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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양심적 CEO의 선행을 보면서도 찝찝한 이유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4. 28.

박상우 



얼마 전 미국의 한 CEO가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카드결제 대행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약 한달 전 자신의 연봉 중 90% 이상을 삭감해서 직원들의 연봉을 인상하였다.(자신의 연봉을 깎아서 직원 최저 연봉을 올려준 CEO)

 

그는 미국인의 28%가 매년 약 7만달러를 벌 때 '성공'의 느낌을 갖는다고 한 연구 자료를 토대로 자신과 직원들의 임금을 연 7만달러 수준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갈수록 극심해지는 '소득불평등'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나름대로 자본주의적 해결책을 시도한 것이라고 하였다.

 

직원들의 반응은 물론 열광적이었다. 그리고 비단 직원들 뿐만이 아니라 기사를 접한 사람들 역시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군요.", "이런 CEO 만나고 싶다.", "존경하고 싶네요. 한국에는 없겠죠?' 라며 이 남다른 CEO의 결정을 반겼다.

 

직원 중에는 연봉이 두 배로 인상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그 정도의 임금 인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생각하면 마치 복권 당첨된 사람들을 바라볼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임금 인상이 다 뭔가. 요즘 한국에서는 취직이 너무도 어려워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대한민국 최저시급인 5580원을 지켜달라는 알바몬의 광고가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광고에 등장한 아이돌은 '맑스돌'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하니, 우리 사회에 아르바이트 노동인구가 얼마나 많았던 것인지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20~29세 청년들의 취업률이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다.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던 20~29세 청년들의 실업률이 최근 더욱 급상승하였다.

 


20~29세 청년들의 일자리 종류별 임금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 모든 그래프는 국가통계포털 kosis.kr의 고용, 노동, 임금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음)

 

직원들의 연봉이 오른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다. 적어도 그 CEO는 월급을 제때 주지 않고, 최저시급도 지키지 않는 경영자들보다는 훨씬 훌륭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다만 한 자비로운 개인 사업가의 선행으로 정리하고 넘어가기에는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이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풀어보려 한다.

 

어떤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본질을 탐구하고 근본적인 해결에 접근하고자하는 사람이라면, 겉에 드러난 현상을 관찰하는 것에서 나아가 저변에 흐르고 있는 원인을 탐색해야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기사를 볼 때, 'CEO가 자신의 연봉을 깎아서 직원들의 연봉을 대폭 올려주었다'는 현상에 그치기보다 왜 그러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임금 인상 결정이 있기 전에 이 회사의 CEO가 받던 연봉은 100만달러였다. 120명이었던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48000달러였다고 한다. 올해 예상되는 회사 수익이 220만달러라고 하니, 이전에도 비슷한 수준인 200만달러 정도의 수익을 거두었을 것이다.

 

단순한 셈을 해보면 그동안 회사가 발생시켰던 수익의 반을 CEO 한 사람이 차지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수익은 120명의 직원들에게 돌아갔다. 흔히 임금은 노동의 대가라고들 보니, 연봉대로라면 그 CEO100만불 어치의 노동을 하고, 직원들은 평균 48000달러 어치의 노동을 했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 CEO가 직원들보다 20배 더 많은 시간동안 일했거나, 20배 더 강도높은 일을 했다면 그의 연봉 100만불은 정당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의 연봉 100만불의 정당한 근거를 대야할 것이다.

 

CEO는 과연 직원들보다 20배 더 많은 일을 했는가? 직원들이 하루 8시간을 근무하는 동안 그는 하루 160시간 근무를 했는가? CEO 사무실 책장 뒤에 5차원 공간이 존재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시공간에서 아직까지는 24시간 안에 160시간 일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임금 인상 가두시위에서 한 청년이 들고있던 피켓의 내용이 웬디스 시급 노동자와 웬디스 CEO의 임금 격차를 고발하고 있다웬디스 알바생이 시간당 7.69달러를 받는 동안웬디스 CEO는 시간당 2,202달러의 임금을 받는다시급 노동자보다 무려 286배 더 많은 돈을 매시간 벌어들이고 있다.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다!> 시위에 참가한 어린 소녀가 피켓을 내보이고 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기업의 최고경영자라면 마땅히 억 소리가 날 정도의 연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회사의 수익은 실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CEO 혼자 일해서는 일년에 220만달러의 수익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 수익은 사업체에 속한 모든 직원이 일한 결과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직원들의 몇 십배에 해당하는 연봉을 당당하게 챙긴다. 왜 그래야 할까? 최고경영자가 직원들보다 더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인가?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하고있기 때문인가? 사실 그는 그 '지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받는다. 그가 그 '지위'에 있는 것이 정당한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인데 별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

