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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러시아 침략의 논리/ 소련과 중국의 차이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8. 20.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 온 박노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서 시작된 전쟁에 대해서 분석하고 전망하는 글들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러시아 침략의 논리

이 글을 쓰기에 앞서서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달아야 할 것입니다. '설명'은 결코 '긍정'이나 '수용'을 절대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번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포함한 그 어떤 제국주의 침략도, 그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되죠. 그런데 '합리화'와 차원이 다른 침략 주체의 내재적 논리 구조의 '이해'는 필요합니다. 그런 이해가 있어야 침략 주체의 차후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으며, '평화' 모색의 가능성과 방법들을 고민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와 그 후의 러시아는 참 모순적인 사회이었습니다. 일면으로는 푸틴의 권위주의 정권 통치 하에서는 일정한 '안정'이 찾아왔습니다. 2014년 이후 경제 성장은 멈추었지만, 대도시들의 평균적 소비 수준은 예컨대 동유럽 (바르샤바나 리가, 부다페스트 등)과 이미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술은 계속 진보되었으며, 예컨대 러시아 은행들의 넷뱅킹이나 앱들의 기술적 수준이나 편리함은 이미 2010년대 후반에 북구를 추월할 정도이었습니다. 범죄율 등도 내려가 모스크바의 살인율(10만명 당 살인 피해자의 비율)2.5명에 달했습니다. 참고로 뉴욕의 살인율은 3.4명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이런저런 "개선"이나 "발전"이 계속 이루어져 온 것이죠.

한데 이런 상황임에도 자국의 상태에 대해 만족해 하는 러시아인들은 거의 아무도 없었습니다. 독재의 전횡을 문제 삼는 자유주의자나, 이민 노동 착취, 미국과 거의 같아진 빈부 격차 등을 문제 삼는 좌파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주의자도 (비스탈린주의적) 좌파도 러시아에서는 별로 영향력 없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지배층이나 지배층에 가까운 지식인들은 러시아의 상대적인 글러벌 위상의 '추락'에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었습니다. 미국의 패권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세계 금융과 첨단 정보 기술의 중심이자 최강의 군사 대국은 미국이었습니다. 금융이나 기술, 혹은 투자 자본의 보유 차원에서는 러시아는 미국이나 유럽과 "힘겨루기"에 턱없이 역부족했습니다. 법치 질서나 생활 편리함의 면에 있어서는 서유럽과 여전히 비교가 불가능했습니다.

한데,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는 중국처럼 급성장하는 제조업 대국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부유해진 러시아의 주민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나 휴대폰, 그리고 냉장고 등의 가전은 거의 전부 한국이나 중국산 등 수입품이었습니다. 수입차나 러시아에서 조립되는 외국 브랜드들이 자동차 시장을 석권했는가 하면, 소련 때에 비행기 제조로 유명했던 러시아에서 95%의 항공사 승객들은 이제 보잉이나 애어버스를 타고 다니게 됐습니다.

사실 부유해졌지만, 러시아는 가면 갈수록 유럽과 중국의 "원자재 제공국" 수준으로 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지배층과 지식인들이 이 부분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있었지만, 많은 일반인들이 사실상의 종신 대통령제가 초래한 가공할 만한 부정부패 등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2011-12년에 모스크바 등지에서 일어난 데모 등이 기층민 불만의 수준이 상당히 높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모든 불만에 모종의 "출구"가 필요했습니다.

물론 전쟁은 이런 상황에서 가능한 유일한 "출구"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론적으로 푸틴은 부분적으로라도 민주주의를 복구하는 등 정치적 '참여' 가능성들을 넓혀줌으로써 민심을 수습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석유와 천연가스로 벌어들이는 자금의 일부라도 재공업화, 첨단 기술 제품의 국산화 계획에 효율적으로 이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러시아가 소련 때부터 저력이 있는 과학기술 등의 발전에 보다 많은 투자를 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데 푸틴은 결국 독재의 완화나 평화적인 식산흥업/국가 보호주의 길이 아닌 전쟁과 전시 경제 건설, 그리고 전시 상황에서의 수입대체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이미 2014년부터 크림 반도 병합 등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침략과 2022년부터 시작된 전면전, 수십만 명의 전사, 우크라이나 국토 상당부분의 황폐화와 러시아에서의 극단적인 권위주의 정권의 착근을 의미했습니다. 도대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푸틴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을 이루는 옛 KGB 등 보안 계통의 관료와 군 장교 계층, 군수 산업 관계자, 보수적 논객 등의 영향을 물론 과소 평가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야말로 결국 푸틴 정권의 가장 중요한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푸틴의 권력 지향이 절대적이기에 제한적 민주화를 푸틴이 자신의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밖에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평시의 국가 보호주의/국가 주도의 재공업화도 아닌, 고립을 수반하는 전시의 수입대체 전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궁극적으로 푸틴이 자신의 관료 집단을 불신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불신에는 합리적 이유가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2010년대초반부터 선포된 수입 대체는, 극히 일부의 분야 (소프트웨어 등) 이외에는 거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러시아의 고급 관료 대부분은 서방에서 부동산을 보유했으며 그 가족들을 거기로 가서 살게끔 해주곤 했습니다.

