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세상읽기 - 아프간/ 국정원/ 코로나/ 두셀/ 영화

전지윤

 

●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누구의 시각으로 볼 것인가

 

지금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 많은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각각의 평가는 누구의 시각으로 이것을 보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엄청난 좌절감과 패배감, 아프간의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드러내는 반응은 전형적인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의 시각이다.(대표적으로 조선일보와 국힘당) 미국과 서방강대국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패배이고, 어디든 자신들이 있어야만 안전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진심으로 아프간 사람들과 소수자 등이 텔레반에 박해받을 것이라는 걱정으로 불안해 하는 많은 사람들도 있고 그 심정을 문제삼을 생각은 하나도 없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미국의 쇠퇴이고, 자신들의 기회가 될 것이다. 동시에 아프간의 불안정이 인근 지역으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섞여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반기면서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텔레반이 얼마나 강력한 조직력을 갖추었고, 영리한 전략과 전술을 채택했으며, 변신과 부활에 성공했는지에 대한 평가들도 일부 있다.

 

그러나 지금 가장 찾아보기 힘든 것은 아프가니스탄 기층 민중의 관점에서의 반응과 평가이다. 아프간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20년 동안 20만 명을 죽이고, 수백만 명을 난민으로 만들고, 인구의 70%를 빈곤층으로 만든 점령군이 쫓겨나며 전쟁이 끝나는 게 지금 상황이다. 이것은 소규모의 지상군과 첨단공군력으로 아프간, 이라크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확산’하겠다던 ‘네오콘’의 처참한 실패이다.

 

그 전략은 아프간과 이라크를 끝없는 공중폭격, 드론폭격으로 병원, 학교까지 모두 초토화시키며 부패한 중앙의 친미정부와 지역을 지배하는 군벌과 갱단들의 나라로 만들었다. 2조 달라(2천 조원)를 쓰고 미군과 서방연합군 수천 명까지 죽이며 얻은 결과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패배했다. 더 나아가 미국의 보통 시민들도 압도적으로 전쟁 종식과 철군을 원했다.

 

그리고 아프간 민중은 지난 1세기 동안에 영국 제국주의를 물리쳤고, 이어서 러시아의 침공을 실패로 만들었고, 이제 미국 제국주의에 결정적 패배를 안겼다. 이 결과를 보고 영국이 약속했던 ‘문명’, 러시아가 약속했던 ‘사회주의’, 미국이 약속했던 ‘인권과 여성주의’의 거부라고 보는 것은 전적으로 틀렸다. 아프간 민중들은 그러한 가치를 거부한 적이 없다. 그런 그럴듯한 명분 뒤에 실제로 벌어진 침략, 점령, 수탈, 학살, 빈곤, 부패, 전시성폭력, 인권유린을 거부한 것이다.

 

아프간 정부가 하루아침에 붕괴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소수 친미특권세력의 이익만 지키고 다수 민중의 고통과 삶에 아무 관심도 없었기에 어떤 지지기반도 없었다. 탈레반이 부활한 이유도 단순하다. 유일하게 미국의 점령에 반대하고 저항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탈레반은 오히려 강경한 파슈툰 민족주의와 교조적 이슬람주의 때문에 아프간에서 쇠락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미국의 침공이 역설적으로 탈레반을 부활시켰다. 특히 탈레반은 파슈툰족을 넘어서서 지지 기반을 확대했고, 여성차별적 정책과 태도도 일부 변화시켰다. 왜냐하면 아프간 민중이 그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프간의 역사는 결코 단순하게 서방식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독재체제를 지지한 어리석은 민중의 비극이 아니다. 억압과 폭력을 거부하는 민중의 저항은 아무리 엄청난 힘을 가진 강대국과 어마어마한 군사력도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아무리 중국이 후원하고 군부독재가 억눌러도 미얀마 민중이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즉, 이것은 새롭게 부상하는 강대국인 중국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물론 탈레반의 기원과 정치에서 비롯한 한계와 문제점들은 지금까지 처럼 결국 큰 문제가 될 것이고 아프간 민중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침략과 점령을 거부하고 마침내 그들을 패배시킨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아프간 기층 민중 스스로의 힘이었다. 그들이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아프간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것을 응원한다. 아프간에서 이러한 민중의 투쟁을 도울 철저하게 반제국주의적이면서 더 민주적이고 여성주의적이고 생태주의적인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대한다.

