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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미투 혁명 / 한반도와 시리아 / 상처와 치유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3. 19.

전지윤

 


#미투는 ‘20183월 혁명으로 기록될 것인가

 

누군가는 이것을 ‘20183월 혁명이라고 했다. 맞는 말일지 모른다. ‘미투가 지난 두달간 낳은 변화는 거대한 것이다


이런 과격한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사과는 피해자에게 직접해야 한다, 그것은 분명히 있었던 일이다, 내가 증거이고 내가 기억한다...’

 

이런 진실의 목소리가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또 그것은 다른 여성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내가 침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힘든 일인 줄 알지만 같이 나서달라, 다른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미투는 새로운 표준을 만들었다. 오래동안 사소한 문제로 여겨졌던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이고 폭력적인 것인지 분명해졌다. 동의없는 성관계는 곧 강간이란 걸 깨닫는 사람도 늘어났다. 성별권력위계 속에 동의로도 충분치 않다는 고민까지 깊어지고 있다. 나도 내가 기억하는 데이트가 상대에겐 폭력으로 기억되고 있지 않은지 계속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모든 혁명은 반혁명과 같이 간다. 반동은 진작 시작됐다. 노골적으로 미투를 비난하진 않는다. ‘미투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는 진정한 미투와 그렇지 않은 미투를 구분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런 반동은 좌, 중도, 우를 가로지르며 나타나고 있다. 이념 초월의 좌우합작이다.

 

특히 공작의 관점을 운운하는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은 너무 거슬린다. 도대체 당선 가능성도 없던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를 왜 막으려했단 말인가? 미국과 한국의 남성권력자들이 미투를 막기위해 정상회담을 잡았다면 그럴듯이라도 하지. 물론 자한당이 이게 다 친북운동권 문화 때문이고 주사 학습한 것을 반성하라위드유들고 있는 건 보기 괴롭다. 하지만, 그게 진보연하는 마초들의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지금 수많은 남성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런 것이다. ‘여성들은 나에게 호감을 보여서 나를 착각하게 만든다. 마지못한 척 따라와 좋아서 같이 해놓고, 나중에 문제삼는다. 고발하면 누군가의 인생도 끝낼 인기와 힘을 얻게 된다.’ 남자를 유혹하고, 피해호소로 특권을 얻으려는 꽃뱀들이 출몰하는 세상. 이것이 가부장제가 남성들의 머리 속에 심어놓은 완벽한 공상이고 SF.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서로 존중하고 함께 만족하는 관계맺기에 서툰 남성들은 여성을 성적대상으로만 본채 힘겨운 감정노동들을 생략하고, 여성들은 온갖 폭력을 경험한다. 폭력은 상처로 곪아가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데는 모든 걸 거는 용기가 필요하다. 고발 이후에 여성에게 닥치는 특권은 의심, 비난, 악플, 괴롭힘, 트라우마, 불면증, 섭식장애, 대인공포, 공황장애다.

 

올해 아카데미상을 탄 영화 쓰리 빌보드에서도 성폭력을 공론화한 주인공에게 처음 닥친 일은 마을에서 고립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몇몇 개인들의 탓이 아니다. 미드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공동체 전체가 강간문화의 공범이고 집단적 가해자라고 그려낸다. 피해자가 남긴 13개의 녹음테이프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사람은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태도는 주인공이 매달린 한가닥 끈마저 끊어버린다.

 

따라서 지금 가해자로 지목된 많은 남성들은 결코 억울한 희생양들이 아니고, 단순히 도려내야 할 악마도 아니다. 그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진정으로 반성하고 거듭나야 세상을 바꾸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사회와 권력자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미투의 파도 속에서도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질서와 성차별 구조를 지켜내려고 한다. 명백한 사안들은 꼬리 자르기를 통해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려 한다. 조민기 씨의 죽음도 그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즉 피해여성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

 

본질에 어긋나지 않는 진정한 미투만이 가치있다며 빗장을 걸고 있다. 이미 수많은 피해자들이 더 나서지 말라는 커다란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고발할수록 너만 손해고, 너처럼 민감한 여성은 공동체에서 추방될 거라는 경고가 울리고 있다.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미투 고발과 꼬리 자르기의 반복이 아닐 것이다. 미투가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넘어서 사법적, 제도적 변화, 사회규범의 변화, 사회구조적 변혁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모으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지금 필요한 목소리가 무엇인지, 이미 앞서 고발에 나선 서지현, 엄지영, 김지은 씨 등이 다 말해주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당신이 부끄러워 할 것은 하나도 없어,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우리는 당신을 믿고 지지해.’




