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쟁점과 주장

사랑이 우리를 죽이려 할 때: 공멸과 생존의 기로에서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3. 10.

윤미래

1.

러시아 정부가 핵운용부대에 경계태세를 내리고 냉전을 거론하는 등 노골적으로 핵전쟁 카드를 꺼내들며 협박의 제스처를 취하는 지금의 시점까지 와서 누구도, 경악스러우리만치 그 누구도 핵전쟁을 진지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핵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들만 빼고 말이다... ... (사람들은 정말로 결정권자들이 실제로는 벌이지 않을 전쟁 장비를 갖추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들이고 지역 사회의 반발을 감수해가며 세계 곳곳에 배치해왔다고 믿는 걸까?)

심지어 반전평화 성향의 급진 좌파들조차 '누구도 핵전쟁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을 테니 NATO와 러시아 사이에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있다. 심지어 푸틴의 리더십은 불안하고 푸틴은 공포에 질려 있다고 말하는 바로 그 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 도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에요 그거? 당신은 정말로 손에서 권력이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꼴을 눈앞에서 보게 된 중증 권력뇌 남자들이 마지막까지 최소한의 인도적 합리성을 유지할 거라고 믿는가?

반핵이나 기후위기 운동에서 어쩌면 수십 년간 전략을 잘못 짰던 게 아닌가. 핵전쟁이나 기후재앙을 무시무시하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절대적 공포로 만들어온 게 오히려 역효과였던 것은 아닌가.

견딜 수 없는 파멸의 예고 앞에서 사람은 다급하게 행동을 고치는 게 아니라 그냥 고개를 돌리고 생각을 안 해버린다. 정신이 견딜 수 없으니까. 아니면 누구 말마따나 한 번의 화려한 폭발과 함께 온 세상이 끝나는 미학적 카타르시스에 탐닉하거나. 인류 대다수가 맞이하게 될 현실은 그런 깨끗한 종말이 아니라 더 이상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 지구에서 방사능에 피폭된 몸을 이끌고 끔찍하게 뜨겁거나 얼어붙을 듯이 추운 폐허를 헤매다니며 오래오래 고통받고 천천히 죽어가는 것인데. 그리고 우리는 근 며칠간 거기에 위험스러울 만큼 가까워졌다. 아니, 기후재앙이 이미 시작되었듯이 3차 세계대전도 이미 초입에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내가 보기엔 적지 않은데 아직도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온 방식으로 모든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처럼 굴고 있다. 우리가 '그럴 리 없다'고 믿으면 눈앞에 닥친 일이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인류가 그런 꼴을 볼 때까지 내가 살아있어야 할까? 어째서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을까? 어째서 아무도 우리가 살려면 이 미친 짓을 멈춰야 한다고 외치지 않지?

며칠째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고 온종일 좌불안석하고 밤에는 손발이 가려워서 깨고 있다. 툭하면 토하고, 머리는 아프고. 내가 건강해야 세계도 살린다고 하는데 난 지금 세계를 살리고 싶은 게 아니다. 죽고 싶지 않은 거지. 죽느니만 못한 상태로 전락하고 싶지도 않고. 굳이 말하자면 세계의 다른 모두와 더불어서 그 상태로 떨어지는 게 혼자서 그렇게 되는 것보다 몇억 배 두렵긴 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놀란 초식동물처럼 두려움에 굳어 있는 대신에 움직이고 행동할 용기와 배짱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약하지 않다면. 아니, 이 불장난을 그만두게 만들기 위해 뭐라도 할 영향력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지. 도대체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당신들을 두려워하게 할 수 있나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그 결산은 지금 내 상태고 나는 너무 무력하다.

2.

어쨌거나 살 방법을 궁리해보자. 너무 늦었고, 생각보다 적지 않은 확률로 아무런 소용도 없겠지만 지금에라도.

무엇보다, “이 전쟁은 저들의 책임이다라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한 슬로건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저들'이 적국이 아닌 자국의 지배계급이었을 때 그것은 잠시간 평화주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지레처럼 보였고, 사람들은 모든 전쟁을 끝낼 단 한 번의 전쟁을 꿈꿨다. 하지만 볼셰비키가 계급 투쟁의 이름으로 침략 전쟁을 택한 시점에서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고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장막 양편에 1만 정의 핵탄두가 남아있다.

소련이 노동자국가였는가 국가자본주의였는가를 백날 논쟁해봐야 이 맥락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미국과 소련의 패권 경쟁은 소련에서의 더 많은 노동자 통제와 더 많은 경제 계획, 더 많은 혁명적 정신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소련이 제아무리 민주적이고 비타협적인 노동자국가였다고 해도 그것이 전세계가 동시에 사회주의로 이행하면서 체제 경쟁을 단기간에 끝장내는 결과를 가져왔으리라는 예측은 비현실적이다. 민족과 민족의 전쟁이든 국제적으로 비화된 계급전쟁이든 전쟁이 살상력과 파괴력을 겨루는 게임인 한 상호확증파괴 이외의 억지력이 거기에서 비롯되어 나올 수 있으리란 기대도.