 

● 반전운동은 약화했지만 반전운동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며칠 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글을 올렸다가 일부 분들의 강한 거부감을 보면서 무엇 때문일지 돌아보게 됐다. 핵심은 내가 미국의 패배를 반기며, 미국의 눈으로 사태를 분석하는 보수언론들에 분노한 나머지, 탈레반의 부활이 낳을 비극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불안감을 별로 언급하지 못한 것에 있는 것 같다. 부활한 탈레반의 피해자가 될지 모를 여성, 소수자 등에 대한 걱정, 내 일처럼 같이 아파하는 마음은 정말 소중하고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내가 미국(제국주의)의 패배를 너무 강조한 것이, 반전운동의 승리라도 되는 것처럼 지금 상황을 평가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 벌어진 것은 반전운동의 승리는 아니다. 그랬다면 2000년대 초반 전세계를 휩쓸었던 거대한 이라크, 아프간 반전운동의 주장들이 지금 이처럼 희미해지고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 반전운동은 9.11테러에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느끼면서도, 미국이 이것을 새로운 중동 전쟁의 신호탄으로 삼는 것에 결사 반대했다. 미국이 끝내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는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도, 여성 인권을 위한 전쟁도, 테러 방지를 위한 전쟁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오로지 석유와 패권을 위한 전쟁이고,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나 ‘탈레반의 인권유린’은 사기이거나 핑계와 명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전쟁이 낳은 끔찍한 참상과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는 것이 드러난 후에, 전쟁광들이 이라크 전쟁은 문제가 좀 있었지만(‘나쁜 전쟁’), 아프간 전쟁은 여전히 정당하다(‘좋은 전쟁’)고 우길 때도 그 허구를 폭로했다. ‘좋은 전쟁’이란 있을 수 없으며, 전쟁과 폭격이야말로 오히려 탈레반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네오콘과 전쟁광, 서방언론들은 (한 때는 자신들과 손잡았던) 후세인과 탈레반을 악마화했으며, 나아가 이슬람에 대한 거대한 혐오와 공포를 일으켰다. 그것은 성공했고 오늘날 ‘이슬람’하면 많은 사람들은 테러, 성폭력, 광신도를 떠올린다.(2018년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미국에 반대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곧 후세인과 탈레반의 독재나 폭정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등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반전운동은 아프간 침공도, 이라크 전쟁도 막지 못했다. 여러 복잡한 요소들 속에서 반전운동은 그 후 계속 가라앉았고 약해졌다. 오늘날 국제적 반전운동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랬다면 시리아마저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는 수십만 명이 죽었고, 수백만 명이 난민이 됐다.

 

이 숫자는 그냥 추상이 아니다. 바로 우리와 똑같이 서로를 사랑하고 꿈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노동자, 농민, 여성, 소수자들의 삶과 삶의 터전이 산산조각난 것이다. 수많은 소우주들이 사라지며 어마어마한 고통, 슬픔, 절망이 만들어졌다. 결국 오랜 시간 동안 켜켜히 쌓인 분노와 원한 속에 미국은 이라크에서도 아프간에서도 쫓겨나고 있다.

 

반전운동의 주장이 옳았던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에서도, 아프간에서도 결코 민주주의도 인권도 성평등도 가져다 준 적이 없다. 아프간 정부는 선거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아니었냐고? 2019년 대선에서 아프간 인구 3700만 중에서 등록 유권자는 960만이었고 실제 투표자는 270만이었고 그중 100만표는 무효표였고 가니는 92만표를 얻어 대통령이 됐다.

 

여성 인권을 보호했다고?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민간인 학살과 집단성폭력으로 악명높던 군벌 ‘북부동맹’과 손을 잡고 탈레반과 맞섰다. ‘아프간에서 가장 용감한 여성’이라 불린 페미니스트, 최초의 여성의원인 말라라이 조야는 미국과 친미정부가 군벌과 손잡고 탈레반 시절보다 여성들의 삶을 더 후퇴시켰다고 비판했다. 조야는 ‘다만 차이점은 이 모든 범죄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이름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조야는 또 아프간에서 미국과 점령에 반대한 것은 탈레반만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이들이 점령에 반대하고 저항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군 점령이 아프간 시민들의 모든 것을 잔인하게 파괴하고 유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침공, 점령, 폭격은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될 수도 지지할 수도 없었고, 미국의 패배와 철군을 반길 수밖에 없다.

