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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혐오의 뿌리: 한국적 근대와 "혐중"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10. 3.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요즘 한국의 "혐중" 파도를 보면 저는 어떤 면에서는 그다지 놀라지도 않습니다. 올 게 왔다는 느낌이 좀 있습니다. 중국이 다시 지정학적 행위자가 되고, 중-미 갈등이 첨예화되면 대체로 이런 반응은 사실 충분히 예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만큼은 "혐중"은 한국의 근현대 대외인식사에 내재돼 있는 것이고, 그 만큼 1880년대의 개화파의 대중국 인식부터 시작해서 이미 그런 요소들이 많이 과시돼 왔습니다. "혐중의 뿌리"는 단행본 하나 쓸 만큼 아주 거대한 테마죠. 저는 이 글에서는 그저 그 윤곽만 잡아보도록 하고, "혐중"의 파도에 대응하는 방식을 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한국의 근대 민족주의 담론 형성은 사실 "탈중국화" 과정이었습니다. <독립신문>이나 독립문의 "독립"은 (일본이 아닌)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었죠. 탈중국화의 코드는, 새롭게 구성되는 "민족" 담론만이 아니고 "문명" 담론이기도 했습니다. 초기부터 한국 개화파의 민족주의는 서구적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눈을 통해서 본 청나라 말기의 중국은 "야만" 그 자체이었죠.

 

예컨대 - 상해에서 공부를 하고 나중에 중국 여성과 결혼한! - 윤치호 일기의 중국 관련 부분들을 보면 이건 요즘 기준으로는 "헤이트 스피치" 그 자체입니다. "더러운 나라", "돼지", "애국심도 없는 사리사욕만 챙기는 무리", "악취만 나는 곳".... 반대로 일본은 청결하고 친절하고 근대적인 '낙원'으로 그려지죠. "헤이트 스피치"를 더 보자면 <독립신문>의 중국(인) 관련 기사를 한 번 쭈욱 보시면 됩니다.

 

<독립신문>은 조선에서 돈을 버는 중국인 고력 (쿨리)이나 상인들을 "우리 피를 빨아먹는 버러지"라고 명명하고 그들을 다 추방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습니다. 동시에 조선의 개화는 "전문적인 외국 (즉, 서양인들의) 지도하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신문인데, 대체로 어떤 세계관인지 알 만합니다. 한국 초기 민족주의자들 중에서는 개신 유림 출신의 박은식 선생 같은 분들은 중국 근대화 사상에 공명하고, 예관 신규식 (申圭植) 선생은 신해혁명에 참여했지만, 친미 개화파의 "혐중"은.... 가공할만했지요....

 

식민지 시대에도 "헤이트 스피치"는 지속됐습니다. 독립 운동가들이야 중국에 건너가서 김구처럼 국민당과, 아니면 장지락 (김산)이나 김두봉, 김성숙, 최창익 등처럼 공산당과 손을 잡아 항일을 해야 했지만, 국내의 엘리트들에게는 중국인들은 일차적으로 "경쟁자"이었습니다. 담걸생 (譚傑生)의 동순태 (同順泰) 같은 그 당시의 화교 재벌들이 수입하는 중국산 방직물이 경성방직 등 국내 자본가들의 산물과 경쟁했기에, 특히 경성방직과 같은 계열인 동아일보의 화교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는 거의 범죄 수준이었습니다.

 

1920년대의 동아일보를 보면 화교들은 아편매매꾼, 인신매매업자, 조선 여성들을 납치해서 외국에 팔아넘기는 유괴범, 그리고 특히 이발소나 식당을 해서 조선 상인들에게 경쟁의 피해를 입히는 사람으로만 보입니다. 조선일보 같아서는, 재만동포 문제는 "민족" 결집의 키포인트이었고, 이 "재만 동포"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인)"은 적대적 타자 내지 가해자로 설정돼 있었습니다.

 

동북을 지배하는 장학량 정권과 재조선 화교들은 아무런 연관도 없었지만, 장학량 정권의 조선인 탄압에 대한 책임을 계속 재조선 화교들에게 덮어씌우려는 태도가 역력했습니다. 결국 조선일보의 만주 만보산 조선인 "살인"에 대한 오보는 1931년 여름에 조선에서 중국인 학살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신문이 이렇게 살인 병기가 되는 거죠.

