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가자지구 북부를 초토화한 다음에 남부로 공격을 확대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지난 한달 동안 하마스를 제거하겠다며 가자 북부지역을 초토화했다. 모든 팔레스타인들에게 북부지역을 떠나서 남부로 가라고 협박했다. 이 초토화 작전은 알시파 병원에 대한 포위 공격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러면서 알시파 병원 지하에 하마스의 지휘본부가 있다고 했다. 결국 병원도 초토화됐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군이 발견한 ‘증거’는 젖병, 기저귀, 화장실, 샤워실, 부엌 등이었다. 이것이 하마스가 인질을 데리고 있던 증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병원의 의료진과 환자도 모두 필요한 물품과 시설이다.
그러니까 또 지하의 사무실에서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의 명단이 발견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날짜와 요일이 적힌 달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스라엘군은 아랍어를 잘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또 하마스 터널의 입구를 발견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병원의 물탱크였다. 그러니까 이제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지휘본부와 근거지가 알고보니 가자지구 남부에 있다’고 말을 바꿨다. ‘이 산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남부에 대한 폭격도 다시 시작했다.
이제 가자 주민들은 남부에서도 다 떠나야 한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 남부에서도 이스라엘은 수만명을 죽이고 아이들을 죽이고, 학교와 모스크와 병원을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또 젖병, 기저귀, 화장실, 샤워실, 부엌을 ‘여기서 테러리스트들이 생활한 증거’라고 우길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의회의 아리엘 칼너 의원이 말했듯이 "지금 목표는 단 하나, 나크바이다! 48년의 나크바를 덮을 나크바“이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이 제2의 나크바로 노리는 것
1948년의 제1의 나크바(팔레스타인 학살과 인종청소)와 2023년의 제2의 나크바. 역사는 끔찍하게 재방송되고 반복되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와 서방 강대국이 왜 이러는지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하나도 없다.
중동은 석유와 에너지 자원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지역이라는 것 때문에 역사의 저주에 걸렸다. 석유와 화석연료를 통제하고 거기서 이윤을 얻고 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건국이 필요했고 지금도 이스라엘을 돕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 팔레스타인들을 말살하기 위해 민간인에게 폭탄을 투하하고, 이런 진실이 알려지는 것은 이스라엘과 서방 강대국 모두에게 불편하기 때문에 언론인들에게도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지금 문제의 더 큰 핵심은 하마스가 인질을 풀어주지 않는 것에 아니라 이스라엘군이 인질의 생명과 안전에 관심도 없다는 데 있고, 하마스가 가자지구 주민들을 ‘인간 방패’로 여기는게 아니라 이스라엘군이 가자 주민을 ‘인간 표적’으로 여기는 데 있다.
이번 학살을 통해서 <뉴욕타임스>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언론이라는 신화도 붕괴하고 있다, 어제 100명이 넘는 언론인들이 <뉴욕타임스> 건물 로비를 점거하고 진실 보도를 촉구했다. 일부 사람들은 ‘뉴옥타임스’가 아니라 ‘뉴욕범죄자’라고 비난했다.
한국에서도 지금 이스라엘과 미국 편에서 학살의 참상을 축소하고 이스라엘의 군사적 성과를 찬양하며,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북한과 한판 붙자고 선동하고 있는 <조선일보>를 규탄하고 항의하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이들은 언제나 언론이 아니라 흉기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금의 학살은 역사적인 반전운동을 낳고 있다. 어제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영국 런던 거리를 행진하며 대량 학살을 끝내라고 외쳤다. 가자 지구의 대량 학살을 끝내라! 지금 당장 휴전하라!
● 전투 중단을 넘어서 휴전과 점령 중단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주말에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인질 교환과 전투 중단에 잠정 합의했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며칠이 지나도 이스라엘군의 가자 폭격과 학살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알시파 병원에 대한 포위 공격으로 피난민과 환자들까지 죽이는 극단적 전쟁범죄까지 저질렀다. ‘병원 지하에 하마스의 테러 기지가 있다’는 말은 순전한 거짓말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인질 교환과 전투 중단’이라는 소문을 흘리며 전세계의 사람들이 뭔가 기대하고 방심하게 만든 사이에 더 많은 폭격과 학살만 저지른 셈이다. 일종의 심리전이고 사기극이었던 셈이다. 왜 가자지구를 초토화하며 1만3천명을 죽이고 나서도 이스라엘군과 정부는 한 달이 넘도록 이런 대학살극을 멈추지 않을까?