 

이것을 여성과 소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헛소리라고 한다면 여전히 동의할 수 없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결코 아프간, 탈레반, 중동, 무슬림의 고유한 것이 아니다. 중동에서 동성애 탄압 법률이 처음 도입된 것은 서방 제국주의 점령기였고, 지금도 중동에서 가장 여성차별적인 나라는 바로 친미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다. 미국에서 극우개신교의 여성혐오와 소수자 차별도 악명높다. 2016년 올랜도 참사 때 미국의 한 극우목사는 ‘게이가 더 많이 죽지 않아서 아쉽다. 나같으면 게이와 레즈비언들을 벽에 세워놓고 총으로 머리를 날렸을 것’이라고 했다.

 

이석기 의원 석방을 주장하면 ‘경기동부냐’고 하고, 코로나의 책임을 과도하게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 ‘신천지였냐’고 하고, 검찰개혁을 주장하면 문빠냐고 하고, 쿠바 시위에 대한 탄압을 비판하면 ‘미제편이냐’고 하고, 미국의 패배와 철군을 기뻐하면 ‘탈레반편이냐’고 묻는 납작한 이분법은 아니었으면 한다. 탈레반이 20년 전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보도는 많은데, 20년 동안 미국이 아프간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보도는 왜 없는지 보자는 것이다.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고 총을 쏜 텔레반에 대한 기사는 많은데, 결혼식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폭탄을 터트리고 시민들을 고문한 미군에 대한 기사는 왜 없는지 묻자는 것이다. 언론이 악마이자 괴물이라고 한 텔레반이 아니라, 그들을 막겠다던 미국이 아프간 민중에게 거부당한 이유를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20년간의 그 엄청난 고통과 핍박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결국 미국을 물러나게 만든 아프간 민중의 힘을 보자는 것이고, 그 힘만이 탈레반도 이겨내며 민주주의과 인권과 소수자들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 국정원의 반동적 성격과 간첩 조작

 

한국 언론의 많은 문제점들이 기자 개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와 권력을 독점한 족벌언론사주들과 언론시장의 왜곡된 구조, 여론을 주무르는 포털체제에 있다는 것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따라서 기자 개인을 혐오하고 욕하는 것은 부적절할뿐 아니라 효과도 없다.) 이것이 한국의 많은 언론을 진실을 덮고 불의를 조장하는 무기로 만들고 있고, 오히려 기자 개개인도 이런 구조와 세력에 내몰리는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진실 탐사와 보도가 얼마나 중요하고 값진 것인지 알려주는 몇몇 탐사취재 프로들의 소중함은 엄청나다. 최근에도 ‘1986 김성수 의문사’에 대한 뉴스타파의 보도를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스타파가 1만 페이지의 자료를 뒤지며 진실을 파헤치지 않았다면 35년 전의 억울한 죽음과 국가권력의 추악한 범죄는 물 위로 떠오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못지않는 특종이 바로 며칠전 PD수첩이 방영한 '부당거래 – 국정원과 日 극우'였다.

 

국정원이 한국에서 태극기부대나 일베 등 극우 세력을 후원, 사주, 조종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밝혀진 것은 그것을 넘어 국정원이 일본 극우세력과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면서 정세에 개입해 왔다는 것이다. 그 일본 극우세력은 아베 정권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고 이 연결고리가 박근혜 정부 때 잘못된 ‘위안부 합의’도 낳았던 것이다.

 

국정원 간부가 일본 공안과 연락하며 ‘그X(윤미향 의원)의 속옷까지 뒤져라’고 했다는 증언은 충격적이다. 일본에 갈때마다 공항에서 속옷까지 뒤지며 검사하고 이상한 곳으로 끌려가서 협박받았다는, 한국에서도 사찰, 촬영, 미행, 협박편지 배달, 신변위협이 있었다는, 팬이라며 접근했던 남자가 자위대 출신의 일본우익이었다는 윤미향 의원의 회고는 그래서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윤미향 의원에 대한 족벌언론과 우파들의 총공세는 이 오랜 과정의 일부라고 보는 게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PD수첩의 이번 보도는 대단한 특종이지만, 역시나 한국의 기성언론들은 거대한 침묵과 외면의 카르텔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만도 아니다. 한국사회의 민낯을 벗겨내고 속살을 파헤치는 뉴스타파나 PD수첩 등의 보도들은 유난히 받아서 이어가는 기사들이 적다. 갈수록 김학의 사건 2탄이 되어가는 ‘가짜 수산업자 게이트’도 비슷하다. 부패한 자본가와 언론인과 검사 등이 어울려 ‘성접대’(성착취)까지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지만 관련 기사와 후속 보도들을 찾기 어렵다.