 

CEO가 자신의 연봉을 삭감해서 직원들의 연봉을 올려준 것은 반가운 일이나, 애초에 그가 연봉을 그렇게나 많이 챙겼던 것부터가 불공평하며 부당한 일이었다. 기사에도 나오지만 그는 연봉이 삭감되어도 이미 많은 돈을 저축해두어서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산불평등은 소득불평등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도 예외가 아닌데 20154월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처분 소득은 상위 10%가 전체 가처분 소득의 29.1%를 보유하고 하위 40%13.4%를 갖고 있었던 데 반해 순자산은 상위 10%43.7%, 하위 40%5.9%를 보유하는데 그쳐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냈다


CEO는 직원들의 노동이 만들어낸 수익의 많은 부분을 개인 재산으로 차지하였고 (한마디로 '착취'라고 한다), 부동산, 스톡옵션, 주식 등의 자산을 소유하여 연봉의 감소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는 스스로 연봉을 삭감한 경영자라며 사람들의 존경까지 받게 되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소수의 사람이 차지하는 '착취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첫째는, 임금 노동이 공평하고 자발적인 행위라고 믿게하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모두 한표씩 선거권을 가진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게하는 것이다.

 

하지만 임금 노동은 순수하게 자발적인 노동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먹고살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땅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하나인 대부분의 사람은 고용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금 노동은 어디까지나 강제된 것이지,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자아 실현을 위한 도구로 내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지가 아니다.

 

또한 임금 노동은 공평하지 않다.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노동자는 참여할 수 없다. 위로부터 지시를 받고 일하는 것이며 회사의 수익을 위해 관리되고 통제도 받는다. 대략적인 임금 수준도 회사가 결정한다. 임금은 노동자의 기술만이 아니라 성별, 인종, 고용형태 등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된다. 그러나 경영자의 임금 수준은 그런 것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회사가 부도날 정도로 경영에 실패했어도 그는 여전히 수 십억대 연봉을 받는다.

 

왜냐하면 경영자와 노동자의 엄청난 소득 차이는 능력이나 기여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동력을 팔아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조건에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는 갑과 을이다. 회사에서 권력은 당연히 고용인에게 있다. 사회에서의 권력은 기업 경영인같은 소수의 부유층에 집중되어 있다


소수의 지배계층이 부와 권력을 독점한 사회에서는 모두 다 똑같이 한 표씩의 선거권을 가졌다고 해서 실제적인 평등이나 민주주의가 달성되지 못한다. 그들은 선거권이나 표현의 자유과 같은 형식적인 용어를 내세워 대중들로 하여금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고, 그 사이에 온갖 특권을 챙겨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군림한다.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신들이 그 위치에 있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사회의 상류에서 특혜를 누려야 할 어떠한 정당한 이유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학벌이나 영어 점수와 출신, 거주지, 소유한 사치제의 양 등으로 사람들을 줄 세우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마치 자신들이 그 줄의 맨 앞에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위가 정당한 것인양 믿게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은 단지 일부 회사에서 직원들이 임금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고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임금 노동을 강제하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소수 자본가와 다수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는 대립 구조 자체에 도전하지 않으면서. 언제까지 몇몇 선량하고 양심적인 경영자의 너그러움과 자비에 희망을 걸어야 하겠는가.

 

노동자는 경영자들을 위한 이윤 추구의 도구가 아니다. 소수 지배층의 특권을 위해 불평등과 차별을 감수하며 살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이다. 직원이 관리당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자신들이 벌어낸 수익을 남에게 뺏기는 몫 없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서, 직원들의 연봉을 파격적으로 올려준 CEO를 칭찬하는 기사가 굳이 나올 필요가 없는 사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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