푸틴과 그 주위의 KGB 출신들에게는, 서방에서 영주권과 부동산을 보유하는 관료들의 존재나 지속적인 수입대체 전략의 실패, 러시아 시장에서의 외국산 정밀기계나 여객기의 지배적 위치 등은, 러시아가 '매판' 관료 집단이 이끄는 기술, 경제상의 "유사 식민지"로 돼간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결국 그들이 서방과의 관계를 단절시킬 만한 전쟁 이외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자주성"과 효과적인 (전시의 압박 속의) 수입 대체 재공업화를 이루어낼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좌파 논객들이 나토의 확장이 이번 침공을 "도발"했다고 보지만, 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전 이번 침공이 궁극적으로 푸틴 주위 집단의 일종의 "국가 주도 개발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굳이 비교하자면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 전쟁 개입과 1970년대 한국의 병영국가화와 방위산업 발전에의 중점 등과 비교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전쟁이 '국가 개발 전략'의 일환이라면, 이 전쟁이 그리 쉽게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입니다. 서방이 평화 협상에 나서도, 한국 전쟁의 종전을 원치 않았던 스탈린처럼 푸틴도 협상을 질질 끌면서 그에게 득이 되는 전쟁 행위를 계속할 가능성도 있다는 거죠.

그리고 침공이 어떤 방식으로 끝날 것인가와 무관하게, 앞으로 수십년 동안 광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뒷받침되는 병영국가에서 살아야 할 러시아 사람들이 과연 행복할 것인가, 싶습니다. 국가적 살인을 그 최고의, 숭고의 이념으로 삼는 사회에서 살면서 과연 행복할 수 있는가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군사주의, 이 병영사회와의 투쟁 과정에서 러시아에서 새로운 좌파가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소련과 중국의 차이

한국에서는 구소련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싶이 하지만, 중국의 경우 "소련 몰락의 원인들"이라는 것은 지금도 가장 유망한 사회과학 연구의 테마입니다. 물론 뻔한 일이죠. 소련의 몰락을 타산지석 (他山之石),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중국 공산당은 이와 같은 일을 스스로 미연에 예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의 각종의 이데올로기적 켐페인들을 보면 "소련 말기와 같은 자유주의 분위기 조성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그 조직자들이 스스로 이야기하곤 하죠. 한데 중국 공산당은 꼭 그렇게 걱정할 필요까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소련 혁명과 중국 혁명, 그리고 소련과 중국 국가의 국제적 위치 등이 상당히 서로 달랐기에 중국이 "소련의 전철을 밝는다"는 것은 성립하기 어려운 등식일 것입니다.

소련은 꼭 (맑스가 생각했던 대로의)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었지만, 191710월 혁명은 분명 사회주의, 즉 탈자본주의를 애당초에 지향했습니다. 적어도 당내 좌파가 몰락한 1927년까지는 소련 국가의 1차적인 존재의 의미는 바로 "세계 혁명"이었습니다. "세계 혁명" 사업이 독일과 중국이라는 유럽, 아시아의 핵심 국가에서 좌절된 것은 당내 좌파 몰락의 중요한 배경이기도 했죠.

스탈린이 집권한 뒤로는 "세계 혁명"은 사실상 일국적인 국가 주도 개발주의로 대체되었지만, 소련의 기본적 국가 구조는 여전히 레닌 시대의 유산을 거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15개의 구성 공화국들은 명색상 독립 국가들이었고 "민족 자결권" (소 연방 탈퇴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는 아예 유엔 회원국이기도 했죠. 15개의 구성 공화국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군과 비밀 경찰 이외에는) 바로 공산당과 15개 공화국 "민족 간부"들이 원칙상 공유해야 할 "맑스-레닌주의", 즉 대단히 통속화, 도그마화되었지만 원칙상 좌파적인 이데올로기이었습니다.