왜냐하면 지금 군사작전을 멈추면 부패 혐의가 드러난 네탸냐후가 감옥에 가야하고 극우 연립정권을 유지하기도 어렵게 될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으려면 가자 주민들이 계속 죽어줘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지난주에 유엔안보리에서 전투 중단 결의안이 통과됐는데도 들은 척도 안하고 있다.
북한이 인공위성만 발사해도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평화를 위협했다’며 그토록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고통을 주던 미국과 서방 정부들은 이스라엘이 드러내놓고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해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 기막힌 이중잣대라니!
더구나 최근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는 10월 7일에 이스라엘 희생자 중에서 일부는 이스라엘군의 전투헬기에서 기총소사를 받고 죽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하마스의 기습에 당황한 이스라엘군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서 이스라엘 시민들까지 죽여버렸다는 말이다.
그래놓고 하마스를 비난하고, 그것을 빌미로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게 지금 상황이다. 가자지구는 지금 폭격과 학살만이 아니라 전기, 식량, 물이 없어서 목이 말라서도 죽어가고 있고, 이것을 방관하고 도운 미국 바이든 정부는 학살과 전쟁범죄의 공범이다. 립서비스는 하지만 한달간 별로 한 게 없는 아랍의 독재 정부와 왕정들도 책임져야 한다.
“이 뻔뻔스러운 학살이 우리 사생활의 가장 사적인 공간까지 생중계되는 상황에서도 계속되도록 방치한다면, 우리는 그 학살에 연루된 것이다. 우리 도덕적 자아의 무언가가 영원히 변질될 것이다. 병원이 폭격을 당하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수천 명의 아이들이 잔해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세계적 소설가이며 반전 운동가인 아룬다티 로이)
● 서방 강대국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며 좌파도 일관성을 가져야
지금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 속에서 많은 좌파들이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의 위선과 이중잣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폭격을 비판하던 태도를 180도 바꾸어서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을 지지하며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과 서방 정부들이 말하던 ‘인도주의, 인권 등 규칙과 가치에 기반한 국제질서’라는 게 얼마든 뻔뻔스러운 거짓말이었는지 입증하고 있다. 이들에게 평화, 생명, 인권 등의 가치는 러시아를 비난할 때만 필요한 핑계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러시아의 침략과 폭격 속에서 죽어갈 때 이들이 보인 눈물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 속에서 죽어갈 때는 사라져 버렸다. 결국 죽어가는 사람들이 누구의 편이고, 그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에 따라서 다르다는 말이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의 친이스라엘 태도도 비판받고 있다. 젤렌스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이중적일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연대하던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주며 우크라이나 연대를 약화시켜 우크라이나 민중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다.
특히 많은 좌파들이 분노하고 비판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한달만에 팔레스타인 1만명을 죽이며, 러시아가 2년 동안 죽인 우크라이나인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 여전히 더 큰 문제는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의 제국주의라는 것을 말해준다.
반면, 이 모든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과 폭격을 외면하거나 용서해야 한다는 말이 될 수가 없다. 푸틴은 이번에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 ‘폭격으로 민간인 시설을 파괴하고 민간인과 아이들까지 죽이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 위선과 뻔뻔스러움에 말문이 막힐 일이다.
2년 동안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폭탄이 아니라 선물을 투하했는가? 심지어, 푸틴은 세계적 관심과 비판이 이스라엘에 쏠린 틈에 여전히 또다시 우크라이나를 폭격하고 시민들을 죽였다. 아무리 미국과 서방 정부들의 제국주의가 더 큰 문제라고 해서 러시아와 푸틴의 이런 행태는 절대 용서받을 수가 없다.
