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맥낼리(David Mcnally)
번역: 두견
[얼마전 미국의 ‘국제사회주의조직(ISO)’이 회원 총투표를 통해 해산했다. 이 조직은 6년 동안 은폐해 왔던 성폭력 사건이 고발되면서 붕괴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반성적 평가가 제시됐는데, 그 중 하나는 ‘레닌주의 조직’이라는 모델에 대한 재평가였다. 아래 글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면서 이번에 ISO 회원들 사이에서 많이 읽혀졌다.
원래 이 글은 캐나다 출신의 사회주의자인 데이비드 맥낼리(David Mcnally)가 2009년 초에 ISO의 국제 조직자에게 보낸 편지였다. 이 편지에서 맥낼리는 '초소형 정당'(micro-party) 정치와 관련된 종파적 관행과 첨예한 결별을 촉구했었다.
맥낼리는 최근 ISO 내부와 더 넓은 좌파들의 토론에 비추어, 이 글을 재공개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과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NPA)에 대해 논의했던 부분들은 일부 편집했지만, 핵심 요점들은 모두 그대로라고 한다.
이 글에서 IST라는 약어는 SWP와 관련있는 ‘국제사회주의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을 가리킨다. 이러한 돌아보기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레닌주의 조직’ 모델을 신성화하는 좌파 일부를 돌아보게 하면서, 새로운 급진 좌파 건설의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본다.]
출처: http://davidmcnally.org/?p=1077
친애하는 동지에게,
예측했겠지만, 우리의 대화에 대해 내가 원했던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설정하느라고 시간이 꽤 걸렸다. 나는 나중에 다양한 다른 문제들에 대해 더 많은 생각들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큰 주제를 다루도록 하자. 내가 이 모든 것을 너무 성급하게 썼기 때문에, 어떤 서술들은 다듬을 필요가 있겠지만, 일단 보내고 이 대화를 계속 진행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본다. 나는 또한 아마도 필요한 것보다 더 길게 썼지만, 나 자신의 생각의 좌표들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것은 신사회주의(New Socialist) 그룹의 안과 그 주변에서의 정치적 재고찰의 더 넓은 프로젝트를 표현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유익한 대화를 할 것이다. 편의상, 나는 이러한 논평들을 "시대, 당, 그리고 새로 올 좌파"라고 이름 붙였다.
1. 시대와 혁명적 좌파
세계적 경제 위기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상징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경제적으로는 1980~82년의 극심한 불황 이후 25년 만의 일반화된 세계적 위기다. 그리고 독일, 일본, 한국 등 많은 나라들에게 있어 그것은 훨씬 더 악화될 것이다. 독일 경제는 전후 최악의 경제 위축이었던 1975년 0.9%에 비교해서 올해는 2.5% 수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에서 실업률이 16%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IMF와 체결한 협정과 위기에 대한 대중의 반대로 막 무너졌다.
게다가, 전례 없는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씨티그룹과 UBS와 같은 새로운 은행 위기가 발생하면서 금융시스템은 계속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오늘 하루에만 7만 명의 감원이라는 대규모 실업이 금융위기로 다시 흘러들어와 이를 심화시키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부문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침체는 깊고도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 심각성에 충격을 받은 지배계급들은 자유시장의 미덕에 대한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뻔한 논리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그들은 케인즈식 국가 개입과 경기부양을 채택하고,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은행 국유화를 시작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지배계급의 편에서 극심한 이념적 혼동을 겪고 있는 이 모든 인물들은 "자율 규제" 시장의 눈에 보이는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복잡한 방식이지만, 주류 부르주아 정치에서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이다. 아마도 가장 두드러지게는 오바마의 당선에서 나타나지만, 프랑스와 같은 국가에서 정부가 취한 대규모의 개입주의 및 보호주의 방향에서도 말이다. 신자유주의적 교리로부터 멀어지는 움직임은 또한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특히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에서 훨씬 더 큰 단절과 교차하면서, 급진적인 노동계급과 사회주의 경향의 성장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계산들은 그리스, 프랑스, 독일에서 급진좌파 세력들의 힘이 강화되고 있다는 전망에서 중요하다. 그들의 선거적 행운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사회적 항의가 빠르게 불타오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곳에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주요 선거연합과 좌파 재결집이 아직 카드로 올려지지 않은 라틴아메리카와 유럽의 일부 바깥 지역에서도, 이러한 위기는 혁명적 좌파의 진지한 세력에게 새로운 요구를 제기할 것이다.
