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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성과연봉제 폐기 이후 - 직무급이 대안일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6. 15.

성지훈(공무원노조 조합원)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가 시행했던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의 폐기를 공식화했다. 이것은 새 정부 등장 이후 촛불혁명과 노동자 투쟁의 성과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성과연봉제 폐기 이후의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이 중에서 직무급제에 대해 비판적 관점으로 살펴보는 글이다.]


지난 1월 콜센터에서 일하던 한 현장실습생이 자살을 했다. 그에겐 하루에 채워야할 콜 수 할당량이 있었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콜 수에 따라 점수가 깎이기 때문에 시간외근로를 해서라도 콜 수를 채워야 했다.

 

물론 시간외수당은 한 푼도 지급되지 않았다. 회사는 10등급으로 나누어진 성과평가 등급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책정하였다. 그는 그렇게 일하고도 저성과자로 분류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성과급이라는 용어만 보면 성과만큼 받는다는 의미로 오해할 수도 있다. 실제로는 콜센터의 사례처럼 사측이 높은 성과목표를 설정하면 열심히 일해도 저성과자가 될 수 있다. 성과평가는 대개 경쟁을 유발하기 위한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저성과자로 분류된다.

 

성과평가는 노동자간 협업이 아닌 경쟁을 강화시켜 조직의 성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성과평가에 따라 개별 노동자들의 임금이 결정된다면 임금 등에 대한 협상을 주임무로 하는 노동조합의 힘은 약화된다.

 

이 때문에 작년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성과연봉제 반대운동이 뜨거웠다. 그 결과 최근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폐기를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대안으로 직무급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

 

연공급이 주로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책정되는 것과는 달리 직무급은 직무의 난이도, 책임성 등을 반영하여 임금이 결정된다. 현실에서는 직무급제에 성과급제를 혼합하여 성과직무급 방식으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직무급 도입 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박근혜 정부도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확산시키려는 목적으로 연공급에 대한 유력한 대안으로 직무급을 기업들에게 제시했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직무급이 다른 점이 있다면 노조 동의 없는 독단적 추진인지 아닌지일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은 후보시절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박근혜식 성과연봉제에 반대하긴 했지만 성과급 자체에 반대한 적은 없다. 작년 성과연봉제 반대투쟁이 벌어질 때에도 더민주당의 주요 인사들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식으로 무기계약직화, 자회사의 정규직화 등을 거론한다. 노동운동에서 비판해왔던 방식이다. 일자리위원회에서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비용에 대한 예산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말도 나왔다.

 

사실상 정규직의 임금을 삭감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임금체계는 설계하는 자의 의도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므로 이런 정부가 내걸 직무급제는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직무급은 설계부터가 쉽지 않은 임금체계다. 성격이 다른 직무를 구분하고 직무 간 난이도와 책임성을 측정하여 직무등급을 매기는 것을 직무평가라고 하는데 여기에 평가자의 주관과 의도가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하기 어렵다.

 

예컨대 인사업무와 복지업무처럼 성격이 다른 업무 간 난이도를 측정하고 임금 격차를 누구나 납득하게 설정하기 어렵다. 사용자의 자의적 평가에 따라 직무등급과 임금격차가 설정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 비정규직 노동조합 활동가를 포함한 직무급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연공급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근속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정규직이 근속기간 짧은 비정규직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직무급이 도입되면 동일노동 동일(가치)노동에 따라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차별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용자가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은 인건비 절감 등의 효과를 누리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무급이 시행되면 비정규직을 별도의 직무등급으로 묶어 저임금을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직무급을 오래전부터 수용하였고, 산별노조가 비교적 강력한 독일의 경우에서도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 재계, 언론 등에서 직무급제가 연공급제에 비해 나은 제도처럼 묘사하며 직무급을 도입하면 기업의 경쟁력이 올라갈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직무급과 경영성과 간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결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왜 사용자들은 직무급제를 추진하려 하는 것인가?

 

직무급은 연공급에 비해 성과주의와 친화적인 제도이다. 1980년대 신공공관리론 등의 확산 이후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기존의 직무급제 하에서 성과급제를 확대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직무급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활발히 논의되다가 2013년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판결 등으로 다시 유력한 대안적 임금체계로 등장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성과급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성과직무급을 도입하여 노동자의 월급명세표에서 성과급 비율을 늘릴수록 사용자가 지불해야할 시간외수당 등은 줄어들게 된다. 더욱이 장기근속자가 많은 사업장일수록 직무급이 연공급에 비해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사용자가 직무평가 또는 성과평가의 권한을 쥐게 되면 사업장 내 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평가를 빌미로 인건비를 삭감하기 쉬워진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평균근속기간도 가장 짧은데다가, 10년 이상 장기근속자 비율이 가장 낮고, 장기근속 기간도 가장 짧다.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정규직조차도 최악의 고용불안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정적으로 장기간 근무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연공급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연공급의 이점을 노동자들이 얻지 못했던 것이 문제다. 직무급은 자유로운 노동이동을 전제로 하므로 고용안정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또한 현재 임금체계조차 없는 노동자들부터 연공급 등 임금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여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자간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재원은 정규직의 임금 삭감 없이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예컨대 작년 30대 그룹에 쌓인 사내유보금이 807조원에 달한다. 필요 이상으로 가져가는 사람들은 정규직이 아니라 재벌이다. 이들이 쌓은 부를 이용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업장간 임금격차 등을 해소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직무급 논의를 중단하고 노동자와 함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기사 등록 2017.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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