그 점에서 국내에서도 이해영 교수 등 일부 지식인과 좌파들이 그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폭격을 지지하거나 변명해주다가, 지금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을 맹비난하는 것은 설명이 필요하다. 일단 이것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필요하고 정당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태도가 우크라이나 민중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감과 연대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그것을 외면한다면, 이것은 또다른 이중잣대일 수 밖에 없다. 미국과 서방 정부들의 이중잣대와 선택적 공감을 비판하면서, 좌파가 스스로 180도 뒤집어진 이중잣대와 선택적 공감을 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의 한달이 러시아의 2년보다 더 끔찍했다는 비교는, 이스라엘의 한달을 비난하는 뜻이지 러시아의 2년을 옹호하는 뜻이 아니다. ‘하마스 뒤에는 이란이 있으니 어느 쪽도 편들 수 없는 대리전’이라는 말이 틀렸듯이, ‘젤렌스키 뒤에는 미국이 있으니 어느 쪽도 편들 수 없는 대리전’이라는 말도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이 더 이상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제 저항을 포기하고 이스라엘에 양보하며 가자에서 떠나야 한다’는 말이 틀렸듯이,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제 그만 러시아에 양보하고 영토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틀렸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하마스를 정치적으로 지지할 수 없으니 팔레스타인의 저항도 지지할 수 없다’는 말이 틀렸듯이, ‘젤렌스키를 정치적으로 지지할 수 없으니 우크라이나의 저항도 지지할 수 없다’는 말도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제국주의 세계체제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미국이 틀렸으니, 그보다는 덜 강력하고 덜 문제를 일으키는 러시아는 옳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 세계체제에서 약소국이거나 힘이 없어서 희생당하는 이들의 저항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오류를 인정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보고 흘리는 눈물이 우크라이나의 참상 앞에서 사라지지는 말아야 한다. 절렌스키 정부를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는 우크라이나 민중과 좌파의 목소리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입장을 거부한다... 우리는 억압자가 아니라 억압을 경험하고 저항하는 사람들과 연대해야 한다...국제 언론이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인을 서로 대립시키는 것을 중단하고, 고통의 위계가 인종차별적 수사를 영속화하고 공격받는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민중을 위해 연대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팔레스타인 민중을 위해 모두가 똑같이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 연대모임)
● 이스라엘과 하마스, 그리고 좌파 - 2
며칠 전 박노자 샘이 페북에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으로 숨진 한 이스라엘 아이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봤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박노자 샘을 ‘양비론’ 심지어 ‘이스라엘 지지’라고 매도하기 시작했다. 박노자 샘의 그동안 입장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것이 터무니없는 곡해이고 근거없는 비방인 것을 모를 수 없다.
박노자 샘은 일관되게 이번 사태의 책임과 뿌리는 이스라엘의 점령과 억압에 있다고 지적하고 그것에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테러에 맞설 자위권을 무조건 지지하고 동시에, 팔레스타인인들의 절망적 상황도 무조건 공감하자’는 슬라보이 지제크같은 입장이야말로 양비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로 가자지구의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박노자 샘이 올린 글에 오해를 하며 반발한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그래서 ‘한국에는 지금 하마스의 잘못을 옹호하는 의미있는 운동이나 좌파도 없는데 굳이 이런 글을 올리냐’는 물음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곧바로 박노자 샘의 글에 노동자연대(노연) 회원분들이 ‘하마스의 문제점도 외면하고 사실상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좌파’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댓글들을 달기 시작했다. 노연은 지금 한국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에 반대하는 의미있는 투쟁을 하고 있는 좌파 중에 하나임에 분명하다. 그 노력은 부정하기 어렵다.
나는 이미 노연이 10월 7일의 기습공격을 의미있는 성과라며 기뻐하거나, 심지어 휴전 요구도 지지하지 않는 태도가 왜 문제인지 비판한 바 있다. 또 하마스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제시한 바 있다. 그래서 이 논쟁을 보며 좀 더 진전된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어졌다. 이 점에서는 박노자 샘도 이미 여러 의견을 제시해 왔고, 나도 대부분 공감하고 지지한다.
