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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민주노총/ 양심수/ 정규직화/ 장애 차별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12. 24.

전지윤

 


● 민주노총 지도부 결선 투표와 노동운동의 과제

 

노동시간 단축 등에서 문정부가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 직선제 결선 투표가 진행중이고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이번 선택은 전임 지도부에 대한 평가와 연동되는데, 한상균 지도부는 분투했고 의미있는 성과도 낳았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을 막았고, 정권 퇴진까지 이뤄졌다.

 

공약한 총파업이 성공하면서 민주노총 힘으로만 만들어낸 성과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한상균 지도부는 끊임없이 투쟁과 연대를 위해 노력했고, 그 치열한 노력 끝에 정권의 극심한 탄압도 받았다. 이것이 지난 겨울 촛불의 밑거름이기도 했다.

 

따라서 한상균 지도부를 계승하겠다는 선본에게 더 마음이 가게 된다. 물론 결선에 오른 두 선본 모두 협상만이 아닌 투쟁을 말하고, 비정규미조직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를 주장하는 점에서 일정 부분 공통적이다.

 

후보들의 경력을 봐도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심각한 결격은 발견하기 어렵다. 모두 상층 간부로 있으면서 투쟁의 공로도 크지만 나름의 아쉬움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경쟁이 심하다 해도, 간혹 상대 선본을 겨냥해 너무 과한 표현들은 안타깝기도 했다.

 

지지기반을 봐도 양쪽 모두 단지 상층부만이 아니라 기층 조합원들 속에서 의미있는 지지를 얻었고, 그래서 1차 투표에서 1,2위를 한 것이다. 물론 1번이 강한 조직력에 바탕해 여러 산별을 거쳐서 골고루 좀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

 

오랫동안 민주노총에서 주도권을 쥐어온 반영이면서, 극심한 종북몰이에 맞서 열심히 기층을 파고들어온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다수파적 위치가 일방적인 사업 추진과 결합되면서 패권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도 정책 선전보다 압도적 지지로 선거를 조속히 끝내달라는 식의 주장은 부적절해 보였다. 물론 이견을 존중하며 소통하는데 부족한 모습은 소수파라고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선거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새정부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두 선본 모두 문재인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고 협조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2번이 투쟁이 중심이라는 점을 더 분명히 강조하고 있지만, 1번도 대투쟁’, ‘총파업을 말하고 있다.

 

다만 1번은 문정부가 촛불의 성과를 반영하는 측면을 지적하며 대화와 투쟁의 병행을 말한다면, 2번은 문정부의 한계에 대한 비판을 뚜렷이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1번의 8인회의주장을 사회적 합의주의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1번의 입장이 협상에만 매달리겠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노동조합이 협상 자체를 거부하기는 어렵고, 그것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른 전술의 문제기도 하다. 지금 상황은 개악안을 마련해놓고 협상테이블에 들어오라고 강요하던 1997년이나 2004년과도 다르다. 이런 점 때문에 2번도 노정교섭은 말하고 있다.

 

결국 핵심은 협상의 형태나 방식보다 개악을 막고 개혁을 이루기 위한 핵심 동력인 투쟁과 연대를 어떻게 건설할 것이냐다. 따라서 2번이 투쟁 건설을 더 선명하게 강조하는 것은 큰 장점인데, 그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데 더 주력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 노동운동의 핵심 과제는 민주노조의 울타리 밖에 있는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있다. 비정규직을 위한 정규직의 연대를 강조하며 일부에서는 사회연대전략도 제기해 왔다.

 

1번도 사회연대전략을 말했다. 문제는 사회연대전략이 여러 의미로 해석 가능하고, 주로 정부와 자본은 정규직 양보의미로 해석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2번이 그런 측면을 비판하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더 차별받는 비정규직의 요구를 앞세우며, 정규직의 연대 투쟁 의무를 강조하는 데 있다. 이것은 양보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기아차 11노조,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GM 비정규직 해고 등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대 의무를 회피하는 정규직의 문제는 특정 정파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이번 선거에서 더 커져야 할 것은 노동운동의 중심을 여기에 두고 강한 비판과 과감한 도전, 혁신을 하겠다는 목소리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문정부 시대에 노동운동이 자유주의 정치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적인 정치대안을 건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문제에서는 1번이 적극적이다. 계속돼 온 진보정치의 위기와 분열을 넘어서기 위한 진보대통합을 내세운다.

