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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권리를 위한 '미로찾기'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6. 5.

이만재

 

[미디어 산업이 갈수록 비정규직 백화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 비정규직 조직화 활동에 대해서 고민과 방향 등을 잘 정리한 글이다. 이 글의 문제의식은 더 나아가 노동운동이 직면한 문제와 해결책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되고 있다. 언론노조 활동가가 최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6월호에 기고했던 글을 옮겨 싣는다. 재게재를 허락해 준 필자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 감사드린다.] 

 

미디어 산업 전체에 대한 자본화에 저항하고 미디어 공공성을 확립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미로찾기를 시작하며

 

자본이 만든 미로에 갇힌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들

 

열정만 있으면 청년들에게 적은 급여를 줘도 된다는 소위 열정페이논란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방송과 신문에서도 연일 열정페이를 비판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매체에서도 자기네들이 헐값으로 착취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시대 저널리즘의 자화상이다.


모두들 미디어산업은 무한경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정부는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시대에 맞춰 발 빠르게 나서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미디어 자본은 위기감을 조성하며 노동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려 들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는 외주 제작 시스템, 간접고용을 통한 비정규직 양산을 통해 열정페이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JTBC 보도국 카메라보조 모집 월급 130만원”, “MBC 예능국 쇼! 음악중심 FD 모집 월급 1512,200”, “CJ E&M 음악 라이선스팀 정산 담당자 모집 월급 139만원”.


미디어산업에서 일할 파견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사이트의 구인정보에 올라온 내용이다. 미디어자본은 파견법 시행령 제2조 제1항에 영화, 연극 및 방송관련 전문가의 업무가 파견허용업무로 규정된 점을 이용하여 파견 노동자들을 2년간 마음껏 사용하다 갈아치우고 있다.


파견 노동자만이 아니다. 미디어콘텐츠 생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제작인력들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다. 방송의 경우만 하더라도 자회사와 외주제작사를 통해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방송콘텐츠 생산에 참여한다. 독립PD, 방송작가, 카메라 조명 음향 차량팀 노동자들 모두가 비정규직이다.


이들의 고용형태는 도급(용역), 파견, 직접고용 계약직, 프리랜서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방송콘텐츠 제작현장은 그야말로 비정규직 백화점인 셈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어 전체 비정규 노동자들의 수가 얼마인지, 이들에 대한 처우가 어떠한지조차 알기 힘든 실정이다.


KBS에만도 파견 770, 프리랜서 1,000, 직접고용 계약직 66, 자회사 1,220, 3,056명의 비정규 노동자가 일하고 있으며, 파견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무려 5.82배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로 전체 비정규 노동자들의 수와 이들에 대한 처우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박정호(2011), 방송산업 비정규직 근로실태 연구 K 방송사를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노동을 이야기하지 않고서 미디어 공공성을 외칠 수는 없다

 

언론운동진영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가치가 있다. ‘미디어 공공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언론운동진영이 추구해왔던 미디어 공공성은 사실 언론 공공성’, 그 중에서도 언론보도의 공정성언론사 소유 및 지배구조의 개선에 치우쳤던 것이 사실이다. 언론운동진영이 이러한 가치를 지향점으로 삼아 오랜 기간 수많은 언론개혁투쟁을 벌여왔고, 상당 부분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환경이 변했다. 이제는 미디어가 하나의 자본이라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미디어는 더 이상 과거처럼 공적 영역의 것이거나 정치권력의 이데올로기적 기구 역할만을 수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공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프로파간다와 이데올로기 생산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하여 정책 및 입법의 영역과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에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자신이 하나의 자본이라는 점을 희석시킨다.


언론운동진영이 이러한 미디어 자본의 속성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있는 동안, 미디어 산업에서는 노동유연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규모가 급격하게 성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운동진영은 미디어는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가?”라는 기존의 질문이 아니라, “미디어는 어떻게 자본으로서 생산되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을 전제로 해서 미디어 공공성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확립된 미디어 공공성의 개념에는 미디어 산업 전체에 대한 자본화에 저항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고민 속에서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미로찾기가 출범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방송부문의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다양하게 표출되었지만, 언론노조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아 기존의 언론운동과 결합시키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언론노조는 계속적으로 미디어 산업의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결의했으나, 그마저도 다른 의제에 밀려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2012, 언론4(KBS, MBC, YTN, 연합뉴스) 연쇄총파업이 참담한 실패로 돌아가고서야 언론운동진영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올해 4, 언론노조는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미로찾기를 출범시키며,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전략조직화사업 착수를 선언했다.