우리가 이 순간의 가능성과 도전을 제기하려면, 우리는 보다 큰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할 것이다. 한편, 대안적인 세계관을 위한 실제 공간이 열렸다. 예를 들어, 토론토에서 위기 상황에 대한 토론회는 놀라울 정도로 컸고, 급진적인 분석을 위한 여지도 놀라울 정도로 넓었다.(나는 개인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로서 경제 위기를 논하는 라디오와 TV 인터뷰를 이렇게 많이 한 적이 없었다.)
다른 한편 그리스의 폭동과 파업, 시카고의 의회 점거, 가자 주변의 매우 대규모 동원 등에서 나타나듯이, 저항의 가장 초기 징후는 필요한 수준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유망하다.(대학 점거의 흐름과 당신이 최근 참가한 보스턴에서 열린 간담회도 포함해서.) 내 생각에 그것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치적 변화에 대한 더 큰 그림의 일부분이다. 분명히, 그렇다면, 위기의 효과에 저항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더 큰 힘을 모을 긴급한 필요가 있다.
이것의 어떤 점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좌파를 건설하라"는 당신들의 '소셜리즘 2009' 행사의 주제에서 포착되었다고 생각한다. 실로 새로운 시대이고, 우리가 건설해야 할 좌파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좌파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좌파의 새로운 도전이 국제 트로츠주의의 가장 큰 흐름 안에서 상당히 유동적인 시기에 일어난다는 것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프랑스에서 NPA의 창설과 LCR의 해체는 반스탈린주의 혁명적 좌파의 소그룹 유산에서 탈피하려는 트로츠키주의 전통 안에서의 의미있는 흐름에 의한 가장 중요한 시도를 의미한다. 독립적 노동계급 정치와 제도의 취약함, 혁명 조직의 장기적 주변화를 고려할 때 그것의 불가피한 약점이 무엇이든 간에, NPA의 창당은 급진좌파가 보다 의미 있는 정치 세력이 될 수도 있는 새로운 반자본주의 정당을 출범시키기 위한 매우 중요한 노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소그룹 프로젝트에 대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는데, 나는 아래에서 그 문제로 돌아갈 것이다. 동시에, 최근 SWP 내부에서의 논쟁(그리고 IST의 일부에 걸친 그것의 잠재적 후폭풍)은 SWP 내부의 진정한 민주적 힘이 조직의 반민주적 문화와 결함있는 관점에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다른 정치그룹이나 그들과의 진정한 공동 작업에 대한 IST의 종파주의를 약화시킬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종류의 대화와 협력의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그래서 위기로 인해 제기된 도전은 한편으로, 국제 혁명적 좌파 내부에서 가능한 변화와 재편성, 다른 한편으로, 북아메리카와 다른 곳에서 마르크스주의 경향들이 어떻게 방향을 잡을 것인지에 대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2. ‘초소형 정당(micro-party)’의 문제
내가 보기에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좌파"의 필요성은 우리 모두가 ‘초소형 정당’식 접근법의 유산을 직면하게 하고, 그것을 깨버리도록 만든다. 초소형 정당의 관점은 작은 혁명적인 그룹을 만드는 것이 혁명적인 정당을 구성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 구성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삼단논법을 포함한다.
1. 진정으로 혁명적인 정당 없이는 사회주의 혁명이 있을 수 없다.
2. 우리 그룹은 진정한 혁명적 전통의 수호자다.
3. 따라서 우리 그룹이 없으면 사회주의 혁명은 있을 수 없다(즉, 우리 조직을 성장시키는 것이 대중적 혁명정당 건설의 핵심이다).
정말로 결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보다 - 노동계급의 선진부대가 실제로 다시 만들어지고, 그 기층에서 의미있는 정당이 건설될 수 있도록, 노동계급의 자기 동원의 실천, 조직, 문화를 좌파는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 의 실제 사회-역사적인 문제들은 단지 소그룹을 건설하는 문제로 축소돼 버린다: 더 많은 회원 모집, 신문 판매, 지부 신설.
