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좌파 독립 운동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저는 서울 동작구의 현충원을 평생 딱 한 번만 가봤습니다. 1999년에, 한국을 떠나기 몇개월 전에 한 번 간 것이죠. 가서, 거기에서 발견한 것은 사실 매우 자기 모순적인 광경이었습니다. 일면으로는 거기에 안장되신 분들 중에서는 노백린 선생이나 강우규 선생, 박은식 선생 같으신 분들의 영정은 바로 눈에 띄었습니다. 제게 이미 3권짜리 박은식 전집이 있었는데, 유림으로 그 사상 여정을 시작하시고 한 때에 민족주의자로 이름을 날리신 이 분은 1910년대후반-1920년대 초반에 러시아 혁명을 환영하고 세계 노동 운동의 추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국주의와 열심히 싸우고 중국의 이념, 사상 판도에서 국민당의 좌파에 말년에 가까웠던 박은식과 같은 묘지에, 일본군 출신이자 미국의 월남 침략에 가담한 박정희 등이 같이 묻혀 있어 일종의 '모순'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아직 살아 있었지만, 지금 국립묘지의 사이트를 보면 거기에서 주월사령관, 즉 월남 침략에 가담한 한국군의 수장을 지낸 채명신 장군도 같이 묻혀 있더랍니다. 제국주의 반대자와 제국주의 부역자가 같이 묻혀 있는 이 모순 관계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애당초 이승만 정권 하에서 독립 운동가들을 포상하지 않고 독립운동사에 국가가 그다지 무관심했습니다. 물론 이승만 본인의 운동 경력이나 그 부하들의 운동 경력이야 각광을 많이 받았지만, 거기까지이었습니다. 오늘날 국가보훈처의 전신은 군사원호청을 독립 기관으로 만들어 '보훈' 사업을 시작한 것은 역설적으로 바로 '독립 운동 경력'이 전무한 일군 출신의 박정희이었습니다. 군사 정변을 일으킨 지 두달만에 그 사업에 손을 댄 것이죠.

 

이미 박정희 집권 초기에 독립 운동자들에 대한 '보훈'의 폭은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이제 그 유해가 봉환된 홍범도 장군 역시 일찌감치 1962년에 '대통령장'이 추서된 바 있었습니다. 같은 해에 아나키스트 유림 (1894-1961)이나 아나키즘 계열인 의열단 소속의 나석주, 김상옥 의사도 훈장 추서됐습니다. 참고로 유림 선생은 해방 이후에 귀국하여 독립노동당을 만들고 <노농신문> 발행을 시도한 사회주의 계열의 노동 운동가이기도 했죠. 그 때에 길림에서 젊은 김일성을 감옥에서 빼낸 걸로 유명한 손정도 목사도 훈장 추사되기도 했죠.

 

'반공'을 '국시제일'로 삼은 박정희 정권에서는, 홍범도 장군이 바로 공산당원이었다는 사실을 과연 몰랐을까요? 그 당시 고려인 역사 연구의 미비로 몰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유림 선생의 아나키즘적 지향 같은 것을 몰랐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포상을 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명분이 없는 군사 정권으로서는 '민족적 명분'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독립 운동가 서훈은 이런 명분을 만들어주고, 박정희나 이외의 정권 핵심들의 일제 말기 행적 같은 것을 가려주는 역할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장식' 같은 노릇을 했던 것이죠. 의열단은 조선 총독뿐만 아니라 대만 총독까지 '암살 목표'로 삼은 국제 연대주의적인 아나키스트 단체이었는데, 바로 그 의열단 투사들에게 훈장을 추서하는 그 사이에 박정희 정권은 월남 파병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명분 만들기는 따로, 실속 챙기기는 따로이었습니다.

 

독재 시절은 간 지 오래됐습니다. 그런데 '명분 따로 실속 따로'는 지금도 지속됩니다. 한편으로는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이었던 박진순 (2006년)이나 남만춘 (2010년), 최성우 (2007년), 김단야 (2005년) 등은 거의 전부 다 서훈됐습니다. 이북 정권의 창립에 참여한 박헌영 등 일부만 제외하고요. 그러나 좌익 계열의 역사적 독립 운동에 대한 '통이 큰 포용'이 과시되는 동시에, 독립 운동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폐지'를 주장했던 악명 높은 <치안유지법>의 후속 법률인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과거의 조선 공산당원들은 '훈장 추서'를 받지만, '공산당'이라는 명칭으로는 한국에서 합법적 정치 활동을 지금으로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반제 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좌파 독립 운동가들은 국가적 '예우'를 받고 있지만, 같은 국가의 실질적인 정책은 여전히 미 제국의 세계 패권 노선과의 유의미한 차별성을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이 요청 (요구? 명령?)하기만 하면 국군 부대는 바로 갑니다.

 

이라크와 아프간뿐만 아니라 남수단이나 레바논, 소말리아 등지로도요. 코민테른에서 '세계 제국주의'를 상대로 해 투쟁을 벌였던, 실제로 코민테른의 집행부 위원까지 지냈던 박진순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됨)은, 과연 이와 같은 행태를 보고 뭐라 말했을까요? 과연 이와 같은 정책으로 일관하는 국가가 과거의 혁명자들을 호명하고 훈장 추서하고 기린다는 것이 '명분 만들기'에 불과하다는 혐의를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한 가지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각종의 '건국 훈장'을 추서 받게 되는 1920-30년대의 사회주의자들은 단순히 조선의 '건국'만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상당수는 이론적 깊이가 있는 '이념형 사회주의자'들인 만큼 '우리'만의 '새나라 만들기'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혁명적 해방을 희구하신 분들이었죠.

 

남만춘은 코민테른의 밀명을 띠고 상해 등지에서 조선, 중국 양쪽의 혁명을 위해 일한 사람이고, 최성우는 코민테른의 잡지에서 이란 혁명에 대해 상당히 재미있는 글을 게재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분들의 업적을 제대로 기리자면 '독입 운동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급진 운동가'로서의 그들의 모습도 대중적인 홍보 자료나 교과서 등에서 충실히 반영해야 합니다.

 

그들의 사상과 활동을 오로지 '조선 독립'만으로 국한시켜서 살펴 보는 것은 국제적 '혁명가'로서의 그들의 진면목을 축소, 왜곡시키는 일에 해당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기본적 성격이 바뀌지 않는 이상 아마도 앞으로도 이 분들의 사상이나 지향을 그저 단순한 '애국애족'만으로 계속 축소시켜 이 분들을 극단적인 반노동적 보수 국가인 대한민국에 '위험하지 않는' 인물로 계속 만들어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사 등록 202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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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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