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 그들의 언어
1. 지난주에 불가피하게 태극기 부대의 집회를 넘어 광화문 북측의 민중대회로 향했다. 그래서 그분들의 언어를 듣기 싫어도 듣게 되었다.
2. 제일 큰 것은 전광훈 쪽이 주도하는 면세점앞 대형집회였고, 다만 그 집회에 동참하지 않는 집회도 두어개 더 되었다. 하나는 대한문 앞에서 하나님이 한국을 지키신 건 자유민주주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집회였고, 또 하나는 시청의회에서 조그마하게 하는 집회였는데 5.18 광주항쟁을 왜곡하는 속이 뒤틀리는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3. 제일 난관이었던 것이 전광훈쪽 이야기었다. 빠방한 엠알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냥 혐오로 시작해서 혐오로 끝나고 전광훈 목사님과 황교안 대표가 함께 문재인 끌어내자며 끊임없이 자유한국당을 향해 러브콜을 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억울하게 감옥살이 했으니 죄많은 문재인은 35년은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고, 북측광장에서 한줌밖에 안 되는 민노총 집회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집회한다고 하질 않나...
4.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번 총선 때 심판하기 위해 말 안 듣는 아들, 말 안 듣는 며느리, 말 안 듣는 자식 단도리해서 표를 세배로 만들자는 거였다. 다른 건 모르겠고, 그 집회를 주최하는 분들이나 참여하는 분들이나 얼마나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5.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피 땀 흘려 이렇게 만들어 놓은 나라를 문재인 좌파 정권이 다 북에 퍼 주고 있다."는 발언이었다. 경제성장이라는 명목으로 가장 사람들을 못되게 가혹하게 굴었던 그 시절의 모든 것이 문재인 정권이 다 무너뜨리고 있다는 공포가 느껴졌다. 그 당시 가혹하고 폭력적인 개인의 나라에 대한 희생이 이제는 당연시되지 않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부추겨 마치 너와 내가 이룬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처럼 포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6. 그곳에서 문재인을 끊임없이 까대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다시 떠올렸다. 허공에 있는 자신의 모든 것을 지푸라기 잡는 것처럼 절박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구멍난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 같았다. 결국, 허공의 나라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도 없고 자신도 없는 그 목소리는 공허할 뿐이었다. 바로 옆에 사람이 없기에 계속해서 성소수자, 세월호 심지어는 맹학교에 다니는 장애인 당사자까지 자기한테 뭐라 하면 바로 물불 안 가리고 혐오를 퍼붓는다. 또 그 안에서도 그렇게 악다구만 남아서 서로 갈라지고 갈라지고 있다.
7. 어떤 활동이든 목소리든 제일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을, 그리고 또 다른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놓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가장 어려운 것을 항상 고민해야 겠다.
● 쓰디쓴 노키즈존 논란
1. 영화 <겨울왕국2>를 둘러싼 노키즈존 논란을 다룬 기사(https://bit.ly/38coTRx)를 보면서 언론의 역할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기계적 중립이란 명목하에 어떤 약자나 소수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리하거나 차별과 혐오를 유발하는 것이 아닌지 좀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링크한 스브스도 그렇고, 중앙일보는 아예 앙케이트 조사를 하고 계신다. 하지만 이런 노키즈존 얘기하면서 어린이와 부모에 대한 혐오 차별 배제 얘기를 신나게 쓰고 계신 기자님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겨울왕국 2는 전체관람가이고, 당연히 어린이와 가족이 주요 관람 타겟팅이고, 스크린 독점 논란이 있지만 그만큼 시간대가 무궁무진해서 아이와 가족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시간대에도 충분히 예매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런 것은 다 거두절미하고 어린이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무차별적으로 전달하고 계시죠? 기자님 ^^ 그건 언론의 역할은 아니라고 봐요.
오늘 나온 뉴스 중에 하나가 저출산율 심각에 대한 통계 기사였어요. 언제는 가정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절규하더니, 이제는 그 아이가 전체관람가 영화에서 민폐이고 그 부모도 민폐라고 소개하고 있나요? 그냥 하나만 하면 안 될까요?
2. 노키즈존 논란에서 한 마디 하고 싶은 건, 식당이건 극장이건 공공 장소에서 질서를 해친다고 민폐라고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시는 분들은 정작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식당이나 극장이나 지하철이나 온갖 공공 장소에서 그들이 어린이를 비난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으로 소란을 피우거나 민폐를 끼치거나 하는 것에 대해선 거의 대부분 침묵한다. 여기서 나는 노키즈존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 배려와 예의는 어른들에겐 그렇게 표독스럽게 얘기하지도 못하고 왜 아이와 그 부모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거지? 그런 건 배려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자기 기준으로 만만하고 함부로 말해도 되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일 뿐이다.
3. 그리고 노키즈존에서 끝나면 모를까, 차별과 배제의 언어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갖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이유와 핑계를 대며 특정 사람들을 배제하는 논리로 얼마든지 확장되고 정당화될 수 있다. 어떠한 일이나 특정 시간엔 장애인, 이주노동자는 적합하지 않으니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일이나 장소엔 여성은 적합하지 않으니 오지 말라고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어떤 장소에 고연령층이 간다고 했을 때 물 흐리니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소득에 의거해 기준에 맞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장소에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어린이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내치고 오지 말라고 하고 정당화하지 말라고 배제하는 칼날은 마침내 자신에게 날라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 그 사람은 차별이다. 배제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시간까지 온갖 이유를 대며 배제했던 논리가 자신에게 돌아왔을 뿐인데...
4. 그냥 한마디로 말해서 사람으로서 못돼 먹은 사람들이 판치고 있다. 상대방에게 예의 배려 얘기하면서 자신은 상대방을 아예 부정하고 돌을 던지며 이를 정당화하는 못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물며 이런 전체 관람가 영화에서 조차 노키즈존을 정당화하고 있는 세상이 너무나 쓰디 쓰다. 차별과 배제 혐오가 너무나 일상적인 세상이 너무나 쓰디 쓰다.
(기사 등록 201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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