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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노동시장의 ‘헬조선’화를 다같이 막아내자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9. 15.

전지윤



엊그제 노사정 야합으로 합의된 내용은 노동시장의 전체적인 틀을 지금보다 훨씬 친기업적·반노동적으로 대폭 이동시키는 내용이 명백하다. 그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더 분명해진다.

 

1.임금피크제를 징검다리 삼아서 연공급에서 성과급으로 임금체계 개악과 삭감.

2.취업, 승진, 징계, 해고 등에서 사측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취업규칙 변경.

3.고용과 노동시간의 유연화와 장시간 노동체계 유지.

4.기간제 4년 연장과 파견제 허용업종 확대로 비정규직 등골 빼먹기.

 

그리고 당장 이런 공격의 직격탄을 맞을 사람들은 노동조합이라는 방패가 없는 미조직,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사측이 성과급을 도입하고, 취업규칙을 멋대로 바꾸고, ‘공정해고를 휘둘러도 방패삼을 노조나 단협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실 임금피크제는 고사하고 정년까지 일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노동부 조사에서 정년까지 일하고 퇴직한 직장인의 비율은 20%에 불과했다.



이어서 이런 공격의 화살은 조직 노동자들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갈수록 임금피크제에서 임금을 깍는 시기가 당겨지고 폭이 늘어날 것이고, 점차 성과급으로 바뀔 것이다. 칼자루를 쥔 사측의 눈치 때문에 노조 활동은 움츠러들 것이고, 노조가 약화되면 더 많은 공격과 후퇴가 이어질 것이다.


이런 개악을 막아낼 힘을 가진 것은 조직된 노동운동이다. 하지만 지금 조직된 노동운동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 ‘자기들 밥그릇만 챙기는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라는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조직된 노동자와 나머지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가 이런 공격의 빌미가 되고 있다. 이 격차를 만들어낸 것은 지배자들이다. 지배자들은 방패로서 노조가 없는 노동자들을 더 가혹하게 공격했고, 무기로서 노조가 없는 노동자들에게는 무엇도 쉽게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노조가 있는 노동자들은 덜 빼앗기고, 더 얻으면서 나머지 노동자들과 격차가 벌어졌다.


이런 '이중구조'를 만들어 온 지배자들이 이제 그것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이간질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청년 일자리를 위해서라며 개악을 정당화하고 노동계급 내부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조장해 왔다. 연애, 결혼, 출산도 포기하고 있다는 삼포세대의 불만이 헬조선의 설계운영자가 아니라 또다른 피해자인 부모세대 노동자에게 향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데 조직된 노동운동의 현장 동력은 그동안 이런 공격을 저지하기에 충분치 못한 상황이었다. 특히, 각 부문의 임단협 투쟁을 넘어서 전체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놓고 단결해 싸울 힘과 넓은 시야가 부족했다.


민주노총의 1, 2차 파업은 의미없지 않았지만 이런 태도와 동력의 아쉬움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산별노조와 주요 대형노조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서로의 소극성을 핑계삼아 누구도 총대를 매고 나서지 않으려 해 왔다.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은 이런 약점을 노리며 각 노조별로 일단은 크게 불리하지 않은 내용으로 임금피크제와 통상임금 등을 합의하도록 유도하거나, 각개 공격을 가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더 근시안적이고 자기 밥그릇만 보는 한국노총 지도부가 어차피 시간을 끌며 현장의 김을 빼다가 합의해 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1987년 민주노조운동의 탄생을 이끌었고 투쟁의 경험과 기억을 간직한 세대가 정년퇴직하기 시작한 지금을 노동시장 구조개악의 기회라 여기고 있다.(현대차에서만 2022년까지 14천 명의 퇴직이 예정돼 있다.) 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중국발 위기설과 미국 금리인상 등으로 불안정이 커지는 경제 상황 때문에 더 조급할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옳게도 재벌에게 책임을! 노동자에게 권리를! 청년에게 일자리를!” 외치며 재벌 배불리기에 맞선 노동자 서민 살리기 총파업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호소하면 바로 응할 준비와 태세가 돼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단지 우파적 지도부와 관료들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는 것도 너무 단순한 얘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투쟁을 호소할 뿐 아니라, 실질적인 파업이 가능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단결력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는 방향, 과제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조합원들을 파업과 집회의 규모를 채울 동원 대상으로 보지말고, 이런 의미와 방향을 분명히 이해하고 행동하도록 토론하고 조직해야 한다. 진보진영과 정당들은 이 방향으로 폭넓게 단결해서 개악 입법을 막고 투쟁의 힘을 북돋는 구실을 해줘야 한다.


개악에 맞선 전국적 투쟁에서 발을 빼면서 각 부문에서 단협 등을 통해 피해를 줄이려는 태도들을 분명히 비판해야 한다. 이번 개악의 직격탄을 맞을 미조직, 비정규직과 청년들을 위해 앞장서 싸우며 지지와 연대를 호소해야 한다.


격차를 만든 책임은 저들에게 있지만, 조직이라는 방패와 무기를 특정 부문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할 때만 이간질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이제 투쟁에 나서야 할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투쟁이 정당하고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믿음, 부문을 넘어 모두 함께 힘을 합쳐서 싸울 것이며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것이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이며, 결국 우리 모두의 밥그릇을 지키는 길이라는 확신과 실천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럴 때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노동조합  vs 고통받는 청년세대라는 저들의 프레임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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