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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한반도/ 시리아/ 에이즈/ 도덕/ 정신질환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12. 3.

전지윤



75일만에 다시 미사일을 쏘게 된 이유

 

역시 계속해서 욕먹고 두들겨 맞고 괴롭힘을 당하면서 그냥 참고 넘어갈 사람은 없었다. 지난 75일 동안 계속 조마조마했다. 트럼프가 위험한 도발을 반복할 때마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두달을 넘어가면서는 혹시나하는 기대도 생겼다. 하지만 75일은 삭히는 시간이 아니라 쌓이는 시간이었다는 게 최대고도의 미사일 발사로 드러났다.


75일 동안 사상최강의 유엔 제재, 미 핵폭격기의 최북단 위협 비행, 역대 최대의 무력시위, 9년만에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이 줄줄이 이어져 왔다. 12월초에는 한국군의 김정은 참수부대창설, 전투기 230대가 참가하는 사상최대의 한미연합 공군훈련이 예정돼 있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지금까지 대응하지 않았던 게 놀라운 면이 있다.

 

이래도 문정부는 더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운운할까? 트럼프가 국회에서 이제는 힘의 시대라고 연설할 때 기립박수쳤던 의원들은 부끄러움을 느낄까? “그 박수 소리는 한반도 평화의 종언을 알리는 조종 소리라던 서재정 교수가 옳았다.

 

그래도 문정부가 트럼프가 강요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불참한 것은 평가해줘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치킨게임을 하는 양쪽에 번갈아 힘을 실어주는 것은 평화를 위한 노력보다는 긴장 고조에 이바지하는 줄타기일 것이다.

 

얼마전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의 세계적 패권이 약해지고 있다는 걸 다시 보여줬다. 자본주의 미국이 보호무역을, ‘사회주의중국이 자유무역을 말하는 역설 속에, 아시아판 NATO라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에 대한 포위를 더 확대, 강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트럼프는 북한을 때리면서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를 버릴 수 없고, 중국은 북한을 그냥 안고 갈 수도 버릴 수도 없고, 그러니 김정은은 미국과 담판을 지으려는 시도를 멈출 수 없다. 두 달 넘게 핵,미사일 시험을 중지한 대가가 무엇인지 똑똑히 지켜본 북한의 다음 행동은 무엇일까? 저 미사일에 핵탄두를 싣고 날려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할 것인가?

 

아무도 지적하지 않지만, 북한은 9개 핵보유국 중에서 유일하게 핵무기 포기 의사를 밝힌 적 있는 나라다. 바로 한 달전에도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우리는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를 지지한다. 그러나 미국이 거부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이런 가능성을 살려내려면 트럼프의 불장난부터 막아야 한다. 판문점 귀순 때 대응사격을 했어야 한다는 위험천만한 사람들을 말려야 한다. 북한을 '더러운 기생충의 나라'로 몰아가는 혐오에도 맞서야 한다. 소설가 한강이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지적했듯 모든 전쟁과 학살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간 이하로 인식하는 임계점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문정부는 그럴 의지와 능력을 보여준 적이 있었나?


 

영화 <시리아의 비가>를 보고

 

얼마전 영화 <시리아의 비가: 들리지 않는 노래>를 봤다. 안 그래도 예고편을 보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압둘 와합(Wahab Aga)님이 메시지까지 주셔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6년 넘게 계속된 내전으로 40만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명이 난민이 된 시리아 상황은 오늘날 가장 참혹한 비극이다. 영화는 2011년 아랍의 봄 속에서 시작된 아래로부터 혁명이 어떻게 짓밟히고, 내전으로 뒤틀리고, 강대국들이 개입해 왜곡되고, IS까지 등장하게 됐는지, 시리아 민중이 국경을 넘고, 지중해에 빠지고, 유럽으로 쫓겨가게 됐는지 잘 알려준다.

 

영화 초반에 시리아 민중들이 꽃을 들고 시위하던 모습을 보면 지난 겨울 촛불이 떠오른다. 저들도 우리처럼 세상을 바꾸길 꿈꾸었고, 누구도 다치지 않길 바랬을텐데... 이어지는 장면들은 도중에 극장을 나오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토크콘서트에서 와합님은 영화에서 보여 준 참상은 현실의 극히 일부일뿐이라고 했다. 또 영화는 러시아의 폭격과 만행들을 잘 보여주는데, 미국은 시리아에서 그보다 더한 짓들을 했다고 고발했다. 종교와 민족을 떠나서 함께 살던 시리아 민중을 갈가리 찢어놓고 파괴한 게 바로 강대국들임을 고발했다. 그리고 IS 축출 이후에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시리아의 참극은 지속, 확대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국제사회가 시리아를 재건해야한다는 말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와합님은 한국이 지난 몇 년간 시리아 난민 신청을 거의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난민과 이주민 문제에서 한국은 꼴등이라는 뼈아픈 지적도 했다. 이런 나라에 살면서 그래도 수십만명을 난민으로 받아들인 유럽국가들을 비판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뒤풀이에서도 와합님에게 많은 생생하고 유익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쿠르드족 문제, 사우디-이란의 최근 갈등 등. 편하게 앉아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결코 말할 수 없지만, 더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시리아의 진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에이즈 예방을 누가 가로막고 있는가