 

반면, 이런 소식들에는 침묵, 외면하면서 요즘 족벌언론들이 국정원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키운 것은 ‘청주간첩단’ 조작 사건이다. ‘간첩단’, ‘지령문’, ‘충성서약문’, ‘충성맹세 혈서’ 이런 단어들과 ‘이들이 문재인 캠프, 안철수 싱크탱크에도 관여했고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에 침투했고 윤석열 탄핵 운동을 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윤석열, 유승민 등은 ‘간첩이 충북에만 있을까?’, ‘대한민국 곳곳에 북한의 지령을 받고 암약하는 간첩이 있다’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엄청난 과장이고 조작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구속된 당사자들이 모든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국정원이 제시한 증거들의 진위도 불확실하고, 무엇보다 이들이 정치권이나 지역사회, 노동운동에 개입할 능력이나 조건이 존재하지 않았음이 명백해지고 있다. 민주노총에서는 제명당했고, 진보정당에서는 징계받고 탈당했으며, 민주당에 침투하긴커녕 문재인 퇴진운동을 했던 것이다.

 

위의 두가지 사건은 국정원과 검찰과 같은 억압적 국가기구의 성격과 기능을 재확인해 준다. 첫째, 이들은 선출되지 않는 기득권 권력자들의 핵심무기로 기능하며 자본주의 국가기구에서도 특히 심층기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구의 핵심부는 표면적 정권교체에도 여전히 기본적 방향과 성격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이들은 누구처럼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를 정도로 극단적 애국주의, 반공주의를 특징으로 하지만, 동시에 한국 자본주의와 국가의 역사적 기원을 반영해 친미, 친일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극우와 일본의 극우를 연결시켜서 협력하는 것이 이들 나름으로 국적을 넘어선 지배계급의 공동이익을 위한 ‘국제주의’이다.

 

셋째, 이들은 항상 정치적 타이밍을 노린다. 개혁정부 말기에 대선이 다가오면 언제나 ‘간첩단’ 사건이 터졌다. 박근혜 초기의 정치 위기 때는 ‘내란음모 조작사건’이 터졌다. 검찰개혁이 본격화할 때 ‘표창장’이 터져나왔고, 총선에서 우파가 대패한 이후에 윤미향 의원 사냥이 시작됐다. 다만 이번 ‘청주간첩단’ 건은 너무 어설퍼서 대선보다는 PD수첩의 특종보도를 가리기 위해 급조한 느낌이다. PD수첩 특종은 국정원 핵심부에게는 핵폭탄급 치부였으니 말이다.

 

넷째, 이들은 흔히 과장뿐 아니라 조작을 한다. 사실관계를 조작하고, 증거를 조작하고, 프레임을 조작한다. 과거에는 육체적 고문을 했다면, 이제는 정신적 고문을 하고, 과거에는 문서를 조작했다면, 이제는 디지털 증거를 조작한다. 과거에는 ‘간첩’을 만들었고, 오늘날은 ‘파렴치한 위선자’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런 국가기구들이(기성언론들과 손잡고) 특히 정치적 사건에서 내놓는 주장과 증거를 순순히 진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실을 검증해야 하고, 당사자의 항변을 들어봐야 하고, 프레임 너머의 본질을 봐야 한다. 그러나 진보좌파들마저도 억압적 국가기구와 기성언론과 보수적 사법부의 주장과 판단을 너무 잘 믿어주는 것 같아서 참으로 안타깝다. 심지어 급진좌파들도 그렇다.

 

나는 과거에 활동하던 단체에서 큰 논쟁을 하다 나왔는데, 쟁점 중 하나가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으로 볼 것이냐 말것이냐였다. 꼭 조작은 아닐 수 있고 굳이 조작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던 주장은 지금도 납득이 안 간다. 그 점에서 이번 ‘청주간첩단’ 조작 사건에 대한 반응에는 안도감과 함께 걱정도 든다. 일단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이 매우 과장된 엉성한 사건이라고 보는 것은 반갑다. 국정원이 너무 성의없이 엉터리로 사건을 만들어낸 결과다.

