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둘러싼 공론화가 진행 중이다. 시민참여단 478명이 약 3주 후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이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보다 좋은 면도 있을 듯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고 토론이 활발히 이뤄진 끝에 결정이 내려진다면 보다 민주적이고 강한 동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아쉬움이 더 크다. 우선 논의 구도 자체가 후퇴했다. 본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신규 원전 전면중단’,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2060년까지 탈핵’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취임 후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 가동을 기정사실화했고, 탈핵 시기를 2079년으로 더 늦췄다. 결국 문재인 정부 집권기간 동안 핵발전소는 더 늘어나게 됐다. 토론은 신고리 5,6호기에 갇혔다.
약속대로 신고리 5,6호기를 백지화하면서 완전한 탈핵을 언제 어떻게 이룰 것인지 토론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둘째 공정성 문제다. 정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방치하고 있다. 한수원과 현대건설, 두산중공업 등 대기업으로 구성된 찬핵 측이 엄청난 자본을 앞세워 홍보자료와 기사들을 쏟아내는 반면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탈핵 측은 예산이 부족해 공개모금까지 했다. 또 야당들이 찬핵 주장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중립을 지킨다며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해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왜 탈핵인가?
그러나 탈핵은 세계적 추세고 그 필요성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세계 원전 개수는 1989년경에 최고치인 440여 개에 이른 후 전혀 늘어나지 않았고, 선진국이 줄이는 동안 개도국에서 늘어나는 사양산업의 길을 걷고 있다. 2017년판 ‘세계 핵산업 현황 보고서’는 세계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갈수록 줄어왔고, 올해엔 단 1건 뿐이라고 밝혔다.
1979년 미국 쓰리마일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원전 안전성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많은 나라들이 핵발전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했다.
대형 핵사고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고, 더 많은 시간과 비용과 고통을 요구하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는 사고 발생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반경 30km까지 출입금지 지역이다.
체르노빌 인근 벨라루스에서는 사고 5년 후인 1991년부터 여성의 갑상선 암 환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 지역에서는 오염이 지속되는 약 300년간 환자 수가 증가할 것이다. 일본에서도 피폭 지역에 거주 중인 여아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벌써 70%가량 상승했다고 WHO는 밝혔다.
과학자들은 피폭과 암 발생률 사이에 역치(문턱값)가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리 적은 양의 방사능도 노출량에 비례해 암을 발생시킨다고 결론 내렸다. 피폭은 암 뿐 아니라 유전병, 심장병 등 수많은 질병의 확률도 높인다.
후쿠시마 사고로 일본은 국토의 70%가 오염됐다. 사고 수습에 최소 40년이 걸릴 예정이며 215조원 이상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원전 사고로 대피한 사람 중 건강악화로 사망한 사람은 1368명에 이르고 현재 피난자의 20%는 자살을 생각한다고 조사됐다.
이런 돌이킬 수 없는 원전 사고는 원전 개수에 비례해 발생해왔다. 세계 원전 순위 1,2,4위였던 미국, 소련, 일본에서 순서대로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은 현재 세계 6위인데, 만약 다음 사고가 일어난다면 0순위 국가 중 하나일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신고리 5,6호기가 지어질 고리 원전 근방에 무려 382만명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경 30km 이내 인구수가 세계 1위이고, 후쿠시마 원전(약 17만명)보다 22배 많다. 또 고리원전단지에는 지금도 원전이 8기나 있다. 만약 신고리 5,6호기까지 허가 된다면 부지 내 원전 밀집도도 세계 1위가 된다.
고리, 월성원전은 60여개의 활성단층 위에 서 있다.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지진이 최대 규모 8.3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원전은 규모 6.5~7.0 수준까지만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 “우리의 기준은 단 하나 안전”이라는 한수원의 말이 무색하게 원전의 역사는 부품비리, 각종 사고와 은폐로 점철돼 왔다. 1978년 원전 첫 가동 이후 국내에서 발생한 사고는 노동자 피폭 사망을 비롯해 공식기록만 720건에 이른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사고 이전에 작은 사고가 반복해 나타난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예컨대 2012년엔 고리1호기가 12분간 전력상실 됐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충격을 줬고, 최근에도 한빛원전 4호기의 예민한 증기발생기에 오랫동안 쇠망치와 이물질이 있었단 사실이 보도됐다. 이 모든 정보는 한수원이 독점하고 견제 받지 않아 쉽게 은폐돼왔다. 따라서 한국에서 언제든 갑자기 대형 원전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백번 양보해 안전한 원전이 존재한다고 해도 사용 후 핵폐기물 처리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사용 후 핵연료인 ‘고준위 핵폐기물’은 10만년~100만년 간 테러 공격과 지하수 침입 등으로부터 안전하게 보관돼야 한다.
인류에게는 아직 그런 보관 장소가 없고 핀란드가 최초로 건설하고 있을 뿐이다. 핀란드에서는 언어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모여 수만 년 후 인류에게 “이곳이 고준위핵폐기물을 저장한 곳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표시를 어떻게 할지 논의 중이라고 한다.
