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세상읽기 - 영국총선 평가/ 강경화와 김상조, 김이수/ 공감과 사과

전지윤


 

영국에서 더 젊고 대중적이고 급진적인 좌파가 성장하고 있다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사실상 패배했다. 아직 최종 결과는 아니지만 의석이 줄어서 과반이 안 돼 정부 구성도 어려워 보인다. 반면 노동당 의석은 37석 이상 늘 것 같다. 1석이던 극우익 영국독립당은 그것마저 잃고 사라진 것 같다.

 

지난 4월에, 3년이나 앞당긴 조기총선을 시작한 보수당은 지금 멘붕이다. 원래 브렉시트로 우파의 기세가 올라간 기회를 이용할 속셈이었다. 보수당은 더욱 신자유주의와 인종주의를 결합하며, 브렉시트를 주도한 영국독립당의 우파적 기반까지 빼앗아오고 있었다.

 

반면 코빈은 위기였다. 블레어의 후예들인 우파 의원단이 신노동당 노선으로 돌아가자며 코빈의 자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노동당의 지지율은 보수당에 20% 뒤지고 독립당보다 낮을 정도였다. 테러와 이슬람포비아 강화의 악순환도 우파에겐 득이었다.

 

이 기회에 조기총선으로 노동당을 찌그러트리고 압도적 과반의석으로 브렉시트발 긴축과 구조조정을 강행하자는 게 보수당의 계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빈이 보수당뿐 아니라 노동당 우파 의원들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한 길을 가면서 역전이 시작됐다.

 

반신자유주의, 반인종주의, 반전의 일관된 노선으로 특권적 소수 : 짓밟힌 다수의 전선을 만들어냈다. 좌우가 엇갈리는 브렉시트 찬반 전선을 무너뜨렸다. 핵심은 공공기관 재국유화, 무상의료, 등록금 폐지, 생활임금, 비정규직 철폐 등을 담은 총선공약집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해>였다. 여기서 코빈은 국영투자은행을 통해서 시장을 통제하겠다는 민중을 위한 양적완화계획까지 제시했다.

 

나아가 코빈은 제국주의와 전쟁이 테러를 낳았다며 이슬람포비아와 안보논리에 맞서서 보수당의 전통적 강점도 뒤흔들었다. 종북몰이와 안보논리에 맞서는 우리에게도 매우 큰 교훈을 던지는 지점이다.

 

그러면서 노동당은 청년과 무당층에서 급속히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복지국가에 대한 향수를 가진 노동자들의 결집도 강해졌다. 신노동당 시절에 스코틀랜드국민당으로 빠져나갔던 지지층도 돌아왔다.

 

한 여론조사에서 18~24세중 보수당 지지는 15%인 반면, 노동당 지지는 73%까지 나왔다. 코빈이 붉은 공약집을 흔들면서 희망이냐 공포냐선택하자고 선동하는 유세에는 수만 명이 몰려서 대규모 시위처럼 보였다.

 

유럽의 일부에서 새롭고 젊고 더 급진적인 좌파가 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프랑스에서 새좌파는 기존 사회당 밖에서 등장하고 있다. 반면에 영국은 노동당 밖에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자던 목소리는 틀렸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해진 길은 없지만 어디서든 낡은 관성을 벗어나, 더 대중적이면서도 급진적인 방향으로 좌파가 힘을 모으고 있다. 한국에서도 촛불 이후 새정부의 등장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갈 좌파의 과제에 대해, 코빈의 성공은 많은 고민거리와 영감을 던지고 있다.

 

 

강경화 후보 지지 기자회견중인 '나눔의 집' 할머니들 


 

누가 왜 강경화, 김상조를 떨쳐내려 하는가?

 

문재인 정부의 초기 인사 문제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강경화, 김상조가 떠올랐다. 이들은 기층에서 사회운동에만 투신해 온 사람들이 아니며 기성사회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며 어느 정도 흠도 생긴 사람들이다.

 

나름 개혁 진보적 입장도 있지만, 급진좌파적 잣대에서 평가하자면 부족할 수밖에 없고 비판할 부분도 많다. 따라서 그런 입장에서는 나서서 지지하거나 옹호할 이유가 별로 크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지금 조중동과 재벌, 기득권 관료들이 총공세에 나서면서 이들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는 데 있다. 그야말로 최경환, 홍문종같은 똥묻은 *'들이 나서서 ''를 따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백억 부동산 투기를 위해 위장전입했던 자들이 학교배정을 위한 위장전입을 탓하고, 수십억 비리와 특혜에 연루된 자들이 계약직 영어 교사 채용 특혜를 따지고 있다.