 

121청소년 에이즈 예방 캠페인 디셈버퍼스트행사장에 일찍 도착해보니 청소년 합창공연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노래를 마치고 청소년들은 다같이 저희들을 에이즈로부터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 행사를 주최한 국회의원들과 한국가족보건협회 등은 결코 감사받을 자격이 없다. 개회사에서는 에이즈와 동성애의 연관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동성애 독재 시대라고 말하더라.


이들이 앞에서 나눠준 책자들을 읽어보니 더 기가 막혔다. 세계적으로 에이즈가 감소하는데 한국만 증가하고 있다며 동성애를 금지해야 한다는 거였다. 차마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억지로 우기지는 못하고 주된 감염경로이니 예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었다. 모든 바이러스는 당연히 생명체간 교류를 통해 전파된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아니라 특정 인간과 인간관계를 혐오하고 차단하자니 정말 위험한 비약이 아닐 수 없다.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지키자는 글도 실려있었는데, 거기선 학생들에게 욕망을 분출하고 성관계를 잘하도록 가르치자는 거냐며 분노하고 있었다. 결국 자연스러운 인간적 감정을 죄악시하고 억누르자는 것이다. 에이즈의 원인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게 예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제 그 자리의 청소년 합창단 속에도 분명 있었을 성소수자의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여기서 왜 세계적으로 감소하는데 한국에서만 증가하고 있는지 답이 나온다. 무지와 편견이 에이즈 예방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이즈의 날이라면서 감염인 한명 부르지 않고 이런 행사를 하던 저들은 우리의 거센 항의 끝에 고작 1분 발언을 허용했다. 저들에게 귀족환자, 세금도둑취급을 받던 윤가브리엘님은 당당하게 진짜 진실을 말했다. ‘에이즈를 예방하는 지름길은 에이즈에 취약한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자신들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방법은 간단하다. 콘돔을 쓰라고 교육하면 된다.’(https://youtu.be/eKhEY7JRM3s)

 

어제의 그 혐오의 시선과 표정도, 그 속에서도 존엄과 용기를 잃지 않던 분들의 모습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회변혁과 도덕

 

세미나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와 도덕>이란 오래된 낡은 책을 보다가 브레히트의 시도 다시 보게 됐다. “악을 근절하기 위해서라면/ 마침내 세계를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그대가 아무리 착하다 해도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오물 속에 빠져 백정이라도 껴안으라

몇 년 전 같으면 이런 시를 보면서 고개만 끄덕이며 멋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칸트적, 종교적, 채식주의적, 퀘이커적 지껄임에 별 관심이 없다....문제는 단지 피와 강철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 이런 트로츠키의 글을 보면서도 꺼림직함보다는 그 단호함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원대한 대의와 확고한 신념이 모든 것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겪고 지켜 본 지금은 더 많이 고민하고 돌아보게 된다. 1917년 이후 신생 러시아 국가에서 강제식량 징발에 앞장섰던 한 볼셰비키의 회고에 더 눈길이 간다.

 

고귀한 대의의 이름 아래 행해진 우리의 잔인한 행위를 스스로 보게 되었을 때, 참여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당황하는 것, 의혹이나 이설에 현혹되어 무한한 신념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Lev Kopelev)

 

과연 폭력과 악이 없는 사회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폭력과 진실에 대한 외면이 불가피한 것일까? ‘어린 아이를 위협하는 미친개를 총으로 쏘는 것은 미덕’(트로츠키)일까? 누군가가 미친개이거나 반혁명 세력, 기회주의라는 단정은 쉽게 내려질 수 있을까?

 

내전을 승리로 이끈 적군사령관 트로츠키의 위대함을 말하면서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놓쳤던 것 아닐까? 제동을 걸 수 없게 된 광차가 5명을 죽이는 것을 막기위해 1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정의이고 불가피한 것이라고 쉽고 단순하게 답할 문제일까?

 

그 자신이 적극적인 볼셰비키였고 초기에는 적색테러도 기꺼이 옹호했던 빅토르 세르주는 나중에 게페우의 감옥에서 모진 경험을 겪고 나서 입장을 변화시켰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옹호, 인간에 대한 존중... 이것들 없이는 사회주의도 없다. 이것들 없이는 모든 것이 거짓이고, 파산하며, 타락한다. 인간이라면 그가 누구든 - 가장 비열한 자이든, ‘계급의 적이든, 부르주아지의 아들이든 손자든 -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은 다 다르고, 쉽게 상처받는다. 다른 누군가가 왜 그렇게 느끼고 반응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 뉴스타파에서 한국에 일하러 온 스리랑카 청년의 이야기를 봤다. 그 청년은 양식장에서 일하면서 꿈을 키우고 있었다.