미로찾기는 출범선언문에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노동을 이야기하지 않고서 미디어 공공성을 외칠 수 없다는 진실을. 우리는 뼈저리게 느낍니다. ‧‧‧ 우리 곁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바로서는 일과 미디어 공공성 확립이 결코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이라고 밝히며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는 활동이 곧 미디어 공공성을 확립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무너진 미디어 공공성을 미디어 노동자들의 힘으로 다시 세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자본과 권력의 중력장에 갇힌 미디어 환경을 직시하고 미디어 공공성 실현의 주체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라고 하며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미디어 공공성 실현을 위해 나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만성적으로 고용이 불안한 대다수의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들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 대한 애착이 없는 편이다. 몇몇 직종에 종사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방송사 등에서 경력을 쌓아 입봉을 하면 업계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장밋빛 환상을 공유하고 있다. 게다가 직종에 따라서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요구를 묶어내어 조직하고 서로 단결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업장 단위의 조직화를 목표로 접근하기도 여의치 않다. 사업장 단위에서의 평균 근속기간이 매우 짧아 이직이 매우 활발하기 때문이다.(파견 노동자의 경우 평균 근속기간이 11.6개월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있다[박정호, 2011]) 그렇다면 일단은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서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미로찾기는 홈페이지(www.minomiro.com)와 직통상담전화(1670-7286)를 개설했다.


그리고 IT 및 미디어산업의 클러스터로 조성되고 있는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를 중심으로 정기적인 선전전을 진행했다. 이러한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몇몇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노동환경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미로찾기와 접촉하고 있다.


물론,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노동 상담과 정기적인 선전전만으로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들이 조직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돈키호테적인 발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돈키호테적인 용감함 없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고 경력과 직종을 뛰어넘어 연대의 정신을 발휘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록 더딜지라도 걸어가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겨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이다.

 

마침내 출구를 찾기 위하여

 

솔직히 말하자. 한국의 노동운동은 지속 불가능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변혁지향성은 약화된 지 이미 오래다. 대기업 사업장의 조직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자본의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였고, 비정규 노동운동은 고립되어 처참하게 패배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된 산별노조 건설도 형식만 산별이지, 내용은 기업별 노동조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실정이다. 중앙은 관료화되었고, 현장에서의 자생성은 사라졌다. ‘노동조합주의가 노동운동의 가면을 쓴 채 횡행하고 있다. 언론운동이 미디어 산업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간파하지 못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처럼, 노동운동 역시 자본의 분할 통치전략을 돌파하지 못한 채 심각하게 쇠퇴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기존의 시스템 안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고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미로찾기는 미로에 갇힌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들과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고 실천할 것이다. 자본의 욕망이 빚어낸 구조적인 난관을 뚫어야 출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는 것도 자본의 이해관계와 충돌된다면, 거저 얻어질 수 없을 것이다.


설령 일정 부분 자본의 시혜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성취가 진짜 출구는 아니다. 진짜 출구는 자본의 욕망이 빚어낸 구조 그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미로찾기는 기존의 사업장 단위의 조직화 방식, 노동조건 개선만을 지향하는 노선을 뛰어넘고자 한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면서 보편적 요구로서의 노동운동, 미디어 공공성을 실현하는 주체로서의 언론운동, 세상을 바꾸는 사회운동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복잡한 미로찾기 게임에서도, 출구는 반드시 보인다. 다만 입구에서 출발해 출구로 나오려면 수없이 오류를 거쳐야 할 뿐이다. 잘못된 길로 수없이 빠져봐야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미로찾기도 마찬가지다.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들의 진짜 출구는 분명하고, 다만 진짜 출구로 나오기 위해서 수없이 오류를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출구를 찾을 것이다.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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