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 주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확실히 신카이 마코토의 그간 작품보다 많이 발전되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간 신카이 작품들은 굉장히 풍부하고 아름다운 배경, 작화 그리고 명암 표현을 가지고 있지만, 격한 액션은 뭐랄까 그만큼 못 따라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현란하고도 풍부한 액션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스토리 구성도 로드무비 같으면서도 각 장소의 상징성 때문에 공간적 배경이 고정적처럼 보이고, 개인이 전 세계의 흥망을 쥐락펴락하는 "세카이계" 장르처럼 보이다가도 결국 개인 하나하나가 치유가 되는 드라마로 귀결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신카이 마코토가 보여준 장르의 이미지가 달라져서 이전 작품보다는 확실히 재밌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감동적으로 봤다. 고베, 도쿄, 센다이 등 대지진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것을 체험한 일본이란 나라에서 지진 같은 자연재해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그로인해 소중한 사람과 물건을 잃었을 때 절망과 고통의 트라우마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내일을 살 수 있게 하는지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은 이제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고, 그 당시 이재민이자 유가족인 스즈메가 그 당시 그림일기를 보다가 3월 11일 부분부터 일기장을 그냥 검은색 크레용으로 덮어 놓는 것과 배경으로 쓰나미경보음이 울릴 때 스즈메의 아픔이 너무 낱낱이 느껴져서 고통스러웠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어릴 때 봤던 그 사람은 죽은 엄마가 아니라 미래의 자신이었다는 전개도 흥미로웠고, 12년 후 고2가 된 내가 엄마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채 엄마를 찾아 저세상까지 온 어린 나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는 감독이 자연재해로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은 모두에게 남기는 최고의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하나하나 감동적이고 좋은데, 과연 일본인이 아닌 타국의 사람들에게도 과연 일본인만큼 감동적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 작품도 일본신화와 일본 문화를 차용하기는 했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은 그동안 봐 왔던 작품 중에 가장 "내수용"인 작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진과 연관된 일본 고대신화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아주 오래 전 관동(도쿄) 대지진, 이젠 삼십년 전 일인 고베 대지진, 그나마 최근이고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그 날이 3월 11일인 것 까지는 챙기지 못하는 외국의 사람들에게 그 위로와 치유는 일본인 만큼 다가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곳곳에 쌓여가는 폐허 문제 역시 관련된 일본 소식을 모르는 사람에겐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즉,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재미와 감동은 관객이 일본인이거나 아니면 얼마나 일본문화에 익숙하고 요것조것 알고 있느냐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루즈의 전언" "은하철도 999" 등 삭삭삭 지나가는 예전 일본 가요가 작품에서 말하는 메시지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날씨의 아이보다 재미와 대중성은 많이 얻게 되었지만, 날씨의 아이에서 보여줬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메시지는 그 볼륨이 줄어든 것도 아쉬웠다. 어쨌든 관동대지진 말고도 관동대학살을 아는 입장에서, 작품에서 후쿠시마 지역의 폐쇄 구역과 방역을 여전히 하는 듯한 장면이 슥슥 지나가지만 역시 동일본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로 인해 고향으로 여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배제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는 입장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은 딱 거기까지 대중성으로 끝난 것 같아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충분히 볼만하고 꼭 극장에서 관람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길 바란다. 단지 오무라이스에 호들갑을 떨고 위안부, 징용, 독도 등 여러 민감한 상황에서 한국인 피해자에게 모멸적인 야합을 하고 왔으면서 마치 일본사회랑 소통했다고 하는 것보단, 차라리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거대 재해의 공포와 슬픔 속에 살아가는 일본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다지며 계속 살아가는지 조금씩 확인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기사 등록 20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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