그래도 굳이 몇가지 작은 이견들을 말하자면, 먼저 박노자 샘이 하마스를 지지하는 좌파를 비판하면서 ‘레닌의 전략전술적 천재성’을 대비한 것이 좀 걸렸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천재와 보통 사람’을 나누는 것은 좀 그렇고, 또 레닌과 볼셰비키가 1917년 이전에 대체로 옳은 전략전술적 판단을 내린 핵심 이유는 민주적 토론이 가능한 구조에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 10월 7일 공격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식의 분석과 언급도 좀 걸렸다. 이것은 미국도 증거가 없다고 한 부분이고, 그보다는 이스라엘의 오랜 폭압과 점령이 자초한 쌓이고 쌓인 울분의 뒤틀린 폭발이고 주체적 행동이라고 보는게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인다.
이어서 10월 7일 공격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자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그날 희생자의 일부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됐다는 것이다. 이미 그날의 이스라엘 생존자(야스민 포랏)가 ‘격렬한 총격전 속에서 이스라엘군이 죽인 사람들’에 대해 증언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는 그날 희생자 중에서 일부는 이스라엘군의 전투헬기에서 총격을 받아서 죽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하마스의 기습에 당황한 이스라엘군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서 이스라엘 시민들까지 죽여버렸다는 말이다.
그래놓고서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만 매도하며, 그것을 빌미로 가자지구에서 10월 7일의 열 배가 넘는 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게 지금 상황이다. 따라서 "10월 7일에 저지른 일 때문에 하마스가 해체되어야 한다면 이스라엘 정부는 10배는 더 해체되어야 한다"는 노먼 핀켈스타인의 말이 딱 맞다.
하지만 수잔 파쉬코프가 지적하듯이 “맥락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고 해서 일어난 일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고 “잔인함은 이에 맞선 잔인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좌파들이 10월 7일 공격을 비판하고 그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데이비드 핀켈은 “전략적 목표를 넘어선 학살의 정도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이나 진보적 목적과는 전혀 무관한 행동이다... 무장을 포함한 억압받는 사람들이 저항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 그 방법과 정치를 분석해야 할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것은 오른쪽에서 이스라엘과 강대국들의 학살을 돕기 위한 비판이 아니라, 왼쪽에서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을 돕기 위한 비판이다. 그래서 이런 비판을 하는 좌파들은 팔레스타인 해방의 대안적 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간다.
그 점에서 타레크 바코니는 하마스의 문제는 억압의 구조 자체를 해체하지 못하는 전략의 부재에 있다고 지적한다. “폭력적이지 않은 반식민지 투쟁은 없었다. 그러나 효과적인 사상적, 전략적 정치 프로젝트 없이는 통제 불능이 될 수 있는 유혈 사태와 무장 저항은 다르다.”
케빈 B. 앤더슨은 하마스의 대리주의를 비판하며 대중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민족 독립을 달성하려면 헌신적인 젊은이들로 구성된 비밀 간부들이 대중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대중에 뿌리를 둔 진정한 대중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 역사의 또 다른 교훈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해방의 전략을 자유롭게 논의하며 검증할 수 있는 민주주의라는 것을 강조한 팔레스타인 출신의 탈식민주의 연구자 바시르 아부 만네의 주장이다.
“종속적인 협력주의 정권이나 군사적 저항의 형태 사이에서 살아가는 나쁜 선택의 30년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을 옹호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이며, 이는 정의를 향한 첫걸음이다.”
이 모든 분석과 비판은 명백히 이스라엘의 점령, 폭격,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더구나 지금의 대학살극 속에서는 아무리 하마스에 비판적이더라도 하마스를 가자지구에서 모조리 궤멸시키겠다는 이스라엘의 시도를 조금치도 인정할 수 없다.
하마스가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팔레스타인 저항의 일부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고, 지금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을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 전체에 대한 공격과 구분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가자의 지옥같은 상황에서 분노에 찬 청년들이 하마스에 합류하고 유혈 저항에 나서는 그 마음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단정은 누구든 쉽지 않다.