 

문제는 앙금이 여전한 상황에서 무리하고 성급한 통합 추진이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부추긴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한 2번의 비판과 경고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다만 비판을 넘어서 진보정치의 분열과 위기를 넘어설 대안 제시에는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이번 투표는 3년전 첫 직선제보다 투표율이 낮아졌고, 과반을 가까스로 넘겼다. 초반에 있었던 모바일 시스템 오류, 여전히 취약한 선거관리 능력, 긴장감이 덜해진 정치 상황, 중앙집행부보다 산별이나 대기업노조가 실세라는 분위기, 각자의 현장에 갇혀서 좁아진 시야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근거로 일각에서 나오는 직선제 무용론은 동의하기 어렵다. 깜깜이 선거나 줄세우기 투표가 민주주의나 조합원들의 관심과 의식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고민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공보물 발송, 투표 시간 보장, 공중파 홍보 추진 등 직선제의 의미를 살리기 위한 실력 마련과 제도 정비의 노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조합원들이 생각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투표했다는 판단도 섣부르다. 더 많은 표는 그만큼 기층에서 함께하며 신뢰를 쌓아 온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지도부만이 아니라 민주노총 대의원 직선제와 간부 소환제를 도입하자는 2번의 주장은 돋보이는 점이 있다.

 

그밖에 2번은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하고 투쟁하는 상설공동투쟁체 건설도 약속하고 있으며, 1번은 옳게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투쟁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볼 때 2번 후보가 좀 더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

 

물론 어느 후보가 되든 지도부의 교체나 지도부만의 힘으로 노동운동이 어려움을 헤치며 전진해 나갈 수는 없다.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 폭넓게 연대하며, 가장 차별받는 밑바닥 노동자들의 요구를 앞세우고 사회적 소수자들의 고통에 함께하며, 더욱 민주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건설하고 주체를 확장한다는 노동운동의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  이석기 의원, 양심수, 성탄절 사면

 

이경진 선생님이 이 한겨울에 청와대 앞에서 비닐 한 장을 덮고 노숙농성중인 모습에 정말 가슴이 아프다. 전에 청와대 앞에서 뵙고 이야기 나누면서 너무 좋은 분이란 걸 알 수 있었고, 동생(이석기 의원)에 대한 따듯한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나도 조금은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우일 주교가 아래 설명한 그 광풍 속에서 비겁하게 움츠러들었던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가지고, 이석기 의원과 동료 분들이 겪은 상처와 고통을 짐작해본다.

 

대개 마녀사냥은 죄없을 뿐 아니라, 꺼내기 어려운 진실을 말한 사람에게 벌어진다. 2013년의 한반도는 지금 못지않게 불안했다.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지 모른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른다. 전쟁이 나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트럼프의 불장난 때문에 불안이 떠는 지금 돌아보면, 이런 주장들이 조롱, 비난, 증오, 처벌의 근거가 될 이유는 없었다고 여겨진다. 이런 생각과 활동 등에 대해 따지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더더욱 이 분들의 석방을 위해 애써야 한다. 입이 막혀 갇혀 있는 사람과는 자유롭게 묻고 따져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조중동과 자유한국당이 한 목소리로 결사 반대하고 있는 양심수 석방은 적폐청산의 승패를 가를 시험대가 돼 있다. 여기서 계속 타협하고 후퇴한다면, 문정부는 적폐청산의 물줄기를 스스로 꺾어버린 죄과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양심수전원석방 #이석기에게자유를 #한상균에게자유를

 

“2013829일부터 닷새 동안 각 언론사는 국정원이 흘린 각종 정보를 대서특필하였다.... 불과 며칠 사이에 우리 사회에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을 북한과 직접 내통한 세력으로 단정하고 단죄하는 거센 여론재판이 휘몰아쳤다.... 이석기 사건이 터지기 직전 2013년 전반기는 국정원 직원들의 대선 전 조직적 댓글 개입 문제로 국민적 의혹이 절정에 달하였다... 국정원은 이석기 사건을 발표하며 국면을 완전히 뒤집었다.”(천주교 강우일 주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3015.html)

 



●  기회의 평등과 능력에 따른 공정한 차별이라는 신화

 

얼마전 서울대병원 파업 집회에 연대하러 가서 단시간 노동자까지 남김없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걸 보고 역시 짱이라 생각하며 돌아오다 혜화역에서 이런 포스터를 봤다. ‘무분별한 선심성, 특혜성 정규직화 반대’. 일부 노조의 이름까지 들어있는.