 

그런데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이들은 왕따당하던 아주 괴상하고 무능력한 이들이었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부 언론과 사람들의 태도에서는 찜찜한 것이 있다. 국정원의 발표는 그대로 믿기 어렵고 여러모로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증거도 불확실하고 당사자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는, 전투기 도입 반대나 반전평화나 윤석열 비판 등은 북한의 지령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식적 주장이라는 핵심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신 지금 탄압받고 구속된 이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찌질한’ 이들이었는지 대한 조롱과 고발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국정원의 발표가 너무 과장돼 있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선의로 이해하려고 해도 지나칠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는 것 자체는 인정하는 것처럼 들리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내란음모 조작 사건 때도 탄압에 반대하고 피해자를 방어하기 보다 조롱하고 비웃는데 치중하던 반응이 있었다.(진중권 등)

 

이번에도 ‘북한 지령이나 받는 쓰레기들, 그런 사교집단과 반역자들은 종신형 당해도 싸고 박멸해야 한다’는 반응과 그에 대한 호응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고 사회 진보를 위해 활동한다는 사람들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아무리 탄압받는 피해자라고 해도 맘에 안들고 도저히 이해 안가는 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을 왜 하필이면 상대방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그렇게 가혹한 언어로 꼭 하고싶은 것일까?

 

● 코로나 방역과 백신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코로나 “백신이 해결책이 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백신 접종률이 60~70%는 넘어가던 ‘선진국’들이 마스크를 벗고, 파티를 벌이며, 코로나 종료를 선언하던 상황은 거대한 착각이 됐다. 그 나라들에서도 하루 수만 명의 확진자와 수백 명의 사망자가 다시 나타나면서, 자뻑하던 이들과 그것을 부러워하던 조중동 모두 할 말이 없게 됐다.

 

이것은 ‘글로벌 백신 아파르트헤이트’가 낳은 극단적 불평등의 예고된 결과라고 봐야 한다. 백신 예방 접종의 90%가 부자 선진국들에서 이뤄지고, 0~1%의 접종률을 보이던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앞으로 60년후에야 접종을 마칠 수 있다던 상황이 낳은 결과다. 이것은 인도와 남아공 등을 거대한 거대한 변종 바이러스의 공장으로 만들어버렸고, 그렇게 만들어진 변종, 변이들이 전세계적으로 번지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을 감시하고 탄압하던 디지털 시스템과 GPS 추적 기술을 코로나 방역에도 적용하고 높은 백신 접종률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를 벗어난다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백신을 나누기 보다 ‘집단면역 달성 기념 폭격’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던 이스라엘은 지금 다시 하루 확진자 4천 명이라는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금 상황은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하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의 피해도 ‘평등’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백신 접종률이 낮은 가난한 나라들의 치사율이 훨씬 더 높다. 그런 나라에서는 1차접종도 못하고 죽어갈 때, 부자나라에서는 벌써 2차에 ‘부스터샷’까지 맞고 있다. 한쪽에서는 백신을 구경도 못하고 죽어갈 때, 미국에서는 유통기간이 지난 백신 몇 백만회 분을 폐기하고 있다.

 

또 한쪽에서는 코로나가 악화시킨 실업과 빈곤으로 고통받는 수억 명이 생겨날 때, 한쪽에서는 백신 개발로 200억 달러를 벌었다는 다국적 기업과 억만장자들의 스토리가 소개되고 있다. 전세계 백신 판매의 80%를 차지하는 이 대기업과 억만장자들의 수익만 가지고도 지금 즉시 전세계 모든 이들에게 백신을 무료로 접종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쩍벌어지는 자기 다리조차 다스리지 못하면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윤석열이 난데없이 무덤에서 불러낸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한 벌거벗은 자본주의의 논리적 결과이다.

 

따라서 백신에 대한 지적재산권, 사적소유권을 인정하지 말고, 전세계가 함께 개발한 백신으로 얻은 사적 수익을 환수하며, 국가가 개입하고 통제하여 공공적 방식으로 코로나 방역과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는 국제적 ‘민중의 백신’ 운동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선진국’을 찬양하고 정부를 욕하던 조중동은 이런 문제들은 전혀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백신 왜 빨리 안가져오냐’고 무한 반복중이다.

