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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성소수자 운동/ 종북몰이/ 류샤오보/ 가해와 고통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7. 19.

전지윤

 

성소수자 활동가들에게 듣고 배우는 게 우선이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기업이나 외국 대사관과 협력하는 것을 주요 전략으로 삼으며 갈수록 온건화, 심지어 우경화하고 있다는 비판들을 봤다. 계급이란 근본 모순을 놓치면서 체제에 포섭되고 친기업, 친제국주의적 운동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보자면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어느 새 변질돼버린 건가 하는 놀라움과 착각이 들 정도다.

 

물론 서구에서 성소수자 운동은 부러울 정도의 성과와 함께, 주류화가 낳는 위험성도 보여줘 왔다. 대기업들은 퀴어퍼레이드를 핑크머니를 위한 광고, 소비의 장으로 만들려하고, 권력자들은 소수자 인권을 내세워 치부를 가리고 악행을 정당화하는 핑크워싱에 열심이다.

 

소수자 인권을 내세워 중동을 폭격하는 미국이 대표적이다. 백인 중산층들이 주도권을 쥔 성소수자 운동은 이런 흐름들을 잘 견제하지 못했고, 일부는 주류정당이나 정권에 편입되면서 건강성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이 과연 이와 비슷한 상황인가? 이 나라에선 국가기구나 주류정당들에 성소수자가 발탁, 영입되는 일은 아직 꿈이다. 성소수자 권리를 내세워 마케팅을 하고 핑크산업을 건설하려는 재벌들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대선때 홍준표와 문재인의 동성애 반대문답이 상징하듯, 그런 일이 벌어지기에 한국의 우파들은 너무 반동적이고, 자유주의세력은 용기가 부족하다. ‘동성애 권리를 이유로 대북압박이 정당화되기는커녕, ‘종북게이가 우파의 공격용어다.

 

배부른 중산층이라 보기 힘든, 성소수자 운동을 주도하는 가난한 활동가들은, 정체성을 내세워 벽을 세우기보다 평택, 밀양, 성주 등에서 무지개 깃발을 휘날렸다. 동성결혼은커녕 기본적 권리도 없는데 군대에서는 색출까지 당하니 연대가 더욱 절실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리 부분적 현상이라도 기업 후원금과 대사관 부스들에 아쉬움을 가질 수 있다. 권력과 자본에서 철저한 독립을 강조해 온 좌파조직들로서는 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중조직이나 시민단체, 연합체들에 그 잣대를 그대로 들이댄다면 너무 과하다.

 

그런 곳들은 정치조직과 달리 다양하고 모순된 정치경향과 생각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극좌파가 주도한 전쟁저지연합이나 유럽사회포럼이 기업 후원을 받고 집권당 일부 의원, 지방정부의 도움을 얻는 일이 있었다. 더구나 그것은 운동이 그만큼 대중적으로 커졌다는 성과이기도 하다.

 

저항을 체제 내로 포섭하려는 시도기도 하지만, 결과는 정해진 게 아니다. 러시아 1905년 혁명 이후 짜르가 두마와 사회보험을 도입한 것은 분명 포섭 시도였지만, 볼셰비키는 거기에 들어가서 그것을 저항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이런 사정을 잘 알던 사람들 속에서 갑자기 친기업’, ‘친제국주의라며 딱지를 붙이며, ‘우경화된 운동에서 분리도 각오하자는 주장들이 나오면 어리둥절해지고, 다른 맥락이 있는지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좌파조직의 멤버도 자신이 일하는 시민단체에서는 그런 한계를 인정하는 것을 봐 왔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가 이번 퀴퍼에 온 건 운동의 성과인가, 주류화인가? 서방 대사관들이 와서 소수자 권리를 말하는 건 운동에 득일까, 실일까? 양자택일식 결론보다 그 모순을 분석하며, 무엇보다 성소수자 투사들의 경험과 고민을 듣고 배우는 게 우선일 것 같다.

 

아직 여기는 저항이 제도화되며 스톤월 정신이 희미해진 곳이 아니며, 한국의 스톤월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스톤월 봉기도 처음부터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를 내걸고 시작된 게 아니었다. 경찰에 뇌물 바치는 마피아가 운영하는 술집이 저항의 무대였고, 맘대로 술먹고 춤출 기회도 빼앗는 경찰에 대한 분노가 방아쇠였다.

