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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과 보고

국가의 허락없인 해방을 꿈꿀 자유도 없는 나라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6. 24.

전지윤

 



622<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에 대한 마지막 재판에서 검찰의 논리는 이 나라에서 오로지 국가가 허락하는사상과 양심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건전한 비판은 허용되지만 혁명적 주장은 안 된다는 잣대에 따라 학살, 부패, 전쟁을 낳는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서 참된 자유세상으로 나가자는 이진영 대표의 주장은 범죄 증거가 됐다. 혁명적 수단을 암시한다는 이유로 의회주의에 대한 비판도 문제가 됐다.

 

북한, 소련에 대한 비판마저 문제라 했다. 그것은 범죄자가 다른 범죄 수법을 비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거였다. 이진영 대표가 ‘PD, NL 계열을 가리지 않고 소통하며 유대 관계를 맺어 온 것도 문제가 됐다. ‘연계활동이 위험성을 더욱 키운다는 얘기다.

 

결국 국가가 허락하는 좌파의 모습은 이런거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되 개혁적 관점에 머물고, 북한을 비판하되 왼쪽에서 비판하지 않으며, 정파를 넘어선 연대와 협력을 거부하면서 의회나 선거에만 중심에 두고 활동하는 건전좌파.

 

그리고 검사는 이진영 대표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진영이 반포하는 이적표현물은 마약과 같아서 방치하면 심각한 사회혼란이 벌어지고 북한을 이롭게 할 것이다. 안보와 체제 수호에는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할 수 없다.’

 

난데없이 이진영 대표는 마약사범이 됐고 <노동자의 책> 회원인 나도 마약중독자가 됐다. 하지만 이 마약에 누구보다 더 빠져든 건 검찰같다. 가장 많은 책을 가장 꼼꼼이 보고, 이진영 대표의 사적이메일, 심지어 동창회 밴드에 올린 글까지 뒤져봤으니 말이다.

 

그러고도 국정원, 검찰이 이곳에 들어와 현미경 보듯이 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담긴 메일까지 증거로 제시하는 검사를 보며 중독 증상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인단은 이진영 대표의 사상과 신념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 백혈병과 메탄올 실명 사건 등을 보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를 가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가 마르크스도 그 사상으로 재판받지 않았던 영국인가, 레닌의 사상을 탄압했던 짜르 체제인가라고 물었다.

 

이진영 대표는 용기있고 당당하게 왜 자신이 오래된 사회과학 도서들을 보존하려 했는지, 여전히 혁명의 꿈을 버리지 않았는지 최후진술했다.

 

“8~90년대는 논쟁의 시기였고, 치열한 갑론을박의 시대였는데,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토론이 자주 있었고, 젊음과 청춘을 불태워서라도, 혁명을 하겠다고 나서던 시대였습니다... 어떤 사상이나 신념의 옳고 그름은 치열한 논쟁 과정을 통하여 판가름난다고 생각합니다.”

 

이진영 대표의 꿈은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것이고, 절대 가둬져선 안 된다. 국가가 허락하는 꿈만 꿀 수 있는 세상과 국가보안법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만약 꿈을 꾸는 사람이 자신의 꿈을 진지하게 믿는다면, 그가 주의깊게 삶을 관찰하고 그것을 꿈속의 성과 비교한다면,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야심적으로 작업한다면, 꿈과 현실의 틈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고, 꿈과 현실의 관련은 모든 것이 좋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운동에는 이러한 종류의 꿈꾸기가 너무나 부족하다.”(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사상, 양심, 학문의 자유를 지켜내야 합니다

  

[아래는 이진영 대표의 최후진술서이다. 재판부의 구형은 720일 오후 230분 남부지방법원 406호 법정에서 있을 것이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비통함을 느끼며 서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21세기 첨단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다는 현 정부의 말과 달리, 20세기에나 통했을 반공시대의 유물 금서가 지금까지도 하나 다름없이 맹위를 떨치고 있음을 검찰의 공소장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로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고전의 영역에 속한다는 스테디셀러 사회과학도서를 작업해왔는데, 그것은 오판이 되게 생겼습니다.

 

나는 왜 <노동자의 책> 활동을 하게 되었나?

 

대한민국의 20세기 1980~1990년대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엿습니다. 1980518일 광주무장봉기를 계기로 대한민국에서 시대와 역사 그리고 정의를 생각하는 자라면 그 누구나 저 광주무장봉기를 계승하여 거짓과 착취, 탄압으로 점철된 전후한 군사파쇼 정권체제를 송두리째 뽑아내고 그 자리에 노동자민중의 정부, 해방의 정치를 실현시켜 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8~90년대는 논쟁의 시기였고, 치열한 갑론을박의 시대였는데,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토론이 자주 있었고, 젊음과 청춘을 불태워서라도, 두 글자 혁명을 하겠다고 나서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할 것 없이 탄압에 저항하고 착취에 분노했으며 분연히 떨쳐나서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 흐름은 세계해방사상의 원천인 마르크스레닌주의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왜냐면 20세기 자본주의 한국에 대한 가장 철저한 분석틀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일 수밖에 없었고, 또한 자본주의의 가장 극악무도한 형태인 군사파시즘 정권을 혁명으로 타도하는 것은 레닌주의였기 때문입니다. 본인도 직접 80년대를 호흡해오면서 이러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해 당시 대다수 운동자들이 빨려들 듯이 빨려 들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당시의 공식교과서들의 반공주의가 얼마나 헛된 망상이었음을 깨닫고서 자연스러워진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해방운동, 혁명운동의 전통에 입각한 혁명서적들이야말로 보관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8~90년대 시대사상에 공감하는 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노동자의 책>의 편집방향에 동감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8~90년대 인천, 구로, 마창, 울산, 부산 등지의 공단에서 노동자투쟁을 몸소 취재하면서 겪었던 파업투쟁 등의 경험의 소산이야말로 <노동자의 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노동자의 책>은 왜 혁명서 위주로 편집이 되었는가

