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이니셰린의 밴시 -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5. 30.

박철균

*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사실 본 것은 4월 초에 봤었는데, 이래저래 감상평을 쓰니 마니 개인의 바쁨으로 미루다가 이제야 조그마하게 쓸려고 한다. 아일랜드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그래서 섬 너머 본섬에서 들리는 총성 소리나 본섬에 다녀 온 경관의 비인간성을 통해 내전의 느낌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게 있어 인간관계에 있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뭔지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만화 "후르츠 바스켓"의 명대사가 생각났다. "좋아하기 때문에 무슨 소리를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돼. 좋아하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반성하는 편이 좋아. 일방적으로 고조된 애정을 맞부딪쳤다간, 상대의 무거운 짐이 되거나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돼. 상대방의 마음을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마음을 잊어선 안돼.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미움받게 될거야."

영화는 그 대사의 흐름과 정확하게 이어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상대방은 코드가 맞지 않은 자신에게 지쳐 절교를 선언하고 아예 손가락 절단까지 얘기하며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의 인생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만남과 시도를 하려고 하는데, 주인공의 모습은 시골 순박한 아저씨의 탈을 쓴 채 자신만 생각하고 그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거리두기는 고사하고 서운한 맘만 가득한 이기적인 모습이다.

그 이기적 모습으로 계속해서 사고를 치고 피해를 끼치고, 그 과정에서 생긴 못된 잘못에 옆에 귀찮을만큼 따라다니던 동네 청년도 다른 사람이랑 똑같다며 자리를 피함에도 자기정당화하기 바쁘다.

이런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코드가 안 맞아서 극에서 나왔던 콜름처럼 독하게 나오지 않더라도 이래저래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 "왜 자기와 안 만나 주냐?"면서 지인에게 거짓말을 해서 나의 다른 대인관계를 방해하거냐 여기저기 나와의 관계가 문제가 생겼고 내가 좀 이상해 진 것 같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고 생각해 봤다.

차마 콜름처럼 극단적인 자해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제대로 화를 내고 불편한 감정을 보이며 절교를 선언했는데, 그로 인해 자신이 큰 피해를 입었다며 우리 집에 몰래 들어가 온갖 재산을 부셔버리거나 아예 방화를 했다고 생각해 봤다. 그런 스토커 같은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걸로도 손가락을 차마 자를 수 없어도 매우 사람에 대한 공포와 실망이란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될 것 같다.

동시에 나 역시 내 자신의 외로움 때문에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파우릭처럼 상대방에게 접근한 것이 아닌가 또 조심하고 반성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선을 넘지 않는 것,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 상대방과 어떻게 함께 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영화에선 그 선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쑥대밭이 된 후에야 다시금 시작의 여지가 생기는 것처럼 끝나지만, 동생의 제안에도 끝내 섬에 남아 변화를 거부하고 외로움에 오열하는 파우릭의 모습에서 과연 그 실낱같은 희망조차 안개같다.

상반기 봤던 영화 중에선 최고의 영화. 그 난장판 같은 시골 섬에서 빠져 나와 자신의 삶을 선택한 동생 시오반이 멋있었고, 아버지의 구타에 시달리면서도 기댈 공간과 사람을 찾았으나 고백은 거절당하고 결국 똑같은 나쁜 사람이었던 동네 형에게 실망한 채 영화 내에서 또 다른 극단의 선택을 하는 도미닉이 안타까웠다.

아들은 물론 만만한 동네 주민에게 폭력 및 성희롱을 행사하고 본섬에서 사람이 처형되는 걸 마치 게임처럼 얘기하는 경찰이 막상 자신의 아들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것을 확인했을 때 무너져 내리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기사 등록 2023.5.30)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