 

2017 퀴퍼가 열린 시청광장에는, 멸시받고 억눌리던 성정체성을 자유롭게 드러내며 즐기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그들은 성적 지향이 아니라 계급이 근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나? 무엇이 근본일지는 중첩된 모순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내지 않을까?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을 당한 것은 피해자 탓이 아니다

 

디퍼’(Deepr)에서 독자의 요청에 따라 ‘NL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 나빠졌는지를 다룬다고 할 때 약간 기대를 했다. ‘밀레니얼 세대를 내세운 새롭고 젊은 언론이고, 트럼프 등에 대한 기사도 좋게 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 박근혜는 사라졌고, 우리는 촛불을 지나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어서 나온 기사(http://deepr.kr/224/)를 보고 씁쓸함이 너무 컸다. 기사의 요지인즉 ‘NL은 목적을 위해 폭력도 불사하는 집단이고 소수자 감수성도 없으며, 친북노선으로 획일화되고 조직의 관료화까지 겹치면서 이렇게 됐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자초한 일이라 했다. 강제해산돼 수십 명이 구속돼 있고 주요 활동가는 무려 9년을 감옥가게 된 게 다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물론 단편적 사실들은 담고 있었다. 실제 자주파 동지들의 역사를 돌아보면, 누구나 그렇듯 크고 작은 오류들이 있었고 동의하기 힘든 입장들도 보인다. 기사에 나온 몇몇 비극들은, 비록 권위주의 정부의 혹독한 탄압과 집요한 프락치 공작 속에 생긴 일이지만 지금도 우리가 같이 뼈아프게 돌아볼 일이다.

 

하지만 위의 기사에는 아주 중요한 몇 가지가 빠져 있다. 먼저 그 동지들이 민주주의와 반제국주의 등에 기여한 측면들이 제대로 나와있지 않다. 국가보안법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제국주의에 맞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가장 앞장서 싸운 게 자주파라는 건 누구든 부정하기 어렵다.

 

또 세월이 낳은 변화는 빠져있고 편견만 있다. 자주파 동지들이 호모포비아라고? 엊그제 자주파 동지들이 주도한 양심수문화제에서 무대에 오른 건 게이코러스 지보이스였고, 탄압받는 성소수자 군인도 대표적 양심수로 소개됐다.

 

무엇보다 핵심은 ‘NL이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기까지국가 탄압과 종북몰이가 한 구실이 통째로 빠졌다는 것이다. 김치찌게를 만들면서 김치를 빼놓은 것처럼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하긴 박근혜 시대에 많은 개혁언론들마저 종북몰이에 침묵, 외면, 심지어 동조까지 해 온 것을 돌아보면, 그런 흐름에 갇힌 신생언론만 탓하기도 어렵다. 그 점에선 열성 문지지자들이 몰리는 팟캐스트들을 평가해줘야 한다. 일부 지식인이나 개혁언론들은 좀 무시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진보당 강제 해산 때 특집방송을 했던 것은 정봉주 팟캐였다. 지난 대선 때도 김선동 후보를 초대해 말할 기회를 제공한 것은 김용민 팟캐가 거의 유일했다. 개혁언론만 보면 출마한지도 모를 정도였지만.

 

지난해 이정희 전대표를 특별 출연시켰었던 김어준의 파파이스는 지난주도 김재연 전의원을 초대해 양심수문화제를 광고해줬다. 김재연 전의원은 거듭 고마워했다. ‘종북주홍글씨가 새겨져, 손잡으면 같이 왕따당할까 싶은 '마녀'에게 마이크를 내주는 팟캐도, 거기에 몰리는 젊은 사람들도 무시할 일이 아니다.

 

물론 자주파든 누구든 비판은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선 종북낙인은 같이 벗겨내고 창살 밖으로 나오게해야 마음의 짐이나 부담없이 비판하며 토론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우파들은 저 쪽에서 또 이석기 석방 요구가 나왔다며 난리치고 있다.

 

이럴 때 팟캐의 허점만 보지말고 그 패기를 배워서 여기저기서 그게 뭐가 문제냐고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신생언론들도 보고 배울 것이다. 8.15가 다가올수록 양심수 대사면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더 크게 울려퍼져야 한다.

 

 

<옥자>가 보여 준 동물과 인간의 연대

 

<옥자>는 동물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영화에는 인간과 교감하고 기본적 감정도 느끼는 슈퍼돼지가 나온다. 물론 과장과 상상이 결합돼 있지만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동물도 기쁨, 고통, 공포, 외로움을 안다고 느낀다.

 

영화에서 거대기업 미란다는 동물에게서 가치, 이윤를 뽑아내 자본축적을 한다. 실제로 동물의 노동과 생산을 빼놓고는 근대적 산업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영화는 암컷인 옥자가 당하는 폭력을 통해 동물에 대한 종차별을 성차별과도 교차시킨다. 그래서 종차별과 육식 등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온 많은 것을 의심하게 된다.