반면에 우리는 ‘10월 7일 공격의 희생자와 그 가족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곧 양비론이고 이스라엘 지지’라는 또다른 오답도 거부해야 한다. 이것을 팔레스타인 저항을 지지한다면 하마스도 지지해야 한다는 또다른 오답과 연결시키지도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박노자 샘 글의 댓글에서 노연 회원들이 스스로 드러낸 오류이다.
덧붙여 나는 노연 회원들의 이러한 ‘대의가 옳으면 부수적 피해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가 ‘혁명조직 건설이 중요하지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은 모르겠다’는 태도와도 관련있다고 의심한다. 그게 아니라면. 댓글창에서 혁명적 대의를 옹호하며 보여 준 그 넘치는 정의감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보여 주며 노연 지도부에게 사과와 문제 해결을 촉구해주길 기대한다.
● 모든 언론이 외면하는 강미정 씨의 용기를 응원해야
어제 <뉴스공장>에서 이정섭 검사 처남의 부인인 강미정 씨 인터뷰를 보면서 정말 충격과 전율이었다. 정치검찰의 더러운 실체를 폭로하는 그 내용이 너무 생생하고 놀라워서 마치 2018년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에 나왔던 순간이 떠올랐다.
윤석열 측근이며 특수통 검사인 이정섭의 행태는 기막히다. 자기가 수사한 재벌을 봐주며 온갖 향응과 접대를 받고, 검찰 지위를 이용해 불법을 밥먹듯하고, 그 처남은 마약을 하고도 수사는 물론 처벌도 안받고, 심지어 마약에 취해서 장모를 폭행하고도 무사하고...
정말 골 때리는 것은 부인의 신고를 받고 마약 현행범인 이정섭 동생을 잡으러 온 경찰이 전화 한 통화에 철수해버리는 장면이다. 그 후 부인은 수사 경찰이 6명이나 계속 교체되며 수사가 흐지부지되는 상황을 겪었고, 제출한 결정적 증거가 경찰에 의해 중간에서 사라지는 일까지 있었다.
심지어 경찰은 ‘마약 신고했다가 남편에게 칼 맞은 부인’을 말하며 강미정 씨에게 은근한 협박까지 했다! 더구나 서초동을 다 뒤져도 이 사건을 맡으려는 변호사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결국 온 세상이 다 검찰을 무서워하고 편들고 있다는 것을 경험한 강미정 씨는 마침내 지푸라기잡듯이 그나마 <뉴스공장>까지 찾아가게 된 셈이다.
서지현 검사가, 임은정 검사가 그랬듯이 이번에도 저 무소불위와 안하무인의 파렴치한 정치검사들에게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정면으로 맞선 것은 그것을 겪어본 여성이었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어제 오전 인터뷰를 듣고 너무 충격적이고 기막힌 내용이라서 곧 언론에서 이 소식이 퍼질 것이라는 기대는 산산히 부서졌다.
오늘까지도 대부분의 언론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갔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알겠다. 이런 것을 보도하던 언론과 기자가 어떻게 되는지 모두 목격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앵커가 쫓겨나고, 고소고발과 압수수색을 당하고, 뉴스타파는 심지어 집권당에게 ‘사형에 처할 국가반역죄’라는 협박까지 당했다.
그러니 어제 오늘 조중동을 도배하고 한겨레경향도 맘 편하게 받아쓴 것은 주로 최강욱 발언 논란 정도였다. 엄청난 용기를 내서 얼굴과 이름까지 공개한 강미정 씨가 얼마나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 여성의 외로운 투쟁은 결국 세상을 바꿀 것이다. 어제 강미정 씨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이 싸움에서 이겨도 상처만 남는다. 나와 아이들은 아빠와 가족을 잃는다. 그러나 이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나 말고도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검사들 때문에 수많은 피해자가 있었을 것이다. 고통이 너무 크다. 주변에서 다 자살행위라고 했고 뉴스를 보면 뭐든 할 수 있는 집단으로 보여서 무서웠지만 죽을 각오로 나왔다.”
(기사 등록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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