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규(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시사IN>에 실렸던 글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시사인과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소셜미디어 짧은 영상 페이지를 홀린 듯 넘기고 있는 순간이 있다. 소름 돋는 알고리즘 덕에 내 화면에는 역시나 동물이 자주 등장한다. 말초 자극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놔야 하는 영상들인 만큼 영상에 등장하는 동물도 그 자극원으로 사용된다. ‘귀여움’을 부각하는 건 예사고, 인간이 동물을 놀래키거나 겁주면서 노는 장면, 동물이 서로를 심각하게 공격하는 영상 따위가 국적도 없이 떠돌아다닌다.
이 짧은 영상들은 어떤 주제를 다루든 미디어 이용자의 눈길을 잡아채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만들어졌고 백해무익해보인다. 동물을 다루는 영상은 더 그래보인다. 개중에는 훈련사랍시고 남의 개 목줄을 잡아채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주인이 원하지 않을 때 짖거나, 사람을 물려 한다거나, 소심하게는 자기 목에 채워진 목줄을 당기는 정도의 소위 “문제 행동”을 보이는 개들이다. 한 눈에 봐도 훈련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다.
개가 맘에 안 드는 행동하면 ‘훈련사’로 등장한 사람은 목줄을 훽 잡아채거나 ‘블로킹’이라는 영어 용어를 굳이 쓰면서 개를 발로 찬다. 개를 손으로 치거나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장면도 쉽게 볼 수 있다. 고릿적 개장수가 개를 사갈 때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꼼짝 못하게 제압하는 것과 똑같은 장면이다. 이제는 개를 잡아먹으려 사가는 개장수라도 개가 오줌을 지리도록 제압하면 동물학대로 처벌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훈련사라는 ‘사’자 붙은 사람들이 아직 그러고 있다.
위에서 말한 “문제행동”부터 잘못 쓰인 말이다. 이 말은 개의 행동 자체에 문제가 있고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그러나 개의 행동은 대체로 외부 자극에 대해 자연스러운 판단과 반응으로 나오는 것이다. 단지 사람 입장에서 개의 행동을 받아들이기 불편하기 때문에 “문제행동”으로 규정하고 “교정”하려 든다.
개가 짖거나 물거나 목줄을 당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개라는 동물이 인식하기에 그럴 만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런다. 그 상황은 개의 타고난 몸과 정신 상태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기도 한다. 작고 취약한 몸을 갖고 태어난 (한국에서 애완용으로 기르는 대부분의) 개는 인간의 눈높이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자신의 안전이 늘 위협받는다고 느낀다.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작은 개가 웬만큼 으르렁거리고 짖어도 사람은 꽁알대는 듯한 개의 모습에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기보다 그저 귀엽게 받아넘기고 오히려 더 약을 올리기도 한다. 개 약 올리는 게 유행인가 싶을 정도다. 그러면 개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으므로 입질을 하거나 실제로 무는 방식으로 더 강하게, 자신의 의사가 먹히도록 표현한다.
그러니까, 저 “문제행동”이라는 건, 개의 몸을 취약하게 만들고 나서 말 못한다고 무시하는 사람 때문에 개가 답답증을 느껴 하는 행동이 거개다. 공부도 안하고 관심 끌어서 돈 벌려는 훈련사만 문제는 아니다. 어느 수의과대학의 2024년 2학기 동물행동학 수업 교재를 슬쩍 볼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새로 개를 입양했을 때 개보다 사람이 높은 서열을 확보해야 한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무려 대학교수가 수의사가 될 학생들에게 그걸 가르치고 있었다. 최근 어느 대형 동물단체에서 개와 고양이를 수시로 때리고 소리지르는 활동가가 문제가 되었다. 그 활동가는 사람을 물던 개가 계속 무는지 보려고 동료들을 주르륵 세워두고 ‘테스트’를 했단다. 그리고 그 단체 대표는 지금도 그걸 “훈육”이라고 감싸고 있다.
농림부에서 “반려동물행동교정사”라는 국가자격증을 신설하고 “맹견기질평가제”를 실시한다는데, ‘전문가’라는 자칭하는 사람들은 이러고 있다. 누가 뭘 만드는 건지 불안하다. 총체적 난국이 맞다. 개 기르는 사람이 많아지니 팔아먹을 것이 많아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막무가내로 길러지는 개들에게는 재앙이 계속된다.
서열 이론은 1980년대에 이미 반박이 끝난 얘기다. 개는 사람과 서열경쟁 따위 하지 않는다. 개가 되려는 늑대와 사람이 경쟁과 협력을 주고받던 시절은 1만년도 더 지났다. 개의 행동을 함부로 ‘교정’하려 들기 전에 사람의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의 행동이 바뀌려면 동물에 대한 마음을 바꿔야 하고, 그 마음을 바꾸려면 개를 좀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개가 뭘 말하고 싶은지 대충이라도 알아듣고 존중할 수 있다.
(기사 등록 202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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