 

 

한반도 평화와 시리아 평화는 연결돼 있다

 

정말 이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듣고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될까? 무엇보다 미국이 온갖 전략무기들을 한반도 주변에 가져와서 전쟁연습을 하고 선제공격, 참수작전, 코피작전을 운운하면서 우리를 몸서리치게 하는 일이 더 없을 것인가?

 

문정권의 노력과 성과를 인정하며, 이 분위기가 지속, 확대되길 바라지 않을 수 없다. 문정권은 이명박근혜처럼 전쟁이 나든 말든 상관치 않는 집단과는 명백히 달랐다. 물론 그런 집단을 몰아낸 것은 촛불의 공이다. 촛불이 없었다면 트럼프와 박근혜가 협연하며 어떤 장송곡을 틀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3가지 만만찮은 걸림돌이 있었다. 트럼프와 아베라는 호전적 제국주의자들의 방해/ 전쟁도 불사하자는 자한당과 냉전우파들/ 오랜 경험 때문에 미국을 믿지 않게 된 북한. 누구라도 이런 요인들을 잘 풀어가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강력한 압박과 제재가 낳은 결과이고 당근 대신 거대한 채찍”(틸러슨) 덕분이라고? 심지어 문정권마저 트럼프의 리더십을 추겨세우며 이렇게 말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한미군사훈련을 연기한 것이 물꼬를 튼 것이고, 대화와 화해를 추구한 것이 길을 넓혔다.

 

북한의 인내와 전향적 태도가 더해졌다. 올림픽 전후에도 끝없이 트럼프의 도발이 있었지만, 북한은 자리를 박차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대화와 화해를 원하는 건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란 게 다시 증명됐다.

 

앞선 2번의 정상회담에서는 북미대화가 먼저 있었고, 그 속에서 남북회담이 가능했다. 이번엔 그 반대지만, 물론 그럼에도 미국이 허락한 햇볕의 한계가 깨진건 아니다. 왜 트럼프는 허락하고 있는가?

 

당장 군사적 해결책을 선택하긴 어렵고, 일단은 시간을 벌려는 것일 수 있다. 국내정치적 위기와 다가오는 중간선거, 트럼프의 장사꾼 기질도 작용했을 것이다. 모순인 것은 한반도의 온풍과 달리, 세계적으론 냉풍이 분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무역전쟁을 선포했고, ‘1인독재로 향하는 중국은 미국과 경쟁적으로 군비 증강중이다. 러시아는 첨단무기를 공개하며 미국 본토 폭격 동영상을 틀었고, 미국은 더 강력한 MD 구축을 예고했다. 무엇보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미 40만명이 죽은 시리아에서 대학살의 대리전중이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북한, 이란을 핑계삼지 않고 직접 중국, 러시아를 압박하고 위협하려는 것일까? 소련 압박을 위해 중국과 손잡고, 중국 포위를 위해 베트남과 화해한 것처럼 대반전을 택할 것인가?

 

이미 중국과 삐걱거려온 북한은 미국과 타협하며 중국의 입술에서 미국의 친구로 변신할 것인가? 모든 건 불확실하다. 분명한 건 이런 온도차와 모순이 결국은 충돌할 수 있고, 국제적 긴장과 충돌 속에서 한반도만 계속 평화로울 순 없다는 것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도, 20059.19 공동선언도, 20072.13 합의도 꼬투리를 잡고 약속을 깨버린 건 언제나 미국이었다. 북한의 핵개발을 결코 지지할 수 없지만,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을 믿으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역사가 보여주는 진실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찾아온 불안한 기회만 눈치없이 기뻐하긴 어렵다. 중동에서 미국이 계속 죽을 쑤지 않았어도 트럼프가 한반도에서 이벤트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여성,인종 차별에 대한 거센 반감 속에 중간선거 대패가 예정되지 않았어도 이런 카드가 나왔을까?

