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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국가는 자본가 계급을 조직한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8. 18.

스티븐 마허STEPHEN MAHER

번역: 두 견

미국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 분석하는 글이다. 자본주의를 유지하려면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들이 부자연스러운 일, 즉 서로 협력을 해야 한다. 국가는 이러한 계급 규율을 육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을 키워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와 좌파의 정치적 대안에 대해서 연구해 온 스티븐 마허는 <소셜리스트 레지스터>Socialist Register의 부편집장이자 <기업 자본주의와 통합 국가: 제너럴 일렉트릭과 미국 권력의 세기>(2022)의 저자이다. 그는 현재 온타리오 공과대학교의 박사후 연구원이다.

출처: https://www.jacobinmag.com/2022/05/capitalism-neoliberalism-state-ge-business-roundtable

2차 대전 당시에 트루먼 대통령에게 국방동원국장으로 임명되는 제너럴일렉트릭의 사장

모두가 동의하는 것 같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기업 로비에 의해 타락했다. 아무리 음흉한 의도가 있다고 해도, 정치에서 돈의 역할을 "수렁에서 빼내겠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약속은 그의 절망적인 추종자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한편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과 같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우리가 선출한 지도자들에 대한 기업의 영향력을 제한함으로써 "부패"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 왔다.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둘 다 기업의 권력을 우리 정치 시스템의 특징이 아니라 버그로 보는 것 같다.

최근 수십 년간 불평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원인을 찾고 있는 학계에서도 기업 로비 활동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따라서 널리 영향력 있는 저서 <승자 독식 정치>에서 제이콥 해커Jacob Hacker와 폴 피어슨Paul Pierson1970년대 이후 폭발적인 로비 활동이 노동계와 기타 이해 집단을 압도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동안 부의 상향 분배와 중산층의 침식을 촉진하는 정책 변화를 초래했다.

이 틀의 주요 효과는 우리의 정치적 비판의 초점을 좁히는 것이다. 계급 권력이 주로 기업 로비의 결과라면 진보와 좌파의 주요 목표는 선출된 대표자에 대한 기업의 영향력을 제한함으로써 "정상적인"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정책의 "균형추"가 노동 쪽으로 되돌아가도록 하고 친노동자 정책의 제정을 허용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는 본질적으로 경쟁하는 이익 집단의 이익을 균형 있게 조정하는 공정한 심판관이다.

이 자유주의적 이야기는 대체로 신화이다. 자본의 힘은 기업 로비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의 DNA에 내장되어 있다. 사실 국가는 자본주의적 계급 권력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한다.

개별 기업은 광범위한 계급적 관심사이 아니라 경쟁하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필요성에 동기를 부여받는다. 결과적으로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국가는 전체 시스템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데 필요하다. 국가는 단순히 특정 자본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를 일관성있는 계급으로 조직한다.

이런 식으로 국가는 그 명령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본을 대신하여 행동한다. 그러나 또한 개발하는 정책에 대한 기업의 지원도 구축해야 한다. 내 책 <기업 자본주의와 통합 국가: 제너럴 일렉트릭과 미국 권력의 세기>에서 보여주듯이 로비 그룹을 구성하고 동원하는 것이 그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러한 조직은 기존의 사업적 이해관계를 옹호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자본의 계급 전체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합의를 구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은 "통합적 국가"의 일부이며 국가 권력은 공식 정부 기관을 넘어 시민사회 조직들을 통합한다.

이 책은 미국 기업 자본주의의 1세기를 통해 이 통합적 국가의 중심에서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역할을 추적한다. 알 수 있듯이 이 회사는 국가 관료들과 협력하여 비즈니스 위원회, 비즈니스 원탁회의, 경제 개발 위원회(CED) 및 기타 주요 로비 그룹을 구성했다.

그 경영진은 이 공간들에서 뉴딜, 전시 생산 계획, 관세 인하 및 자유 무역, 1970년대 위기 동안 시행된 임금 및 가격 통제에 대한 기업 지원을 조직하기 위해 일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끝내는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더불어 세계화된 제국주의 국가의 건설도 포함된다.

대공황, 세계 대전, 세계적 제국

1929년 시장 붕괴가 있을 때 GE는 이미 J.P. 모건의 그늘에서 나와 경영통제되는 첫 번째 거대기업체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동시에, 그것의 관리자들은 뉴딜을 위한 사업들 사이에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상무부 내에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의해 만들어진 비즈니스 자문 위원회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자본가들 사이에서 이러한 개혁에 대한 지지는 미미했지만 때로는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GE 경영진은 체제를 구하고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의 물결을 종식시키는 데 이것이 필요하다고 자본가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일했다.