 

한국은 여전히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코로나 방역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정부는 아무것도 한 게 없고 시민들이 다했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같은 시민들과 조건이었지만 과거 정부에서는 철저히 실패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드러낸 경제적 불평등과 공공의료의 부족이라는 측면에서는 결코 성공이라고 할 수가 없다.

 

정부는 애먼 민주노총을 탓하며 집회의 자유만 억누르지 말고 이런 진정한 문제들부터 해결해야 한다. 청해부대 집단감염을 계기로 백해무익한 전세계 모든 파병 한국군의 철수도 시작해야 한다. 북한과 백신을 나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의당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이 시기에 오히려 부가 늘어난 부자와 대기업에게 과세해 코로나 극복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자는 ‘사회연대특별세’같은 방안들이 추진돼야 한다.

 

● 이재용 석방과 촛불의 반혁명

 

얼마전 과천철거민과 해고노동자 등 삼성피해자들은 삼성본관 앞에서 이재용 가석방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이재용이 풀려나는 날이라서 그런지 경찰뿐 아니라 서초구청까지 나와서 방해했다. 지금 모든 권력자들이 나서서 이재용의 가석방을 환영하는 중이다. (촛불에 등떠밀려) 삼성을 수사하며 공정의 대변자인양하던 윤석열도 ‘법무부의 결정을 존중’한단다. 뭘 존중하는가? 이재용이 반성을 했는가, 재범 가능성이 낮은가?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했는가?

 

삼바 재판과 프로포풀 재판만 남아 있는게 아니다. 이재용이 정말로 처벌받아야 할 문제, 즉 해고노동자, 직업병 피해자, 철거민, 암보험 피해자 등에게 가한 고통과 한국사회의 구체제를 만들어오면서 저지른 역사적 범죄들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도 못했다. 그 문제들을 제대로 수사하고 처벌한다면 사면이나 가석방은 고사하고 수십 년의 형량이 나올 문제들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선출돼지 않는 진정한 권력자들의 정점에 있는 이재용의 범죄에 대한 간질이기 수준의 처벌마저 중단된 것은 통탄할 일이다. 2016년에 ‘촛불혁명’이 있었다면 지금 상황은 ‘반혁명’인 셈이다.(‘촛불은 혁명도 뭣도 아니었다’는 일부의 평가는 동의할 수 없다. 역사는 전진과 후퇴가 갈마드는 장기적인 과정이며, 좌파가 제시하는 몇가지 기준에 맞아야만 혁명이라면 아랍혁명, 홍콩 ‘우산혁명’, 미얀마 ‘봄의 혁명’ 모두가 제외될 것이다.)

 

‘반혁명’의 신호들은 그밖에도 많다. 미국의 압박 속에 한미군사훈련은 강행되고 있다. 이석기 의원은 아직도 풀려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새로운 간첩단 사건이 조작되고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수배로 내몰리고 있다. ‘반혁명’의 핵심주체는 첫째, 재벌과 특권세력들이다. 이들은 촛불 이전으로 시계를 돌리고 싶어서 안달이다. 둘째, 이들과 긴밀히 연결된 국가기구의 관료지배층이다. 이들의 상징이 바로 윤석열과 최재형이다.

 

셋째는 족벌언론들이다. 넷째는 이들을 대변하는 우파 정치세력이다. 그리고 문정부와 민주당은 이들에 계속 굴복하고 타협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 내에도 반혁명 카르텔과 긴밀히 연결돼 있고 이해와 관점을 공유하는 세력이 더 많다. 예컨대 삼성미전실 ‘장충기 문자’에 현 법무장관 박범계의 이름이 등장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 왼쪽에서 대안 건설은 여전히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관하진 않는다. ‘삼성 총수는 절대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법칙을 깨트린 것이 촛불혁명이었다. 거대한 촛불시민들 속에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이 있었고 또 변화해 왔고, 그것을 내 기준으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혁명은 반혁명의 채찍질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처럼 2016년 함께 촛불을 들었던 우리는 다투고 흔들리면서도 결국 또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다.