자, 이제 확실히 하자. 효과적인 사회주의 조직은 내가 "노동계급 자기 동원의 실천, 조직, 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재건하는 일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역동적이고 성장하는 사회주의 세력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단체들이 그들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반대로, 이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결국, 진정한 노동자 계급 선진부대 - 배아 상태에서도 자신이 그런 조직이라고 우기는 소그룹과는 다른 - 의 재건은 그 임무에 헌신하는 조직적인 사회주의 활동가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문제는 소그룹의 건설을 그 자체로 혁명정당의 건설로 여기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원래 IS의 전통 - 사회주의평론 그룹 및 영국 국제사회주의자들, 그리고 할 드레이퍼의 많은 이론과 실천이 연관된 - 에서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것은 전형적인 대리주의적 오류로 보였다. 드레이퍼가 '위로부터 사회주의'라고 불렀던 엘리트주의적 사회주의도 당연히 다른 사회 집단의 지배를 노동계급의 자기 통치와 자기 조직으로 대체한다고 했다.
더 작은 규모로 볼 때, 대리주의는 또한 그들의 회원들이 혁명적인 전위들로 구성돼 있다고 상상하는 작은 그룹들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수만 내지 수십만의 계급의식적인 사회주의 노동자들, 진정한 노동계급의 전위를 그들 자신으로 대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스스로 자임하는 전위주의에 대해 던컨 핼러스(Duncan Hallas)는 "진정한 전위, 더 선진적이고 의식적인 노동자들 중의 소수"가 "종파나 스스로 지도자라고 우기는 이들"로 뒤바뀐다고 지적했다.
이런 종류의 대리주의, 즉 소그룹이 맹아에서부터 혁명적인 전위당이라는 생각은 소그룹의 위엄에 대한 터무니없는 과대망상, 완전히 왜곡된 자기 이해와 내부 제도, 그리고 노동계급 투쟁의 진정한 운동들을 구축하려는 시도에서 동떨어진 정치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대리주의는 나쁜 유토피아주의적 전통의 일부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들(또는 표면적 변화를 위한 다른 가능한 행위주체들)을 계몽하는 완벽한 교리를 완성하려 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혁명적 지향성을 촉진하면서 오늘날의 진정한 노동계급과 민주주의의 운동을 건설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가들의 임무는 외부에서 설교하기보다는 실제 운동에 좌파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1848년 독일 혁명 당시 마르크스와 함께 취했던 접근 방법을 설명하면서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 우리가 그 운동을 떠맡고, 이미 존재하는, 가장 진보된, 정말로 프롤레타리아적인 측면을 고수하며 더 나아가고 싶지 않다면, 작은 지역에서 공산주의를 설파하며, 행동하는 큰 정당 대신 아주 작은 종파를 찾는 것 외에는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황무지에서 설교자의 구실은 내던졌으며, 그것에 대해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너무 잘 연구했었다... ”
그래서 할 드레이퍼가 <칼 마르크스의 혁명 이론>이라는 책을 통해 올바르게 강조했듯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특징짓는 종파주의적 모델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졌다. 그들은 그들의 과제를 "가장 선진적이고,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적인 편" 내에서 일하면서 나날의 실제 운동을 "더 멀리 발전시키"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 "가장 선진적이고,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적인" 계층은, 물론 나중에 노동계급의 전위로 묘사되는 것 - 즉 실제 노동자 운동의 선진부대인 것이다.
그 자체가 참혹한 노동계급의 패배와 장기화된 자본주의 확장의 산물로서, 혁명가들이 그러한 대중적 운동으로부터 끔찍하게 고립된 후에야, 종파주의 모델은 혁명적 좌파 내부의 조직과 운영의 지배적인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그리고 그람시와 동일시하는 전통에서 종파주의 모델은 완전히 낯선 것이다.
그러나 나치즘 눈 앞에서 독일공산당(KPD)가 굴복해버린 이후에 트로츠키의 "절망적인 도박" - 하나의 노동계급 운동 안에서 어떠한 대중적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선언한 - 으로 초소형 정당 모델이 다시 표면화되었다. 작은 집단들이 이제 자신들을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대표자’라고 선언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들의 의도가 고상하고 그들의 헌신이 용감한 것이었더라도, 진정한 투쟁으로부터 그들의 끔찍한 고립은 이들 집단을 과대망상, 비현실적 관점, 그리고 이것들과 함께 세상과 동떨어진 내부 문화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었다. 트로츠키는 이 모든 것들로 인해 끝없이 좌절하고 있었다.