중국 혁명은 - 비록 공산당에 의해서 진행되었지만 - 일차적으로 "계급"이라기보다는 "민족" 혁명이었습니다. 즉 민족 국가의 재통일, 외세 배제, 영토 완전, 그리고 그 뒤에는 민족 국가의 개발은 애당초부터 혁명의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 공산당 시스템을 통한 민초들의 동원, 아래로부터의 수백만 명 간부들의 신분 상승, 그리고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은 이 민족 혁명의 주요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을 이미 국민당 집권기에 하고 있었고 만주국에서도 했기 때문에 사실 꼭 사회주의적인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 1978년에 개혁, 개방하여 외자 유치, 외국 기술 이전, 해외 시장 중심의 수출 주도 개발 프로젝트를 가동해도 공산당의 명분에 아무 손상도 가지 않았습니다.

애당초부터 공산당의 통치 명분은 "사회주의"보다 "국력 배양"이었고, 이 수출 주도 개발주의는 "국력 배양"에 가시적으로 도움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소수 민족 자치구들이 명색상의 독립 국가인 적도 없었고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이후 소수 민족들의 자결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치구들을 포함한 중국의 전국토를 하나로 묶는 것은 당과 그 이데올로기 (그리고 군과 비밀 경찰)뿐만 아니고 하나의 행정망과 하나의 언어 등입니다 (소련은 에스토니아나 투르크메니스탄의 민족 간부들에게 구성 공화국 안에서의 러어 사용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중국 표준어의 사용이 무조건 요구됩니다). 그러니까 공산당의 이데올로기 등이 그 호소력을 말기의 소련처럼 상실해도 국가 "붕괴"의 가능성은 말기의 소련보다 훨씬 적은 거죠.

소련은 1980년대말에 이르러 이미 완결된 과학연구 및 공업 시스템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자기 나름의 표준체계 (러어로 "GOST", "국가 표준"이라고 했죠)를 갖고 있었죠. 문제는, 이 표준체계는 동유럽과 북한, 베트남 등 극히 일부의 국가 이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통하지 않아 소련산 기기 등의 수출이 대단히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 후진성 등의 여부를 떠나서 서방의 시스템들과 기본적인 호환성부터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완결된 시스템을 가지고 중국처럼 수출 주도의 개발 전략으로 키우는 일이란 지난했을 것입니다. 소련 노동자들이 이미 갖고 있는 제반의 사회적 권리 (휴가, 연금, 잔업에 대한 제한 등)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에 중국처럼 외자를 도입해 저임금 노동력 "활용" 위주로 수출 산업을 새로이 만드는 것도 아마도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소련 말기의 노동자들이 "저임금 노동력"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결국에 소련과 같은 완결된 국가 단위의 산업 시스템은 1980-90년대 세계화 바람에 그냥 "완전히" 무너지고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한 때에 15개 구성 공화국들을 하나로 묶었던 공산당의 통속화되고 도그마화된 (유사) 좌파 이데올로기를 대체해서, 소련의 거의 모든 후계 국가들은 "민족 우파" 이데올로기의 자장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중에서는 푸틴 치하의 러시아는 특히 공격적인 군사주의적 민족주의를 사실상 국시로 삼은 것입니다. 반대로 중국 공산당은 1978년부터 서방의 포준체계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여 세계화된 시스템에 편입되는 듯한 인상을 주었지만, "국력 배양"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른 지금에 와서는 (서방 중심의) 국제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떠나 이제 스스로를 표준으로 삼으려 하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중국에 비해 국력이 현저히 약하지만, 부분적으로나마 지금 수입 대체 프로그램을 실시해 "완결된 자기 중심의 시스템"- 극히 부분적이지만 - 나름 복원해보려 하는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미국도 지금 사실상의 보호주의로 갈아타서 탈세계화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한데 여전히 수출 본위의 대한민국 경제는 여전히 세계화 시대의 상황에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제는 과연 앞으로 전망이 어떨 것인지, 국민 국가나 지역 블럭 중심의 탈세계화 시대에 대한민국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정치인들이 좀 심각하게 토론해야 할 주제입니다. 한데 주류 정치인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거의 들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기사 등록 202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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