 

양식장 주인은 그 청년이 일을 잘 배워서 익숙해지기만 하면 금방 돈을 벌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청년은 장어손질을 할 때마다 괴로워하고 있었다. 불교신자로서 살생에 대한 죄책감을 못견뎌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확한 정치와 이론, 탁월한 전략과 전술? 이런 것들은 다 회색이라고 느껴진다. 정말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왜 고통스러워하고 그렇게 행동하는지, 들으려고 하고, 공감과 이해를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도우려는 것이다. 누군가를 불신하고 미워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결함이 있고 더구나 사회구조가 그것을 부추기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에 가봤던 반올림 10주년 문화제에서 황상기 아버님은 반올림 활동가들을 처음만났던 10년전을 이런 식으로 돌아봤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공감하거나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달랐고 그때 나는 돌아가신 아버님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이것이 10년의 역사를 만들어낸 출발이고 동력이었던 것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노회찬 의원의 속시원하고 웃음을 주는 풍자와 비유를 좋아한다. 김어준 뉴스공장도 가끔 흥미있고 유익하게 듣는다. 심재철의 문재인 내란죄 고발 발언도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회찬 의원이 최근 뉴스공장에 나와서 심재철에 대해 정신질환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런 발상이 왜 나오는지 의심된다”,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참 유감이다.

 

충격적이고 잔인한 범죄만 생기면 정신질환으로 몰던 사람들보단 나을지 몰라도, 악의는 없었을지 몰라도, 상처를 주긴 마찬가지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은 이토록 광범하고 뿌리깊다. 뭔가 비정상이고, 우리에게서 격리되거나 정상으로 바로잡아야할 문제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은 나와 동떨어진 이상한 사람들만 겪는 문제도 아니고, 모든 문제의 원인도 아니다.

 

정신장애나 질환이 있다고 타인이나 사회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신질환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벌이는 악행과 범죄가 훨씬 많고 일반적이다. 심재철에 대해서도 나쁜 언행과 사람에 대한 존중은 구분돼야 한다.

 

더구나 정신질환을 탓하는 경우는 대부분,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눈감으며 상대방의 정신을 문제삼거나, 문제가 비롯한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못보게 하는 것 같다.

 

풍자와 비유는 그것에 상처받는 소수자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걸 잘못을 통해 배웠다. 더욱 많은 문제에서 민감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문재인마저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보수우파와 그에 대한 대처는 더 깊이있는 분석을 필요로 할 것이다.

 


트랜스젠더와 <진화의 무지개>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생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지 고민되는 사람들은 <진화의 무지개>가 도움이 될 것이다. 생물학 교수이며 트랜스젠더인 조안 러프가든이 쓴 이 책은 진화의 역사를 볼 때, 성별이분법은 생물학적으로도 신화라는 점을 밝혀낸다.

 

생물학적 다양성에 대한 풍부한 사례와 근거로 가득하며, 동물과 인간의 성적 다양성과 변이가 생존, 번식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책 표지에는 아예 동성애와 트랜스젠더가 진화의 원동력이었다고 돼 있다.

 

책을 보다보면 잔다르크가 10대의 몸으로 전쟁터를 누빈 용맹한 트랜스젠더였고, 그 정체성 때문에 마녀사냥을 당하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고 화형당했다는 일부의 주장도 접하게 된다. 러프가든은 마지막에 트랜스젠더에 관한 6가지 의제를 말하는데 그중에 앞에 4가지만 봐도 너무나 절실한 것들이다.

 

1. 우리는 인간 다양성의 정상적인 한 부분으로 존중받기를 원한다.

2. 우리는 여과되지 않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를 요구한다. ,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를 요구한다.

3. 우리는 정중하고 품위있는 대접을 받기를 원한다. 여성임을 보이려고 치마를 들어 올리거나, 남성임을 보이려고 바지를 내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몸이 아니라 사람으로 존중받기를 원한다.

4. 우리는 트랜스젠더 살해가 중단되기를 원한다.

 

사회는 언제나 인간의 무지개를 사회가 가진 몇 가지 범주로 좁히려 한다. 사회과학자들은 이와 반대되는 관점을 보인다. 그들은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똑같지만 사회가 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다양성이 생긴다고 여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생물학은 몇 가지 정도가 아니라 무한한 변이에 대해 알려준다. 이 무한한 생물학적 변이는 언제나 사회적 범주를 빠져나와서 경계를 넘어 흩어지며 가장자리를 불분명하게 한다.”

 


 (기사 등록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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