실제로 "프랑스 전환"(고립된 소규모 좌파에서 벗어나 사회당 입당을 제안한 트로츠키의 전술)은 이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려는 불안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본주의가 장기적 호황으로 전환된 이후, 초소형 정당 모델은 그가 건설한 운동 내에서 정통적이 것이 되었다. 실질적인 대중운동과 분리된 아주 작은 조직들의 건설이 혁명정당의 건설과 동일해졌다. 급진적인 극좌파 내에서, 영국의 ‘사회주의평론’ 그룹과 미국의 드레이퍼와 관련된 경향은 초소형 정당 모델의 대리주의적 환상에 도전해, 더 온전하고 건강한 정치적 지향을 촉진하려고 노력했다.
소그룹 대리주의 - 내가 초소형 정당 모델이라고 부르는 - 의 정치적 뿌리중 하나는 1920년대와 1930년대로부터 2차대전 이후 시기의 극적인 조건 변화 속에서 트로츠키의 예측에 따른 혁명적 관점의 기계적 전환에서 비롯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실제로 세계의 많은 부분에 노동계급의 선진부위가 실제로 존재했는데, 이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생각하고 흔히 좌파적 대중조직(노동조합, 사회당 및 공산당, 실업 노동자 운동, 사회주의 여성 단체 등)에 속해 있는 수백만의 노동자로 구성된 사회적 계층이었다.
게다가 주로 유럽에서 1917~23년에 걸쳐, 그리고 1927년에서 1937년 사이에는 중국과 스페인에서 주기적으로 준혁명적인 위기가 연달아 발생했는데, 이 때 혁명운동이 노동계급의 선진부위를 획득하는 것은 역사적 순간의 열쇠였다. 그런 맥락에서 주요한 정치적 문제는 노동계급 선진부위의 창출이 아니라 개혁주의와 이데올로기적, 조직적으로 단절하면서 전환과 재편성을 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었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투쟁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다른 (그리고 진정으로 혁명적인) 정치적 프로젝트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당들로 이 노동계급 선진층을 획득하려고 노력했다.
확실히, 이 지향점은 이 선진 계층의 질적 발전을 수반했다. 하지만 그 계층 자체가 진짜 사회적 세력으로서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 파시즘, 스탈린주의, 냉전, 전후 경제 확장의 복합적인 효과는 이 선진 계층을 크게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건들을 겪은 뒤 핵심 문제가 기존 운동에서 '지도부 건설'이나 '지도력 획득'인 것처럼 가정하는 것은 완전히 오해다.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적이고 사회주의적인 계층이 재건되어야만 했다. 이것은 만약 작은 집단이 그것을 얻고자 한다고 해서 언제든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1970년경에 쓴 글에서 던컨 핼러스는 혁명적인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는 문제의 첫 사례로서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였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손과 머리를 통해서 그들의 동료 노동자들 사이에서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사회주의 필요성과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에 대한 공동의 의식을 가진 수천 명의 노동자들의 조직화된 계층이 만들어져야만 한다. 혹은 다시 만들어져야만 한다.”
핼러스는 노동당이 훨씬 더 적극적인 노동계급 대중 당원을 갖고 있던 시기에, 대처리즘과 신자유주의와 깊은 불황이 아직 노동계급 조직, 의식, 전투성에 해를 끼치지 않았을 때, 역동적인 직장대표자 운동이 파업과 노조의 저항을 주도하고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는 노동자의 선진 계층을 만드는 것의 하나로서 혁명정당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실제로,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 영국에서 IS 그룹을 정말로 차별성있게 만든 것 중에 하나는 현장 조직과 투쟁, 특히 직장대표자 운동을 건설하는 것에 대한 놀라울만한 주의력이었다고 주장할 만하다. 그것은 이러한 계급 네트워크와 제도(알런 시어스가 "저항의 인프라"라고 부르던 것의 일부)의 구축을 진정한 대중적 선진부위 창조의 일환이면서 영국에서 혁명적 사회주의를 재건하는 작업의 절대적 중심이라고 보았다. 이 유산의 상당 부분은 현재 IS의 경향에서 상실되거나 최소한 깊이 감춰져 있다.
내가 여기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매우 다양한 이유로(부분적으로 이것은 IS의 전통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아니기 때문이다) IST는, 실천에서 대체로 초소형 정당 모델을 채택했다. 여러 나라들에서 소규모 그룹들의 건설을 오늘날 혁명가들의 근본적인 임무로 취급하면서 말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선전주의로부터 탈피하고 좌파의 더 넓은 동맹과 운동을 구축하려는 최근의(1999년부터의) 시도와 급진좌파의 새로운 정당 형성에 대한 이론적 헌신에도 불구하고, SWP와 그 위성 그룹들은 초소형 정당 접근방식에 의해 방해받아 왔다. 이것이 내가 곧 돌아갈 지점이다.