 

가장 불공정하고 부패한 세력이 상대적으로 덜 불공정하고 부패한 사람을 흔들어서 떨어트리는 것이 공정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자아내는 것이다. 워낙 언론들이 앞다퉈 단독이라며 계속 쏟아낸 통에 두 사람은 이미 뭔가 엄청나고 많은 흠이 있는 후보로 대중적으로 프레이밍이 됐다. 대부분은 막상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보면 그 잘못과 흠들이 아주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기에 애매한 점이 있는 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부패우파와 기득권 세력이 별로 싫지 않던 인물들(이낙연, 서훈 등)은 통과시켜 준 대신 두 사람은 떨어내자는 빅딜설까지 야당 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특히 강경화 흔들기는 외교라는 이 냉전국가의 핵심 중대 요직을 외무고시 출신에 북미대사 등을 거친 주류 남성 엘리트가 아닌 비주류에 페미니스트라는 여성에게 결코 내줄 수 없다는 가부장적 사회의 반격이란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강경화가 아닌 그런 남성 후보였다면 이 정도의 의혹과 폭로들이 쏟아졌을지, 그리고 그것이 그토록 결정적 결격 사유가 됐을지 상상해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즉 지금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얼마나 충분히 진보적이고 흠이 없는 사람들이냐가 아니라 맥락과 구도다.

 

어디로부터 누구의 무엇을 위한 공격인가를 보자. 그럴 때 한편에는 재벌, 조중동, 자유당이 있고 한편에는 시민사회진영과 여성운동가들이 있다. 한편에는 여자는 군사안보를 다루기 힘드니 홍석현같은 남자가 적임이란 마초들이 있고 한편에는 강경화에 기대하는 위안부할머니들이 있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중립이거나 심지어 두 사람을 까는 데 집중하는 건 안 맞다고 본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부패우파 과두세력이 노동자당 호세프를 탄핵할 때를 돌아보자. 호세프는 실제로 부패했고 신자유주의에 타협했지만, 브라질 극좌파는 의회쿠데타에 맞서는 것을 우선했다. 아무리 좌파적 근거로 두 사람을 반대해도 지금 상황의 주된 성격이 바뀌진 않는다. 한편에서 민중탄핵을 말하는 좌파도 작게나마 있었다는 게 2004년 노무현 탄핵의 우파적 본질을 바꾸지 않듯이 말이다.

 

따라서 지금은 상층인사 누구도 자유롭지 않는 부패의 고리를 폭로하는 데 강조점을 두거나, 어떤 흠과 타협적 노선도 거부하는 좌파적 선명함을 과시하는 게 핵심인 것 같지가 않다. 그런 일반적 선전과 구체적 폭로는 항상 필요하지만, 더 효과적 사례와 연결시킬 필요가 있고, 그것을 원칙으로 입장을 정하자면 좌파가 자본주의 정부의 인사 중에서 반대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겐 좌파적 원칙이 있어야지만, 동시에 구체적 상황에서 전술도 필요하다. 두 사람의 흠을 덮어주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자는 말이 아니다. 두 사람의 흠은 그것대로 꼼꼼이 따질 수 있고 억지로 변명해줄 필요도 없다.

 

더구나 법인세 인상에 대한 김상조의 모호한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고, 인권을 빌미로 제국주의적 압박이 정당화돼 왔다는 점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강경화의 입장도 위험해 보인다. 두 사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완벽한 적임자인양 추켜세우기보다는 이러한 견해 차이와 정치적 비판은 숨기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진보적 사회변화는 뛰어나고 똑똑한 장관들의 선물일 수 없고 우리가 얼마나 연대하고 투쟁하느냐에 달렸다. 그런데 부패우파의 주도로 두 사람이 밀려나고 기득권층이 받아들일만한 인물들로 바뀌는 게 그런 연대와 투쟁 건설을 위한 더 좋은 운동장을 마련해줄까? 그런 닳고닳은 인물들이 우리가 맞서 싸우기 더 좋은 적수일까?

 

결국, 부패우파가 두 사람에게 표적을 맞추는 작전상 이유가 있듯이, 진보좌파에게도 작전상의 판단과 집중점이 필요하다. 두 사람을 공격하는데 힘을 보태기 보다는 노조파괴 공범 박형철, 공안검사 출신 이인걸, 여혐도서 저자 탁현민 등 새정부의 오른쪽으로 삐져나온 가지를 치는 데 집중하는 게 더 낫다고 보인다. 즉 지금 주적이 누구인지 봐야 한다.

 

예컨대 김동연 경제부총리에 대한 청문회장은 화기애애 그 자체였다. 김동연은 전형적인 관피아에 경제정책도 이명박근혜의 연장이었는데, 한 자유당 의원은 심지어 울먹이며 김동연 지지 발언을 했다. 기득권 주류 세력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선 별 거부감이 없고 흠을 파헤칠 필요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정말 뜨거운 이슈가 돼야 하고, 그 흠들이 낱낱이 벗겨져야 할 [대부분 남성] 후보들은 강경화와 김상조 뒤에서 가려져 있다. 진보좌파에게는 이런 더 우파적이고 흠많은 후보들을 뜨거운 감자로 만들고 여론의 주목과 반대 움직임을 만들어낼 분별력과 능력, 단결력이 필요하다.