 

혁명이란 정치사회문화적으로 근본적인 혁신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419혁명은 미완의 혁명이었고,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서 짓이겨졌습니다. 혁명에 준할만한 610 민중항쟁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정치사회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민중의 열망이 꽃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주무장봉기는 비록 잠시 동안이었지만 해방구를 이뤄낸 혁명이었습니다. 계엄군의 학살만행에 분노하여 일어선 시민무장군은 도청을 접수하고 해방구를 선도하였으며,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정부를 모색하려는 마음으로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광주 시내를 사수하였습니다. 만약 광주봉기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당연히 광주를 넘어 전국이 혁명의 물결로 뒤덮였을 것이고, 대한민국은 민중의 국가, 노동자국가라는 실체에 매우 근접하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혁명은 민중의 요구에 철저히 응하면 응할수록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쿠데타로 일컬어질 것이구요. 왜 박정희 스스로가 516을 쿠데타라고 하지 않고 군사혁명이라고 했는지를 생각해봅시다. 이 말은 곧 박정희도 혁명이라고 불리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때도 우익인사들은 516을 혁명이라고 하지 쿠데타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쿠데타는 다수를 짓밟으면서 소수의 이익만을 달성하려는 것이고, 혁명이란 절대 다수의 행복과 안녕을 위하여 기존의 소주지배체제를 뒤엎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혁명이야말로 인류사회에 있어서 자랑스러운 역사적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지금 혁명이 필요하다

 

초고층빌딩과 아파트가 줄줄이 서 있고 대형마트에는 과일, 고기 등 음식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나라 대한민국, 야경은 휘황찬란하고 거의 대부분 차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는 첨단과학의 나라 대학민국에 왜 혁명이 필요하냐구요?

 

물론 그 이전의 대한민국에 비하여 현재의 대한민국은 풍요로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풍요로움, 즉 생산력의 발달과 그 풍요의 수익배분, 즉 생산관계의 상호관계에는 미증유의 모순을 낳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을 말합니다.

 

OECD 내에서 자살률 1, 노동시간 1, 출산율은 꼴찌, 산업재해지수 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게 대한민국입니다. 절대적 빈곤은 줄었다 해도 상대적 빈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지금은 무려 1% 미만의 인구가 전세계부의 99%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사실은 혁명을 꿈꾸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가장 명명백백한 사실이며 이유라 하겠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지난 해 말 거대한 촛불항쟁을 통해서도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진정 촛불항쟁의 목표가 최순실-박근혜의 구속과 퇴진,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음은 앞으로 조금씩 나타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헌법재판소 소장으로 인선된 김이수 재판관의 경우를 보면, 518 광중항쟁 시민군에게 사형언도를 내건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은 518 정신을 헌법정신에 넣어야 한다고 말하며 개헌을 하겠다 합니다. 이는 권력 앞에서는 제아무리 사법부도 독립이 불가능함을 김이수 재판관의 입에서 나온 그 시대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며, 국가의 실체를 다시 한 번 입증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혁명은 필요하다

 

저는 위와 같이 생각합니다. 그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여기서는 그러한 생각의 자유가 사상의 시장이라는 영역에서의 결정을 통해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이 자연스럽게 채택되는 것이 왜 죄가 되느냐를 집중적으로 조명해보겠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상이나 신념의 옳고 그름은 치열한 논쟁 과정을 통하여 판가름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광주무장봉기 시민군에 대하여 사형을 언도한 김이수 재판관이 지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를 스스로 가장 부끄러웠던 일이라고 술회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세계관, 사상, 이념은 민중 다수의 지지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상의 자유입니다. 사상의 자유가 바로 설 때, 현재 대한민국의 지배적 사상인 자본주의 사상도 갑론을박의 과정을 통해 계속 지배적 사상으로 남을지, 아니면 민주적 퇴장선언을 당하던지 할 것 아니겠습니가?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떠합니까? 대한민국에 태어나자마자 모든 국민은 자본주의 사상을 유일 사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단죄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것 같으면 지배적 사상과는 다른 대척점에 있는 사상도 전국민이 보는 가운데에서 토론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아니할 때, 자유민주주의는 붕괴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노동자의 책> 사건은 바로 그 사상의 자유 시장을 형성해가고 있는 과정에서 수사를 당하였는바, 이는 실로 자유민주주의가 사상의 자유를 또 다시 억누르냐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지켜내자!

 

아시다시피 제가 <노동자의 책>에 올린 것들은 대부분,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국립서울대학교도서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검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중에는 배심원들의 사상적 오염이 우려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상의 자류를 겉으로는 논하면서도 그 사상의 자유를 논하는 대상에서 일반대중은 제외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혁명에 관한 서적들은 읽으면 오염된다하니 이는 사상의 자유라는 시장에서 지배사상에 반대되는 사상에 대해서는 전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상의 자유는 이제 이 땅에서도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토론과정을 거친 것이 지배사상으로 확립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실 속에서 이미 묵인되고 있는 것과 비교되어 오직 사법의 영역에서는 여태껏 구태의연한 태도가 비춰져서 이 사건에 이름을 개탄스럽게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제가 이메일을 통하여 혁명을 주장한다는 것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명백히 위험한 것이고 파괴적인 행위란 말입니까? 제 혁명 주장이 그 주장을 보는 이로 하여금 혁명으로 일어서게 함으로써 건물 폭파, 인명 살상 등이 일어났나요?

 

부디 검찰의 허황되고 억지스런 논리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사 등록 2017.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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