 

● 엔리케 두셀과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갈무리 출판사의 고마운 제안으로 엔리케 두셀과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를 읽어보고 서평하는 글을 기고하게 됐다.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878

 

좀 부담스러웠지만 유익한 시간이 됐다. 두셀의 책을 읽으면서 영화 <두 교황>도 생각났지만, 마지막에 지적했듯이 라틴아메리카 역사와 투쟁에 대한 그의 더 많은 구체적 견해가 궁금해졌다.

 

특히 최근 몇몇 분들과 쿠바에 대한 논쟁을 했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두셀을 읽으면서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제국주의의 개입 반대가 가장 우선이라는 것이다. 친미국가들에서 벌어진 민중 저항에 대한 온갖 살인적 폭력 진압에 침묵하던 미국 정부와 언론들이 화면 조작까지 하며 쿠바 시위의 규모를 과장한 것은 분명 지지할 수 없다.

 

그러나 쿠바 시위를 반독재 민주화 운동/ 반혁명 세력의 반동/ 관료독재에 맞선 혁명적 노동자들의 투쟁 이라는 3가지 틀로만 해석하며 정답을 강요하는 것도 동의할 수 없다. 분명 쿠바의 도전과 실험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는 물어져야 한다. 두셀도 지지했던 니카라과 산디니스타가 오늘날 보이는 변질과 실패의 기록은 라틴아메리카의 좌파들에게 그냥 남의 일처럼 가볍게 넘길 것이 아닐 것이다.

 

“두셀의 모국이던 아르헨티나에서도 1969년 코르도바에서 학생 투쟁이 분출했고, 이것이 두셀과 같은 지식인들에게도 강한 영향을 끼쳤다. 두셀은 ‘해방신학’의 영감을 이어받고 확장하면서 ‘해방철학’을 발전시켰다...물론 해방신학과 해방철학 모두 유럽과 미국에 의한 침략과 학살, 정복과 식민지배를 겪은 라틴아메리카의 처절한 역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아르헨티나가 폭압적인 군부독재 시절로 들어서면서 대학에서 추방당하고, 정치적 테러와 폭력의 위험 등을 피해서 1975년 멕시코 망명한 두셀은 그 시기를 전후로 해서 사유를 더욱 급진적으로 확장해 갔다... 특히 그가 1980년대 10년간 마르크스의 저작, 원서, 초고 등을 철저하고 엄밀하게 탐구하며 독해한 것이 이러한 급진적 발전과 확장의 주요 동력이었다...

 

“‘이론적 실천’과 ‘이데올로기적 담론 투쟁’의 특권화는 이들의 위치를 강화하는 효과를 냈다... 반면 경제적 참상과 정치적 독재로 뒤덮인 세계체제 주변부에서 두셀의 지적 경로는 달랐던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측면에서 두셀의 알튀세르 비판은 분명히 타당하다...

 

“핑크타이드는 분명 성과와 함께 한계를 드러내 왔고, 그 한계를 비집고 등장한 반동이 지나가고 있는 자리에서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는 핑크타이드의 제2물결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뒤를 따라가며 길을 밝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며 수많은 글과 책을 남겨온 두셀은 분명 이것에 대해서 해줄 말이 많을 것이다.”

 

● 영화 <노매드랜드>/ <유다 그리고 블랙메시아>

 

올해 상반기에 본 영화 중에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영화는 두 가지다. 하나는 <노매드랜드>. 영화가 원작보다는 덜 강조했다고 하지만 2008년 미국 경제 위기, 공장 폐쇄와 마을 소멸 등을 통해서 삶의 벼랑 끝으로 몰린 사람들이 주인공들이다. 평생을 일했지만 남은 게 별로 없는 노년의 사람들의 황량하고 스산한 삶을 담고 있다.

 

밀려난 이들은 아마존 등에서 불안정 시간직 노동을 전전하며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차량을 집삼아 미국 전역을 떠돌며 유랑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 유랑민들이 ‘노매드’이다. 평생 일하다가 팽당한 남편이 자신에게 유언으로 남긴 ‘시간을 낭비하지마’라고 한 말에 따라서 유랑에 나선 여성 등이 등장한다.

 

노매드들의 공동체에서 정신적 리더 구실을 하는 밥 웰스는 ‘달러와 시장의 횡포’를 규탄하며 “쫓겨난 말들은 서로를 돌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 노화와 빈곤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노매드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서로를 돕고 섬김으로써 사랑하는 이를 기린다. 결국은 다시 떠나간 이를 만날 것이고 삶을 같이 기억할 것이다.’ 영화는 상실과 슬픔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도 아주 좋지만, 계속 펼쳐지는 자연의 아름다움도 기억에 남는다.