 

냉전 시대 한국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혐오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 하나는 한국 전쟁 시절의 적국이었던 중공(인)에 대한 부정적인 반공주의적 인식이었죠. <7인의 여포로> (1965) 같은 냉전 영화를 보면 한국군 여포로를 겁탈하려는 중공군 군인들과의 싸움은 북한군인들에게 "민족적 자각", 그리고 대한민국으로의 귀순의 실마리가 되는 설정입니다. 그러니 북한은 "그래도 우리 민족"으로 치부되지만, 중공은 그저 "적대적 타자"로만 그려지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국내인들과 "경쟁"을 하는 국내 화교에 대한 경제적 탄압책이었습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해서 집권을 하자마자 1961년 9월에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대만 국적인 화교 대부분의 경제적 기반을 바로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정책을 서둘러 집행한 이유는, 화교들과 경쟁 관계에 있었던 한국 기업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속셈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IMF위기 이전까지는 한국은 "차이나타운이 없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이었죠. 아참, 차이나타운이 없는 북한도 있었으니 물론 유일하지는 않았죠....

 

이렇게 청나라 말기부터 시작된 중국에 대한 민족주의적/문명론적 타자화는, 1992년 한중 수교로 어느 정도 극복되리라는 기대를 처음 해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해서 이제 한국도 포함돼 있는 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에 들어가려 했으니 더 이상은 중국(인)을 적대시할 이유는 없었죠. 그렇게 해서 인천 등에서 (화교들의 의견 수렴 과정 등 없이) 차이나타운이 다시 건설되고, 한국에서 중국어 학습 붐이 일어나고 중국에서는 한 때에 한국 대중 문화에 대한 폭발적인 선호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초고속 발전이 끝난 1990년대 이후의 한국 경제로서는, 초고속 발전이 아직도 진행중인 중국과의 경제 영토 공유는 사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된 셈입니다. 거기에다 엄청난 인적 교류도 진행됐죠. 지금 한국 거주 외국인들은 약 2백50만명인데, 그 43%는 중국 공민들입니다. 사실 중국과의 경제적/인적 교류 없이는 현재 한국 경제/사회는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2017년에 사드를 둘러싼 갈등이 보여준 것처럼,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 체제에서 단순 "대미 복종"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추구하고, 미국이 대중국 억제책을 쓰자마자 그 새로운 대립의 구도에서는 한국의 엘리트는 바로 무조건적 대미 "충성"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중산층 시민 사회나 다수의 일반인들의 지지를 얻기가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구미권의 자유주의를 당연지사로 여기는 한국의 시민 사회 입장에서는 중국의 당-국가 지배 체제 자체가 이질적인 거고, 일반인 사이의 중국인 관련 각종 혐오 표현들 ("짱꼴라" 등등)은 이미 일제 시절부터 만연해 왔죠. 이렇게 해서, 어떤 면에서는 윤치호나 <독립신문>의 혐중의 논리를 계승, 발전한 듯한 구미권 관점 본위의 혐중은 대한민국에서 2020년대에 보수층의 새로운 이념이자 상당수 한국인의 인식틀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중국 당-국가의 억압적 측면이나 구체적인 인권 유린 등을 당연히 비판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과연 중-미 갈등은 악과 선의 대결인가요? 구미권의 자유주의는 오랫동안 식민지 지배나 패권 추구, 경제적 착취 등과 공존해오지 않았나요? 그리고 중국(인)을 "비/반문명적 타자"로 설정하는 혐중의 논리는, 결국 재한 중국인에 대한 인권 침해 등 자유주의를 그 본질상 부정하는 행위로 이어질 위험성이 과연 매우 높지 않은가요?

 

중국에서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우선 국내에서의 헤이트 스피치 억제, 차별 근절, 외국인 인권의 확립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나요? 그러려면 일단 결코 가볍지 않은 한국의 "혐중"의 계보에 대해서도 자성적인 의식을 갖는 게 우선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기사 등록 20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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