새로운 경영 엘리트들의 선봉에서 GE의 위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생산 계획을 위한 국영 기업 시스템 내에서 중추적 역할에 더욱 반영되었다. GE 사장인 찰스 윌슨Charles Wilson은 전시 생산위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었지만, 경제 개발 위원회를 구성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후자는 전쟁이 끝난 후 영구적인 군산 복합체의 통합뿐만 아니라 국가 주도의 경제 계획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종종 그것을 꺼려하는 자본가 계급 사이에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국가를 '포획'한 군산복합체가 무기 판매를 늘리기 위해 불필요한 갈등을 빚어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경제적 생산을 직접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제국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화와 기술을 생산하는 기업에 의존한다.

실제로 전후의 제국에 대한 미국의 계획에서 특히 두드러진 점은 그것이 기업으로부터 얼마나 자율적이었는가였다. 한편 외교 관계 협의회는 미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질서 내에서 GE의 필립 리드Phillip Reed를 비롯한 기업 경영진과 국가 기획자들과 기업 간부들 사이에 '국익'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발전시키는 포럼의 역할을 했다.

사실, 자본은 새로운 제국 국가가 요구하는 전례 없는 수준의 평시 과세를 지지하는 것을 상당히 꺼렸다. 또한 마샬 플랜을 통해 미국의 주요 산업 라이벌을 재건하려는 기념비적이고 값비싼 노력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는 국무부 관리들이 옹호하는 과감하고 일방적이며 전면적인 관세 인하가 우려스러웠다. 이러한 두려움은 이해할 만했다. 미국의 기업들은 19세기 이후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 중 하나 속에서 번창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 국무부는 마셜 플랜에 대한 기업들의 지지를 구축하는 한편, 재무부는 브레튼우즈 무역 체제에 대한 합의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GE의 필립 리드가 지원하는 정부 관료들의 격렬한 논쟁의 결과 CED는 이러한 조치에 대한 기업들의 지지가 이뤄지는 주요 기반으로 떠올랐다. 리드의 참여는 특히 주목할 만했다. 당시 국가가 반독점 공격을 가해서, 글로벌 전기 장비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GE가 구축한 카르텔 네트워크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보호주의적 압력을 피하기 위해, 국가 관료들과 기업 동맹자들은 로비 압력으로부터 크게 격리된 행정부 내에서 무역 정책에 대한 권한을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야기한 좌절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우려와 반대를 정부가 듣지 않았다고 주장함에 따라 존 F. 케네디 시절의 추가 관세 인하에 대한 반발에 반영되었다.

특히 그러한 협정이 일시적인 "무역 조정 지원"을 위한 통로를 점점 더 봉쇄함에 따라서 말이다. 비즈니스 로비가 수동적인 국가에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기관은 세기의 나머지 기간 동안 불안정한 자유 무역 합의를 함께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신자유주의와 비즈니스 원탁회의

1960년대 말 전후 호황이 둔화되면서 노조의 임금 투쟁은 점점 더 기업 이익을 압박했고 투자 감소와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였다. 1970년대의 위기 10년 동안, 국가 관료들은 노동 규율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행정부가 의무적이고 자발적인 임금 및 가격 통제 계획을 더듬어 보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처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점점 더 깊이 있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기업도 국가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존 코널리John Connally 재무장관과 아서 번스Arthur Burns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GE의 레지널스 존스Reginald Jones와 알코아Alcoa의 존 하퍼John Harper를 만나 위기에서 탈출구를 찾고, 대안이 마련되는 동안 임금 및 가격 통제를 위한 기업의 지원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 관료들과 협력할 고위급 조직을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이로 인해 1971년 비즈니스 원탁회의가 결성되었다. 초대기업 CEO들로만 구성된 이 회의는 정치적인 권력실세였다. 원탁회의는 미리 정해진 의제를 옹호하기보다는 정책을 개발하고 이러한 조치를 지원하기 위해 구성원을 동원하기 위해 국가 관료들과 협력했다. 이러한 협력적 접근 방식은 다른 비즈니스 협회와 구별됐다.

따라서 기업과 대중이 점차적으로 임금과 가격 통제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돌아섰음에도 원탁회의는 이를 가능한 다양한 악 중에서 최소한으로 것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정부 관료들과 원탁 회의 모두 시장으로 복귀를 모색했지만, 계급 규율을 부과해야 하는 필요성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달러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위험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결국 위기는 경기 침체를 조장하기 위한 금리 인상과 더한 층의 세계화라는 두 가지 이어진 전략을 통해 해결될 것이었다. 1979년 연준 의장이 된 직후 폴 볼커Paul Volcker는 금리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인상하여 경기 침체와 치솟는 실업을 초래했다. 기업과 국가는 지난 10년 동안 경기 침체의 고통과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궁극적으로 계급 규율을 회복할 수 있는 다른 실행 가능한 길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효과는 있었다.