인류 역사 전체가 투쟁하는 계급들의 공멸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다른 대답이 필요하다. 계몽 민주주의의 수출이든 노동계급 혁명이든 그 어떤 다른 이유에서든 우리가 서로에게 대량살상무기를 발사하는 것만큼은 막아줄, 그것을 확고하게 우선시할 세력이, 연대가, 이념이.

"이 전쟁은 우리의 책임이다!"

지금 내게는 그 목소리 이외의 다른 대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장막 양편의 서로 다른 세계에서 각자의 언어로 그렇게 외치며 적국이 아닌 자국의 탱크 앞을 가로막고 서겠다는, 민족과 계급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인류로서의 약속밖에는. 감히 말하건대 계급도, 민족도, 성별도, 인류 일부의 전횡으로부터 다른 일부를 구제하기 위한 그 어떤 싸움도 그 앞에 설 수 없다. 우리가 동등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사는 것을 원해서 그 모든 싸움들을 벌이고 있다면 말이다.

3.

자본주의가 경쟁에서 승리하여 제동 장치 없이 제 문명의 동학을 극으로 밀고 가버린 지금에서는, 심지어 MAD[상호 확증 파괴]의 억지력조차 인류를 더 이상 묶어두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나 범1세계의 시민들은. 우리의 감수성은 이제 공산주의자, 파르티잔, 종교근본주의자, 종족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느니 차라리 대량살상무기를 투입하는 것이 인도적일 수 있다고 느끼며, 제국의 몰락이 곳곳에서의 마찰로 튀어나오면서 사람들은 그 믿음을 내비치는 데 점점 거리낌이 없어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살상을 좋아하며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괴물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 던져져도 어떻게든 행복을 가꾸어내며, 그 행복 안으로 더 많은 타인들을 포용하여 감싸안고 싶어하고, 진심으로 이웃의 고통에 아파하기에 그것을 보고도 구하지 못하면 무력감과 절박함에 사로잡혀 어떤 희생이라도 무릅쓰려 드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를 확장해 세계를 짓고, 그 세계 안에서 타인과 하나가 되고 싶어한다. 그것이 역사와 문명보다 더 오래된 우리의 본성, 우리가 아는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지금 이 별을 파멸로 몰고 가고 있는 힘은 무관심과 증오가 아니다. 온 세상을 삼킬 만큼 커져버린 사랑이다.

사랑이 우리를 죽이려 할 때에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랑을 빼앗으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닐 우리가 무엇으로 이 멸망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나의 세계는 나의 행복일 뿐, 너의 세계, 너의 행복이 될 수 없다는 냉정한 진실에서부터 우리가 출발할 수 없다면. 그래서 내게는 야만스럽고, 부조리하고, 참혹하게만 보이는 타인의 세계에 조용히 귀기울일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그들의 고통을 한시라도 빨리 없애버리고 나의 행복에 그들을 융화시키려는 선하지만 파괴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그들의 병리와 불가해와 곤경을 기꺼이 나눠 지길 결의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공감과 이해에 기초한 조화와 행복에 대한 열망을 접어두고, 철저하고 고집스럽게 낯선 것, 끌어안을 수 없는 더럽고 위험한 것, 공명할 수 없고 조화할 수 없는 타자를 조심스럽게 환대하는 법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사랑임을, 그것이 사랑임을, 사랑도 자라고 어른이 되어 겸손과 절제를 알아야 함을 우리가 끝내 배우지 못한다면… … .

사해동포를 하나로 묶어내려던 모든 이념이 무너지고 파산한 지금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당혹스럽고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로서 당분간 서로 대면할 운명이다. 자유민주 시민들에게 공산주의 파르티잔이, 계몽된 교양인들에게 급진적인 열성 교도(敎徒)들의 무리가, 도회의 코스모폴리탄들에게 3세계 촌락의 열렬한 종족주의자들이 그러하듯이... ... 이제 우리가 그들을 응시하는 눈으로 그들도 우리를 응시하리라.

그러한 존재들을 수용하고, 공존하고, 그들의 경험과 시각을 배울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긴 과정 속에서 비로소 인류를 온전히 인류이게 할 세계관과 정체성과 믿음들을 정말로 온 인류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겠지. 그 때에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는 얼마나 서로 다른가, 얼마나 다른 생각과 말과 실천과 생활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놀랍도록 보편적인 존엄과 행복을 각자의 자리에서 지어나가는가를. 결코 하나될 수 없는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닮았는가를.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서로를, 확장된 내가 아닌 타인으로서의 서로를, 만나고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리라.

(기사 등록 2022.3.10)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