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규
[네이버 포스트 ‘최태규의 동심보감’에 실렸던 글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어린 ‘활’꽃게. 살아있는 먹거리에 집착하는 나라
활어(活魚)는 살아있는 물고기를 말한다. 그럼 활어회는? 살아있는 물고기를 죽이자마자 날로 먹는 것을 뜻한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채 죽이지도 않고 입이 뻐끔뻐끔하는 것을 보면서 발라놓은 물고기의 살을 집어먹기도 한다. 더할 나위 없이 신선하다는 징표다. 물 속에서만 살 수 있는 동물을 뭍으로 꺼내어 도심으로 수백킬로미터 옮겨와 살려둘 수 있다는 과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먹는 회는 살만 발라 접시에 올리지만, 입이 뻐끔거리는 장면을 연출하는 곳에는 으스댈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 같다.
한국만큼 활어를 선호하는 나라는 보기 어렵다. 내륙에서도 해산물을 파는 곳이면 어김없이 수조가 있고 그곳에는 살아있는 바닷생물들이 있다. 물고기가 든 수조를 보자. 수면 가까이에 숭어가 떠있고 중간엔 참돔, 그 아래에 우럭, 바닥에는 광어가 깔려있다. 전국 어느 횟집을 가도 마찬가지다. 횟집 수조만 봐도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한국인 전용 횟집들은 수조를 구비하고 있다. 심지어 수조의 크기나 색상도, 그 물고기들을 나르는 물탱크트럭도 전국이 다 똑같다. 자연스러운 문화라고 보기엔 뭔가 이상하다.
왜 한국에는 이토록 물고기를 식당까지 살려가고 먹기 직전에 죽여서 먹는 문화가 발달했을까? 모르겠다. 한국인이 수백 년 동안 쫄깃한 식감을 사랑했느니 하는 수준 이상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 수백 년 전에는 물탱크트럭이나 횟집이 없었다는 정도는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광어와 우럭을 양식해서 대량 생산하는 관행은 90년대에 들어서서야 본격화됐고, 그곳에서 기르는 물고기는 빨리 자라도록 인위적으로 만든, 자연에는 없는 변종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육질이나 맛을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물고기가 살아있다고 신선한 것은 아니다. 극한 상황에서 물고기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부패할 수 있다. 21세기 한국의 냉장기술은 굳이 물고기를 며칠 더 살려두지 않아도 싱싱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인도적인 사육과 도살, 유통 방식이 물고기의 품질에도 더 좋다는 증거가 계속 제시되고 있다. 스트레스를 덜 주는 사육방식으로 항생제와 살충제를 덜 쓸 수 있다. (항생제와 포르말린 살충제의 사용은 한국 물고기 양식에서 합법이다!) 운송 과정에서 살아있는 물고기가 느낄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품질의 저하로 이어진다.
2018년 유럽위원회 공동연구센터(JRC)에 따르면 한국은 1인당 연간 해산물 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이상할 정도로 해산물 가격이 싸서 해산물에 대한 접근권이 보편적으로 매우 높다. 통계는 부족하지만 낚시를 하는 사람도 세계 최고로 많다. 낚시 면허제가 없어서 아무나 낚시를 할 수 있는 특이한 나라이기도 하다. (보통은 국가가 환경과 수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개인의 낚시에 관여를 한다.)
잡아놓은 물고기를 먹는 것에도, 물고기를 직접 잡아먹는 데에도 관대한 나라다. 그래서인지 물고기의 삶이나 고통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아 보인다. 흔히 끔찍하다고 인식되고 가려져있는 도축장 풍경이 우리네 수산시장에서는 쉽게 보인다. 도축장에서 고통을 최소화하고 도축장에서의 체류시간을 줄이는 것이 법제화의 문턱까지 와있는 반면, 빠른 도살은커녕 질식해서 죽어가는 물고기들에 대해서는 저녁 찬거리 이상으로 긍정적인 인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고기는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몇몇 과학자들이 강변하는 시대는 현재진행형이다. 물고기의 고통과 통증에 대해서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있지만, 지금을 포함하여, 과학이 자본이나 정치에 휘둘리지 않았던 시대는 없다.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더 많이 팔아야하는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물고기의 고통을 알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물고기가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과학자들을 후원하고 고용해서 “물고기는 정말로 통증을 느낄까?”라는 논문을 낸 것이 불과 2014년이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행동학적 신경생물학적 증거가 물고기의 통증 자극에 대한 반응이 제한적이고 물고기는 통증을 경험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2014년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 물고기가 통증을 느낄 거라고 알고 있었다. 물고기가 포유류와 같은 종류의 통증을 느낀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이미 차고 넘치지만, 굳이 그 증거를 찾지 않아도 물고기의 고통과 통증은 그들의 몸짓과 표정으로 알 수 있다. 물 밖으로 꺼내어지는 순간 숨이 막히는 표정으로 주둥이를 연신 벌리고, 어디로든 도망을 가겠다고 펄떡 거린다. 물고기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물 속으로 다시 넣어주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유럽연합은 물고기 복지를 제도적으로 실현해가는 중이다. 유럽의 소비자들은 높은 비율로 인도적으로 도살한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한다. 연어 양식과 수출 비중이 큰 노르웨이와 영국 같은 나라에서 연어를 양식하고 유통하는 기업들은 제도보다 앞서서 인도적인 도살 방식을 연구하고 채택하고 있다. 물고기를 물 밖에 내어 질식시키는 것은 나쁜 도살방식이고, 다른 척추동물과 마찬가지로 전기로 기절시킨 뒤에 피를 빼내는 것이 인도적이다. 정부와 기업의 연구와 투자가 이를 뒷받침 한다. 갑각류와 연체류를 비롯한 수생동물의 복지에 천문학적인 연구비가 쏟아지는 중이다. 세계동물건강기구(OIE)는 양식물고기의 복지 기준을 만들어 양식 물고기의 운송, 기절, 도살, 질병으로 인한 살처분에 대한 조항까지 만들어 권고하고 있다.
작년 응용동물복지학회의 중심 주제도 물고기복지였다. 동물복지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것은 물의 온도에 따라 물고기가 통증을 느끼는지, 물고기가 통증을 느낄 때 어떤 몸짓으로 표현하는지, 물고기의 사회적 행동을 복지지표로 어떻게 사용할지, 그리고 심지어는 물고기의 긍정적 복지(positive welfare. 단지 고통을 피하는 것 뿐 아니라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를 고려한 복지 기준)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 연구들에서 물고기들은 온몸으로 그들의 취향과 선호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활어 유통을 없애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고통 받는 물고기의 수가 너무 많고 그 고통의 크기도 막대하다. 둘째로, 그런 고통을 강요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하나도 없다. 기어코 산채로 물고기를 뭍에 옮기고 먹기 직전에 죽이는 건, 맛도 신선한 음식도 얻지 못하는 그냥 괴상한 악습이다. 적게 먹을 필요도 있지만, 먹기 전에 괴롭히지 않을 필요도 있다.
(기사 등록 20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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