 

또 하나는 <유다 그리고 블랙메시아>였다. 이 영화는 마틴 루터 킹과 맬콤 X의 죽음 이후의 급진적 흑인해방 운동의 상황을 보여 준다. 흑표범당의 시카고 일리노이지부 의장인 프레드 햄프턴이 주인공이다. 흑표범당은 무장 투쟁 단체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는 그들이 가난한 흑인들에 대한 의료, 교육, 법률 서비스 지원 활동을 주되게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 ‘우리는 불을 지른게 아니라 불이야라고 외친 것’이라는 햄프턴 말을 이해하게 된다. 즉 미국자본주의가 흑인들에게 가한 차별, 억압이 원인이고 흑표범당의 성장은 결과였던 것이다. 물론 햄프턴은 흑인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아프리카 전통의상을 입을 것이 아니라 모택동을 인용하며 총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였다. 그러면서 정치적 학습을 게을리하는 동지에게 벌칙으로 팔굽혀펴기를 시키는 장면은 별로 와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힘은 다수 인민에게서 나온다’, ‘노예와 소작인은 지주에 맞서 손을 잡아야 한다’며 백인까지 포함해 모든 억압받는 민중의 ‘다인종 무지개 연합’을 추진한다. 심지어 남부연합기를 걸어놓고 모임을 하는 백인들의 모임까지 찾아가 공동의 피해와 공동의 투쟁을 호소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 결과, 당시 악명높은 FBI 국장 에드가 후버는 흑표범당을 ‘중국, 러시아보다 더 큰 안보 위협’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햄프턴과 흑표범당을 표적삼아 치밀한 심리전, 이간 공작, 프락치 침투, 암살을 계속한다. 경찰과 총격전이 벌어지고 흑표범당의 당사는 폭파된다. 햄프턴은 말도 안되는 혐의를 조작해 구속해 버린다.

 

후버는 부하들에게 ‘딸이 흑인남자를 애인이라고 데려오는 걸 상상해봐라, 그런 미국을 원하냐’면서 이런 공작을 진두지휘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 이런 미국의 빨갱이 사냥과 공작정치가 한국에 이식됐고,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햄프턴은 21살의 나이에, 새벽에 급습한 경찰의 총알 99발을 맞고 죽는다. 햄프턴의 급진적 주장들만 남았다.

 

“우리는 당신이 불에 맞서서 불로 가장 잘 싸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종주의로 인종주의에 맞서지 않을 것이고 연대로 싸울 것이다. 우리는 백인자본주의에 흑인자본주의로 싸우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로 맞서자고 주장한다.”

 

또, 두 영화 모두 장면과 어울러지는 멋진 영화음악들이 계속 다시 듣게 만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DZARTCa0w

https://www.youtube.com/watch?v=YQbPCsIaA3c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정+재정 운동에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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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여름,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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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 국민동의청원 10만행동

6월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시민들과 함께 10만 행동을 달성했습니다.

이제 국회가 일할 시간입니다.

국민동의청원 성립 90일 이내에 국회 법사위는 차별금지법안 심사를 완료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회는 잠잠… (자니?) 차제연 통장은 텅장… (텅텅ㅜㅜ)

 

하지만 멈출 수 없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2021년 여름은 전국을 평등으로 뜨겁게-

 

21대 국회 평등을 위해 일해라! <두근두근 내 법안, 일해라 법사위>

전국의 시민들이 앞서 시작하는 토론 <전국순회 시민공청회>

하루 10시간씩 이어지는 시민들의 농성 <2021 평등의 이어말하기 온라인 농성>

 

코로나19로 모여 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차별의 경험을 알리고, 법제정을 위해 토론하고, 온라인 농성을 이어가는 공동행동

2021년 가을을 평등의 들판으로 물들입시다

 

불평등에 맞서 행동하는 시민들의 힘을 더욱 기세있게 펼쳐가요.

국회가 평등을 위해 일하도록 물러섬 없이 당당하게 차별금지법 제정의 깃발을 휘날려요.

우리의 힘과 연대로 올해는 반드시 차별금지법 제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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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 202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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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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