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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과 보고

하늘로 출근한 사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11. 30.

박용석(전국건설노동조합 수도권북부지역본부 조직부장)

 

[이 글이 처음 발표되고 나서 1128일에는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총파업을 했지만, 국회에서는 자유한국당 등의 반대로 건설근로자법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광고탑에 올랐던 두 노동자는 18일만에 땅으로 내려왔다. 인권연대의 웹진 '사람소리'에 처음 실렸던 글(http://hrights.or.kr/chung/?mod=document&uid=10744)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와 인권연대에 감사드린다.]



 


2014년 여름이 끝나갈 즈음, 태어나 25톤 덤프트럭을 처음 탔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있는 현장에 몰래 들어가 이 차에서 저 차로 옮겨 타며 이야기를 들었다. 새내기 노동조합 상근자가 조합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직접 보고 들으며 배우라는 배려였다. 1억 원이 넘는 비싼 건설기계장비지만, 움푹 파인 현장을 다닐 때는 차체가 심하게 요동쳤다.

 

이 길을 60km가 넘게 달리라고 해, 현장에선 40km를 못 넘도록 하는 게 규정인데 그렇게 일하면 바로 아웃이야. 일하다 보면 허리가 다 나가. 저것 봐, 빨리 안 간다고 뒤에서 하이빔 쏴 대는 거. 이런 거 바꿔야 돼

 

여기는 원래 신호수가 있어야 되는데, 다 인건비잖아. 불법인지 알면서도 안 쓰는 거야. 저기 저 전봇대랑 전선엔 위험 표지판이 있어야 된다고. 봐봐 없잖아. 얼마 전에 저기에 덤프가 걸려 전봇대가 넘어갔거든, 그런데 사업자라고 우리 보고 다 책임지라는 거야

 

내가 사실 차를 두 대 굴려, 노동조합 기조에는 안 맞지. 그런데 어떻게 해. 차 할부금 갚고 보험금 내고, 타이어 한두 짝 갈고 나면 다달이 적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캐피탈 할부로 한 대를 더 사서 기사 고용해 태우는데, 그렇게 하고도 월급쟁이 한 달 월급이 안 나올 때가 많아

 

지난주에 내리 비 왔잖아. 비 오면 우린 죽어나는 거야. 하루하루 할부금은 나가는데, 비와서 일 못하면 돈도 없어. 현장 오기 전에 새벽에 탕뛰기라도 한 번 더 나갈 수밖에 없는 거야. 가면 새벽 4시에 도착했는데도 차들이 수 십대 줄서 있어. 나도 오늘은 허탕 쳤어

 

“4대강 때 운전대 잡고 죽은 사람 얘기 들어봤지. 갑자기 일이 생기니까 무리하게 할부 부어서 두 대 세 대 차만 늘려놓고, 죽어라 해봤자 돈이 나한테 스쳐가기만 하는 거야. 그런데 일단 눈앞에 돈은 왔다 갔다 하잖아. 그러니 끊지를 못해. 빚만 잔뜩 쌓이는데. 빚이 쌓이니까 더 벌어야 되고. 그렇게 12시간, 13시간, 15시간 계속 일만하다, 운전대 잡고 잠깐 눈 감았는데 평생 못 일어나는 거지. 남 얘기가 아니야

 

노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 하지만 직접 목격한 현장은 막막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아니, 현장에는 문제만 가득했다. 기본적인 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무법천지 건설현장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해결을 하긴 할 수 있을지, 답이 있기는 할지 알 수 없었다. 거대한 산 같은 흙더미와, 그보다 더 거대한 문제들 앞에 나는 나약하고 초라했다.

 

이제 뭘 해야 될지 감이 좀 오냐?” 조금은 껄렁한 말투가 툭하고 날아왔었다. 그때 내가 무어라 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한심하게 우물쭈물했을 게다. 한때 노동조합 사무처장까지 했던 조합원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수더분하다 못해 헐렁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시간이 지나 다시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됐다.

 

생각해보니 참 얄미운 사람이다. 본부에서 쏘는 회식이니 수석부위원장님께서 오셔서 좋은 말씀 한마디 해주고 소주 한잔 하고 가라했건만 기어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노동자대회 전야제가 한창이던 1111일 밤 11, 국회 앞 광고탑 위로 출근해버렸다. 전야제 노숙농성장에서 화들짝 깨어 그 광고탑을 지키러 가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뻔히 알면서.

 

반갑지 않은 함박눈이 내린다. 얄미운 그 사람에게 가져갈 김장 김치를 버무리는 손이 바빠진다. 내일 저녁에는 이곳저곳 십시일반한 사람들이 광고탑 위에 있는 그에게, 그리고 그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밥을 지어주겠다고 광고탑 아래로 모이기로 했다. 노래 부르는 사람은 노래로, 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시 쓰는 사람은 시로, 밥 짓는 사람은 밥으로 함께 하겠다 한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현장에 정말 답이 있을지. 전 조합원이 똘똘 뭉치고, 조합원이 아니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잠시나마 현장을 멈추는 진짜 총파업이 될 수 있을지. 그래서 하늘로 출근한 사람들을 구해 올 수 있을지를. 모르겠지만 얄미운 그가 가르쳐 준대로 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라고 했던


당장 내일 먹일 김장 김치는 소중히 통에 담고, 그와 건설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졸고일지라도 한 자라도 더 적어내고, 총파업 그날엔 한명이라도 더 붙들고 가야 한다. 이영철 아저씨 안전하게 하늘 아래로 퇴근시키고 소주 한잔 따라주러, 1128일 국회로 가야 한다.


(기사 등록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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