 

지능과 이성을 기준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게 인종차별, 여성차별의 논리와 연결돼 있지 않은가? 어떤 것을 자연화하는 것이야말로 차별, 착취를 유지시키는 핵심적 무기가 아니었나? 수렵채취 시절이 압도적이었던 잡식동물인 인간이 육식에 집착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일이었는가?

 

동물해방전선을 보자면, 물론 기본으로 그들을 공감, 응원했다. 하지만 그들은 옥자를 덫으로 몰아넣었고 미자를 속였다. 그건 단지 개인의 잘못도 통역의 문제도 아니다. 미자가 그런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리란 점은 누가봐도 명백했다.

 

나중에 잘못이 드러나자 동물해방전선의 리더는 개인에게 책임을 넘기고, 그를 짓밟지만 잘못된 계획은 그대로다. 내가 속한 조직이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는 걸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 넘어가는 일, 문제가 생기면 희생양을 만들고 조직은 지켜지지만 잘못은 고쳐지지 않는 일, 대의를 내세우며 작은 폭력과 불의를 쌓아가는 일, 너무 익숙하다.

 

그래서 동물해방전선의 새로운 투쟁으로 끝나는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별적 거래에 나서는 미란다그룹의 행동도 설득력이 없다. 노동자가 굴뚝에 올라가 1년넘게 있어도 꿈적도 않는 자본가는 단지 거래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그런 양보가 자신뿐 아니라 타기업들에게도 미칠 연쇄작용이 문제가 된다.

 

더 설득력없는 건 그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온 옥자와 미자, 아기돼지가 평온하게 살아가는 장면이다. 이것이 촛불혁명 이후에 나온 영화이고, 옥자와 미자가 영화 전반부에 커다란 공감능력과 투지를 보여줬기에 더 그렇다. 멀어지는 옥자 일행를 향해 슬픈울음을 보내던 돼지들이 그렇게 쉽게 잊힐 리가.

 

축 늘어져 머리에 총이 겨눠진 장면을 포함해 영화 후반부의 옥자는 너무 힘없고 수동적이다. 그 점에서 재작년에 나온 <화이트 갓>이 더 좋았다. 어린 소녀와 개의 연대라는 점은 비슷했지만, 이 영화는 헝가리 도심을 휩쓰는 성난 개들의 집단질주로 마무리됐다.

 

영화 내내 이주민, 소수자들처럼 온갖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던 개들의 반란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적에게 모든 수단을 다해 저항하는 인간의 행동은 정당방위가 된다. 그렇다면 동물의 행동도 그렇지 않을까.

 


류샤오보와 중국의 민주주의

 

중국의 민주화운동가였던 류샤오보가 오랜 구금과 투옥 끝에 암에 걸렸고 최근 세상을 떠났다. 천안문 항쟁에 동참했던 그는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 다당제, 사법독립, 집회 결사의 자유, 노동자 파업권 등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모진 탄압을 받았다.

 

물론 서방 강대국들과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민중의 피땀을 싼값에 뽑아먹는데 열심이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할때만 류사오보를 걱정했다. 그런 위선에 대해서는 류샤오보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류샤오보가 시장과 사유재산, 서방식 민주주의를 지지한 것도 그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할 수 없다. 특정 사상과 노선을 정답으로 놓고 이견을 억누르고 탄압하는 것은, 어느 것이든 진정으로 해방된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류샤오보의 부인 류샤도 가택연금 속에 크나큰 고통을 겪어왔다. 류샤오보가 류샤에게 보낸 편지는 한번 보고 나서 계속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고 평생 서로 그리워하게 한 체제나 집단은 용서받을 수 없다.

 

당신의 사랑은 감옥의 벽을 넘어 내 피부의 모든 곳을 어루만지고 모든 세포를 따뜻하게 하고 내가 평안을 유지하게 하고 감옥에 있는 순간순간을 의미있게 만듭니다.”

 


권오헌 선생님의 쾌유를 기원하며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선생님이 폐암 4기 진단을 받으셨다고 한다. 10년도 전에 감옥있을 때 권오헌이란 이름으로 영치금이 들어와, 비슷한 이름의 친구가 넣어 준거라 착각한 적이 있다. 나와서 물어보니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알고보니 양심수 후원회에서 모든 양심수에게 영치금을 넣어준 거였다.

 

권오헌 선생님은 항상 꿋꿋하고 또 부지런하게 그렇게 국가보안법에 맞서서, 양심수 석방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평생 싸워오셨다. 그러면서 몸고생, 마음고생이 너무 심하셔서 이런 병을 얻게 되셨을 것이다. 민가협의 여성 투사분들이 온갖 잔병들로 고생하고 계시듯이. 얼마전 임기란 민가협 전 의장님도 많이 아프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토록 당당하던 분이 말이다.