"볼커 쇼크"는 고도로 자율적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경제 정책에 대한 권력을 극적으로 집중시켰다. 또한 자본 이동에 대한 장벽을 제거하여 세계 주변부의 방대한 저임금 노동력을 착취에 개방함으로써 추가적인 세계화를 위한 길을 닦았다. 1970년대의 위기 10년 동안에 자유무역을 추구하려는 국가의 사업적 노력의 정당성이 저점에 도달했지만, 국가는 궁극적으로 보호주의 세력을 궁지에 몰면서 케네디 시대의 남아있는 의심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것은 경제 전반의 기업들을 아우르는 전례 없는 범위의 무역 자문 시스템을 상무부 내에 만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권력의 지렛대는 거기서 한 팔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미국 무역대표부의 새로운 사무소 내에 안전하게 위치해 있었다.

나중에 합의의 통과를 지원하기 위해 카터는 GE의 존스가 이끄는 대통령 직속 수출 위원회를 구성했으며 그것은 기업 경영진과 의회 의원, 상징적인 노동조합 대표로 구성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자문" 기관이지만, 이러한 기관의 목적은 기업 간의 자유 무역 합의에 대한 통합을 강화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1970년대 말까지 이러한 노력은 브레튼우즈의 자본 및 외환 통제를 제거하고 원활한 자본 축적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충분한 지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70년대에 이미 확연해진 금융의 힘은 산업을 규율하는 능력과 함께 훨씬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통합적 국가 조직들, 특히 원탁회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걸쳐서 통합되어갈 자본의 서로 다른 "분파들" 사이의 불안정한 계급적 합의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

사회주의 전략과 국가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신자유주의의 부상은 기업 로비나 정부 관료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나 밀턴 프리드먼의 경제적 교리를 강요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정책의 기본 패키지인 규제 완화, 감세, 복지 프로그램 축소, 통화주의, 세계화 등은 상당한 불확실성 속에서 계급 규율을 회복할 방법을 오랫동안 모색한 끝에 도달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 관료나 보수 경제학자의 두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도가니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를 종식시키는 것은 국가 관료들에게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더 읽도록 설득하는 것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오히려, 지난 40년간의 환경적이고 사회적으로 파괴적인 정책들을 깨는 것은 계급 세력의 균형을 바꾸는 것을 필요로 한다.

선거에서 승리나 기업의 로비를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한 개혁에 이르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세계화와 결별하는 것을 의미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도전을 위해서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깊은 계급적 기반의 동원이 필요하다. 오늘날 금융과 산업의 상호 연결로 인해서, 금융을 "나쁜" 자본주의("좋은" 제조업과 반대로)의 원인으로 식별하면서 그것만 격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이것은 이들 부문 간의 타협을 조정하려는 국가의 노력이 성공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산업 기업 자체가 내부에서 금융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도록 심도깊은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산업 기업은 투자 그룹에 의해 효과적으로 운영되며 점점 더 금융 기관과 유사해졌다. 이것은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이익 극대화에 대한 압력을 증가시켰다.

좌파와 노동운동의 취약함을 고려할 때 그것이 아무리 멀게 보일지 모르지만, 오늘날 꼭 필요한 국가 민주화 프로젝트는 기업이 특정 관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정한 경로를 제한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일이다. 오히려 요구되는 것은 국가 제도가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대신 민주적으로 계획된 사회주의 경제의 기관으로 기능하도록 더 깊은 변형을 가하는 것이다.

개별적인 개혁은 유용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경제에 대한 사적인 통제를 민주적인 참여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체계적인 수준에서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더 넓은 프로젝트의 일부여야 한다. 생태학적 전환점을 차례로 넘나들면서 자본의 계급적 권력에 도전하는 것은 더 이상 불확실한 유토피아로 가는 길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끔찍한 상황은 우리에게 사회주의적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사회주의적 전략은 민간 기업의 생산 능력을 취하여 공공적 통제 하에 놓고 사회적, 생태적 필요를 위해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생산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기업의 권력과 시장 규율보다 민주적 숙고의 문제가 되도록 국가를 민주화해야한다. 그래야 우리는 싸울 가치가 있는 미래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할 수 있다.

(기사 등록 202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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