 

시리아에서 지금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부채감을, 트럼프에 맞서 싸워온 여성, 소수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무슨 뜻인지도 비꼬는 의도도 알겠지만 트럼프의 중간선거 승리를 돕고 노벨평화상을 받게하자는 이야기들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유다. 시리아의 학살자 아사드의 집권기념일에 축전을 보냈다는 북한의 태도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유다. 시리아 민중이, 미국의 여성과 이주민들이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자.

 

한반도에서 다가올 전쟁을 막고싶다면, 시리아에서 지금 벌어지는 전쟁도 함께 끝내야 하고, 트럼프의 정치위기가 우리에게 기회를 줬다면 그 위기를 더욱 심화발전시키기 위해 돕는 게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상처와 치유

 

지난해까지 한겨레 신문에 토욜마다 정희진 선생님의 글이 실렸었다. 매번 다 좋았고 동의가던 건 아니다. 그래도 아주 인상적이던 건 심리상담소 성폭력 사건에 대한 태도였다. 전문가라는 남성들이 내담자인 여성들을 성폭력한 사건이었다.

 

그걸 항상 칼럼 내용 끝에 집어넣었다. 무슨 라깡~’ 이런 단어가 들어간 그 심리상담소들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나는 항상 이렇게 가해자 당신들을 직접 거론하겠다고 선언한 채로.

 

매주 토욜마다 오늘도 그렇게 쓰셨을까하면서 열어봤는데, 거의 4개월 가까이 매주 그렇게 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뒤 재지 않는 그 용기와 끈질긴 태도에 감탄했다. 너무 용기가 부족하고, 이것저것 계산하고 따질 것 많은 소심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만 커졌었다.

 

나같은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싸워줄 그런 용기도 배짱도 힘도 지혜도 없다. 이런 찌질한 자신이 한심하고 짜증나는 건 너무 자연스럽지만, 그 감정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누군가에게 위로는커녕 상처만 주는 경우도 많다.

 

나중에 후회하지만 이미 물은 엎어진 뒤고, 상처받은 마음은 보상해 줄 수도 없다. 그러면 존재의 의미까지 회의가 생긴다. 잘못은 쉽게 고쳐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또다른 스승, 정혜신 선생님의 말을 다시 되새긴다. 싸워서 고통을 해결해주지도 못하면서 상처만 건드리는 짓은 말아야지 다짐하며.

 

누군가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서 대화가 시..된다.... 모르고 하는 말이 도움이 될 리 없다. 알 수 없는 사람이 안다고 확신하며 기어이 던지는 말은 비수일 뿐이다... 필요한 건 내 말이 아니라 그의 말이다. 그래서 그의 고통에 눈을 포개고 그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네 마음이 어떤거니?' '네 고통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거니?'... 대답이 중요하지 않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의 존재를 그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핵이다.”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 교사 파업이 보여 준 것

 

미국의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공립학교 교사들이 어제 2주 가까운 전면파업 끝에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이들 노동자 2만여명의 파업으로 거의 30만 명의 학생들이 어떤 수업도 받지 못했는데, 그것이 낳을 여론의 공격도, 더구나 불법파업이라는 위험도 무릅쓴 파업이었다고 한다.

 

트럼프 당선 이후에 지난해 여성들이 앞장선 대행진과 국제여성파업이 있었고, 이제 노동자들의 파업도 살아나는 게 아닌가 싶은 기대가 든다. 오바마에 대한 기대보다 트럼프에 대한 분노가 오히려 더 투쟁을 고무하고, 트럼프의 젠더, 인종, 계급을 가로지르는 폭주가 불만을 증폭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에 파업한 교사들의 대다수도 여성이었다고 한다.

 

특히, 항상 존경스러운 미국의 사회주의자 조너선 닐의 이런 코멘트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의 노동운동에게도 아주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교사들은 4% 임금 인상을 제안받았지만 전체 공공부문 임금을 5% 인상할 때까지 파업 중단을 거부했고 결국 승리했다. 노조도 없고, 파업도 안한, 교사도 아닌 이들과 연대한 것이다. 그것이 정의이고, 그들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노조는 자기 조합원의 이익만 챙기면 된다고 누가 말한다면 버지니아를 보라고 하자. 이들은 국제적 노동운동에 노조와 파업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기사 등록 2018.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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