권오헌 선생님은 최근에도 <노동자의 책> 대책회의에 오셔서 ‘87년에도 6월항쟁 직후에 가장 먼저 중요하게 양심수 석방 요구가 제기됐고, 그때 명단 짜느라 정신없었다. 그런데 이번 촛불은 그런 게 부족하다. 우리 운동진영이 힘을 모아서 이런 점을 챙겨야 하는데...’하면서 안타까워 하셨다.

 

그 아픈 몸으로 근래 양심수 석방 문화제에서도 선생님은 무대에 오르셨다. 부디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시고 그 맑고 선한 얼굴을 계속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동자연대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가해를 중단해야

 

정말 이럴수는 없다. 지난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 토론회에서 노동자연대 분들이 판매한 책자가 피해자에 대한 새롭고 가혹한 수준의 공격을 담고 있어서 많은 비판과 항의를 불러일으켰기에, 적어도 약간은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그렇기는커녕 그 책자에 담긴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한 부정을 문제삼은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를 비난하더니, 이제는 그 소책자를 아예 정식도서로 출판해서 서점에 배포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래도 설마 정식도서이니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사생활 부분은 빼고 새롭게 편집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부분은 그대로고 오히려 더 자세해졌다. 이제 피해자는 자신이 정신장애가 있고, 자살 시도를 했고, 연애관계가 어떠했다는 글들이 온라인에 올려져 있는 것으로 모자라, 연애결별에 대한 배신감으로 남성을 성폭력범으로 몬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책이 전국의 서점에 깔려서 사람들이 구경하고 사가는 것을 목격해야 한다.


노동자연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거기에는 직장내 성희롱으로 고통받은 여성을 방어하는 기사가 있었다. 그 기사에는 피해자가 오히려 괴롭힘과 불이익을 겪고,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결국 이런 일들을 본 여성들은 피해를 호소하길 포기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왜 똑같은 일이 바로 자신들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를까.

 

마침 성폭력 피해를 겪은 대학생이 2차가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봤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겪은 비난은 이런 것이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다.’, ‘자기가 남자에게 접근하고 반응이 없으니 뒤집어 씌운다.’ 어쩌면 이렇게 어디나 다 비슷한가.

 

제발, 정말 제발, 그분들이 사회변혁에 대한 신념만큼이나, 피해자의 고통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고 이 비극적 오류를 바로잡아주면 좋겠다. 피해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글들을 다 내리고, 책들을 다 수거하고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분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걱정하는 주변의 분들도 그 길을 여는 데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

 


고통과 상처에 힘들어하는 동지에게

 

지난 주말 지역의 세월호 금요실천에서 서명해준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었는데 왜 아직도 빠른 진척이 없는거냐며 안타까워 했다. 대통령과 정권만 바뀌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공감도 나눴다. 한 여성분은 집에 있는 아들, 딸이라며 3명의 서명을 줄줄이 해주셨다. 다 끝나고 짐을 옮기는데 그분이 다시 오더니 냉수, 치킨, 만두를 한가득 담은 봉지를 내미셨다.

 

이제 더 서명해줄 사람은 없을 거라는, 아직 서명을 안한 사람들은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항상 깨진다. 박근혜와 박사모, 일베 등이 그토록 잔인하게 괴롭히고 조롱하고 공격해도 포기않고 싸운 가족들이 만든 힘이다.

 

다음날 퀴어퍼레이드에서도 여전히 난리치고 행진을 가로막는 혐오세력들을 봤다. 어쩜 그렇게 성소수자의 가슴에 비수로 꽂힐 상처를 후벼팔 구호와 팻말을 만들었나 싶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싸워 온 성소수자들이 200여명의 행진을 16년만에 8만 명의 행진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너무나 가혹한 공격을 당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힘들어하는, 과연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런 고통이 멈추기는 할까, 차라리 이 곳을 떠나면 자유롭게 되지 않을까 묻는 동지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럴 때 누가 가장 홀가분해질지 생각해 보자고. 포기하지 말고 같이 진실을 말하며 정의를 요구하자고. 여전한 사람들보다, 당신의 끈질긴 투쟁이 바꿔낸 세상과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자고. 당신은 저들이 말하듯이 그런 약하고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당신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려서 괴롭히려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더욱 더 건강하고 씩씩하게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가출팸과 트랜스젠더의 연대를 보여 준 영화 <꿈의 제인>에서 제인은 우리의 인생은 끝없는 불행이 계속되다가 가끔 행복이 찾아오는 거라고 했다. 그 행복한 순간을 모두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함께 하려면 누구도 우리 곁을 떠나선 안 된다.

  


(기사 등록 2017.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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