물론, 초소형 정당 모델에 대한 열성적인 헌신이 그룹에게 상당한 내구성과 지구력을 줄 수 있는 기간도 있다. 당신의 집단 건설이 미래 사회주의 혁명의 열쇠라는 믿음은 어려운 시기를 견디며 그룹을 지켜낼 수 있는 열의과 열정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집단에서 회원들의 작은 핵심간부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역사적 전형이라는 메시아적 관념에 매달릴수록, 더 넓은 사회에서의 실제 발전에 대한 관심이 적을수록, 그것이 통제하지 못하는 어떠한 사회운동이든 더 불신하기 쉽다. 새로운 발전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수록, 그것은 새로운 급진적 힘에 영향을 받고 재편성하는 것에 더 폐쇄적이게 된다.
다시 한 번 핼러스를 인용하자면 "반종교적 광신론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해당 집단에게 상당한 생존력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은 "실제 발전의 잠재력을 저해하는 댓가로" 주어진다. 즉, 진정한 사회적, 정치적 급진화의 혁명적 표현이 될 수 있는 능력을 둔화시키는 것이다.물론 작은 혁명적 경향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붉은 기를 휘날리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시기도 있다. 즉, (간헐적 캠페인과는 반대로) 중요한 운동의 구축이 단순히 선택할 카드에 없는 상황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혁명적 좌파들이 더 크고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에 우리가 동의한다고 생각한다. 혁명적 전통의 관리자로서 작은 집단의 생존이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 대신에, 과제는 어떤 하나의 정치경향이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급진적인 운동들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동맹, 연합, 재편성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확실히, 이것들은 모두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게 보일 것이다. 프랑스, 그리스 또는 베네수엘라에서 가능한 것은 캐나다나 미국에서 이룰 수 있는 것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들은 "하던대로 하자"는 방식을 돌파하고 현 시점에서 더 적합한 방식으로 작업해야 한다는 시도의 절박함을 깎아내릴 수 없다. 그러나 초소형 정당 관점은 일반적으로 이것에 대한 걸림돌이다.
3. 혁명적 당으로 가는 길에 대한 생각
극좌파의 지배적 모델인 "레닌주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볼셰비즘의 유산은 결국에는 노동계급 운동의 주도권을 획득하는 작은 집단을 확고히 구축하는 것을 수반한다는 생각이다. 주도할 준비가 된 군대도 없고, 계급의 선진부대도 없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소그룹 프로젝트는 껍데기뿐인 지도력의 건설이 된다.
그러면 이것은 대중들이 좌파를 볼 때 - 훈련된 간부들과 단호한 지도력으로 - "우리는 준비될 것이다"라는 개념을 확실히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실제 대중적 노동계급 운동을 형성하는 과정 밖에서 껍데기뿐인 "지도력"을 선발하고 훈련할 수 있다는, 지도력에 대한 완전히 비현실적인 개념이 발전한다. 이에 따라 지도력을 '온실' 속에서 만들어낸다는 관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에 따르면 혁명적 간부들은 훈련된 소그룹의 대기 속에서 인위적으로 육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지도력에 대한 집착을 낳는다.
우리는 대중적 조직을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각을 더 해보면, 우리는 그 다음으로 가장 좋은 것, 어쩌면 가장 좋은 것까지도 될, 그것이 없으면 혁명이 불가능한 지도력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즉 지도력과 잘 훈련된 구성원들의 구축은 "레닌주의"라고 불리는 교리의 핵심을 구성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다음 구절은 흥미롭다. “당은 지도자들의 통치를 받는다. 당이 노동계급의 전위라면 지도부는 이 전위의 선진 부위이다... 공산당의 특별한 성격은 그것의 가장 엄격한 규율이다...”