 

김이수와 진보당 해산, 이석기 의원

 

내가 기억하는 자유당은 수차례의 위장전입과 수십건의 부동산 거래로 백억이 넘는 재산을 만들어낸 자도 자격이 있다고 옹호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집권한 시기에 그런 흠이 있던 남성들이 장관은 물론 국무총리까지 됐다. 강경화에 대한 이들의 질타에 헛웃음만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어제 그들이 졸다가 일어나서 강경화에게 호통치고 비아냥거리는 장면은 보기 괴로웠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에서 가장 구토가 올라오던 압권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온 자유당 소속에 유서대필 사건 조작 주범이며 강기훈님을 고문한 당사자가 ‘5.18 정신과 어긋난다며 김이수를 문제삼는 장면이었다.

 

문재인이 김이수를 헌재소장으로 임명한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특히 임명의 근거로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입장 등을 든 것은 인권변호사 출신답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이런 태도가 확장되면 좋겠다.

 

김이수가 군형법 926에 위헌 의견을 낸 것도 문재인이 배웠으면 좋겠다. 김이수의 군법무관 시절 5.18판결은 물론 유감이지만 진솔하게 반성, 사과했고 5.18단체들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적임자인 김이수는 헌재소장이 돼야 하고, 나아가 통합진보당 해산은 무효가 돼야 한다.

 

그래도 한 가지 걸리는 건 있다. 김이수의 소수의견에서도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처벌은 문제없다고 쓰여있다. 다만 그것이 진보당 전체의 문제는 아니란 논리다. 김이수는 보안법도 7조의 일부만 문제삼고 법 자체는 지지한다.

 

이것은 문재인이나 정의당이 진보당 해산은 반대했지만, 이석기 의원에 대한 마녀사냥은 방조했던 것을 돌아보게 한다. 당시 민주당은 물론 정의당조차 국회에서 당론으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찬성했다. 그러자 내란음모 조작 사건은 날개를 달았고, 그것이 진보당 해산을 가능케했다.

 

누군가에게 종북낙인이 찍히고 광풍이 몰아치면 휩쓸려서 같이 돌을 던지게 되는 데, 그것이 무엇을 삼킬지는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노동자의 책> 재판에서도 검찰은 고리키 소설 등은 증거에서 다 제외하면서도 북한 관련 도서를 더 앞세우고 있다.

 

결국 냉전의 땅에서 진보당 해산이 잘못이라는 대통령, 헌재소장이 등장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종북몰이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9년형을 선고받은 이석기 의원도 4년째 아직 감옥에 있다. 더 많은 걸 바로잡고 돌려놓을 때다.


 

함께 반성하고 사과하자고 다시 호소한다

 

노동자연대 동지들에게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도 그렇다. 이번 촛불뿐 아니라 그동안과 앞으로도 곳곳의 여러 투쟁에서 이 동지들이 보여 준 기여와 헌신은 결코 깎아내려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모든 문제에서 항상 옳을 수는 없다. 노동자연대가 연관된 성폭력 사건이 시작된지 벌써 5년이 흘렀고 피해자의 고통은 여전하다. 그런데도 최근에만 내가 알기로 벌써 4차례나 넘게 공개적 기사, 성명, 소책자를 통해서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을 무너뜨리는 공격을 다시 시작한 것은 정말 납득하기가 어렵다.

 

피해자가 애인에게 결별을 통보받고 복수심에 눈이 멀어 성폭력 피해를 들고나온 상습적 거짓말쟁이라고 모독하고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인신공격과 사생활 침해를 해놓고 이런 감정적, 심리적 혼란에 연민을 느낍니다라고 하는 것도 놀랍다. 계속 상처에 소금을뿌리면서 당신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게다가 피해자에게 정신장애 혐의까지 씌우면서 그 지적은 피해자 주변 사람들이 먼저 한 것이다’라고 정당화하고 있다. 즉 피해자의 주변 사람들이 사적으로 하는 말들을 주어 들었다는 것을 자신들의 기관지에 실어 대중적으로 공개해서 기정사실화해 놓고 이건 우리가 처음 한 말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사건에서 민주노총의 진상조사로 밝혀진 사실마저 법원 판결을 근거로 부정하며 피해자를 공격하고 있다. 민주노총 차원의 공식 조사보다도 성폭력 가해자가 고액 전관예우 변호사를 써서 받아낸 판결이 더 믿을 만 하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5년이나 곪아온 상처를 보듬지는 않고 들쑤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누구도 피해자에게 그 고통을 그냥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특히 나같이 공동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지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고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진심으로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정말 간절하게 다시 호소하고 싶다. “본 사건이 올바르게 해결되어 동지적 신뢰를 회복하고 인간의 해방을 향해 함께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고 했던 목소리들을 같이 기억하자고.

 

관련기사)

 

더 늦기 전에 함께 반성하며 이 고통을 끝냅시다 http://www.anotherworld.kr/117

 

고통을 공감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http://www.anotherworld.kr/175


 

(기사 등록 20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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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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