설령 고준위 핵폐기장을 건설할 수 있다 하더라도 10만년 이상 지속적으로 예산이 들 것이고 안전 문제를 걱정해야 할 텐데, 겨우 50년을 쓸 발전소를 위해 이런 쓰레기를 남기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사용 후 핵연료를 임시로 저장하고 있는 저장수조는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월성원전은 2019년, 한빛원전과 고리원전은 2024년에 포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핵발전소를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부른다. ‘지어진 화장실은 없고 오물은 커다란 요강에 임시로 저장중인데 요강이 꽉 찬 상황’이라는 것이다.
태양과 바람의 나라로
그런데 찬핵 세력은 탈핵하면 당장 ‘전력대란’과 ‘전기요금 폭등’이 일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전력은 남아돈다. 폭염에 냉방수요가 급증한 올 7월에도 발전 설비예비율은 34%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은 원전을 앞지르고 있다. 최근 미국과 영국 정부는 2022년과 2025년에 각각 태양광과 풍력이 원전보다 단가가 낮아진다는 공식 자료를 발표했다.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되면 2022년부터 60년간 가동되는데, 가동되는 순간부터 재생가능에너지보다 비싼 에너지 생산방식이 된다.
풍력발전 단가가 7년간 66% 하락했고, 태양광도 7년간 85%하락했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단가가 낮아지는 ‘그리드 패리티’에 미국과 유럽 다수 국가가 도달했다. 기후변화의 대안도 있는 것이다.
반면 원전단가는 갈수록 비싸지고 있다. 모든 기술은 발전하면서 가격이 낮아지기 마련인데 원전은 거꾸로 대형 사고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면서 안전설비를 조금이라도 강화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신규 설비는 2015년 기준 재생에너지가 62%로 석탄화력 16%와 원자력 6%를 압도했다. 세계 에너지 투자도 2015년 재생에너지 2620억달러로 화석연료 1300억달러와 원자력 400억달러를 크게 앞섰다.
이미 세계 에너지원 비중은 재생에너지가 24.5%(2016년)로 원전 10.7%(2015년)를 앞선다. 한국만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이 1%대로 OECD에서 단연 꼴찌 수준이다 보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로 100% 전력 공급도 미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덴마크는 2015년에 하루 동안에 풍력만으로 전체 전력 수요의 140%를 공급했고, 포르투갈은 2016년 4일 연속 재생에너지로 전체 전력의 100%를 공급했다고 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일자리도 늘린다. 독일은 탈핵 과정에서 3만개 핵발전 일자리 대신 30만개 재생에너지 일자리를 만들었다.
탈핵은 밀양 주민들의 꿈인 765kV 송전탑도 뽑아낼 수 있다. 신고리 4,5,6호기가 백지화되고, 2025년에 고리 2,3,4호기가 수명이 종료되면 가능하다. 원전과 화력발전 같은 중앙집중적 발전방식은 발전소 지역 주민, 고압 송전선 통과지역 주민의 희생을 전제로 해왔다.
태양광 에너지를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독일보다도 한국의 일사량은 30%가량 좋다고 한다.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 발전 비율을 20%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를 태양광만으로 확충한다고 해도 국토의 0.55%(549km2)만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지붕위, 주차장, 고속도로 주변, 저수지 수면, 바다 등을 활용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탈핵의 조건은 충분한데 여전히 충분한 여론이 형성되지 못하는 커다란 이유는 핵 산업에서 이윤을 얻는 세력들의 저항 때문이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오랜 기간 언론과 거래하며 원전을 찬양하는 협찬기사를 생산해왔고, 교과서까지 수정하며 신화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돈의 출처는 바로 우리가 낸 전기요금이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전기요금의 약 3.7%에 해당하는 돈이 대부분 원전 홍보비용에 쓰여 왔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간 전력기금 중 원전 홍보비용에 쓰인 돈은 824억으로 신재생에너지의 300배에 달했다.
친원전 ‘전문가’들이 한수원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는 사실 또한 비밀이 아니다. 지난 6월 탈핵 반대 성명에 참여한 230명의 원자력계 대학교수 중 94명도 한수원 등으로부터 978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현대건설, 대우건설, 두산중공업 등 핵발전소 건설에 참여하는 기업들 역시 탈핵 반대 세력의 주축이다. 이 기업들은 자신들이 건설한 핵발전소에 사고가 나도 전혀 책임 의무조차 없다.
이렇듯 이윤에 눈이 멀어 죽음의 원전을 늘리려는 세력들에 맞서 승리하려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이뤄내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 모두의 힘이 절실하다. 탈핵을 바라는 사람들과 환경단체들은 소책자와 자료 배포, 서명운동, 캠페인 등으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관심과 지지·연대로 ‘핵보다 해, 원전보다 안전’을 향한 결정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기사 등록 201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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