이제, 우리는 둘 다 이런 종류의 주장에 익숙하다. 이것은 스탈린주의자인 V. 소린이 쓴 '당에 대한 레닌의 가르침'이라는 텍스트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 둘 다 알다시피, 비슷한 버전의 "레닌주의"는 트로츠키주의 운동 내에서, 심지어 더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조류 안에서조차 정기적으로 불거진다. 이런한 집착은 지도력에 대한 종교적 추종이 돼서 정치적 내용이 완전히 결여된 일련의 뻔한 구호들이 만들어진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여기는 그런 어리석음의 예를 여기서 소개하겠다. "지도자들의 일은 지도하는 것이다." 얼마나 공허한 동어반복인가. 당연히 운전자의 일은 운전하는 것이고, 제빵사의 일을 굽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운전해야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구을 것인가? 신경 쓰지 마라. 그냥 운전하고, 그냥 굽고, 그냥 지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형식으로 내용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다.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훈련시키기 보다는, 그런 허튼소리는 명령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하수인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 자체가 마치 끝인 것처럼 '헌신하라'는 똑같이 공허한 명령이, 헌신적이고 비판적인 마르크스주의 활동가들을 육성하는 능력으로 측정되는, 진정으로 강한 정치를 대신하게 된다. 그 결과는 예측 가능하다. 그람시의 "설득자들의 군대"보다, 우리는 작은 떠벌이들의 부대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실제 러시아 경험의 완전히 조잡하고 단순화한 풍자만화에 근거하여 정당화된다. 트로츠키주의 단체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혁명적 당은 근본적으로 작고 용감한 외골수들로 만들어진다는 우화를 재활용할 수 있는지 놀라운 일이다. 이 영웅 신화에서 승리는 결연한 자에게 온다.
‘레닌은 단호하고 외골수였다. 그리고 그가 이겼다.’ 이런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도 그저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으로 나간다. 그러면서, 러시아에서 혁명 운동을 건설한 실제적이고 복잡한 역사는 완전히 사라진다. 볼셰비즘의 역사에 걸쳐 연속성의 중요한 요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히 1917년에 날카로운 단절 속에 새로운 조직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낸 불연속성의 요소도 마찬가지로 결정적이다. 실제로 이런 파열이 없었다면 1917년에 대중적 혁명의 당은 없었을 것이다. 1917년 초 레닌이 "낡은 볼셰비즘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는 정확하게 그러한 역사적 단절의 필수적인 중요성을 알리고 있었다.
혁명의 당은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정당이었다. 그것은 1917년 이전의 볼셰비키와 다양한 경향들과 사회적 계층들의 융합을 수반했다. 트로츠키의 그룹(메즈레이온카 또는 국제주의자들)과 함께 루나차르스키와 요페 같은 주요 지도자들이 당 지도부에 즉시 합류했다. 트로츠키가 요구하고 레닌이 받아들인 조건에 따라서 그는 자신을 볼셰비키라고 부를 필요가 없었다. 아나코-신디칼리즘과 좌파 사회혁명당과 관련된 경향들과 함께.
그리고, 결정적으로, 압도적으로 젊은 혁명적 노동자들의 계층과 함께.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급진적이면서 새로운 것이었는데, 그것은 볼셰비즘의 많은 역사적 전통과 결별하고, 종종 대다수의 오래된 지도력에 의해 반대되는 일련의 정치적 관점 아래에서 러시아 노동계급 운동 내의 여러 혁명적 흐름을 종합한 것이었다.
초소형 정당 모델에 잘 들어맞는 연속성의 신화는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이 러시아 경험으로부터 진정으로 배우는 것을 가로막는다. 대신에 우리가 진정한 대중 정당에 이바지하는 진짜 복잡한 작업을 하는데는 안 맞는 일련의 고상한 격언들을 제시한다. 실제 역사를 연구하면서, 마르셀 리브만은 볼셰비즘의 지배적인 신화에 도전했다. 그는 "최소한 한 세대의 혁명적 투사들을 위해"라고 쓰고 있다.
“이 역사는 마치 하나의 계획과 하나의 조건화 과정이 볼셰비키 정당을 형성한 것처럼 통일된 전체로 보았으며, 마치 역사가 그것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지속적이고 일관된 과제를 수행했던 것처럼 보았다. 1917년에 승리한 당은 1903년부터 1914년까지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이 승리의 길을 준비했던 당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완전히 옳은 것이 아니다. 역사적 분석에 따르면 볼셰비즘을 보편적 모델로 만든 1917년 혁명 과정에서 레닌주의 조직은 탈바꿈의 일종인 심오한 변화를 겪었다. 이것은 혁명의 당을, 10월혁명을 건설한 정당을, 조건도 없이 차르 정권하에서 그 길을 마련한 정당과 동일시하는 것이 의심스럽거나, 심지어 거짓이 되게 만든다...
