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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레닌주의는 죽었는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2. 5.

[출처 : http://rs21.org.uk/2014/10/15/is-leninism-dead/]


필 개스퍼, 2014년 10월 15일

(번역 : 이상수)



[필 개스퍼는 국제 사회주의자 평론(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의 편집부원이고, ‘공산주의자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록에 대한 길잡이’의 편집자이다. 필 개스퍼가 이언 버철의 최근 논문(레닌: Yes! 레닌주의: No?)에 답하여 레닌주의에 대한 토론을 이어간다.]





오늘 날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한 세기 전의 레닌과 볼세비키에게 배워야 할 경험과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언 버철은 이 주제에 대한 최근의 흥미로운 논문에서, “‘레닌주의’라는 용어”가 향후 몇 십년 우리가 필요로 할 정치 전략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언이 지적한대로, 핵심 질문은 ‘레닌주의’ 라벨을 사용해야 할지 말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레닌의 글, 볼세비키의 이론과 실천에서 21세기의 사회주의자들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일관된 사상 체계가 존재하는가이다. 하지만 그는 조직에 관해서라면 대답은 부정적이라는 결론의 근거로 “레닌의 당이 상황에 따라 엄청나게 변화무쌍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볼세비키가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따라 조직을 변화시켰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혹독한 짜르의 억압 체제였던 1905년 이전에 그들이 사용했던 방법은 1905~07년의 혁명적 기간과 무척이나 달랐다. 1907년 후의 반동기는 러시아 혁명 초기와도 달랐고, 내전 후 기간과도 역시 달랐다.


1921년에 레닌의 도움으로 3차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위한 “공산당의 조직 구조, 그들의 작업 방법과 내용물”에 관한 테제가 만들어졌다. 이 테제는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다. 


“공산당에게 항상 옳은 절대적인 조직형태는 없다. 각각의 당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국내의 조건에 걸맞게 자신의 고유한 조직 형태를 발전시켜야 한다.”


언제나 어느 곳에나 적용될 혁명 조직의 판에 박힌 레닌주의 모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의 가장 투쟁적이고 계급 의식이 있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부분을 기초로 한 규율 있고 중앙집중적인 혁명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을 포함하는 더 일반적인 레닌주의 프로젝트라고 할 만한 것은 있다.


이 프로젝트는 많은 아마도 대부분의 좌파 활동가들의 “상식”에 반하는 것인데, 이 상식이란 중앙집중화된 당이나 노동계급의 역할을, 어쩌면 둘 모두의 필요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서 혁명정당이 필요한 주된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꽤 실용적인 것인데, 협동적이고 규율 있는 혁명 조직 없이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맞서서 패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언이 레닌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기여로 꼽는 ‘국가와 혁명’에 혁명 조직에 대한 논의는 없지만, 국가의 계급 특징에 대한 분석과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가 계급의 역할을 유지하는데 국가가 하는 역할에 대한 그의 분석은 혁명조직에 대한 논의를 함축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협동과 리더십이 없다면 저항은 체제 전체를 패배시킬 수 없다. 트로츠키의 중요한 비유처럼, “이끄는 조직이 없다면 대중의 에너지는 피스톤에 담기지 않은 증기처럼 흩어질 것이다.”


혁명 정당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노동 계급의 계급 의식이 매우 불균일하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혁명 조직은 지배적 사상에 맞서 싸우기 위해 그리고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기간에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작은 소수이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계급 의식적이고 투쟁적이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부분의 대부분이 혁명 조직 안에서 단결할 수 있다면, 그들은 정치 사회적 위기의 시대에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을 지도하여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혁명 조직이 두 가지 연관된 역할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는 가능한 곳에서는 크든 작든 투쟁을 만드는데 참여해야 한다. 두 번째는 더 많은 사회주의자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며, 빠르게 변하는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할 사회주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작은 투쟁에 인내심을 가지고 참여하며 긴 세월을 보내야한다. 자신의 작업장과 커뮤니티에서 개인으로서 지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도 그렇고, 장차 혁명을 성공적으로 지도할 능력을 갖춘 당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다.


이것이 레닌주의자의 프로젝트이다.


이것이 프로젝트임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노동 계급의 선진 부위 대부분으로 이루어진 혁명 정당을 가지고 있지 않고, 가까운 미래에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주된 이유는 우리가 30년 넘게 패배를 겪어 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동안 자본주의 구조와 노동계급의 구성이 변화해왔다. 산업 전체가 파멸되거나 완전히 재구성되었다. 노조로 조직된 일자리들은 저임금 서비스 부문 고용과 임시직 노동으로 대체되어 왔다. 또한 30년 동안 우익 사상의 공세로 대부분의 좌파가 혼란을 겪고 약화되어왔다.


레닌주의자의 프로젝트는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을 노동 계급의 선진 부위와 만나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사회주의 운동과 더 거대한 노동계급 운동이 모두 약할 때는 이렇게 하기가 어렵다.


비교적 작은 혁명가 단체가 흔히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그들이 이미 혁명정당을 만들었거나 혹은 필연적으로 그런 정당으로 성장해 갈 것이라 믿는 것이다. 던컨 핼러스는 “혁명적 사회주의자 당에게”라는 1971년 자신의 에세이에서, 그의 평소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대중을 선진적이고 의식적인 소수의 노동자들에게로 이끄는 데 필요한 확신과 유대감을 그 소수의 노동자들에게 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당연히 이런 소수의 노동자들을 당의 다수 구성원으로 포함하지 않는다면 (혁명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당신이 이미 혁명 정당을 만들었다거나 당신의 정치적 명확함과 이해 덕분에 미래에 있을 국제 노동계급의 리더가 되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상상한다면, 그건 살아있는 혁명 조직에 필수 요소인 민주적 문화를 헤칠 수 있는 큰 착각일 것이다.


다시 핼러스에 따르면,


“내부에 일상적으로 활발한 논쟁이 없거나 여러 경향과 의견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자 당은 종파 수준을 넘어 설 수 없다. 내부의 민주주의는 선택할 수 있는 덤이 아니다. 당원들 간의 관계에서나 당원들이 활동하는 곳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나 필수적인 것이다.”


여기서 핼러스는 레닌이 20세기 초에 표명했던 생각을 되풀이한다. “의문들이 당에서 자유롭고 폭넓게 토론되어야 하고, 당의 활동에 대해 자유롭게 동지적으로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볼세비키당은 “논쟁과 차이가 당을 파괴하지 않는 한 자신의 관점을 변호하고 사상 투쟁을 수행할 수 있는” 소수파의 권리를 명확하게 지지했다.


어떤 혁명가 그룹이 스스로를 노동 계급의 지도부라고 선언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지만, 혁명 정당을 만드는 일을 막연한 미래로 미루는 것은 반대의 실수가 될 것이다. 교육은 필수적이지만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단순한 스터디 그룹 이상이어야 한다. 행동은 역시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자생적인 운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한 무리의 몇 백명의 사람들이 결국 몇 십만 규모의 혁명 정당을 만드는 시도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동시에 몇 명의 회원들을 모집하는 식으로 성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체로는 노동 운동의 일부거나 넓은 의미에서 좌파인 다른 세력과의 통합을 포함할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것은 다른 지역과 국가에 존재하는 현실의 상황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오늘 날의 사회주의자들이 레닌의 저작에서 배울 것이 여전히 많다는 이언 버철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또한 혁명 정당을 건설하려는 레닌주의자 프로젝트에 헌신할 필요가 있다. 그럼 점에서 우리는 레닌과 레닌주의 모두에 예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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