 

사실 요즘 여기저기서 이 가슴아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한 사람부터 정규직이 돼야 한단 것이다. 그것이 기회의 평등이라며. 그게 아니면 불공정’, ‘역차별이고 무임승차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능력과 노력의 결과라면 차별에 찬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기회는 평등한가? 지난 여름에 큰 집회가 끝나고 간 베트남국수집의 청년들이 기억난다. 음식을 날라준 직원의 팔에 화상 자욱이 보였다. 한여름에 뜨거운 국물음식을 나르다 그랬나 싶었다.

 

잘 보니 땀을 뻘뻘흘리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그 식당의 거의 모든 직원 팔에 화상 자욱이 보였다. 아마 최저임금에 제대로 치료도 휴식도 못받고 일했을 그런 청년들은 스펙을 쌓고 시험을 준비하고 그러기 힘들 것이다.

 

그럼 스펙 부족, 성적 부진의 사람들은 계속 비정규직과 알바를 전전해야 할까? 그들이 흘린 땀과 노력은 가치가 낮을까? 그들에겐 안정된 일자리와 높은 임금이 특혜일까?

 

물론, 일부 정규직이나 노조만 탓하긴 어렵다. 그들도 이 경쟁서열 사회를 견디는 피해자들이다. 한정된 자원 내에서 정규직화를 한다며 제로섬게임을 만들어 낸 쪽에게 진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 틀을 거부하고 단결을 만들어낼 책임에선 벗어날 수 없다.

 

기회가 평등하다는 허상뿐 아니라 능력의 논리도 넘어서야 한다. 사실 능력에 따른 보상은 진짜 정의가 아니고, 서로 다른 다양한 능력과 필요, 개성을 가진 이들 사이에 권리의 평등은 좋지만도 않다. 자본주의마저 사회복지나 기본소득에서 능력보다 필요를 앞세우지 않는가.

 

권리라는 것은 본래 똑같은 척도를 적용하는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불평등한 개인들(만일 그들이 불평등하지 않다면 서로 다른 개인이 아닐 것이다)이 똑같은 척도로 측정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들을 똑같은 관점에서 보는 경우, 즉 어떤 특정한 측면에서만 파악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예컨대 여기서는 그들이 단지 노동자로만 간주되고 그 이상의 것은 무시되며, 다른 모든 측면은 일체 도외시되는 것이다. 이 모든 폐단을 피하자면 권리가 동등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해야 할 것이다.”(마르크스)


 



●  영화 <채비>와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

 

주말에 본 영화 <채비>는 근래에 본 영화들 중에서 최고였고 감동이 대단했다. 발달장애인을 연기한 김성균 님의 연기도 뛰어났지만, 어머니 역의 고두심 님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마음을 움직여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젠더적으로 보면 왜 어머니가 그 고생을 다하고 희생돼야하냐고 여겨질 수 있다. 신파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점도 이 영화의 장점을 가릴 수 없고, 흠이나 억지가 아닌 비참한 현실의 반영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영화는 장애인이 시설에 격리되지 않고, 자립해서 우리와 함께 살 수 있다고 응원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것은 엄청나게 힘들고 긴 과정이다.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상처입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들의 실수, 실패, 재도전은 존중받아야 한다. 실수나 실패없이 인생을 걸어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근에 본 장애에 관한 책에도 같은 지적이 있었다. 장애인은 우리가 가장 특징이나 결함들을 더 과장되게 가졌거나 제어가 쉽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질환이나 장애는 그가 가진 여러 측면의 일부일뿐이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채비>에서도 주인공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은 나름의 사정과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고, 그것이 폭발하면 또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입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장애인이 위험한 존재나 부담스러운 짐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장애인을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도 보여 준다. 그래도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인내심있게 대해야 한다. 어차피 누군가를 내 뜻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 순 없다. 우리는 등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등대의 안내에 따를 것인지는 배가 선택할 것이다.

 

내가 본 책에서는 장애인이 당신 자신을 돌보는 게 먼저다. 당신이 사라지면 나를 지켜줄 사람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다. 비행기 사고에서 부모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라는 지침도, 그래야 아이를 위험에서 돌보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예도 나온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그 부담을 모두 떠안아야 하는 현실에선 더욱 맞는 말이다. 하지만 <채비>에서 스스로를 돌보지 않던 어머니는 결국 스러진다. 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그 모든 돌봄과 부담과 고통을 오롯이 다 감당해야 했던가. ‘나는 너 덕분에 평생 심심할 틈도 없었다. 고맙다는 마지막 말이 먹먹하기만 했다.

 


(기사 등록 201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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