그 당은 1917년에 민주주의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바람 속에서 스스로를 개방했다. 비록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지하활동의 규칙은 공개적 토론의 방법보다 덜 중요해졌다. 레닌이 전쟁 이전 시절에 당에 주려 했던 한덩어리적인 성격이 전체적으로 사라지면서 다양한 경향에 자리를 내주었다... 규율과 '절대 복종'의 요건은 희미해져 갔고, 동시에 이 규율과 위계적 정신의 결과였던 경직된 중앙집중주의는 수많은 떠들썩하고 억누를 수 없는 압력의 영향을 받아 쇠퇴하였다. 다시 말해서, 1917년은 새로운 또는 쇄신된 정당의 탄생을 보여주었다...”
지금, 나는 바로 이경험이 우리의 상황에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제안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하나의 역사적 유추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혁명의 당'은 본질적으로 거대한 역사적 재편성과 혁명적 경향의 구성 변화의 산물이었고, 그 역사는 단순한 간부들의 축적이 아니라 도약과 파열로 특징지어졌다는 점이다. 사실 볼셰비키 당은 이 재편성의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1917년에 진정으로 혁명적인 정당이 되려면 그 당이 새로운 세력, 경향, 정치적 관점의 유입에 의해 완전히 재구성되어야 했기 때문에 이것은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혁명 정당을 건설하는 복잡한 사회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것은 초소형 정당 모델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마르크스주의 좌파의 발전에 있어 새로운 역사적 단계마다 불가피한 재결집과 갱신의 필수적 과정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기보다는 진정한 노동계급의 선진부위를 재창조해야 할 때 특히 중요해진다. 1920년대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과제는 기존의 계급 전위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발아에 도움을 주는 좌파의 실천, 투쟁 형태, 제도를 육성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만 의미 있는 혁명조직(당은 물론이고)이 만들어질 수 있다.
게다가, 마르크스주의 경향은 완전히 미미하고 노동계급의 전위는 재건되어야 하는 우리의 상황에서 나는 우리가 진정한 급진화 속에서 융합과 재결집의 과정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새로운 좌파들은 새로운 좌파적 사회운동과 새로운 급진적 세력을 만들어 낼 것이다 – DRUM(‘도지 혁명적 노동운동’)과 ‘혁명적 흑인노동자연맹’과 같은 집단의 현대적 동가물들, 노조들 속의 평조합원 운동들, 성 해방과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반란 운동, 새로운 급진적 노동자 센터, 여성 노동자들의 새로운 운동, 새로운 학생 좌파 - 그들의 가장 전투적인 요소들은 심지어 의미있는 "예비적 정당의 형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함께 모여질 필요가 있다.
훨씬 더 크고, 더 뿌리 깊은 혁명적 물결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를 혁명적 조직들의 건설에서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이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적 주도성이 아마 중심적으로 이루지면서 동시에, 우리는 (전국적 및 준국제적) 회의와 같은 대규모의 주도권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다양하고 진지한 좌파 출판물의 후원으로, 서로 다른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배경을 가진 수백 명의 사람들을 모아서 토론과 논쟁에 참여하게 하고, 경험을 공유하고, 진정한 좌파들의 작업을 어떻게 더 큰 무대로 옮길 것인지 토론할 수 있다.
나는 이것에 대한 어떤 조리법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순간의 가능성과 우리 가운데 있는 "문화 혁명"의 필요성에 대한 강력한 감각인데, 그것은 언제나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소집단의 "공자님 말씀"에 방해를 받지 않고, 초소형 정당 모델의 모든 잔재를 뒤흔들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건설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함께 전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을 실현시키려면 우리 자신의 그룹에서 많은 토론과 교육이 필요할 것이고, 서로 다른 그룹의 구성원들 간에 더욱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실험과 혁신을 할 수 있는 능력, 혁명적인 좌파에서 서로 다른 전통을 이어주는 새로운 어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 대화와 공동 행동을 위한 다른 공론장을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내가 여기서 필요한 것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논의를 진행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토론을 진전시키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다. 나는 당신과 다른 동지들의 생각을 듣고, 지금부터 ‘소셜리즘 2009’ 행사에서 당신을 볼 때까지 이 대화를 지속하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좌파를 위해.
데이비드 맥낼리 2009.1.26.
(기사 등록 2019.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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