보면 이번 치킨게임 속에서 누가 무엇을 얻었는지 드러난다. 아베는 자위대 한반도 파병 가능성을 더 분명히 하고 안보법제 제개정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B-2 스텔스기를 괌에 배치했고, ‘전략자산’(핵폭격기, 핵잠수함, 핵항공모함)을 언제든 한반도(중국의 옆구리)에 배치할 수 있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한국과 일본 해군은 연내에 공동군사훈련을 하기로 했다. 한국과 일본은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기로 했다. 미국이 그토록 원하는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향해 한발 더 내딛게 된 것이다.

 

물론 북한과 중국도 가만히 보고 있지 않는다. 북한은 이번에 준전시상태 선포속에서 보여 준 군사적 능력을 더욱 강화하려고 애쓸 것이다. 중국은 이번 전승절의 하이라이트를 군사퍼레이드로 장식하며 온갖 최신 첨단살상무기들을 선보였다.

 

북한이 다가오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장거리로켓을 발사하고, 그것이 긴장고조 연쇄작용을 낳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그간 미국의 행동은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따라서 이번 공동보도문에 담긴 대화와 평화의 가능성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면서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특히 이번에 이 나라 안에서 드러난 4가지 요인들 때문에 더더구나 그렇다. 첫째, 실체가 불확실한 우발적 사건을 일단 크게 키워놓고 보자고 덤비는 이 나라 정권의 문제다. 둘째, 여기에 호응해 가차없고 단호한 응징을 외치며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우파와 언론의 존재다.

 

셋째, 그럼에도 종북의심살까봐 어떤 합리적 의문과 이견도 말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의 문제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는 정말 찝찝했다. 넷째, 여기에 타협하고 후퇴하며 단호한 응징튼튼한 안보를 외치는 자유주의 야당과 유일 원내 진보정당의 한계다. 안타깝게도 진보진영의 다수가 양비론이나 혼란스러운 입장에 머물렀는 데 진보당 강제해산 이후 더 악화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요인이 다음번에도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구실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한국 정부와 언론에서 나온 선제공격”, “참수등의 주장에 대해 북한측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제국주의, 군국주의, 군사적 대결을 부추기는 모든 세력에 맞서는 진보진영의 강력한 단결과 운동을 하루빨리 건설하고 국제적 연대에 나서야 한다. 830, 일본 민중 12만 명이 모여 아베 물러나라”, “전쟁 반대를 외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과 기대는 더욱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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